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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83)화 (83/166)

81화

힐데가르트는 무심코 양심에 손을 얹었다.

‘미안하다, 미하일. 레디스랑 키스케를 공평하게 응원해 주기로 했는데 역시 어려운 일인가 봐.’

그렇지만 저렇게 기뻐하니 후회는 안 생길 거 같았다.

레디스에게는 손수건 대신, 클로버 펜던트를 건넸다.

레디스는 이미 유시스의 기대 어린 눈빛을 외면하지 못한 채 그녀의 손수건을 팔에 두른 상태였다.

고작 손수건 하나에 불과하건만.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살짝 가슴이 뻐근해졌다.

“자. 내가 팔에 매줄게.”

힐데가르트는 키스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손수건을 팔에 묶어주고 나니, 며칠 끙끙 앓던 이가 빠진 듯이 마음이 후련했다.

키스케는 화살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팔에 맨 손수건을 만졌다.

“……가지고 싶은 동물 있어?”

“갑자기 웬 동물?”

“사냥 대회에서 손수건을 준 상대에게는 답례로 사냥감을 잡아다 줄 수 있잖아.”

그랬던가?

‘듣고 보니 기억나네. 그런 관습이 있었지…….’

예전에는 사냥 대회에 참가하는 쪽이라 몰랐었지. 나한테 손수건을 준 사람도 없었으니까.

“가지고 싶은 거…… 없어?”

키스케는 은근히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뭐라도 해주고 싶어진 걸까.’

고양이에게 보은이라도 받는 기분이라 귀여웠다.

“그럼 토끼 한 마리라도 잡아줘.”

“좋아. 그건 쉽지.”

“우습게 보면 큰코다칠걸? 청력 좋은 토끼가 얼마나 빠르게 도망치는데!”

힐데가르트는 조용히 의욕에 불타는 키스케를 보며 슬쩍 웃었다.

“후회 안 하게 해준다고 했지? 믿고 기다릴게, 키스케.”

드디어 키스케의 마법 실력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마음껏 실력 발휘하고 와.”

힐데가르트의 말에,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저…… 공녀님?”

“왜 그래, 이오타?”

사냥 대회 관람 본부.

힐데가르트는 캐노피 천막 아래에서 느긋하게 산림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천막 아래, 근사한 예복을 입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이오타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시선이 너무 따갑습니다.”

“어쩔 수 없지. 남자들은 다들 사냥하러 떠난 곳에 눈 돌아가게 잘생긴 사람이 서 있으니까.”

“놀리지 마세요.”

“놀리다니? 진심인데?”

조금 떨어진 천막에서도 이오타를 훔쳐보는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부채 너머로 소곤거리는 목소리 하며, 바쁘게 오가는 시선까지.

“인기 폭발이네, 이오타.”

이오타의 잘생긴 외모는 오늘 그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건 힐데가르트가 마련한 짙은 남색 예복 덕분이었다.

이오타의 근사한 옷차림은 고고한 외모를 더 돋보이게 했다.

단추를 끝까지 채운 드레스 셔츠는 빳빳하게 깃을 세워 깔끔했고, 굵은 목선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걸음에 맞춰 팽팽하게 드러나는 다리선.

우수에 젖은 눈빛과, 매끈한 콧대와 두툼한 애교살. 아름다운 보랏빛 눈동자까지.

‘열의 아홉은 다시 보고 넘어가는 게 정상이지.’

시선이 쏟아질 만도 했다.

“저는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무슨 소리야. 내 옆에 딱 붙어 있으라니까.”

“하지만 다들 절 이상하게 봅니다.”

힐데가르트가 피식 웃었다.

“이오타, 네 사전의 ‘이상하다’는 본인의 잘생김을 드러내는 게 부끄럽다는 뜻이야?”

“네?!”

이오타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놀리지 마세요. 그런 의미가 아닌 거 아시면서.”

“부끄러워할 것 없어. 다들 네가 잘생겨서 보는 거니까.”

“하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데요?”

“말을 걸 엄두가 안 나는 거지. 두고 봐. 저기 있는 영애들 모두 지금은 용기가 없어서 흘끔거리지만, 나중에는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처럼 굴걸?”

“과장이 지나치세요. 물론 칭찬해 주시는 건 기쁘지만…….”

“이오타. 세상은 원래 잘생긴 사람한테 친절해.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고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줘.”

힐데가르트는 부채 끄트머리로 다른 쪽 천막을 슬쩍 가리켰다.

그러자 이오타는 곤란한 얼굴을 하면서도, 어색한 웃음을 만들어내며 저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시키면 하네.’

어쩐지 강아지를 훈련하는 기분이다.

“그보다, 마석 아티팩트는 계속 만들고 있지?”

“네. 말씀하신 대로 다시 만들어 놨어요.”

이오타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마침 가지고 마석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잘했어. 앞으로도 그대로만 해.”

“……그런데 정말 아티팩트에 관심을 보이는 귀족이 나타날까요?”

그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았다.

“내가 알려주는 개량하면 나타날 거야. 이것저것 새기고 꾸미면 오히려 조잡해 보이니까, 깔끔하게만 만들면 돼.”

