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72화 (373/374)

372. 나는 인류를 믿는다(?)(4)

세계는 폭군과 다크로드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대결계를 치고, 대마법을 걸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처음에는 환영 마법으로 조작한 줄 알았다. 지나치게 현실성 없는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스텟, 스킬, 속성을 이용한 대결이 아닌 박투였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는 둘째 치고, 충돌할 때마다 천재지변의 파괴력이었다.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었다.

충돌의 여파에 지구가 흔들리고 있었다. 태평양과는 멀찍이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서도 느껴졌다. 지구의 종말을 언급했던 연유를 깨닫게 해 주었다.

-다크로드가 진짜로 돌아왔잖아. 안 돌아온다고 한 새끼들 전부 머리 박아!

-지금 그딴 걸 따질 때야, 지구가 망하게 생겼는데! 하여간 꼬투리 잡지 못해서 안달인 새끼들 천지라니까!

-솔직하게 말해. 폭군이 틀리기를 다들 바랐으면서 아닌 척하기는.

-이러다 폭군이 지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폭군이 공포를 조장하려고 과장하는 줄 알았는데, 다크로드가 너무 쎄잖아!

-대비하지 않았으면 세계 곳곳에 열린 던전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봤을 거야. 폭군이야말로 진정한 선지자였어!

-다크로드가 강하긴 해도, 폭군이야말로 인류 최강자라고. 아까 말 못 들었어?

-폭군이 인류 최강은 맞지만, 다크로드는 차원을 좌지우지하는 자라고.

마법 영상에는 파괴의 흔적만 나올 뿐, 움직임을 잡아내진 못했다. 영상이 속도를 따르지 못하니, 누가 우위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승패를 짐작하기 어려울수록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 폭군의 승리를 간절히 염원했다.

“지수야, 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아?”

“겪어 봐서 알잖아. 쟨 지는 싸움은 하지 않아.”

지수의 확신에 친구들은 절로 수긍이 되었다. 압도적인 강함 이전에 완벽히 판을 짜는 능력이 훨씬 뛰어났다. 지나온 역사만 봐도, 절대 불리한 싸움을 하지 않는다. 무진이 날짜를 특정했다면, 준비가 완벽하단 뜻이었다.

“조강지처는 다르구나.”

“에헴, 당연하지.”

유정과 혜진은 인정하기 싫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3년이 흘렀지만,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더 벌어졌다. 자신들의 재능만큼이나, 지수는 그 이상의 재능을 타고났다.

‘포기할 때가 됐나?’

‘맘에 드는 상대가 없어.’

무진으로 인해 유정과 혜진은 눈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어지간해선 성에 차지 않았다. 연애는 투쟁으로 함께 강해져야 했다. 그런 데다 지수와 경쟁할수록 성장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러니 포기를 못 하지.

“평생 수절하겠네.”

“이 독한 년!”

지수의 염장에 무덤덤했던 혜진도 미간을 찌푸렸다. 부창부수라고, 날이 갈수록 주둥이가 사악해졌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지수를 꺾어 보고 싶은 소망이 가장 컸다.

하아!

세 여인의 투기에 태수는 한숨을 쉬었다. 쟤들을 누가 말릴까? 이게 다 무진의 업보였다.

“무진이 집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다들 알지. 망가지면 나중에 감당하지 못할걸.”

태수의 협박 섞인 중재로 일단락은 되었다. 세 미녀의 경쟁을 부러워하기에는 무진은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응원해도 부족할 판에 질시는 너무 추했다.

‘이 자리에 다 모였네.’

권왕을 필두로 한국을 대표하는 각성자가 자리했다. 과거 70년대, TV를 보기 위해서 동네 사람들 전부가 모였던 것처럼.

전원 무진의 대결 장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무진의 집은 시원시원한 대형 화면, 고품질의 사운드가 일품이었다.

‘속도를 100배로 늦췄는데도 안 보이면 대체 얼마나 빠른 거야?’

격이 다른 줄은 알았지만, 무진은 전부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무진과 팽팽함을 유지하는 다크로드도 대단했다.

