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공녀님 (79)화 (79/166)

77화

마성신.

순리를 거스르고 삿된 힘으로 죽음을 관장하는 산지옥의 주인.

드롯셀마이어 제국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존재를 안다.

동화나 연극, 노래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그 무서움을 알게 되는 존재.

강대한 힘을 가진 마성신은 사악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으나, 그런 존재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끊이질 않았다.

성검은 그런 마성신을 봉인해 담아둘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었다.

성검 아스톨은 마성신이 강림할 때마다 새로운 주인을 골랐다.

그리고 그 마지막 주인이 바로…….

‘나였지.’

정확히는 80년 전의 힐데가르트였다.

그녀가 이마를 짚었다.

‘랑케르트의 흑마법사가 그걸 원하는 이유가 뭐지?’

마성신을 불러내기 위해?

하지만 마성신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제물을 바치는 강림 의식이 필요하다.

성검하고는 무관할 텐데?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신전이야. 왜 성검이 캄파넬에 있냐구!’

마성신을 봉인한 지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신전에서 성검을 회수하지 못했던 건가?

‘성검은 당연히 신전에 있어야 하는 건데.’

원래대로였다면, 마성신을 봉인한 성검을 힐데가르트가 직접 신전에 되돌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토벌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 누군가는 대신하여 성검을 신전에 바쳐야 했는데…….

‘아무도 봉납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렇다고 성검을 그대로 캄파넬에 놓아둬?!’

물론 마력 폭풍 때문에 성검이 그대로 땅에 파묻혀 버렸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신전에서 사람을 보내서라도 성검을 회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80년간 대체 뭘 한 거야?’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눈치를 보던 비토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공녀님은 그 검이 성검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 걸 왜 지금 와서 찾는 걸까요?”

비토는 힐데가르트와 비슷한 의문을 품었다.

“아! 혹시 마성신 때문에 성검이 필요해진 걸까요? 신전의 샘에서 봉인이 풀릴 징조가 나타났다든가……?”

성검에 봉인한 마성신이 강림 의식으로 풀려날 때, 신전에 있는 강림의 샘이 붉게 변한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신문에는 그런 기사가 난 적이 없었는데…….”

비토가 혼란스러워하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몰래 성검을 도굴할 필요가 없지. 당당하게 발굴단을 보내겠다고 요청하면 되는 일이잖아?”

“어, 그럼 정말 이상하네요. 게다가 신전도 아니고 랑케르트에서 그걸 찾는다니…….”

“비토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하지?”

“네. 의도를 모르겠어요. 왜 돈까지 쥐여주면서 다른 영지에 사람을 보낸 걸까요?”

힐데가르트가 고개를 까딱였다.

“나도 이유는 짐작이 가질 않아.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왜 랑케르트가 성검을 원하는가?

그건 알 수 없지만, 순순히 도굴해 가도록 내버려 둘 그녀가 아니었다.

‘성검이 그곳에 있다면 내가 회수해야겠어.’

랑케르트의 의도를 모르는 지금은 그게 가장 안전했다.

“편지를 써 줄 테니 미하일 오빠와 라이그너 상단주에게 전해주겠어?”

힐데가르트는 즉시 브린힐드 상단주와 미하일을 통해 조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캄파넬에 상주하는 인력을 더 늘리고 감시병을 세워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비토는 힐데가르트의 의중을 파악했는지 곧바로 끄덕였다.

“바로 달려가서 전달하겠습니다.”

“부탁할게. 그리고 흑마법사에 대해서는? 그것도 알아봤겠지?”

“네. 알아보긴 했는데…….”

비토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랑케르트 영지에서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하는 흑마법사는 없었습니다. 플람이라는 사람도요.”

“확실한 거야?”

“틀림없어요.”

술집부터 여관 거리, 용병대, 전당포. 전부 뒤져보았다며 비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힐데가르트는 플람이라는 흑마법사가 없다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혹시 이름을 바꾼 건 아닐까?’

내심 플람이 살아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그녀였기에, 목소리는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랑케르트 측에 흑마법사가 있는 건 틀림 없어. 베가 상단주의 기억이 지워졌으니까.”

비토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실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긴 해요. 칼란도 랑케르트 공작이 저택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있거든요.”

“공작이?”

랑케르트 공작은 사교계와 영지민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사람이었다.

사교계에서는 악명이 높지만, 한 가문의 수장으로서는 그럭저럭 실적을 쌓아서 영지에서는 인망이 있었다.

“몇 달 내내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이상하죠?”

“……좀 마음에 걸리긴 하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공작씩이나 되는 작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바깥 활동을 하게 되는 게 보통인데…….

“그 정보의 출처는 어디야?”

“최근 로바르네 황자비 전하의 눈 밖에 나서 공작저를 나온 사용인에게 들은 이야기예요. 증언은 모두 일치했습니다.”

그렇다면 흑마법사는 랑케르트 영지가 아니라 공작가 내부에 있을지도 모른다.

힐데가르트는 반쯤 확신했다.

“고마워.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잘 알아봐 줬네?”

“뭘요.”

