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용의 축제.
“응, 맞아. 용의 도시에서 열리지 않겠어?”
나는 소시지를 옴뇸뇸 야무지게 먹으며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들이 입에 올린 화제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제국의 축제에 대해서다.
용과 용 공작을 기리는 자리기도 했다.
‘그게 올해도 열리는구나.’
정확하게는 제국의 수호신을 기념하는 축제이자, 용 공작이 황실을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황실이 감시를 공고히 하는 자리기도 하다.
‘암, 바로 앞선 회차에서 제국을 통째로 날려 버린 용인데.’
그리고 축제엔……. 내가 만나야 하는 용 공작도 당연히 있을 테고 말이다.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우리 같은 수인이 거기 갈 수야 있겠어? 올해도 육지 동물 수인들만 초대하겠지, 뭐.”
이 세상은 차별이 만연한 곳이다.
육지 동물을 우위로 치는 세상인 탓에, 용의 축제에는 특별히 초대받은 게 아니라면 대체로 육지 동물 수인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아쉽다. 꼭 한번 보고 싶은데 말이지.”
그러게. 나도 이번 축제를 보고 싶은데 말이지.
어떻게 방법이 없나?
‘신부로 가기 전에 용 공작을 한 번쯤 봐 두고 싶은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 다들 들었어? 칼립소 님, 곧 가주님께서 돌아오신다고 해요!”
나는 용의 축제를 잠시 지워 내며 눈을 크게 깜빡였다.
“돌아온다니?”
“꺄아악, 귀여우세요, 너무 귀여워.”
“공녀님 지금 윙크하신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한 번 더 해 줄 테니까 더 자세히 이야기해 봐.”
“꺄아악!”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뒤, 에이야가 입을 열었다.
“가주님께서 잠깐 자리를 비우셨다가 3개월 만에 돌아오신대요. 오시자마자 가문 회의를 여신다고 들었어요.”
“가신들이 아주 바빠요.”
으음, 어쩐지 조금 시끄러울 법한 일이 있었는데도 할머니가 아무런 액션이 없다 싶더니만.
잠깐 자리를 비웠던 거구나?
나는 새삼스럽게 하녀들을 보았다.
‘본성 소식을 잘 알고 있잖아?’
심지어 지금 나랑 허름한 건물에서 함께 생활 중인데도 말이다.
“잘 알고 있네?”
“네. 저희 청어 자매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본성에도 말이에요!”
그렇단 말이지. 생각보다 쓸만한 정보를 물어 오네 싶었다.
‘가문 회의라.’
범고래 가문은 ‘물의 힘’으로 수중 동물 수인들을 이끄는 자가 수장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가신 가문은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대부분이 수중 동물이다.
제 1가신은 범고래를 제외한 고래 가문, 제 2가신부터는 수중 동물들.
‘할머니는 가신들이라고 봐주진 않아서, 수틀리면 어물전 새끼들이라고 부르곤 했지.’
말이 회의지 항상 할머니 성격에 뭔가가 부서지든 사람이 날아가든.
무슨 일이 늘 일어나는 회의였다.
“회의에서 칼립소 님을 모두에게 소개시키지 않을까요?”
“맞아요, 맞아요!”
글쎄, 할머니가 다른 회차와 다르게 나를 다른 건물로 쫓아내지 않았긴 했지만.
아니지. 아니지.
‘3살에 최상위 반으로 올라왔는데, 조금 기대해 볼 수도 있는 건가?’
회의에서 소개가 된다는 건, 범고래 직계 일원으로서 대단한 재능이 있음을 자랑하는 자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최상위 반의 짱도 먹었지.’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성과였다.
‘이걸 어떻게 자랑한다?’
입가가 근질근질했다.
후, 행복한 고민이군. 그 할망구 얼굴이 구겨지는 걸 꼭 한번 보고 싶은데 말이야.
‘이제 월반할 구석도 없으니, 뭘로 관심을 끌어 볼까.’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고민에 잠길 새도 없이 불쑥 수저가 내밀어졌다. 주황색이 보인다.
“칼립소 님 아, 하세요!”
이건……!
“다음엔 당근이에요!”
“……윽.”
회차를 반복해 도합 약 60년을 살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건 있는 법이다.
나는 위엄 있게 말했다.
“나는 당근 따위는 먹지 않는다.”
내가 거부하자, 요리 담당이기도 한 데데가 울상을 지었다.
“제가, 맛없게 만들어서일까요? 죄송해요……!”
“으응? 그, 그게 아니라……!”
내가 멈칫한 사이 포크를 손에서 놓은 데데가 얼른 얼굴을 가렸다.
“죄송해요! 저 따위가 요리를 해선 안 됐는데!”
“아, 아니이, 아니.”
……나는 나보다 약한 이들에게는 착하다!
고로 눈물을 머금고 입을 열어 주었다.
“이번만이다……!”
“네, 그럼요, 그럼요!”
그러나 나도 데데도 여기 있는 다른 하녀들도 알고 있었다.
내일은 또 다른 당근 요리가 나올 거란 사실을…….
나는 당근을 마치 적군처럼 전투적으로 씹으며 투지를 불태웠다.
방년 3세.
‘가문 회의가 열릴 거란 말이지?’
생각지도 않은 목표가 눈앞에 생겼다.
그 가문 회의에 어떻게든 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소개받으면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당장 중등 기관에 갈 수 없다.
거기서부터는 반드시 신체 능력이 받쳐 주어야 한다.
카론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있는 곳이 아닐 테니까.
‘아빠한테 가서 더 훈련을 시켜 달라고 한들 하루아침에 각성할 리도 없고.’
지금까지 못한 각성이 갑자기 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좀 더 힘써 보자면 할 수 있을 만한 게…….
‘오빠놈을 만나야 하나?’
이 아콰시아델 가문에는 내 위로 오빠가 셋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라고?
근데 말하지 않았는가, 내 버전은 육아물 절망편이라고.
애석하게도 시스콤 오빠 따윈 이곳에 없었다.
있는 거라곤…….
내게 힘으로 밟힌 뒤에야 무릎을 꿇던 약육강식 범고래 놈들만 있을 뿐.
“하하하, 나를 이겼구나! 널 가주로 따르겠다!”
“이겼군, 나를 밟고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