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공녀님 (153)화 (153/166)

150화

힐데가르트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제 방에서 할까 합니다. 좀 지저분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난 상관없어.”

“힐데가 괜찮다면 나도 좋아.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그럼 이쪽으로.”

솔로몬이 두 사람을 안내했다.

내내 퀴퀴한 먼지와 싸웠다는 솔로몬의 한탄은 허황된 말이 아니었다.

솔로몬의 방 한가운데에는 사람 한 명이 누워도 자리가 남을 만큼 커다란 사각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책과 서류 보관함, 두꺼운 고어(古語) 사전이 높은 탑처럼 층층이 쌓여 있었다.

“우선 흑마법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죠.”

솔로몬은 두 사람 앞으로 향긋한 차를 내밀었다.

“이번에 붙잡힌 카라딘 황손 말입니다만, 그가 쓴 흑마법은 단테의 힘을 단순히 빌린 게 아니라 직접 가져와서 쓴 걸로 추측됩니다.”

“그래? 그렇게 놀랍지는 않네.”

힐데가르트도 예상했던 이야기였다.

마법적 재능이 없는 카라딘이 그만한 마법을 단기간에 익혔을 리는 없다.

단테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난장판이 틀림없었다.

“공녀님께서 귀걸이를 부수셨다고 했죠?”

“응. 작고 까만색이었어.”

“아마 그게 힘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솔로몬이 제 귓불을 톡톡 두드렸다.

“마력도 없는 일반인이, 비록 일부분이라고는 하나 마성신의 분신과 직접 연결이 되었으니 정신 오염이 일어날 수밖에요.”

현재 카라딘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지 못했다.

힐데가르트가 귀걸이를 부순 직후 몸부림을 치며 악을 쓰던 모습은 애교였다.

이베르타의 지하 감옥에 갇힌 그는 종일 난동을 부리다시피 했다.

창살, 벽을 발로 차며 온갖 욕설을 퍼부은 모습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그와 이야기를 하러 내려갔던 키스케조차도 포기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을 정도였다.

키스케는 마침 궁금했던 화제가 나왔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카라딘에게 폭력성과 부정적인 감정이 두드러진 건 그 여파인가?”

“바로 맞추셨습니다. 뭐 원래 본인 가지고 있던 성질이 강화된 것도 있을 겁니다만.”

“나을 방법은 있나?”

“…….”

솔로몬은 잠시 묘한 눈으로 키스케를 바라보았다.

“완전히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신전의 대사제가 정화 의식을 치른다면 조금은 나아질 테지요.”

“그런가. 알겠다.”

“카라딘 황손을 용서하실 겁니까?”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키스케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런 녀석이라도 할아버지께는 손자니까. 최소한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을 갖춰야 죄를 묻는 게 의미가 있겠지.”

“이미 저지른 짓에 비해서는 몹시 호강입니다만?”

솔로몬이 작게 투덜거린 뒤 힐데가르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요. 공녀님, 플람이라는 사내 몸에 마성신의 분신이 들어가 있다고 하셨죠?”

“맞아.”

“그럼 그 사람의 판단력도 카라딘 황손과 마찬가지로 온전하지 못할 겁니다. 아마 그쪽은 더 심각하겠죠.”

힐데가르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 또한 짚이는 점이 있어서였다.

‘막시밀리언은 그만하면 오래 살았으니 죽어도 괜찮지 않나……?’

서늘한 목소리만큼이나 차가웠던 노란 눈.

한때는 벌꿀처럼 예뻤던 어린 플람의 눈망울이 아른거렸다.

“공녀님. 저는 단테가 이야기한 게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플람은 당신을 되살리기 위해 진짜 힐데가르트 공녀의 영혼을 제물로 썼을 겁니다. 제자였다면서요? 그럼 그런 선택을 해도 이상할 게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이번 일도 그렇고, 단테와 플람…… 그들이 쓰는 흑마법은 모두 진짜배기라서요.”

솔로몬은 테이블 위에 드리워진 찻잔의 그림자를 톡톡 두드렸다.

“사냥대회에서 플람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고 하셨죠?”

힐데가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유 동굴에서 모습을 감췄어.”

“그럼 그들이 쓴 마법은 기존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겁니다. 주문조차 외우지 않고 순간 이동이라니, 전 늙어 죽을 때까지 못 할걸요? 흑마법에서 그런 힘은 없어요.”

“…….”

“그럼 남은 가능성은? 빌려온 허접한 저주도 아니고, 마성신의 진짜 힘을 사용했단 거죠. ……공녀님도 어렴풋이 눈치채셨던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 확신이 없었어.”

힐데가르트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플람은 정말 뛰어난 제자였거든. ……마음먹는다면 정말 뭐든지 해 내는 녀석이었지.”