비토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오타가 제법 도움을 주었어요. 이오타가 살고 있는 마을 사람 몇 명이 랑케르트 공작가에서 허드렛일을 돕고 있었거든요.”

“그랬구나.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줬을 거 같진 않은데, 어떻게 보답했어?”

“그게, 실은 이오타가 말씀드렸던 거랑 관련이 있는데…….”

“그 ‘부탁’인지 뭔지 하는 거 말이야?”

“넵.”

“이오타는 지금 밖에 있지?”

“데리고 들어올까요?”

“그렇게 해줘. 나도 고맙다는 인사 겸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비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비토가 데리고 온 소년은 여전히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창문을 열 겸 자리에서 일어난 힐데가르트가 그를 훑어보았다.

‘지금 보니까…… 엄청나게 잘생겼잖아?’

아니지. 그런 표현으로는 모자란다.

진한 보라색 눈동자에서는 우아한 귀티가 흘렀고, 재를 뒤집어쓴 듯했던 회색 머리카락은 한겨울을 견디는 늑대처럼 고고한 구석이 있었다.

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잘생긴 외모는 문자 그대로 골격부터 다르다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이오타, 잘생겼다는 말 자주 듣지?”

“아뇨, 자주는…… 아닙니다.”

“설마 처음 듣는 말이야?”

“그것도 아니지만요.”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오타는 좀처럼 힐데가르트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애매하게 허공을 훑었다.

“후드를 그렇게 푹 뒤집어쓰고 있으니까 자주 못 듣는 거지. 그만 벗어. 실내잖아.”

“아…….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두꺼운 후드가 벗겨지며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순간, 힐데가르트는 무심코 입을 벌렸다.

그의 귀 끝이 다른 이들보다 살짝 뾰족했다.

“너…….”

“다시 제 소개를 드리자면.”

주눅 든 강아지 같았던 이오타가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전 티모시 영지 출신으로, 이오타라고 합니다.”

“혹시 엘리사 일족이야?”

“……!”

그 순간, 이오타가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그녀는 더욱 확신했다.

“그렇지? 쿼터 혼혈들이 모여서 숨어 살았던 엘리사 일족이 맞는 거지?”

“그걸 어떻게…….”

“역시 그렇구나.”

그녀는 이오타의 귀와 살짝 연보랏빛이 감도는 손톱을 보며 확신했다.

어떻게 몰라볼 수가 있을까?

엘리사 일족은 힐데가르트가 마탑을 세웠을 때, 합류를 권했던 이들이었다.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하프 엘프라 불린다.

쿼터는 그 하프 엘프와 인간 사이에서 낳은 자식인데, 혼혈 중의 혼혈이라 어느 쪽 사회에서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이루어 따로 숨어 지냈다.

엘리사 일족은 보통 사람보다 높은 마력 친화도를 지닌 이들이라, 제법 마법사가 나오곤 했다.

‘하지만 마탑에 합류하는 걸 거부했지.’

폐쇄적인 성향과 엘리사 일족 특유의 우월한 외모 때문에 그들은 험한 꼴도 더러 보았다.

항상 사람을 피하던 이들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어쩐지 인간이 아닌 미모다 싶었지!’

계속 후드를 뒤집어썼던 이유를 알겠다.

“놀랐어. 엘리사 일족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역시 아카락시아 가문의 영애다우시군요. ……이렇게 곧바로 알아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니까 알아보는 거야.”

그녀가 피식 웃었다.

일단 앉아. 비토를 도와주면서까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잖아?”

힐데가르트가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이오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실은 공녀님을 만나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었습니다.”

“응?”

“이 편지에 적힌 내용이요.”

이오타가 주머니에서 꺼낸 편지는 아카락시아 공작가의 문장이었다. 

“그거 설마…….”

“마탑주와 연락되는 사람을 찾으셨죠?”

힐데가르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탑주와 아는 사이야?”

“예.”

여름이 끝나갈 무렵, 힐데가르트는 마탑주를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을 수배해 모조리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대부분 답장이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인연이 닿을 줄이야.’

이오타가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탑주와 연락이 닿았던 건 삼 년 전입니다. 오래되었죠.”

“삼 년? 그럼 지금은 연락이 안 닿는 거야?”

“예.”

힐데가르트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이 편지에 써두신 ‘마탑주에게 연락할 일’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흐음, 마법에 관한 사업이야.”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여쭤보아도 될까요?”

“계획 중인 사업이 있는데, 마법사가 여러 명 필요해. 내가 아는 사람이 없으니, 마탑주에게 소개받고 싶었어.”

“마법사가 필요하신 일이요?”

“응.”

“……그게 정말이라면,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힐데가르트가 무심코 주먹을 쥐었다.

“엘리사 일족에 마법사가 있구나?”

“예. 그렇습니다.”

힐데가르트로서는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마침 잘됐다, 그럼…….”

“하지만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 공녀님께서 원하시는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급한 일? 그게 뭔데?”

“…….”

이오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덤펠트 마석 광산에서 쫓겨나게 된 저희 일족의 새로운 거주지를 알아보는 일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