“내가 갔어야 했는데, 아쉽구먼.”

“가려고 했으면 그 녀석 집이 아니라 태평양에 있었어야지. 말로는 뭔 말을 못 해!”

“이놈이, 제자를 위해서 양보한 거야!”

“양보는, 죽기 싫어서 발악한 거지.”

텔레비전 잘 보다가 권왕과 마제의 언쟁이 일었다. 그 모습을 다들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무인과 마법사가 저러고 놀고 있을 줄 누가 알까?

명색이 무진의 사부들이기도 했다. 제자가 사선을 넘나들고 있는데, 걱정하는 기색이라고는 한 톨도 없다.

정령가의 화석, 소민성이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제자를 사지로 보내고 너희들이 미친 게냐?”

“사지는 또 어디야? 소 형, 내 사지는 멀쩡하다오!”

“소 형, 이놈이! 게다가 지금 말장난이나 할 때야!”

“우리 무진이가 뻔히 보이는 사지로 순순히 갈 놈이오?”

“아니지!”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러시나?”

“종말이 먼저 오나, 네가 죽나? 끝장을 보자, 이놈아!”

“소 형은 이제 안 된다니까.”

“그럴 줄 알고 결의형제를 맺었단다.”

소민성의 좌우로 투신과 무신이 자리했다.

그간 권왕이 나대는 걸 보며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했고, 글로미 2부를 보려면 3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다. 1부에서 그딴 식으로 끝을 내면 우리보고 기다리다 속 타서 죽으란 소리지.

“……아니, 치사하게!!”

“싸우다 뒈지고 싶다며.”

“우리가 그 소원 들어주마.”

마제나 천제면 또 몰라, 투신과 무신은 일대일로도 버거운 상대였다. 그런 노괴들이 화석과 같이 덤빈다면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스윽!

휙!

이런, 동지들이 없네.

처음은 어색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잘하는 편 아닌가? 권왕은 조금 억울했다.

마제를 비롯한 가주와 길드장들은 학을 떼며 고개를 저었다. 권왕의 나는 죄 없다는 표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툭하면 대련하자고 하는 인간이 저렇게나 억울한 표정을 짓다니, 역시나 양심은 없었다.

손절당한 권왕은 냅다 선수를 쳤다.

꽈아아앙!

다만, 통하진 않았다.

투신과 무신이 먼저 반응했다.

“그럴 줄 알았다, 이놈아!”

“한두 번이어야지!”

“아우들, 죽이자!”

화석, 무신, 투신의 정신 나간 짓거리에 산하는 한숨을 쉬었다. 남의 집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연무장도 아니고 집기들이 날리고 있었다. 아들이 돌아오면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그런데 아들아, 텔레비전에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분명 권왕의 빗나간 권강에 부딪혔는데, 텔레비전이 멀쩡했다. 집기들이 사방팔방 날아가기는 해도, 부서지진 않는다.

***

속도, 파괴력.

강함의 척도를 나타내는 기본이다. 빠르고 강하면 수많은 속성과 스킬을 무력화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속도와 파괴력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원인은 간단하다.

속성과 스킬이 주는 힘이 과분하다. 실제로 내외공이 받쳐 주어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속도와 파괴력에만 집중한다면 한계가 있었다. 결국, 속성과 스킬을 융합하여 본인의 경지에 맞게 설계한다.

그런데 무진과 리온은 달랐다.

속도와 파괴력만으로 공간을 꿰뚫고, 시간을 돌려세운다. 광역 결계로 모든 광경이 노출됐음에도 세계의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파괴의 흔적만이 남아 태평양을 뒤흔들고 있었다.

뻗고, 부수고, 쳐 내는.

일련의 동작들이 격돌할 때마다 파편이 된 격렬한 파문이 태평양의 중심을 흔들다 못해 허공으로 바닷물이 거대한 물기둥을 이루다 흩어지고 있었다. 수면 아래의 가려진 그 은밀한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마저도 광역 결계로 파장을 흡수하기에 망정이지, 여과 없이 투과했다면 지구에 대재앙을 몰고 왔다.