“그래서 이 상황이 되었나 봅니다?”

솔로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따끔하게 찔렀다.

그때였다. 키스케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게.

“잠깐만.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그녀에 비해, 키스케의 낯빛이 어두웠다.

키스케는 힐데가르트가 제자를 찾고 있던 것도, 그 제자의 몸에 단테라는 마성신의 분신이 깃들어 있단 것도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플람이 그녀를 되살렸단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솔로몬이라고 했지? 설마 힐데의 부활에 마성신의 힘이 쓰였다는 건가?”

“어라? 못 들으셨습니까? 지금 힐데가르트 공녀님은 엄밀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몸속에 혼을 억지로 구겨 넣은 상황이나 다름없습니다.”

“……뭐라고?”

충격을 받은 키스케가 그녀를 휙, 돌아보았다.

하지만 힐데가르트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묵묵했다.

“아무튼요. 힐데가르트 공녀님을 부활시키기 위해 진짜 공녀의 영혼을 사용했다는데, 그건 엄밀히 따지면 마성신에게 흑마법의 대가로 혼을 섭취당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솔로몬이 서류 보관함에서 성검이 그려진 고문서를 꺼냈다.

“그런데 단테는 분신체에 불과하지요. 정작 섭취해야 할 마성신은 성검 속에 봉인되어 있습니다. 그럼 영혼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그대로 소멸한 게 아니야?”

“제 생각은 다릅니다.”

솔로몬이 고개를 저었다.

“힘을 빌려 쓰는 삼류 흑마법사와 달리 마성신은 진짜 사자소생이 가능한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 증거로 공녀님은 이렇게 눈을 뜨셨지 않습니까?”

“…….”

“사자소생(死者蘇生)은 분명 성공했습니다.”

자연의 힘을 빌리는 마법과 달리, 흑마법은 마성신의 힘을 빌린다.

흑마법사는 수많은 제물을 써서 죽은 자를 소생시켰다. 하지만 그걸 완전한 부활이라 할 수는 없었다.

검은 별 교단에게 막대한 돈을 바치고, 삼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제물로 써서 살린 대부호의 딸은 온몸에서 매일같이 피를 흘린 끝에 두 번의 죽음을 겪었다.

작위를 팔아 죽은 부모를 되살렸던 이는 어떠했는가. 늙은 부모가 썩은 채로 깨어나 구울이 되었다.

마성신의 힘을 빌린 흑마법사의 사자소생이란 이토록 의미 없는, 사특한 저주에 불과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완벽히 살려낼 수 있는 존재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성검 속에 봉인한 마성신이다.

“여길 보시죠.”

솔로몬이 양피지 한 장을 내밀었다.

줄이 죽죽 그어진 서류에는 솔로몬의 글씨체로 깨알 같은 고어 해석이 달려 있었다.

“고서에서는 성검 아스톨을 ‘신성한 그릇’이라고 서술했더군요.”

“신성한 그릇…….”

“아주 오래전, 신화의 시대에서는 오르녹스 신이 성검에 성녀의 영혼을 담아 보호했다고 하지요.”

“성검에 영혼 또한 담을 수 있다고? 단순히 마성신을 봉인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겁니다.”

힐데가르트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 걸 보며, 솔로몬도 싱글벙글 웃었다.

“정리하자면 제 가설은 이겁니다. 우선…… 마성신은 당신을 되살리며 제물로 쓴 공녀의 혼을 섭취했다.”

솔로몬이 힐데가르트의 명치 부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본체가 봉인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영혼을 소화하지 못했고, 성검 속에 함께 머무르게 됐다. 간단하죠?”

“아…… 그럼……!”

힐데가르트가 무심코 숨을 삼켰다.

“진짜 공녀는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을 겁니다. 어리고 순수한 영혼은 그대로 남아 있는 거죠.”

가설.

솔로몬은 분명 가설이라 못 박았다.

하지만 내내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얹은 채 지내왔던 힐데가르트로서는 눈앞이 환해지는 순간이었다.

진짜 힐데가르트의 영혼이, 그녀의 일부가 아직도 살아 있다.

그런 가능성 하나로도 가슴이 조금 뛰었다.

하지만 힐데가르트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그녀와 영 딴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어떻게 하긴.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야지!”

힐데가르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진짜 힐데가르트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이 몸은 그 애에게 다시 돌려주는 게 옳아. ”

“아니, 그게 참…… 글쎄요.”

솔로몬은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골치 아픈 표정이었다.

“이게 옳고 그름을 따질 만한 문제일까요? 방금 제가 드린 말씀은 어디까지나 고어 해석을 통한 가설에 불과합니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면 괜찮아. 내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힐데. 너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내 참고 있던 키스케가 드디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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