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공개(5)
“돗자리 까는 솜씨가 날이 갈수록 느는구나.”
“저는 강요한 적이 없는데요.”
“생도에겐 실력 차가 곧 강요야. 스텟 하나에 목을 매는 녀석들 천진데, 그 앞에서 대놓고 과시했으면 끝난 거지.”
“우리나라엔 인재가 많네요.”
“말 돌리는 솜씨도 나날이 늘고 말이야.”
“정 그렇게 제가 탐탁지 않으시다면 자퇴하겠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가까이하면 불편하지만, 멀어지면 경력에 문제가 생긴다. 세계 최강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상, 무진은 아카데미의 위상을 올리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아카데미를 네 입지를 다지기 위한 도구로만 쓰지는 말거라.”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이 없는데요.”
“다른 데선 폭력이지만, 아카데미에선 공식 결투가 된다는 걸 알고 있지 않느냐.”
“역시 교장 선생님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신다니까요.”
이젠 대놓고 머리 꼭대기에 있구나.
그래도 어쩌랴.
약자는 원래 서글프다.
무진의 전투력을 측정하고 싶은 건 생도만이 아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찾는 부류가 차고 넘쳤다. 그들과 밖에서 마찰을 빚으면 문제가 되지만, 아카데미의 결투장을 이용한다면 공식 대련이 된다.
그런데 정작 무진은 나서지 않고 친구들을 내세웠다. 자기를 무시한다며 항의하던 도전자들도 친구들의 실력을 확인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친구들의 화려한 역량.
나날이 벌어지는 격차.
세계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했고, 투명청룡오관의 가치가 연일 수직 상승하고 있는 추세였다. 더욱이 미꾸라지처럼 도망치다 걸리면 물귀신이 되는 초인과 각성자들로 인해서 세계는 시끄러운 가운데 한·중·일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
이것이 전부 투명청룡오관의 효과였다.
‘단순히 관문을 팔아먹으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교장으로선 도무지 무진의 꿍꿍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일련의 과정들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물어본다고 답해 줄 것 같진 않고.’
일단, 학부모들의 항의부터 해결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자기 자식을 무진에게 팔아먹는 짓인데, 빨리해 달라고 성화가 빗발쳤다. 내 자식이 남들과 차별을 받는 건 있을 수 없다나. 누구나 노예가 되는데, 나만 혼자 자유인이면 안 된다는 건가?
‘이걸 차별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아카데미는 엄밀히 따지면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 기관이다. 그런데 사교육의 끝판왕인 무진의 교육법을 도입하자고 본 교장을 협박하고 있었다.
정부에선 엮이기 싫어서 은연중 자신에게 떠맡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구해 줬다면서 간도 쓸개도 내줄 것 같았던 국무총리의 외면이 씁쓸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정치판의 행태였다.
‘그래도 이놈 상대하는 것보단 낫지.’
대화를 섞고 나면 며칠 동안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대체 뭔 사고를 터뜨릴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오늘 관문을 설치한다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설치하려고요.”
“이것도 쇼를 하겠다고?”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죠.”
세상 전체가 이놈한테 놀아나는데도, 누구 하나 애를 바른길로 인도하지 못했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갈 놈이니, 어쩌겠나. 정도(正道)도 자기가 원하는 길이 아니면 빠꾸시킬 녀석이었다.
“가시죠.”
“오냐, 최대한 화려하게 설쳐 보거라.”
“사부님은 제 편일 줄 알았어요.”
이럴 때만 사부래!
교장은 입을 닫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자발적으로 하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는 더할 것이다. 그냥 포기하고 맘 편히 먹으면 정신 건강은 챙길 수 있었다.
투명청룡오관이 설치될 장소는 사전에 치워 놓았다. 관문을 가지고 와서 농막 식으로 설치하면 끝나는 일이다.
바글바글!
아카데미 생도와 학부모, 구경꾼까지 인파가 몰렸다. 오늘 투명청룡오관 5개를 설치한다고 공지했었다.
웅성웅성!
