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나는 스물네 살에 죽기 전까지 두 명의 제자를 두었다.
첫 번째 제자는 마법을 가르쳤던 플람이다.
검은 별 교단 때문에 부모님을 잃고 거리에서 떠돌던 그 아이가 너무나도 가여워서 제자로 거두었다.
동정심으로 아이를 구해서는 안 되었지만 그래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두 번째 제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밖의 사건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세상에는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너무 많았고, 막스를 제자로 들인 일이 그랬다.
막시밀리언 쥬브네스 드롯셀마이어.
내 두 번째 제자.
막스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은 쉴 새 없이 뛰었다.
건강할까? 잘 지낼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누구를 만나서 결혼했고, 어떻게 황제가 된 걸까?
내 기억 속의 막스는 구김살이 없는 척했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애였다.
칭찬해 주면 우쭐거렸고, 혼을 내면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
그런데 그런 녀석에게 손자가 생겼고, 심지어 그렇게 잘 자랐다니.
어느새 그리움이 물씬 밀려들었다.
‘세월이 무섭기는 무섭구나.’
방으로 돌아온 나는 저릿저릿한 몸을 푹신한 소파에 기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온실에서 겪었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꿈이 아니다.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던 키스케의 붉은 눈은 생생하고 또렷했다.
‘정말이야. 맹세해.’
키스케를 떠올리자, 조금씩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파르르 떨리던 손을 모아 얼굴을 가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감정을 애써 추스를 수 있었다.
금발과 붉은 눈은 황족의 특징이었다.
키스케가 황족이라는 건 금방 알아봤지만, 설마 막스의 손자일 거라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랬네.”
키스케가 아니었다면 막스가 살아 있다는 걸 한참 뒤에나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애가 죽었을 때 알았겠지.
“……다음에 만난다면 과일 사탕이라도 쥐여줄까.”
살아 있다면 반드시 기회가 있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수도로 올라가야겠어.”
나는 일렁이는 감정을 다스리며 애써 웃었다.
* * *
물방울의 방에서 돌아온 힐데가르트는 아침 식사를 거르고 내내 침대에서 끙끙거렸다.
순간 이동 마법의 후유증은 무시무시했다.
‘에구, 역시 무리해서 마법을 쓰면 안 된다니깐…….’
티타임 약속을 잡은 상대가 오브론 대공만 아니었다면 약속을 취소했으리라.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었다.
힐데가르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대공과 함께하는 티타임 장소는 정원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테라스였다.
그녀가 테라스로 들어서자, 홍차를 마시며 기다리던 오브론 대공이 신문을 접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대공 각하.”
“어서 오게. 몸이 좋지 않다던데, 괜찮나?”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힐데가르트는 가볍게 인사한 뒤 의자에 앉았다.
“그보다도…… 발견하셨나요?”
그녀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오브론 대공은 기다렸다는 듯 끄덕였다.
“연락이 왔네. 오브론 대공령의 본 저택 주변에서 피 묻은 애뮬릿과 뱀 사체가 담긴 상자가 발견되었다는군.”
푸른 눈이 힐데가르트를 빤히 보았다.
“공녀가 말한 대로야. 수맥이 흐르는 곳에 묻혀 있었네.”
“발견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설명해 주게. 도대체 일리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 아이의 병과 애뮬릿이 무슨 상관이지?”
대공은 오늘이야말로 반드시 자초지종을 다 들어야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힐데가르트도 더는 이야기를 미뤄둘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각오를 마쳤다.
“앞서 세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대공 각하의 명예를 걸고.”
“세 가지? 말해보게.”
“첫째, 이 정보를 어디서 알았는지는 묻지 말 것. 둘째, 공작 각하와 제가 나눈 거래 내용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
누구에게도, 라는 건 당연히 미하일과 레디스도 포함한다.
그 두 사람은 그저 편지를 읽은 대공이 후견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걸로 알고 있으면 충분했다.
“셋째는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되는 마도 지식을 악용하지 않기로 약속해 주십시오.”
“마도 지식?”
“약속해 주세요.”
힐데가르트가 단호히 요구했다.
“……알겠네, 약속하지.”
“감사합니다. 그러면 대공 각하의 약속이 가볍지 않으리라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브론 대공은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일리야 양은 병에 걸린 게 아닙니다. 손녀분께선 저주에 걸리신 겁니다.”
“저주라고?”
“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잠시 오브론 대공의 숨이 멈췄다.
그가 심각해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손녀는 남에게 원한을 살 만한 아이가 아닐세.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없습니다. 대공 각하.”
힐데가르트는 다소 냉정하게 들릴 말을 했다.
현실을 부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신문에서는 일리야 양의 몸에 난 검은 흔적 때문에 ‘검은 먹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 없는 병을 만들어냈더군요. 아마 돈을 주고 취재한 정보원이 알려준 그대로 기사를 써서 그랬을 겁니다.”
그녀가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그것의 정확한 이름은 ‘검은 뱀의 저주’입니다. 애뮬릿과 뱀 사체가 오브론 대공령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셨지요?”
“그렇네. 하지만 손녀는 수도에서 지냈어.”
