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꼴값(2)
짜증이 난 지수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빠꾸 없이 대결에 들어갔는지, 비명이 터지고 있었다.
꽈아앙, 크아아악!
챙그랑!
대련장이 아닌 복도라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남의 집에선 마음대로 싸워도 되었다. 부서지든 말든, 내 집 아니면 그만이었다. 수리비 좀 나온다고 명색이 중국의 대빵이 쪼잔하게 굴진 않겠지.
“아니, 저건 좀!”
“맞아 봐야 맛을 알지.”
무진은 장 주석의 의도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도전하는 족족!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나도록 엉망진창으로 두들겼다. 다시는 도전할 엄두조차 낼 수 없게 가혹한 흑역사를 새겨 주었다. 죽어서도 생각이 나서 관 뚜껑 열고 벌떡 일어나게 될 정도였다.
크아아악!
……마녀!
존나! 처맞을 소리를 잘도 하네.
흐아아악!
거긴, 안 돼!
***
구대문파의 중진들이 소림사에 모였다.
방장실.
옛날 같은 고리타분한 방장실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요즘은 스님도 최첨단 시대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 소통하고 있었다.
일례로 로니아공기청정기, LS로봇청소기, AI첸쿠압력밥솥 등 여러 가지를 갖췄다. 안타깝지만 백색 가전은 한국이었다.
여하튼 예전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는 한탄이 스님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물론, 부수적인 요건이다.
방장실은 그 어떤 시설보다 보안이 철저했다. 내부에서 폐쇄하면 외부에선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소림사 경내에서도 방장실이 외딴 무인도로 분류되는 연유였다.
구파의 장문인과 장로들이 모인 방장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며칠 전만 해도 팔대세가를 시종일관 밀어붙이며 흐름을 뺏어 왔었다. 하지만 호사다마였던가. 궁지에 몰렸던 팔대세가가 반격을 취하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모두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져 있었다.
“방장께선 하실 말씀이 없으시오?”
“아미타불! 불가피한 상황인 데다가 모두가 합의한 사안이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회피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소림과 화산이 서두르는 바람에 본문의 제자들이 얼마나 많이 희생당했는지 아십니까?”
“그건 맞는 말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림과 화산은 희생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소림과 화산은 신승과 검성을 잃고 복수를 천명했었다. 팔대세가에 죗값을 묻기 위해 구대문파의 동의를 얻어 무력대의 통솔권을 얻었다.
복수라는 대의명분이 있는 이상, 마냥 반대할 순 없는 노릇이고. 더욱이 소림과 화산이 삼천을 잃기는 했어도, 주요 전력은 남아 있었다.
하나, 다크니스 본부를 공략할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굳이 무리해 가면서 3공적을 제압하려다 되레 피해를 키웠고, 손해를 만회하겠다고 팔대세가를 몰아붙이다 역공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 모든 일들이 본사의 탓이란 말이오?”
“제갈세가의 필멸진에 공동과 아미의 주력대가 몰살당할 뻔했습니다. 그때 돌격 지시를 내린 건 분명 소림과 화산입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결과가 같다고 해서, 책임이 같을 순 없지요.”
소림사의 방장 공청과 화산파의 장문인 이청수도 심기가 편치는 않았다. 저들과 달리 소림과 화산은 문파의 기둥을 잃었다.
그런데 실패의 책임까지 전적으로 떠안으라니 이 와중에 할 소린 아니었다. 무력대를 통솔한 책임이 있다고는 해도, 소림과 화산의 무인도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이자들이 본사를 대체 어찌 보고 이리 핍박한단 말인가!’
‘사조께서 살아 계실 때는 입도 뻥끗 못 하던 것들이!’
더욱이 당시 결정은 모두의 의견이 종합되었다. 단순히 소림과 화산의 독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억울한 사안이다. 속내를 따져 보면 모두가 혈강시의 제조술을 탐내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피해가 커졌다고 덤터기를 씌웠다. 이건 마치 필요할 때는 공장을 쉽게 짓도록 허락하고, 쓸모가 다하니 잡아먹으려는 토사구팽과 같았다. 남이 당할 때는 당연하다 싶었는데, 정작 본인들이 당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무량수불!
소득도 없이 대치가 이어지고, 서로를 탓하기만 하자 아미파의 장문인이 마지못해 나섰다.
“지금은 책임 소재나 가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팔대세가가 언제 공격해 올지 모릅니다. 각 문파가 공격당할 수도 있는 시기인 만큼,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대책이라고 해 봤자, 전력을 끌어모아서 단기 결전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소!”
구대문파는 전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이제는 힘을 숨겨 놓고 나중을 기약할 수도 없게 되었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팔대세가가 어중간하게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뾰족한 묘안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검신에게 향했다. 파죽지세로 몰아붙일 때도 검신이 있었고, 패배의 중심에도 검신이 있었다. 대결의 향방은 결국 검신이 어떤 결과를 내놓는지가 중요했다.
‘끝까지 책임은 지지 않겠단 거냐?’
소림과 화산으로 몰아가다 안 되겠다 싶으니, 이젠 자신에게 책임을 몰고 있었다. 그런다고 작금의 사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닐 텐데.
꽈득!
한심한 작태에 분노한 검신은 필터링 없이 쏘아붙였다.
