298. 아카데미의 폭군(4)
“부실은 잘 쓰고 있습니다.”
“떨줍올팔이 대체 뭐냐?”
“말 그대로 떨어지면 줍고, 오르면 파는 거죠. 투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마인드입니다.”
“그래도 이 수익률은 사기지!”
교장은 3학년 1학기가 시작되기 전 무진의 요청으로 부실을 하나 마련해 주었다. 하나, 공을 세웠다곤 해도 아무 이유도 없이 부실을 내어 주긴 어렵다. 규칙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구실이 필요했다.
3학년이 되면 동아리를 만들 권한이 생긴다. 무진은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세워진 동아리가 투자 동아리 ‘떨줍올팔’이었다.
다만, 아카데미 동아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각성자의 교육과 실전을 위해 설립한 훈련소가 아카데미였다. 전투, 속성과 연관이 있다면 모를까, ‘떨줍올팔’은 경상대에나 있을 법한 동아리였다.
지적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제재하진 않았다. 투자 동아리를 만들지 말라는 조항도 없고.
교장은 또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봤었다. 투자 동아리는 가면이고, 사악한 음모가 숨어 있는 줄 알았다.
웬걸, 진짜로 투자를 잘하고 있었다.
재미 삼아 투자만 하면 생도로서 경제적인 자립을 위한 교육 차원으로 볼 텐데.
수익률이 미쳤다.
3,000%가 나올 수 있는 수익률이었어?
역배, 인버스에 올인하지 않고서야.
누가 보면 작전 세력인 줄 알겠다. 한편으로 교장은 아쉬운 감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용 대출이라도 해서 투자하는 건데!’
100만 원을 투자해서 2천만 원이 되었다. 계좌에 들어온 돈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3,000%가 터지진 않았어도, 분산투자로 얻은 수익률도 투자 분석가들의 귀싸대기를 후려치고도 남는다.
“나는 널 믿는다.”
“욕심을 부리면 투깁니다.”
윽!
무진의 칼 같은 차단에 교장은 본론은 꺼내지도 못하고 막혔다.
하늘보다 높은 교장을 놀린다고 화를 내기에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아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수익률이 높다고 무작정 과하게 투자하다간 돈놀이한다고 소문이 날 수도 있었다.
정부와도 협업하고 있어서 수익이 지나치게 높으면 당파 싸움에서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크다. 막말로 당파가 갈리면 사소한 꼬투리도 문제가 되었다. 실제로 정치에서 합법과 불법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계에 진출해도 결국 남는 건 돈인데.’
부동산을 2개 이상 가지고 있지 말라는 대통령의 요구가 있자, 미련을 두지 않고 쿨하게 직책을 던졌던 예가 있었다. 확실히 돈은 가치가 떨어져도, 부동산은 항상 올랐었다.
아쉽게 됐으나, 교장은 노선을 살짝 비틀었다.
“비결이 뭐냐?”
“뇌물입니다.”
“이놈이, 알려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개소리를 지껄여!”
“정확한 투자 분석을 통해 위험을 배제한 포트폴리오로 구성해서 분산투자를 하고 있어요.”
“하긴, 쉬운 일이 아니지.”
무진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사실 전자가 맞는 말이었다. 투자 분석은 무슨, 신에게 뇌물만 잘 바쳐도 7할은 먹고 들어간다.
‘장 선배의 도움이 컸는데.’
동아리의 부장은 장구용이었다.
무진은 장구용의 강신을 강화해서 투자를 해 왔다. 미신과 주식을 융합한 새로운 투자 기법으로. 강신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장구용 선배는 예지에 가까운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100%의 예지는 불가능해도, 인공지능처럼 항목을 세세하게 정해서 예지한다면 성공률이 꽤 높았다.
‘돈 놓고 돈 먹기를 안 하면 바보지.’
장 선배의 예지와 미래를 아는 지수의 정보를 토대로 분석했다. 여기에 성운 그룹과 쉐도우 길드의 성장으로 투기가 아닌 상생 투자가 가능해졌다.
결과적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작지 않았다.
무진이 원래 가지고 있는 돈이 조 단위인 걸 고려하면 세계 제일의 부자도 가까운 시일 내 따라잡을지도 모르겠다.
세법에 관해서는 제인 누나에게 맡겼다.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기란 굉장히 귀찮은 일이고, 버는 만큼 내면 그만이었다. 주변에 적이 많아진 만큼, 사소한 문제가 나중에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작은 이득에 매몰되어 큰 그림을 놓치진 않는다.
세금은 합법적으로 해 놓은 후.
‘반성운맹에 흘리면 딱 좋겠군.’
나중에 빅엿을 먹이려면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역정보를 내보내야 했다. 그 중심에 우리 준상이가 있었다. 지금까지 잘해 오고 있기에 전적으로 일임했다.
본인과 길드가 무사하려면 잘하겠지?
무진은 종종 독려 전화만 했다.
여하튼 장구용 선배의 성좌가 투자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부수적으로 둘러붙은 성좌는 제물에 약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상에 일정 크기의 제물을 놓으면 알아서 다음 제물을 알려 주었다. 그러면 신령의 만족도에 따라서 정확도가 올라간다.
‘성좌도 별수 없지.’
제물의 만족도는 강림의 동화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러니 만족할 만한 제물을 올리려면 장구용 선배는 투자의 신이 되어야 했다. 제물의 만족도가 고가였다. 메이커, 즉 명품이 아니면 쳐주지 않는다.