힐데가르트는 단단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때였다. 집계가 끝난 본부석에서 레디스가 속한 청색 조의 횃불에 장작을 집어넣으며 종을 쳤다.

불길은 더욱 크게 타올랐다.

“앗, 청색 조가 또 사냥물을 가지고 왔나 보네요!”

“검술 대회 우승자가 있는 곳이었죠? 설마 사냥 대회도 우승하는 걸까요?”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을 터뜨렸다.

이오타는 그 광경을 지켜본 뒤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공녀님, 만약…… 정말 말씀하신 대로 아카락시아 공작가가 우승한다면, 정말 저희 일족이 계속 그곳에서 일할 수 있나요?”

“물론이지! 불안해서 그러는 거면 계약서 쓸까?”

“아, 아뇨……. 그건 괜찮습니다.”

이오타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저희로서는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라서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힐데가르트는 이동 게이트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투자금을 더 확보하는 즉시, 제국의 마석 광산을 전부 사들일 계획이었다.

엘리사 일족의 마석 관리법이나 채굴 노하우를 브린힐데 상단이 배운다면?

‘날개 달린 호랑이나 마찬가지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레디스는 검술 대회 우승자이고 매일같이 수련에 몰두한다.

키스케가 마법을 배우며 유리해진 점도 있으나, 그녀의 눈썰미는 레디스가 조금 더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다.

키스케가 우승하게 된다면, 그때는 막시밀리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황실에 귀속된 마석 광산을 아카락시아가 맡으면 된다.

힐데가르트가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공녀님은…… 참 당당하신 것 같습니다.”

발끝을 바라보던 이오타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전 남들이 조금만 수군거려도 그쪽으로 고개 돌리기가 어렵던데.”

“이오타는 남들의 시선이 무섭니?”

“조금은요.”

보라색 눈동자에 쓸쓸함이 차올랐다.

“제 외모를 칭찬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외모를 핑계로 멀어졌어요.”

“…….”

“잘생겼구나, 혼혈이라서 그런가 봐……. 그런 말은 칭찬일 때도 있었지만 금방 밀어내기 위한 말로 변하더라고요.”

제국에서 혼혈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골치 아프고 힘든 일이었다.

외모 때문에 벌어지는 차별은 기본이다.

가장 힘든 건 사회의 어느 쪽에도 소속하지 못한 상태로 자라난다는 점이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너무 쉽게 사회와 사람들에게서 밀려났다.

“이오타. 감히 섣부른 위로나 조언은 건넬 수 없겠지만, 한 가지는 약속할 수 있어.”

힐데가르트가 부채를 접으며 그의 시선을 똑바로 보았다.

“이번 사냥 대회 동안, 혼혈이라는 이유로 널 괄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화를 내도 괜찮아.”

“……공녀님.”

“그 옷을 입힌 건 나니까, 책임도 내가 질게.”

“…….”

힐데가르트의 입에서 나오는 책임이라는 단어는 무거웠다.

이오타는 그녀가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알았기에, 고맙다는 인사 대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화를 내다뇨. 그럴 수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귀족가의 자제분들인데.”

“그러니까 더더욱 화를 내고 하면 안 되는 짓이라는 걸 알려줘야지.”

“전 괜찮아요. 공녀님께서 책임지실 바에야 제가 참는 게 나아요.”

“그렇지 않아.”

힐데가르트는 사람이 너무 유순한 것도 탈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주춤거리던 이오타는 균형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힐데가르트는 차라리 잘되었다는 듯 그와 시선을 맞췄다.

“잘 들어, 이오타.”

“고, 공녀님……. 사람들이…….”

“볼 테면 얼마든지 보라고 해. 알겠어? 너는 이제부터 내게 속한 사람이야.”

힐데가르트의 작은 손이 그를 꽉 잡았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지. 그런 각오도 없이 네 손을 잡았겠어?”

“……저를 채, 책, 책임지시겠다고요?”

“응.”

“진심이세요?”

“여기서 거짓말을 할 정도로 내가 나쁜 사람 같아?”

이오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진짜 부끄러움을 많이 타네.’

힐데가르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놓기는커녕, 이대로 꽉 잡아서 고용 관계로서 유대감을 확립할 생각이었다.

“내 사람이 되는 게 싫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렴.”

하지만 싫은 게 아니라면 분명하게 네 의사를 밝히도록 해.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나를 소중하게 여겨 달라고.

나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싫지 않습니다.”

시선을 요리조리 피하던 이오타는, 한숨을 내쉬듯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싫을 리 없잖아요.”

“그거 다행이구나.”

힐데가르트가 싱긋 웃었다.

그녀가 손을 놓자, 이오타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을 탁탁 터는 그의 귓가가 딸기처럼 빨갛게 익어 있었다.

이오타가 한참 ‘내 사람’이라는 단어를 곱씹고 있을 때였다.

“칼란도 랑케르트 공작 각하! 이게 얼마 만에 뵙는 건가요?”

본부석에 앉아 있던 귀족들과 티모시 남작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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