관문은 최소 층당 100평이 넘는 5층 건물이었다. 중장비가 여러 대 동원되어야 했다. 덤프와 크레인은커녕 삽도 없는데, 준공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맨땅에다 투명청룡오관을 세웠다고 발표할 것인가?
그러고선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고 하면 그 눈을 뽑아 버릴지도 모른다.
시간은 돈이고, 간절함은 때론 성난 봉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줬다가 뺏긴 기분이 들면 그땐 절대 못 참는다. 차라리 주지 않느니만 못한 사태를 불러온다.
“인류 최강 강무진입니다. 오늘 제가 만든 관문의 준공식에 참여해 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
예의가 바른 것 같으면서도 듣고 나면 배알이 꼴린다. 본인 입으로 인류 최강이라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 차마 반박은 못 하겠다.
허!
사람을 선 채로 멕이는 재주가 천의무봉에 도달했다. 다들 눈 뻔히 뜨고서 코가 베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모아 놓고 구라를 쳤다면 인류 최강이라도 반드시 책임을 져야 했다. 농락당한 심적 위로금과 교통비, 헤어비, 네일비, 코털비, 코디비 등등 1억은 기본이다.
“설치 끝나면 바로 준공식에 들어가겠습니다.”
“투명청룡오관이 어디 있습니까? 혹시, 진짜로 투명해진 거라면 위로금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기자의 질문에는 묘하게도 협박이 담겨 있었다. 이런 걸 기자 정신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성공을 위해서라도 물불을 가리진 않았다. 하나, 도가 지나치면 기레기가 되어 분리수거도 안 되는 수가 있었다.
우웅!
성토하려는 모두의 입이 닫혔다.
허공에 공간이 열린다.
허!
말문이 막히는 광경을 목도했다. 규모의 강환 이후로 또다시 나온 무진류 특제 규모의 아공간이었다. 그 압도적인 규모에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아공간이 아니라 아예 다른 세계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9계식!”
“예, 맞습니다.”
대마법사의 반열.
누군가의 발언을 무진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게 뭐 대수냐는 표정이 압권이었다. 아공간이 열릴 때 발생한 마력 파장은 보통은 통제하지만, 이번에는 대놓고 퍼뜨렸다. 상식을 불허하는 가공할 마력에 마법사는 멘붕이 오고, 기자들은 특종에 환호했다.
-폭군은 대마법사!
무진이 마법사임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라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왕 보여 주는 김에 무진은 따까리들도 불렀다.
“나와.”
누굴 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허공에 격을 초월한 존재가 위엄을 드러내며 일대를 장악한다.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게 하는 위압감에 전율했다.
바람의 정령왕 슈라이.
땅의 정령왕 베르엠.
물의 정령왕 워처스.
불의 정령왕 프레이.
마지막으로.
대정령왕 요나.
그새 정령왕으로 승격이 되었고, 임명직이긴 해도 대정령왕의 간판도 달았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대정령왕으로서 다른 정령왕을 통제하고 있었다. 권력은 원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 내리사랑을 매일 실천했다.
“대정령사!”
“정령왕?”
예, 맞습니다.
부정하기에는 정령사들이 바들바들 떨면서 무릎을 꿇었다. 감히 부정할 수 없는, 팬티를 지리게 하는 정령력이었다. 축축이 젖어 오는 탄력감만큼이나 경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대체 왜 부른 것이냐?
“그냥이라고 하면 뻘쭘할 테니, 너는 땅 다지고, 넌 공구리 굳히고, 나머지는 저 앞에서 춤이라도 춰.”
-아니, 그딴 일로 우릴 불렀다고?
“그게 어때서?”
-갑자기 불러서 또 괴롭히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너네 집 요즘 어떠냐? 가서 좀 살까?”
-……열심히 추겠다! 셔플 댄스면 만족해?
“내가 가는 게 싫어?”
-……무척 좋지만, 집 나오면 원래 개고생이지 않느냐!
유치한 대화지만, 누구도 웃지 못했다. 정령왕을 불러서 저딴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는 것부터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더욱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과시하기 위해서 정령왕을 불렀다. 자신들로선 상상도 못 해 본 괴랄한 스케일이었다.