무진이 태평양을 무대로 세우고 가장 신경 쓴 부분이었다. 대결의 여파가 불러온 파문은 지구로도 감당하기 어렵다. 최대한 격돌의 흔적을 흡수하여 제한해야 했다. 이겼어도 지구가 망가져 버린다면 이겼다고 할 수 없다.

다크로드는 차원 간의 이동을 자유로이 하는 자다.

지구를 중시하긴 해도,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다. 전투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다크로드는 살기 위해서 발악할 터. 자칫 전투에선 이겨도 전쟁에선 패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무진도 전력을 펼쳐 보고 싶었다. 가지고 있는 전부를 쏟아 내고 싶은 전투 욕구, 다크로드는 그럴 만한 상대였다.

인세의 종말을 향한 생사투.

그 마지막 방점을 향해 무진은 나아갔다. 입가에 맺힌 호선이 전투를 즐기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꽈아아앙!

투아아아아!

주먹과 주먹이 부딪혔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공간이 깨지면서 균열을 일으키더니, 다른 차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속도와 파괴력에 중점을 두지만, 패시브로 권능의 극의가 발휘되고 있었다. 어설프게 속성이나 스킬을 썼다가는 권능이 무력화가 되어 허점을 드러내게 된다.

주춤!

밀렸다.

리온은 밀리고 있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차라리 배신과 합공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홀로 수만 년을 살아온 자신을 대적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빌어먹을, 어째서?’

선수를 빼앗긴 이후로 다시 찾아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 일격이 육신을 관통하여 영혼에도 충격을 주었다. 소멸력을 발휘하는 권능, 심의 극에 이른 권혼이 합쳐진 결과였다. 첫 일격에 모든 제어의 3할을 잃었다.

제어가 되지 않는다?

실패한 날 이후로는 처음이다. 완벽한 통제를 통해 자유를 얻으려고 했다.

“감히!!”

성좌력을 완전 개방하기로 했다. 통제된 범위 내에서 결전을 보려고 했으나, 불가능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원 간의 규율과 시스템의 안배로 성좌력은 탑이 존재하지 않으면 원래대로 사용하기 힘들다. 그런 규약을 해제하기 위해 연구했고, 이제는 온전히 운용할 수 있었다.

하나, 성좌력의 온전한 사용으로 인한 규약의 반발력이 존재했다. 이에 따라 평소 4할만을 사용해 왔었다. 이러한 제약을 풀어야 할 만큼 궁지에 몰린 것이다.

“네놈,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미안하지만, 난 가진 게 많아서.”

성좌력을 있는 대로 다 쓰게 되면 지구가 견디지 못한다. 그걸 무진은 체감할 수 있었다. 되도록 억제하며 싸웠지만, 다크로드가 이리 나온다면 어쩔 수가 없다.

-무진탑, 금제 발동.

-투명청룡오관 흡수 연동.

-차원 이동 제어.

전투의 흥겨움을 좀 더 만끽해 보고 싶으나, 다크로드의 제어되지 않은 성좌력은 곤란했다. 그렇다면 강제로라도 제어를 해 줄 수밖에.

무진이 무진탑과 투명청룡오관을 세운 건 지구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목적도 있지만, 주목적은 다크로드의 성좌력을 봉쇄하고 흡수하기 위해서다. 3년을 마냥 허비하기는커녕 실험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갔다.

“헛소리는 지옥에 가서 하거라!”

반격을 무시한 리온은 성좌력을 끌어올려 모든 힘을 발출했다. 단숨에 밀리는 공세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였다. 파문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통제하지 못한 힘을 드러내게 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뻐어억!

포화가 맥없이 뚫렸다.

무진의 주먹이 리온의 얼굴을 강타했다. 선수를 내어 준 첫 일격 이후로 정타로 맞은 주먹이었다. 밀리긴 했어도, 흩어 내고, 쳐 냈었다. 한데, 어째서 성좌력을 발휘한 차원 소멸력이 통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