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우리나라 아니잖아(2)
“어디 이것도 막아 보거라!”
내지르는 일격은 철산(鐵山)을 부술 파괴력이었다. 아미파의 복마검진과 충돌하며 거센 여파를 형성한다.
“……이건 마경살권?”
“철마다!”
혈마, 시마, 철마는 이미 죽은 자로 기록되었다. 구대문파와 팔대세가는 7공적을 살려 두지 않았다.
“무슨 수로 살아 있는 건지 모르지만, 죽은 자여, 지옥으로 돌아가라!”
“다시 죽이면 그만일 뿐!”
구대문파의 정예와 3공적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한편으로 저들이기에 삼천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문의 어른을 죽인 철천지원수를 두고 물러설 구대문파가 아니었다.
이번 일을 위해서 8백의 무인을 동원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공조하며 겹겹의 천라지망을 갖추었다. 악명이 자자한 공적이라도 천라지망을 빠져나가진 못한다.
실제로 백팔나한진과 매화검진이 천라지망의 중심축을 담당하여 가공할 중력을 발생시켰다. 진의 영역에 닿기만 해도 압사할 듯 공간을 짓눌렀다.
시마, 혈마, 철마도 천라지망의 극압에 본래의 역량을 발휘하기가 여의찮았다. 그들이 죽어지내는 동안 구대문파도 손을 놓지 않았다. 나름 세계를 상대하기 위해서 전력을 갈고닦았다.
핏, 크악!
하나, 순조롭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3마만을 경계할 수는 없었다. 적들 사이에 극한에 이른 암살자가 숨어 있었다. s급의 환술 아이템을 이용해 지척에서도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살수 따위가 감히!”
“어림도 없느니라!”
전투는 혼전 양상으로 흘러가나 싶었지만, 구대문파의 장문인과 최고 장로가 나서면서 재차 구대문파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3공적과 십사의 살기가 대단하긴 해도, 부동심을 수련한 구대문파의 정예는 흔들리지 않았다. 피해가 발생해도 기어이 승기를 잡아 나갔다.
‘허어,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었던 것인가?’
무당파의 장문인, 철엽진인은 작금의 사태에 혀를 내둘렀다. 상대의 수를 보지도 않고, 미래를 본 듯 대비하게 했다.
와룡이 아니라 귀신의 심계였다.
‘적이 되면 안 되는 자로다.’
***
쐐애애!
비밀 통로로 내달린 루이스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인상은 펴질 줄 모르고 있었다. 십사를 쓰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혈병기는 최후의 수로 남겨 두려고 했었다.
‘빌어먹을, 구대문파를 너무 경시했구나!’
독이 바짝 오른 구대문파의 저력은 가볍지 않았다. 각 문파의 숨겨진 정예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더욱이 삼천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구파의 장문인은 그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뿐인가? 명색이 정파의 태두란 작자들이 자존심을 시궁창에 버리고, 합공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계만 온전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구대문파는 결계와 진법에도 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쓸 패를 알고 있지 않고서야.
구대문파의 전력도 대단했지만, 두뇌 싸움의 패배가 크게 다가왔다. 혈병기를 귀혈환술과 연계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탓이 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찾아내서 오체분시 해 주마!’
구대문파의 대처는 지나치게 능수능란했다. 죽은 줄 알았던 혈병기를 사용해서 빈틈을 노렸거늘. 진법과 s급 신성 아이템을 연계하여 무리 없이 막아 냈다. 기습 작전을 짠 놈이 알려 줬을 가능성이 컸다.
‘하는 수 없지.’
최정예의 구대문파와 정면 대결한들, 잘해 봐야 양패구상이었다. 그럴 바에는 본부를 버리고, 지부에서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다. 팔대세가를 이용한다면 작금의 피해를 되돌려 줄 수 있었다.
비밀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워프나 텔레포트를 이용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일대에 마나역장이 펼쳐져 있어 공간이동을 쓰는 즉시 산산조각이 날 수 있었다. 주석의 와룡이 이마저도 예상하였던 듯했다.
길게 이어진 통로, 과거 사라진 북한에도 전수한 땅굴 파는 솜씨는 중국이 원조였다. 참고로 피자, 스테이크, 돈가스도 중국이 원조라고 했다. 어지간하면 중국이 다 원조라고 해서 놀랍진 않다.
찌릿!
통로의 끝에서 외부로 발을 내딛는 찰나. 발끝에서 머리끝을 강타하는 오싹한 전율이 일었다.
주마등이 스친다.
큭!
만물을 가르는 검기.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만상의 궤적과 극한의 속도였다. 막기엔 검기에 실린 의지가 워낙 단호했다. 능히 강기를 베어 버릴 검기였다.
스왁!
벴다.
허공에 굴절이 생긴다. 그 여파로 같은 궤적에 있는 통로의 건물이 사선으로 선이 생기다가 미끄러운지 떨어져 내렸다. 목표물의 소거를 위해서 건물 전체를 자르는 대중화의 스케일이었다.
쿠꽈콰콰꽝!
