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피에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칼립소는 그러거나 말거나 쫑알거리기 바빴다.
“저 완전 대단하죠?”
“별로.”
“아, 왜요. 대단하잖아요? 그렇지. 저 대단하긴 하죠. 누구 딸인데.”
“…….”
노을이 앉은 아이의 뺨은 웃지 않아도 발그레했다.
피에르의 대답이 어찌 됐든 칼립소는 은근히 눈치 보면서도 제 할 말만 하곤 했다.
“누구 딸인데?”
곧 노을 진 얼굴과 어울리는 예쁜 미소가 떠올랐다.
“아빠 딸이죠.”
“…….”
“우리 아빠, 엄청 멋있거든요.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말이에요.”
……그 아빠는 대체 뭐 하는 놈인데?
피에르는 이렇게 묻는 대신 팔짱을 꼈다.
“세 살배기를 굴리는데 한 번도 나와 보질 않는 인간 말이군.”
왜일까. 무엇일까. 속에서 끓는 이 불편한 심기는.
“못 본 사이 멋진 아빠의 기준이 달라진 건가?”
칼립소는 곧 자신의 옆자리, 분수대 가장자리에 앉은 피에르를 보았다.
충격이었다.
……당신 굴린다는 자각이 있었어?!
그러나 이도 잠시, 마치 돌고래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피에르를 보기 바빴다.
오, 뭘까. 더 하란 소린 안 하네? 잔업은 없는 건가?
훈련 끝? 이대로 돌아가도 돼?
‘여기서 말, 잘 꺼내야 한다……!’
청어 떼 같은 하녀들, 그녀들의 음식 솜씨가 대단히 좋다는 걸 알게 된 요즘.
칼립소는 퇴근을 갈구하는 직장인처럼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을 느꼈다.
열심히 방법을 강구하던 칼립소는 곧 생각을 멈췄다.
아니, 옆에서 앞을 가만히 바라보는 피에르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노을이 세상을 지배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옆에 앉아 있는 피에르는 홀로 그림자에 잠긴 사람 같았다.
석양을 등지고 있는 것 때문일까? 아니, 비단 이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스승님.”
시선을 느낀 것인지 피에르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은 왜 혼자 살아?”
피에르가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이리 사는 것인지는 칼립소도 알지 못했다.
“혼자가 좋아?”
아파서? 사람들이 귀찮아서? 그냥 혼자가 좋아서?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아주 많지만 정답은 모른다.
“사람이 많은 게 싫어서?”
“글쎄. 귀찮은 족속들은 없는 쪽이 편하기야 하지.”
“그럼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네?”
흘끗, 피에르의 눈이 칼립소에게 향했다.
“볼수록 네 지능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야.”
“그러엄. 얼마나 대단한데. 그건 내가 이렇게 또박또박 말할 때부터 알았어야지. 나만큼 말할 수 있는 애가 있을 줄 알아? 누구 제자인데, 안 그래?”
“……입만 열면 나오던 아빠 이야기는 하지 않는군.”
“뭐, 나를 가르친 건 스승님이니까.”
칼립소는 역광에 잠긴 피에르의 입꼬리가 아주 잠시 움직였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칼립소가 확신을 갖기 전에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칼립소는 함께 웃으려다 말고 물었다.
“그래서 왜 이유는 안 알려 줘? 스승님은 꼭 살 생각이 없어 보여.”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군.”
칼립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죽고 싶다는 거야?”
“글쎄?”
그저 늘 무기력하고 나른한 듯 홀로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느낌을 언제나 받았지만.
이토록 가볍게 ‘살 의지가 없다’고 토로해 버릴 줄은 몰랐는데.
“살고 싶지 않다며.”
“그렇게 되겠군.”
피에르는 감흥 없이 대꾸했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이 조그만 꼬맹이가 언제쯤 자신을 향해 호칭을 바꿀 것인지 고민하는 찰나였다.
옆이 너무나 조용했다.
시선을 옮기면 칼립소가 씩씩대며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는 뒤지게 힘들게 살아왔는데!’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너…….”
피에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날아온 조그마한 손이 먼저였다.
철썩!
칼립소는 피에르의 등을 찰싹 때리고서는 한 점 두려움도, 후환이 걱정되는 표정 하나 없이 씨근덕거렸다.
“어떻게 죽는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어!”
칼립소는 생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세 번의 죽음을 겪어 봤음에도 체념하거나 약해지기는커녕, 삶을 거듭할수록 생에 대한 의지는 강해지기만 했다.
‘이 불쌍한 회귀자 앞에서 뭐가 어쩌고 어째?!’
당신이 버린 시간, 회귀자가 바란 내일입니다.
이런 말도 몰라? 어?
애비를 향한 분노가 새파랗게 타올랐다.
“창창한 세 살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알겠어. 스승님? 미쳐써?”
“……왜 네 아비란 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나?”
“당연하지. 우리 아빠는 나한테 인생이 가장 소중하다고 가르쳐 줬어!”
칼립소의 손은 사실 딱히 아프지도 않았고 원한다면 막을 수도, 아니면 저 조그만 몸을 가볍게 들어 던져 버릴 수도 있었다.
피에르도 포악한 범고래의 일원.
그래, 그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피에르는 던져 버리는 대신 칼립소를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안 되겠어.”
“뭐가.”
“아저씨는 인생을 너무 무기력하게 살고 있어.”
“너처럼 무기력하게 구는 놈은 아들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