“그래서일 겁니다. 저주의 매개체와 일리야 양의 물리적인 거리가 멀었기에, 저주의 증상이 느리게 나타난 거죠.”
느릿하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땅속에서 발견되었다는 뱀 사체는 검은 뱀이었지요?”
“……그래.”
힐데가르트의 말대로였다.
오브론 대공령에서 발견되었다는 뱀 사체는 검은 비늘뱀이었다.
대공은 알리지 않은 사실을 훤히 내다보듯 맞춘 그녀를 놀랍게 바라보았다.
“……혹시 그 아이의 피부가 검게 물든 이유가…….”
“예, 저주를 위해 검은 뱀을 제물로 썼기 때문입니다.”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마력이 필요하다.
마력이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방법은 바로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인간의 혈액. 동물의 체액. 식물의 진액.
세상 모든 생명에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제물로 바치고 그 생명체에 깃든 마력을 빼앗아서 이용하는 방법.
흑마법의 기본 원리다.
“누군가가 검은 뱀을 제물로 바쳐 그 마력에 저주를 담아 퍼뜨린 겁니다. 길게는 반년, 짧으면 일주일 안에 온몸의 피부가 검은색으로 물들고, 나중에는 비늘처럼 번들거리며 딱딱해지지요.”
“……끔찍하군.”
오브론 대공이 앓는 소리를 냈다.
“진짜 끔찍한 건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뱀은 허물을 벗는 생물이다.
“만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알 수 없는 이유로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고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을 겁니다. 허물을 벗듯이요.”
“……!”
오브론 대공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고작 뱀 한 마리로 그런 저주를 걸 수 있단 말인가?”
“한낱 미물이라지만 제물로 이용당하며 죽는 건데 원한이 적을 리 있겠습니까.”
그녀가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흑마법이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흑마법과 검은 별 교단은 물론, 흑마법의 시조 격인 마법까지 쉽게 배척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끔찍함 때문이다.
마법사와 흑마법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는, 마법사란 전부 위험하고 수상하게 보일 뿐이다.
‘마법은 위험한 게 아닌데.’
한때나마 마탑을 세움으로써 그 인식을 바꿔보려 했던 힐데가르트는 씁쓸함을 삼켰다.
“하지만 더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니까요.”
“정말 괜찮다고 장담할 수 있나?”
“그럼요. 괜찮지 않다면 일리야 양이 깨어났을 리가 없지요.”
너무 겁을 줬나?
힐데가르트는 걱정 가득한 대공의 시선을 보고 뒤늦게 아차 싶었다.
“성물을 구하여 머리맡에 두셨으니까요. 게다가 제물과 저주의 매개체인 애뮬릿까지 찾아내셨으니 파괴만 하면 됩니다.”
“당장 전부 파괴하라고 연락을 넣어야겠군.”
“심정은 이해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저주는 파괴하려 하는 사람에게도 영향이 갑니다.”
그녀가 넌지시 고개를 저었다.
“잘못했다간 애뮬릿을 파괴하려고 한 사람에게도 저주가 옮을 수 있어요.”
“그럼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
오브론 대공이 살짝 짜증을 내며 물었다.
그러자 힐데가르트는 대답 대신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효과적이다.
손바닥으로 모인 마력이 대공의 찻잔 속을 휘저었다.
찻잔의 홍차는 순식간에 출렁거렸다.
“이건…….”
그다음에는 홍차 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찻잔의 바닥을 드러냈다.
오브론 대공이 찻잔을 내려다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자네…… 마법사였나?”
“네, 그래서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오브론 대공은 그제야 소녀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깨달았다.
마법사.
신비한 힘을 다루고, 수많은 지식으로 세상의 법칙을 바꾸는 엘프의 후손.
아카락시아 공작가는 건국 시절, 강력한 마법을 익힌 엘프와 가장 큰 우애를 나눈 가문이다.
‘근거 없이 내비친 자신감이 아니었군.’
이곳에는 오브론을 도울 만큼 풍부한 마법 자료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대공의 의문은 조금씩 확신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소녀가 마법사였다니.’
나이답지 않은 원숙함과 담대함, 판단력이란, 대공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저주를 안전하게 풀 수 있습니다. 오래된 성물은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나쁜 기운을 막아주거든요.”
제물은 끝까지 상대를 저주하려 들고, 성물은 끝까지 상대를 보호하려 한다.
“성물을 계속 가까이에 두면 괜찮다는 거군.”
“네, 하지만 해주(解呪)는 필수입니다. 저주가 완벽히 풀리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고 일리야 양을 괴롭힐 테니까요.”
긴 설명을 마친 힐데가르트가 다 식어버린 홍차를 한 번에 마셨다.
지독히도 떫었다.
“제가 해결하죠. 수도에 올라가서 일리야 양을 저주한 제물과 애뮬릿을 직접 파괴해 드리겠어요.”
본래 저주를 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저주의 새로운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전생의 몸이었다면 이런 저주야 눈감고도 자두 껍질을 벗기듯이 쉬웠겠지만…….
지금은 오렌지 껍질을 벗기는 수준이라고 하겠다.
‘그래도 내 손에 걸리면 어림없지.’
다음 홍차는 베르가못으로 할까.
힐데가르트가 자못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자네는 대체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