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 나는 인류를 믿는다(?)(3)
“좋아, 지금까지 받은 피해를 수치로 환산해서 권왕가로 보내 주면 보상해 줄게. 그러니 너희들도 내 말이 맞으면 그 수치만큼 내게 보상해. 이러면 공평하지?”
-……?
전부 보상해 주겠다는 약속에 환호했던 댓글창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지금까지 약탈, 방화, 살인의 강력 범죄로 인한 피해는 수조를 넘어 수백 조에 다다른다.
보상해 주려면 폭군도 막대한 손해를 봐야 했다. 심하면 사채까지 끌어다 써야 할 수도 있었다. 한데, 그 피해를 역으로 물어 줘야 할 수도 있자, 함부로 장담하지 못했다.
-너무 무책임한 협박이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는 건 정당하지 않습니다.
“나만 책임을 지고, 너희들은 익명에 숨어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다고? 그게 오히려 무책임한 거 아닌가?”
-당신은 인류 최강자가 아닙니까? 그만한 힘을 얻은 건 위협에 대응하라는 인류의 뜻입니다.
“그럴 수도 있는데, 보상은 다른 문제지.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살아남으면 보상하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나 무책임한 말이고, 협박인 거야? 상식적으로 대답을 해 봐.”
-우리는 당신의 말을 거스를 힘이 없습니다. 이게 협박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래서 너희들은 손해는 하나도 안 보고,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 이거지? 나만 손해 보고 끝내라, 그런 건가? 그게 당신들이 바라는 공평함이구나.”
무진의 악의가 담긴 조롱에도 댓글창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보수를 받기는 했어도, 무진은 독점적인 무진탑을 공개해 각성자의 평균 수준을 높였다. 이 모든 과정이 다크로드를 대비하고, 던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도리어 책임을 묻고, 협박한다고 따지고 있었다. 이 불합리함을 반전시킬 명분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한가롭게 있을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준비는 평소에 하는 거야. 막바지에 벼락치기 한다고 실력이 늘진 않아. 안 그래?”
벼락치기로 당장의 성적은 좋을지 몰라도, 그게 본인의 실력으로 녹아들진 않는다. 이런 기본적인 상식을 사람들도 모르진 않았다.
다른 사이트에서도 실시간 댓글이 올라왔다.
-와, 그냥 논리로 다 뚜드려 패고 다니네.
-이쯤 되면 폭군이 아니라 암군이잖아.
-폭군한테 팩폭 맞은 불쌍한 양민들 어쩌누!
-다들 불안해서 하는 소린데, 저런 식으로 위협할 필요가 있나?
-자기희생도 없이 단물만 빨아먹는 기생충한텐 저 정도면 과분하지.
-힘 좀 있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좋지 않아.
-무시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피해는 봤고? 정작 다크로드는 폭군이 상대한다잖아.
-안전한 장소에서 주둥이로만 떠든다고 다가 아냐. 이러다 폭군이 빈정 상해서 파업하면 어쩌려고?
어떻게든 폭군을 몰아붙이려고 했지만, 양심에 찔렸는지 폭군을 대놓고 험담하진 못했다.
질의문답이 끝이 났다. 그러나 해결책이 나오진 않았다. 정해진 날짜가 되어 봐야 결론이 나올 뿐이다.
살아남을지?
종말이 될지?
***
막혔다.
반대편에서 막혀도, 차원 코드는 만능키나 다름이 없었다. 시스템의 훼방을 뚫고, 다른 차원도 통제해야 했기에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지구와의 통로가 닫혔다.
연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의를 방해하는 존재가 나타났음을 짐작했다. 어떤 차원이든 대척점에 선 존재가 있었다. 이는 시스템의 안배이자, 차원의 발버둥이었다.
처음엔 가볍게 여겼다.
온전한 상태가 아니긴 해도, 지구는 대단치 않았다. 이제 막 각성에 발을 올린 초기에 불과했다. 하위 단계의 각성력으로 통제를 벗어날 순 없다.
그런데 안 열렸다.
조금 더 심력을 소모했다. 안 열린다. 반대편의 차원문이 견고하다 못해 차원 코드를 입력할 때마다 받아치고 있었다.
이쯤 되니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도 안 열린다.
온전한 상태가 아니고선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시간을 들여서 상태를 회복하고, 차원 코드를 재정립해야 했다.
그 시간이 무려 3년이나 걸렸다.
“애를 먹이는군.”
다른 차원보다 부족함에도 포기 못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구의 잠재력이 다른 차원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례한다면 그 성장 속도는 솔직히 두려울 지경이다. 지금이야 통제되지만 시간이 더 흐른다면 귀찮을 수 있었다.
그 전에 시스템이 주도하는 성좌의 탑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내야 했다. 성좌의 탑을 지구 전체로 두어야 차원을 독점하는 시스템과 맞서 싸울 수 있었다.
“대의를 방해할 셈이더냐!”
리온은 대의의 시발점이 될 지구 진입을 방해한 시스템을 용납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아니고서야 지구에서 자신을 막을 자는 없다. 중간에 분명히 개입했을 것이다.
“열려라!”
권능으로 차원 코드를 강제로 계산하여 지구의 흐름을 종속시킨다. 틈이 벌어지도록 지속적인 압력을 넣는다. 더는 이겨 내지 못할 과부하가 걸렸을 때 발생하는 균열 즉, 던전을 이용했다.
우우우우웅!
드디어.
진을 빼 놓은 후 차원문이 열린다. 종자들이 제대로 일을 했다면 이토록 황당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과분한 힘을 주었음에도 실패했다면, 차라리 잘되었다. 이번 기회에 판을 갈아엎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차원의 균열이 대단위로 번지며 영향을 미치자, 나아갈 문이 열린다. 리온은 주저하지 않고 오픈된 문을 향해 나아갔다.