‘제물이야 몇 번이든 줄 수 있지.’
무진은 성좌의 속물근성에만 중점을 두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제물을 가져가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잘만 하면 내년에 있을 성좌의 선택에서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선물을 받았으면 직접 가서 감사 인사라도 하라고 아버지께서 그러셨다.
“다음엔 어디가 좋겠느냐?”
“그냥 성운 그룹에 다 박으세요. 못해도 3배는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고작 3배?!!
최소 10배는 되어야지.
교장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지만, 차마 더 좋은 주식을 알려 달라고 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돈독이 올랐다고 핀잔을 듣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진짜 목적이 뭐냐?”
“갑자기요?”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교장 선생님의 눈치가 제법이셨다.
“네가 돈을 위해서 귀찮은 짓을 사서 할 리 없잖아.”
“저, 조 단위로 버는데요.”
“……난 절대 흔들리지 않아, 네가 한 개도 부럽지가 않아!”
“왜 속마음을 제게 말하세요.”
생도의 경지를 넘어섰으니 이해는 한다마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돈을 벌어도 조 단위로 버는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하냔 말이다.
아껴 쓰라고 하기도 어려운 액수였다. 그러다 진짜로 아껴 쓰기라도 하면 나라 경제가 휘청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분산투자 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무진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즉시 부도가 날 수도 있었다.
생도가 조 단위 투자자인 줄 누가 알았나? 수익률을 보니 이제 얼마나 돈을 벌었을지 감도 오지 않는다.
“다크니스의 투자처를 선점하려고요.”
“허! 또 시작이네.”
아카데미 생도의 투자 동아리가 세계 공적인 다크니스를 상대로 자본 대결을 벌일 줄 누가 알까? 나중에 알려진다고 해도, 섣불리 믿기 어렵다.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다크니스도 지금은 꽤 바쁘잖아요.”
“누구 때문인데, 어련하겠느냐.”
이번에 다크니스는 의도치 않게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들의 목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곤 해도 국가를 전복시킬 힘을 가진 이상, 각국에선 경계하기 시작했다. 장막 속에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던 다크니스로선 원치 않는 흐름이었다.
지수의 정보를 토대로 하면 다크니스의 발호 시기가 앞당겨졌다. 미래와는 다르게 세계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이다. 세계를 상대할 힘을 가졌어도, 서두르게 된다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물며 10년 이상의 차이가 벌어졌다.
원치 않은 갭을 메우려면 다크니스로서도 제법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세계 공적이 되기보다는 잠적이 나을 수도 있으나, 수십 년의 적공을 간단히 포기하진 못한다. 사람이든 단체든 노력, 시간, 자금이 들어가면 선택에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물며 다크니스는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흐름상 소설, 만화, 영화와 비슷하다. 자기가 직접 나설 상태가 아니거나, 강림의 조건을 완성하려는.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나쁘진 않았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되었다. 설령 분노에 이성을 잃는다고 해도, 메인이 나오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크니스나 세계 각국은 분주해진 상황이었다. 선택과 집중을 고려한다면 일개 아카데미 생도의 행보에 힘을 쏟진 않는다.
시대가 바뀌어도 조호이산지계와 성동격서는 전략의 근본이었다.
“야금야금 갉아먹어 보자고요.”
“네가 내 생도라서 다행이구나, 사랑스러운 제자야.”
“하나만 하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무조건 네 편이다.”
군사부일체를 거론하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교장의 진심이었다. 이놈하고 적이 된다고 상상하니 벌써부터 간담이 서늘했다.
‘이 녀석은 어떤 성좌하고 계약하려나?’
지금도 이런데, 성좌의 선택이 끝나면 얼마나 대단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상식적인 선으로 판단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기준점 자체가 다른 녀석이었다. 생도로서 세계 공적의 뒤통수를 때린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 많이 강해져라.’
교장으로선 한배를 탄 이상, 무진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이득이었다. 더욱이 무진이 하지 못하는 일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다.
“수익이 커질수록 자금 흐름에 이상한 점이 있을 거예요. 그걸 파고든다면 다크니스의 실체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겠죠.”
“하여간 뭘 해도 하나로 끝내는 법이 없구나.”
애늙은이 같은 녀석, 심계에 대체 몇 개의 수를 숨겨 놓고 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한 가지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었다.
“사모님한테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큭! 그건 가정의 공용 자금이 아닌 내가 먹을 거 안 먹고, 사고 싶어도 안 사고 30년 동안 모은 용돈이었다고!”
……헙!
이번에는 무진이 되레 놀랐다.
약간 놀릴 심산으로 말했는데, 저렇게나 정색을 하실 줄이야. 결혼 생활을 어떻게 하기에 아카데미 교장이 30년 동안 200만 원밖에 못 모아? 낭비벽이라도 심하면 몰라. 교장이 돈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어쩐지 학식을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내막이 있었다.
“대체 무슨 결혼을 하신 겁니까?”
“……결혼이란 그런 거다!”
결혼이 그렇게나 무서운 거였나?
뒤탈이 두려워진 교장 선생님의 구구절절한 변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로 사랑하기만 해선 안 되는 듯했다.
“하나만 명심하거라.”
“뭘요?”
“통장은 네가 관리해라.”
“각골명심하겠나이다.”
30년의 구력이자 진심이 담긴 교장 선생님의 가르침이었다.
내 돈 내 산.
뒷광고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