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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범고래 아기님 (39)화 (39/275)

제39화

“일단 너랑 나랑 모두 참석하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아게노르는 두 번째 제자가 되면서, 또 함께 훈련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사정을 짐작한 눈치였다.

하기야 눈치가 없는 오빠는 아니었으니까.

처음부터 궁금하긴 했는데, 묻진 못했다면서 대체 왜 아빠를 스승으로 부르게 된 거냐며 궁금해하긴 하더라.

“그냥 이 참에 모두 얘기하면 안 돼?”

“응, 아직은 안 돼.”

“그렇구나.”

“쉽게 납득하네?”

아게노르가 배시시 웃었다.

“여동생님이 무슨 생각이 있지 않을까? 바이얀의 코피를 터트렸을 때처럼.”

“그땐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럼 더 대단해.”

그놈의 대단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나저나 날짜가 정해졌댔지?”

“응.”

내가 집에서 요양하는 사이에 최고 징계위 날짜가 정해졌다.

날짜는 삼 일 전에 나왔는데, 바로 내일이다.

“아쉽게 됐어. 하필 최고 징계위와 가문 회의가 함께 열리다니.”

그랬다. 정말 애석하게도 가문 회의와 최고 징계위가 같은 날 열리고 말았다.

고로 당사자이자 징계위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난, 자연스럽게 가문 회의에 참석하긴 글렀단 소리다.

‘쯧, 아게노르 말대로 너무 아쉽게 됐어.’

이번엔 내가 만들어 둔 소문이 많아 참석만 했다면 아주 쉽게 이목을 끌었을 텐데.

그 할머니의 관심조차도 말이다.

자신이 무시하던 손녀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지 똑똑히 보여 주고 싶었는데 텄다.

그나마 위안 삼을 거리가 있다면 유력한 후계자인 바이얀 그놈도 참석하지 못하는 거랄까.

그놈에겐 자존심 상하는 일일 테니까.

게다가 할머니 눈 밖에 날까 봐 초조해하고 있겠지.

이게 바로.

‘내가 갖지 못하면 너도 못 먹어.’

얻은 게 없진 않다.

“뭐, 기회는 내일만 있는 게 아니니까.”

“멋져, 그 자신감! 자존심! 오만해!”

“맨 마지막 말은 왜 나오는 거야?”

오만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이는 표현이었나.

나는 생글생글 웃는 아게노르를 보다가 툭 내뱉었다.

“고마워.”

“응?”

“제대로 말한 적 없는 것 같아서 아직.”

푸른 눈이 나에게 향했다.

나는 이렇게 빠르게 이 눈을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유도 묻지 않고 도와줬잖아. 그날.”

“아!”

“패싸움하느라 너도 고생 많았다고.”

“재밌었어.”

아게노르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워 보는 건 처음이었어.”

“앞으로 많을 거야.”

“응?”

“많을 거야.”

마치 확답하듯 말하는 내게 아게노르는 의문을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곧 알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으니까.

“그렇구나. 네가 지키는 싸움을 한다는 거지?”

“그게 왜, 그렇게…….”

내가 무어라 답을 하기도 전에 방문이 열리더니 트레이를 끌고 청어 하녀들과 함께 미사가 들어왔다.

하녀들과 미사는 아게노르를 보고 놀란 눈치였지만 잠시뿐이었다.

“어서 오세요, 공자님!”

“세상에, 공자님께서도 너무 잘생기셨어요.”

“두 분 닮으셨어요! 너무 귀여우셔……!”

언제나 그렇듯 내게 하던 주접이 아게노르에게도 옮겨 갔다.

이런 반응은 처음인 듯 아게노르는 잠시 놀라더니 이내 작게 중얼거렸다.

“이런 관심도 나쁘지 않은데…….”

나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는 하녀들이 내미는 스튜를 향해 입을 벌렸다.

윽, 또 당근 들어갔어.

그러나 나는 아게노르가 있다는 걸 의식하며 모른 척 입을 벌렸다.

아게노르에게 약점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내 사정을 알아차린 듯 하녀들의 웃음이 깊어졌다.

“자, 아 하세요 아.”

“아-.”

나를 유심히 관찰하던 아게노르가 대뜸 내게 성큼 다가왔다.

“칼립소.”

“왜?”

유달리 진지한 표정이길래 나는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왜 이래?

“나도 부려 먹어 줘.”

“……꺼져.”

“그런 단호함, 나쁘지 않아. 하지만 좀 더…….”

“미사, 손님 가신다네. 얼른 내보내.”

“아, 알았어. 취소, 취소! 농담! 우리 징계위 얘기도 해야 하잖아, 여동생님!”

아게노르는 얼른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누운 채로 싹싹 빌고서야 쫓겨나지 않았다.

하기야 아게노르 말처럼 내일 있을 징계위에 대해선 한번 상의할 필요가 있긴 했다.

상의라기보다는 계획에 가깝겠지만.

“아게노르. 너는 내일 내가 하는 말에 따라 줘.”

“뭔데?”

“그게 뭐냐면…….”

한참 동안 설명을 듣던 아게노르가 끄덕였다.

다만 반신반의한 표정이긴 했다.

그러나 토를 다는 대신 의문을 삼킨 것 같았다.

그러더니 머뭇거리면서 슬그머니 물었다.

“그런데 여동생님, 정말 아버지는 부르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아?”

나도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하지만.

고개를 단호하게 내저었다.

“괜찮아.”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칼립소는 자신의 상태가 말끔한 것에 놀랐다.

‘회복되었단 건 알았지만 어째 회복력이 직전 회차에서 가졌던 것보다 더 월등한 느낌이네.’

사실 이건 얼마 전 피에르를 만났을 때, 그가 남몰래 물의 힘을 칼립소에게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아직 각성하지 못해 이런 것까지 알아차리긴 어려웠던 칼립소는 그저 착각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최고 징계위는 초급 기관에서 열렸다.

열리는 장소를 두고 중급 기관과 여러 회의를 거친 모양이지만,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했다.

칼립소는 제 옷차림을 한 번 훑어보았다.

‘익숙하질 않네.’

이건 청어 자매가 만들어 준 옷이었다.

칼립소에게는 변변치 않은 옷이 없었다.

가주의 눈에 들고 나서 생활 환경은 좋아진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풍족하게 지낼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나 옷의 경우 활동용으로 입고 다닐 수 있는 옷가지에 그쳤다.

“아니, 공녀님, 공녀님, 이럴 수는 없어요!”

“양복, 양복이 필요해!”

“아니, 저기 그럴만한 자리는…….”

“의복은 무기예요, 공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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