건물이 부서지면서 솟구친 먼지가 사방을 뒤덮지만, 검공은 멈추지 않고 검광을 번뜩였다. 직선, 사선, 횡선이 하나의 형태를 이루더니 검망(劍網)으로 화했다.
검역이 발동하여 운신을 제한한다.
착!
이윽고 통로를 노렸던 중년 도인이 검격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통로가 아닌 반대쪽으로 향해 있었다.
방금 수는 태극검의 오의, 태극검망이었다.
빈틈이 없다 여겼거늘.
허어!
작은 감탄이 도인에게서 터져 나왔다. 전력은 아니더라도, 무당의 진의를 담은 검공을 발출했다. 완벽한 기습을 노렸으며, 회피할 공간을 차단해 버렸었다. 그런데도 상대는 반대쪽까지 속성이나 스킬이 아닌 보법으로 피해 버렸다.
“극한에 도달한 경신이로다.”
“성격 아니까, 개폼 잡지 말지.”
“허어, 뜻 모를 소리를 하는구나.”
“대체 어떻게 알았지?”
“진무대제께서 네놈의 악행을 단죄하라 명하셨다.”
루이스는 검신을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구대문파라고 해도, 결국은 각성의 시대 이후의 문파에 불과했다. 역사를 거론해 봤자,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로 자기들 문화를 스스로 없애 버렸다. 그런 주제에 진무대제라니, 개 같은 헛소리였다.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군.’
도망칠 것까지 염두에 두었다면 주석의 와룡에게 철저하게 놀아난 것이다. 루이스는 현실을 깨달을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변수를 계속 만들었음에도, 벗어나지를 못했다.
“순순히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지.”
“날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경신은 봐 줄 만하나, 도망칠 순 없다.”
“어디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보거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이스가 사라졌다. 공간이동 같으나, 일대에 펼쳐진 마나역장의 영향에 텔레포트 계열은 어려웠다. 되레, 흔적이 남는다.
그렇다면 극성의 보신경이었다.
스륵!
검이 공간을 절단했다.
슈앙!
태극검의 기본인 내려치기 태극일단(太極一斷), 검신의 의념이 담기니 산을 가를 일도양단의 수가 되었다.
흠.
루이스는 지척에서 베인 공간을 보며 만만치 않음을 인정했다. 검신의 안목은 자신을 따르고 있었다. 하나, 뇌기를 이용한 뇌전질풍보(雷電疾風步)의 진의는 지금부터였다.
스스스슥!
속성으로 만들어지는 잔상들.
공간을 밟을 때마다 루이스의 신형이 첩첩이 쌓이며 분신이 된다. 실과 허의 구분을 지워 내며 검신과의 거리를 좁혔다. 눈을 감고 뜨는 그 찰나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어림없다.”
옥황상제의 의지를 이어받았을까? 검신의 단호한 외침이 의념이 되어 공간에 무수히 많은 검형을 그린다. 검천무형(劍天無形)을 이루어 공간을 차단하며 다가오는 루이스의 신형을 베어 냈다.
검신의 고유검의(固有劍意)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발버둥을 쳐 봤자 경신만으로는 소용이 없다는.
“도망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어지간히 얕보였나 보군.”
루이스의 보법이 공간에 새겨질 때마다 압력이 발생했다. 가공할 기운이 허공을 짓밟으며 검형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꽈아앙!
일대가 부서지는 굉음이 번지며 루이스와 검신의 일보일검(一步一劍)의 격전이 펼쳐진다. 도망칠 줄 알았던 루이스가 별안간 공세적으로 나왔음에도, 검신은 여전히 여유가 있어 보였다.
‘재밌네.’
공간의 활용은 루이스의 장기였다.
언제까지 여유가 있을까.
***
툭, 푸아앗!
대충 쳤는데, 혈화가 핀다. 낚시꾼도 아니고 내지를 때마다 주먹에 족족 걸렸다. 상대가 허수아비라면 모를까? 굉장히 빠르고, 기민했다. 그런데도 속절없이 당하는 걸 보면 주먹을 추적해서 얼굴로 대 주는 것처럼 보였다.
동료의 허무한 죽음에 남녀는 질린 기색이 완연했다. 여자, 남자 가리지 않는 공산당식 주먹질이었다. 북한 돼지가 살아 있다면 한번 맞아 봄 직하다.
“……마녀…… 크앗!”
“누구보고 마녀래, 이렇게 아름다운 마녀 봤어? 뒤졌어!”
지금도 다 쳐 죽이고 있는데, 뭘 또 뒤져.
주머니 뒤져서 나오면 더 치게?
욕을 하든, 안 하든.
지수의 주먹에 걸리면 사망신고를 해야 했다. 다만, 워낙 인구가 많아서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는 들었다. 자식을 낳아도 세금 나올까 봐, 주민등록을 안 한다며.
중국의 전통문화를 존중해 주었다.
헐!
처음보다 멀리 떨어진 장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교류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줄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손 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저게 어떻게 생도야?
마녀는 그나마 순화된 표현이었다.
꿀꺽!