‘정령왕을 노예 부리듯이 다루잖아!’
‘춤을 왜 저렇게 진심으로 춰!’
‘인류 최강은 다르긴 다르구나!’
허풍 떨지 말라고 하기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알지도 못하는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경지에 이른 무인도 꽤 있었다.
“크림아, 나와.”
이왕 할 거 다 하자.
크림이가 나와서 어흥! 하자 다들 화들짝 놀라 말린 곶감을 찾을 뻔했다.
뭔 놈의 뿔고양이가!
백수보다 커!
“설치합니다.”
아공간에서 투명청룡오관이 허공에 둥둥 떠서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 토대를 다져 놨기에 올려놓기만 하면 끝나는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화르르르르!
땅의 정령왕은 수평을 맞추고, 불의 정령왕이 땜질을 한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일체형처럼 완벽한 땜질이 되었다.
바람의 정령왕은 토대가 잘 굳도록 시원하고 건조한 바람을 제공했다. 할 일 없는 물의 정령왕은 화려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셔플을 추었다.
대정령왕 요나가 이 모든 걸 컨트롤한다.
크림이가 요나를 열심히 응원했다.
커억!
주화입마에 빠질 광경이었다.
자랑질도 규모가 다르다는 걸 체감했다. 자신들로선 감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자 건설이 수월해졌다. 최소한 반년은 걸리는 작업을 단숨에 끝내 버렸으니, 국내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에겐 밥줄 끊기는 최악의 선례였다.
“자, 준공식 들어갑니다.”
……?
아무것도 없었던 허허로운 공간에 건물이 떡하니 자리했다. 준공식을 하겠다는 공수표가 실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쯤 되면 추천하는 주식 종목은 무조건 투자해야 했다.
찰칵, 찰칵!
준공식의 기본은 커팅식과 기념 촬영이지.
식사를 준비했다.
“제가 만든 요립니다.”
“폭군의 요리라니! 들어만 봤지, 실제로는 못 먹어 봤는데.”
무진은 아공간에 조리한 100종의 뷔페를 꺼내서 나열했다. 각자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도록 그릇은 물론 식탁과 의자까지 완벽한 세팅이었다.
‘아공간에 대체 뭘 넣어 둔 거야?’
‘인벤토리에 왜 식자재를 넣어 다니냐고!’
‘이 정도면 아공간에서 살아도 되겠네!’
‘종말이 와도 상관이 없잖아!’
‘아포칼립스의 슬기로운 폭군 생활이라도 찍으려나?’
‘이 정도면 호화로운 폭군 생활이지.’
폭군의 기행이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었다. 일반적인 상식 따윈 개나 줘 버릴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그러나 논란은 있을지언정, 비판을 받을 일은 아니었다.
앙, 사르르!
오물오물!
뷔페를 맞본 사람들의 표정에 경이로움이 담겼다. 이제까지 맛본 모든 음식은 쓰레기처럼 느껴질, 격이 다른 수준이었다. 모두의 입맛에 다 맞을 순 없다고 해도, 맛의 표준을 새로 정립했다.
“진짜 맛있네!”
“이게 다 폭군이 한 거란 말이지!”
“우리 아들은?”
“우리 딸은 라면도 못 끓이는데.”
이게 왜 맛있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으나, 혓바닥은 지나치게 정직했다. 거짓을 논하기엔 입 안에서 디스코 팡팡을 추었다.
한편으로 소름이 돋았다.
인간의 재능이 다재다능할 수도 있으나 무공은 절대경, 마법은 대마법사, 정령술은 대정령사, 테이머는 대테이머가 요리까지 잘하고 지랄이었다. 모든 걸 다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째서 폭군이란 이름으로 세계를 들썩이게 했는지 새삼 깨닫게 했다.
“이왕지사, 바로 관문에 도전할 지원자를 받겠습니다. 어서 도전하세요.”
“……?”
속전속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과긴 한데 괜히 꺼림칙했다. 맛있는 식사를 배 터지게 먹인 것도 그렇고.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지만.
‘도축하기 전에 배 불리기 위해 먹이는 것 같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