“다들 주접은 그만 싸고, 대안이나 내놔.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리면 되는 줄 알아! 그러라고 너희들이 각 문파의 수장이 된 거냐!”
“말씀이 과하십니다!”
“어라, 대가리들이 많이 컸네. 이제는 말대답도 하고 말이야.”
“검신께서 무림의 선배긴 해도, 우린 한 문파의 장문인입니다. 예의를 갖춰 주십…… 크윽!”
무당파의 장문인을 제외하고 모두는 검신의 기세에 기겁했다. 심신을 옥죄는 기세를 막아 내려고 할수록 압박이 거세졌다.
‘……이렇게나 강하다고!’
‘이런데도 어떻게?’
파죽지세였던 검신이 물러서면서 팔대세가에 치명타를 입었다. 검신의 위명이 허명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저항할수록 격이 다르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화풀이는 이쯤 하고, 분기를 가라앉힌 검신이었다.
“내가 당하고 싶어서 당했겠냐?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해! 이길 수가 없으니까, 피한 거야.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지금 당장 반격할 기회라도 있었을 것 같아!”
“……상대가 그 정도로 대단하단 말입니까?”
“1명도 비등하지만, 2명까지는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어도 그 이상은 어려워.”
“팔대세가에 그만한 고수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밀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애초에 말이 안 됩니다!”
“안 되고 자시고, 그게 뭐가 중요해. 현실이 이런데! 다시 싸우면 십중팔구 다 뒈졌다고 봐야지!”
검신의 말이 다소 거칠고, 직설적이긴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에는 충분했다. 남은 전력을 모아서 싸우면 최소한 협상의 여지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멸문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방법이 아예 없진 않아.”
“있으면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어떠한 것이라도 따르겠습니다!”
“권왕가.”
……?
멸문지화의 불안감에 검신의 선택을 따르려던 구파의 장문인들은 말문이 막혔다. 하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혹시, 권왕의 가문을 말하는 거라면 절대 안 됩니다!”
“그 망종과 손을 잡자니요!”
“검신께서는 당해 보지 않아서 그리 쉽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권왕은 상종 못 할 위인입니다!”
권왕을 경험한 구파의 장문인들은 학을 뗐다. 그럴수록 당시의 일이 악몽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치욕을 설욕해도 부족한 판국에 손을 내밀자니. 차라리 악마와 손을 잡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쪽팔림을 감수하고 말하는데도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거냐?’
검신은 답답했다.
지금 이런저런 사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팔대세가를 끝장내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놈은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다른 놈들이 합세하기 전에 피하지 않았다면 황천길이 멀지 않았을 것이다.
그놈의 체면이 뭔지!
일단은 살고 봐야지 않나?
검신은 그리 말하고 싶으나, 이놈들이 지나치게 완고한 꼰대였다. 한편으로 난동을 부린 권왕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악명만 없었으면 어떻게든 해 볼 텐데.
응?
순간 검신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어서.
뎅뎅뎅!
소림사에 경계가 발동했을 때의 타종이 울렸다.
-적습입니다!
검신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와룡의 저주로다!’
***
“그게 무슨 소리야?”
-궁의 3단계 결계와 보안이 뚫렸습니다!
“금방 해결한다고 하지 않았나?”
-나갔던 인원 전부 사망했습니다, 지금도 희생자가 늘고 있습니다!
화면을 통해서도 다급한 사태가 전달되고 있었다. 궁을 보호하는 안전 결계와 수백의 경호 인력이 투입되고 있는데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꽈아아앙!
화르르르!
폭발과 화염이 번지며 궁의 결계가 유리잔처럼 깨져 나가고 있었다. 최강의 결계와 방벽으로 최고 안전 등급을 받은 밀실이지만, 장 주석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경호대는 막을 수 있는 건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4단계 결계가 무너졌다는 보고가 왔다. 이제는 영상마저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최고의 요원들이 배치되었음에도, 습격자들의 침입을 막기는커녕 일방적으로 썰려 나가고 있었다.
“여기도 안전하지 않은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곳까지는 오지 못할 겁니다!”
“말은 누가 못 해! 너도 나가 봐!”
“……알겠습니다!”
장 주석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인식했다. 자칫 잘못하면 지금까지 누린 모든 것들을 잃을 수도 있었다.
‘설마 했거늘!’
미치지 않고서야 주석궁을 대놓고 공격할 줄이야.
오늘 일이 외부에 알려지는 순간 세계의 공적이 된다. 하물며 주석궁을 노릴 세력은 정해져 있었다. 팔대세가는 구대문파와 전면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남은 세력은 다크니스뿐이다.
‘우리가 무력한 거냐? 아니면 놈들이 강한 거냐?’
아직 주석궁의 최정예 부대는 남아 있었다. 주석궁의 정예 부대 적색단(赤色團)이라면 능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막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그 순간 마지막 카드가 떠올랐다. 궁의 최고 요원을 가볍게 쓰러뜨린 권왕가의 후예들.
‘빌어먹을!! 그 오만방자한 놈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단 말이더냐!’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는 건 인지상정이긴 하나, 장 주석은 자존심이 상했다. 차후, 대국의 위엄을 보여 주려고 했거늘. 이제는 위엄은커녕 어떻게든 위기를 넘기고 봐야 할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