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키스케의 독살 소식은 엄청난 소란으로 번졌다.
황족 간의 독살 사건이라니!
사냥 대회가 사소해질 만큼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로바르네는 그 자리에서 즉시 붙잡혔다.
그녀는 무언가 착오가 있는 거라며 악을 질렀으나, 힐데는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마법을 썼다.
황자비를 붙잡은 뒤에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사를 대신해서는 노바가 나섰다.
“감히 노예 기사 따위가 내 신병을 구속하려 들어? 건방지게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예, 황자비 전하. 저는 출신부터 천한지라 제 주군의 안위 말고는 겁나는 게 없습니다.”
노바는 이를 악문 채 로바르네의 앞에 섰다.
“제가 이 이상 주제넘게 굴지 않도록 해주시지요.”
결국 로바르네는 티모시 남작이 보낸 기사들과 테리오 리브 수사관 총괄의 감시하에 다른 저택에 연금되었다.
불탄 공관을 조사하고 황자비를 저택에 연금한 지 반나절쯤 됐을까.
어디서 못된 짓만 골라서 배워왔는지, 그다음에는 카라딘이 찾아와서 난동을 부렸다.
하지만 노바도 힐데가르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당장 어머니께 사죄하라는 쪼끄만 꼬맹이보다는 독을 구해왔다고 자백한 랑케르트 공작 측 시종이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
키스케가 독에 당한 게 확실한 상황에서 자백하는 사람이 나왔으니 관심이 그쪽으로 쏠린 건 당연했다.
게다가 랑케르트 공작도 사흘 넘게 실종된 상태다 보니, 상황은 몹시 어수선했다.
몇몇 소문 좋아하는 귀족들은 조금 더 티모시 영지에 남아 있고 싶어 했으나, 제정신이 박힌 이들은 괜한 소동에 휘말릴까 봐 겁을 내며 흩어지듯 영지로 돌아갔다.
결국 하루가 지나자 이 일은 신문에 큼지막하게 대서특필되었다.
애꿎은 시종들만 몰려드는 기자를 돌려보내랴, 시중도 들랴 이중으로 고생하는 하루하루였다.
키스케는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잠깐은 고비가 찾아오기도 했으나, 다행히 이틀째 밤을 넘긴 뒤에는 순조롭게 회복했다.
간혹 의식을 되찾고 몽롱한 상태에서 헛소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힐데가르트가 손을 꼭 잡아주니, 다시 얌전히 잠들곤 했다.
“……감사합니다, 공녀님.”
“내가 뭘 했다고 그래.”
며칠 새 몰라보게 수척해진 노바가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힐데가르트의 손을 기도하듯 붙잡았다.
“공녀님이 아니셨으면 전하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노바 네가 아니었으면 나도 제때 달려오지 못했을 거야.”
급박한 순간 때맞춰 그를 구할 수 있었던 건 노바의 덕이 컸다.
그가 키스케의 위험을 제때 달려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공관에 불이 났을 때, 기사들은 두 사람을 구하러 가기는커녕 들어가려 하는 노바를 막아섰다.
황자비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들어와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는 게 이유였다.
기사들보다 불을 끄기 위해 물을 길으러 가는 시종들이 더욱 다급해 보였다.
한창 몸싸움을 벌이던 노바는 이상을 직감하고 곧바로 힐데가르트에게 도움을 청했다.
‘조심하라고 했는데 말도 안 하고 혼자서 황자비를 만나러 가? 언제는 알아들었다면서!’
키스케가 가여우면서도 살짝 얄미워진 그녀는 제자의 볼을 콕 찌르고 싶어졌다.
설마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곤 본인도 생각 못 했겠지만…….
곱씹을수록 언짢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자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속만 썩이고 말이야.’
힐데가르트는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툴툴댔다.
“노바. 얼굴에 수염 났어.”
“윽…… 깎을 시간이 없어서요. 전하의 용태도 걱정되고, 황자비 쪽도 신경 쓰여서 오가다 보니…….”
“내가 보고 있을 테니 눈 좀 붙이고 와. 어제도 몇 시간 안 잤지?”
불쑥, 레디스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레디스 공자님.”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지! 나만 믿어.”
키스케가 잠들어 있는 공저로 찾아온 레디스가 보란 듯이 가슴을 쾅쾅 쳤다.
“……감사합니다. 그럼 두 시간 뒤에…….”
“여섯 시간! 그동안에는 나랑 오빠가 지키고 있을 테니 안심해.”