스륵!
종이의 앞뒷면처럼 짧지만, 실제로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한 발을 내딛자 육체가 스며들듯 빨려 들어간다.
솨아아!
장면이 바뀌면서 지구에 도착했다.
끼륵, 끼륵!
철썩, 철썩!
먹이를 노리는 갈매기와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봐도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다. 허공에서 손바닥에 잡히는 무인도만 덩그러니 있었다.
예정한 장소가 아니긴 하나, 불규칙한 변수를 제어하여 지구로 돌아온 것만으로 되었다.
응?
감지하지 못했었다. 작은 무인도에 인간이 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자신을 정확히 본다. 드넓은 바다, 규모가 측정될수록 이상하다.
음.
알아채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의식했음에도 안갯속처럼 막막하다.
‘알 수 없다고?’
[심연을 꿰뚫는 눈]에도 스텟이 보이지 않는다. 드러난 존재감만이 전부였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네놈은 뭐지?”
“문을 부순 건 미안해.”
말 그대로 이해하기엔 지나치게 공교롭다. 의도하는 바를 이해한 리온의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3년의 허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차원문을 간섭할 수 있다면 보통이 아니군.”
“소개나 해 봐. 우린 너를 다크로드로 부르거든.”
“편한 대로 불러. 그 전에 어째서 방해한 거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알다시피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
선문답이 이어지지만, 무진과 리온은 개의치 않았다. 남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오롯이 본인들이 원하는 대답만을 강요할 뿐.
“시스템의 독재를 안다면, 대의에 동참해라.”
“차원을 독점하는 건 너나 시스템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시스템의 최종 목표는 신을 만드는 일이다. 너희들은 그저 신의 탄생을 위한 양분에 지나지 않아.”
“불합리하니 네가 신이 되겠다고?”
길지 않은 대화지만, 무진과 리온은 서로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각성자는 알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탑의 비밀을 넘어 시스템의 의지를 알고 있어야 했다.
“시스템에 종속된 노예보다는 낫겠지.”
“설득력이 떨어져. 네가 순수한 의도였다면 또 모를까.”
“맞는 말이군. 하지만 너도 나와 다르지 않을 텐데.”
“다르다고 한 적 없는데.”
무진은 숨기지 않고 진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간교한 위선이나 왜곡은 하지 않는다. 결과는 언제나 힘의 우위가 결정한다. 대의명분을 갖춘 정의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꿈틀!
리온도 익히 알고 있는 뼈아픈 진실이다. 수를 세기도 먼 세월이 지났음에도 실패한 그날이 생생하다.
정의, 우정, 희생.
한때는 그것이 옳다고 여겼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덕목인 줄 알았다.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기어이 지켜 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탑의 선택을 받아 위로 올라갈수록 구속되는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느꼈다. 차원을 종속시켜 노예로 만들고, 상위 차원 간의 전쟁을 위한 대리자를 만들기 위한 양분으로 썼다.
그래서 도모했다.
이 불합리함을 부수고, 완전한 세상을 만들기로 천명했다. 시스템에 복속하지 않은 힘을 바탕으로.
“시스템의 역할을 안다면 나의 대의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다.”
“고위 성자들은 너를 배덕자로 부르던데.”
“네놈, 성좌의 사도였나?”
“아니, 나 역시도 시스템의 배덕자야.”
“그런데 어째서 나의 대의에 따르지 않는 것이냐?”
“나보다 약하잖아.”
……?
리온은 말문이 막혔다.
이딴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인간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모르진 않으나, 한계가 있었다. 주제를 모르는 놈이 힘을 가진 꼴이었다.
그렇다면 알려 주어야 했다.
응?
없다.
놈이 사라졌다.
스륵!
눈앞에 나타났다.
빠아악!
일체의 기교를 부리지 않는 주먹에 강타당했다. 다만, 기교만 없을 뿐이지 완벽하다.
일격을 허용한 리온의 신형이 섬광처럼 쏘아져 나갔다. 일격이지만, 초살의 파괴력이었다.
리온은 현실과의 인지 부조화를 느끼고 있었다. 공간을 장악하는 권능이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권능을 억눌렀다는 뜻이 되었다.
‘성좌력을 이만큼이나 쌓았다고?’
성좌가 되면 시스템에 의해서 복속이 되고, 상위로 올라갈수록 강제력은 더더욱 강해진다. 이 정도의 성좌력을 얻었다면 시스템에 의해서 구속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의 사도?’
그런 상념이 뇌리를 스쳤지만, 지금은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쇄액!
파앗!
리온은 몸을 틀어서 피하고, 회전력을 이용해 반격을 취했다. 성좌력을 이용한 권능은 다중 속성을 펼칠 수 있으나, 상대 역시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흑암의 포화]가 발동하는 즉시 흩어졌다. 어둠의 중첩으로 만들어진 무저갱의 공간이 햇빛에 녹아들듯 허무하게 사라진다.
슈슈슈슈슉!
파파파팟!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싸움치고는 박투였다.
깎아내리기에는 충돌의 여파가 불러온 재앙급의 호풍환우가 신위를 증명했다.
쩌저엉!
내지른 주먹이 허공을 가르면 하늘이 쪼개지고, 휘말리며 흩어진다. 지구 전체가 권격에 영향을 받아 흔들렸다.
두드드드드!
무진과 리온의 근접전이 태평양에서 벌어지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둘의 거리는 지척이나, 파괴력은 행성급으로 번지고 있었다. 실제로 보이지도 않는다.
파괴의 흔적만으로 세계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종말을 향해 가는 결전의 서막이었다.
꽈아앙!
투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