내가 대체 뭔 짓을 했던 거냐? 지수의 살인 주먹을 보고 나니, 꼬시려고 했던 과거가 떠올라 전립선이 움찔움찔했다. 비대증에 걸리지 않고서야, 제명을 단축하는 행위였다.
‘한국 여자들은 다 저런 건가?’
대중화의 여자만 드센 줄 알았는데, 한국 여자는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았다.
어깨나 종아리에 문신 있나?
넋이 나갔던 장위는 어깨동무해 오는 거구의 사내로 인해 현실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잘 데려왔지?”
“……찰떡입니다. 강 대형!”
이제는 저절로 존대가 터져 나온다.
“우리 지수가 외국이라고 조금 낯을 가려서 그렇지, 평소엔 저거보다 더 잘해.”
“……좋으시겠습니다!”
저게 조금이면, 평소엔 대체 뭐 하시는 년이세요?
장위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감언이설에 속아 여기 오지를 말았어야 했다. 오늘 밤 꿈에 나올 것 같았다. 일곱 살 이후로 단수(斷水)했던 오줌전도(小便全圖)를 그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미쳤지!’
온라인 친구만 할걸. 괜히 오프라인 친구를 만들겠다고 이 지랄을 떨었을까?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비싼 연유가 있었다.
‘그래도 미친 작전이긴 해!’
아버지조차도 설명을 듣고 얼마나 놀라셨던가? 설마 그렇게 될까, 한때의 의심마저 사라졌다. 적의 방심을 유도하고, 완벽히 허를 찌르는 작전이었다. 마치 삼천의 죽음도 예상했던 듯, 구대문파의 독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거야?
-네가 세웠다고 해도, 아무 기여도 하지 않으면 저들이 인정해 줄까?
-최소한 대빵은 네가 잡아야지.
-잡기만 하면 너는 네 아버지뿐만 아니라 구대문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걸.
-네 평판은 네가 만들어 가는 거야.
무진의 혈당 수치 1,580mg/dl 이상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장위는 후회막심이었다. 저런 무지막지한 여자를 데리고 올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럼에도 안심이 되는 건 또 뭔데.
‘나 혼자선 불가능하긴 하지.’
대빵을 내 손으로 잡으면 얼마나 좋겠어.
장위는 본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대단한 척해도,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혼자 하라고 했으면 감언이설에 넘어가진 않았다. 도와주겠다는 무진의 원조가 결정타였다. 이제부터 항미원조가 아니라, 한국전쟁은 무조건 남침이었다.
“……살려 줘, 같은 여자끼리 이러지 말자고!”
“동료 의식이 없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 악마 같은 년, 저주할 거야!”
“그런다고 안 죽어, 크크크크!”
진짜 악마 아냐?
누굴 닮아서 저러는 건지 원, 쯧쯧쯧!
혀를 차를 무진의 모습에 장위는 끼리끼리, 유유상종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건 죽어서도 까먹지 않을 것 같았다.
“성좌만 잘 꼬시면 좀 더 강해지겠는걸.”
“……그렇구나!”
와, 생각해 보니 그렇네.
장위는 소름이 돋았다. 저년하고는 앞으로 무조건 잘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지수와 무진은 한 쌍의 잘 어울리는 개 같은 연놈들이었다.
“두 분 사이가?”
“음, 우리 사이라. 여사친보단 가깝고, 여친보다는 먼 그런 사이랄까?”
그게 뭔 슬픈 노래 같은 사이야?
지수가 사방에 대가리 없는 주검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으며 무진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온다. 어떤 장애도 우릴 막을 수 없다는 느낌은 기분 탓이다.
“여보~~!”
장위가 무진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둘이 대체 컨셉을 어떻게 잡은 거야? 하나만 해, 이것들아! 정신 사나워 미치겠다. 시체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으로 포장할 거냐? 낭만을 부르짖기에는 사방에 널린 게 시체다. 자기들 안 죽는다고, 희희낙락거렸다.
“신혼부부로 위장해서 그래. 오해는 하지 마라.”
“얼굴만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닌데!”
컨셉에 함몰된 지수는 메소드 연기에 심취해 있었다. 무진의 팔을 강하게 끌어 잡으며 사랑을 재차 확인했다. 오늘 밤 뜨밤 어떠냐는 시선은 소름을 돋게 한다.
‘노처녀의 플래그는 뽑는 게 아니라더니!’
미래와 현재의 나이를 고려하면 마흔 중반의 정신연령으로 몸과 따로 놀았다. 다만, 한창 불타는 시기의 열아홉 살이다. 과거에는 이 나이에 결혼해서 애도 낳고 그랬다는 호랑이 맞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를 꺼냈다.
무진은 컨셉을 유지해 주었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뭐지?”
“우주잖아. 뒈질래?”
“정신은 꽉 잡고 있구나.”
“누나만 믿어, 손만 잡고 잘게.”
진짜로 손만 잡고 밤을 새우면 가만둘 것 같진 않았다. 신혼 첫날이 전투적이지 않다면, 이혼하는 편이 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