노바는 쑥스러운 얼굴을 하다가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났다.
겨우 두 사람만 남게 되자, 레디스가 혀를 내둘렀다.
“나 참,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어서 전하가 눈을 뜨셔야 할 텐데…….”
“그러게. 세상에 이런 사냥 대회는 처음 겪어봐.”
“누가 아니래.”
레디스는 그렇게 말한 뒤 힐데가르트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힐데 너도 그래. 아무리 마법을 쓸 줄 안다고 해도 불 속에 뛰어들면 어떡해? 미하일 형이 알면 기절한다.”
“이미 기절하지 않았을까?”
힐데가르트가 마법으로 키스케를 구한 건 이미 신문을 통해 이야기가 퍼졌다.
아침마다 신문 읽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 미하일은 기겁하고 있으리라.
“여기서 또 쓰러지는 사람이 생기면 곤란하니까, 이젠 안 그럴게.”
그녀의 대답이 제법 똑 부러져서인지, 레디스는 시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될 예정은 아니었는데…….”
플람을 이틀 내로 찾지 못하면, 레디스와 키스케를 먼저 보낼 생각이었다.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고 조금 더 찾을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요 이틀간은 플람을 찾기는커녕 떠올릴 틈도 없었다.
“집 떠나니깐 집이 그리워? 오빠는 먼저 가도 돼.”
“또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레디스가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난 너랑 같이 갈 거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라.”
레디스가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지만, 힐데가르트는 화를 내는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돌아가게 된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날 오후 늦게 이오타가 찾아왔다.
등에는 가방을 메고 있었고, 양손으로는 힐데가르트의 토끼를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이오타가 그녀에게 토끼를 건네자, 힐데가르트는 조심조심 안아 들었다.
“다음에 뵐 때는 영지에서 뵈려나요?”
“아마 그럴 거야. 이오타 너는 준비 끝난 거야?”
“예. 바로 돌아가서 급한 일을 해치워야 할 거 같아요.”
이주도 준비해야 하고, 마석 아티펙트 판매도 준비해야 하니 여러모로 할 일이 많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 이주 준비가 끝나면 내 쪽에서도 한 번 더 연락을 보낼게.”
“네. 공녀님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잠깐의 이별이기에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어서일까. 해는 유난히 빨리 떨어졌고, 금방 어둠이 찾아왔다.
이오타가 떠난 자리를 채우듯 황실 수사관 몇 명이 티모시 영지로 달려왔다.
테리오 수사 총괄이 그들과 대화를 나눈 뒤, 본격적인 조사는 내일부터 진행될 거라며 귀띔해 주었다.
“랑케르트 공작 각하께서도 실종 상태라, 이 일은 꽤 심각한 사안이 될 겁니다.”
“공작을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는 건가요?”
“예. 시종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무리 축젯날 공관 저택에서 본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힐데가르트가 그와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있을 때였다.
“결정은 폐하께서 하실 일이지만 독살 사건에 연루된 시종은 심문을 마치는 대로 수도까지 압송하여…….”
“…….”
“공녀님? 왜 그러십니까?”
테리오 리브 총괄은 힐데가르트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은 걸 보았다.
토끼를 쓰다듬던 그녀가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요, 죄송한데 급히 가볼 곳이 있어요! 먼저 실례할게요!”
“자, 잠깐! 공녀님!”
테리오 총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 시간에 숲속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합니다!”
다급하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힐데가르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 튀어나올지 모르는 어두운 숲속을 가로질렀다.
‘이 기운…….’
잘못 느꼈을 리 없다.
여태껏 마법으로 일대를 추적해 보아도 비슷한 기운 하나 느낄 수 없었는데.
“플람!”
기운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에서 멈춰 선 힐데가르트가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고요했으나, 그녀는 확신했다.
플람은 이곳에 있었다.
“플람! 당장 나와! 네게 물어볼게…….”
“플람이 아니라 나는 어때?”
파사삭, 하고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 새카만 것이 힐데가르트가 등지고 있던 나무 위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코앞까지 다가온 상대가 말을 걸었다.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지, 힐데가르트 아카락시아.”
“너…….”
상대는 플람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 때문일까.
그에게서는 무심코 상대를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섬뜩함이 있었다.
“너…… 누구야?”
“과연 스승이라 그런지 한 번에 알아보는구나?”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나는 단테라고 해.”
“…….”
“마성신, 이라는 촌스러운 이름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이름으로 불러주었으면 해.”
힐데가르트의 안색이 굳어지자, 단테는 더욱 히쭉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