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고개를 돌리면 아빠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스, 아니 뭐가 괜찮아요?”
나도 모르게 스승님이라 부르려다가 황급히 말을 바꿨다.
지금은 아빠와 사이가 좋은 딸이었지. 그것도 홀딱 빠진?
“네가 생각하는 것 모두.”
“…….”
……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꼭 아는 것처럼 얘기하네.
아빠는 팔짱을 낀 채로 느슨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억지로 어렵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내게만 들릴 듯한 작은 목소리였다.
“익숙하지도 않으면서.”
“끙.”
나는 움찔했다.
‘……이거 억지로 존댓말할 거면 집어치우란 얘기지?’
나는 산뜻하게 끄덕였다.
이건 내가 아니라 애비가 원해서 들어주는 거야.
“좋아.”
어쨌거나 시종이 이렇게 말한 이상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동이란 게…… 아빠의 품에 안겨서 이동하는 것이었다.
대체 왜?
아빠 옆으로는 아게노르가, 아빠의 앞으로는 바이얀을 비롯한 패거리들이, 뒤로는 의장이 따라 오고 있었는데.
‘와, 노골적인 시선들.’
안겨만 있는데도 느껴졌다.
모두가 아닌 척 아빠를 흘끔대거나 혹은 대놓고 응시하고 있었다.
‘완전 연예인이구만.’
나는 살그머니 아빠의 목을 껴안으며 가슴에 찰싹 달라붙어 속삭였다.
“스, 아니, 아빠. 그냥 내 발로 걸어가면 안 될까?”
“네 다리로 어느 세월에?”
“내 다리가 어때서?”
“회의가 끝난 뒤에 도착할 예정이라면 내려주지.”
“…….”
할 말이 없게 만드네.
게다가 내게만 들리도록 낮춰 속삭이는 목소리가 아주 그냥 무심하고 까칠했다.
좀 좋게 말하면 얼마나 좋아. 이것도 재주야, 재주.
‘그래. 나야 이런 식으로 돼서 소문이 퍼지면 좋지.’
이득 볼 건 보자고. 나는 고개를 슬쩍 들었다.
조금은 야윈 듯 칼날 같은 턱선이 보였다.
‘하지만 아빠는?’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
이 자리에선 물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짤막한 대화라면 모를까 길고 진솔한 대화를 하기엔 너무 많은 시선이 몰려 있었다.
“아게노르.”
“응?”
걸어가던 아게노르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지금 가는 파란의 홀에 가 본 적 있어?”
속을 모를 아빠보다야 이렇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집착을 드러내는 셋째 오빠가 차라리 나았다.
이미 파란의 홀에 가 본 적 있지만 시치미를 뚝 뗐다.
이 생에서는 처음이지.
“응. 매번 그곳에서 열리니까.”
아게노르가 설명했다.
보통 가문 회의는 이 저택의 가장 큰 홀 세 개를 번갈아 가면서 쓰고 있지만 대체로 파란의 홀을 이용한다고 했다.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어. 처음 들어가면 시종이 안내해 줄 거야. 음, 스으 아니, 아버지가 함께 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게노르는 피에르를 한 번 보고는 눈을 데구루룩 굴렸다.
그래. 너도 스승에서 아버지로 전환하려니 헷갈리지?
이어진 이야기 또한 잘 아는 사실이었지만 처음 들은 척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주가 된 뒤로는 파란의 홀은 아예 안 썼지, 아마?’
다른 이유는 없었고, 할머니가 가장 아끼던 홀이어서 그게 싫다는 이유로 쓰지 않았다.
이전 회차에서 가주가 될 때까지 나는 할머니를 향한 미움과 증오로 가득했으니까.
그렇다 보니 나도 그리 많이 가 보지 않았던 건물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머지않아 우리는 다 함께 파란의 홀에 도착했다.
앞장서서 걷던 바이얀과 패거리들은 문 앞에 다다르자 자연스럽게 비켜서며 아빠가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었다.
나는 아빠의 품에서 찡그렸다.
‘저놈 뭐 하는 거야?’
아빠는 태연하게 지나쳐 문 앞에 섰다.
나도 신경 쓰지 않고 문을 응시했다.
‘다시 도착했구나.’
파란의 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한 가지는 이름처럼 문이 새파란 색이란 점, 안쪽으로는 대리석으로 굽이치는 듯한 파도가 조각된 홀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는 ‘파란’의 홀.
말 그대로 파란이 일어나는 장소란 뜻이다.
‘범고래 역사 대대로 파란이 이는 일이 모두 여기서 발생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문이 열리고 거대한 홀에 입장하는 순간.
징계위에서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시선이 느껴졌다.
‘이걸 다시 보게 되는구나.’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나는 아빠의 품에 안긴 채로 회장을 열심히 보기 바빴다.
정말이지 빽빽하게 들어찬 자리였다.
머리 색 또한 알록달록 다양했다.
하기야, 가신들이고 방계고 모두 모였을 테니까.
‘가주가 매번 보는 풍경.’
이곳은 흡사 국회의사당 회의실처럼 부채꼴 모양이되, 계단식으로 구성된 모습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중앙에서 멀어지는 구조로, 자연히 세력이 약한 자들이 앉는 곳이다.
부채꼴의 중심에는 징계 위원회실이 그러하듯 의장석이 있었다.
가주의 자리다.
옥좌에 앉아 있는 위풍당당한 가주의 모습이 보였다.
내 할머니 오큘라 아콰시아델이었다.
“허, 이게 누구더냐.”
할머니는 권태로운 표정을 짓다 말고 우리의 등장에 한쪽 눈을 찡그렸다.
동시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아니더냐.”
카랑카랑한 음성에 아빠가 잠시 발을 멈췄다.
그러더니 나를 안은 채로 느릿하게 허리를 숙였다.
어찌 보면 정중한데, 또 어찌 보면 최소한의 예만 갖추겠다는 것인지 오묘한 태도였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유령은 아닌 듯하고.”
“…….”
“아직 안 죽었더냐? 어디 가서 뒈져 버릴 것이지.”
그저 툭 내뱉은 말임에도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모자지간 한번 살벌하네.’
하긴 할머니가 아빠가 서쪽에 콕 박혀 있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이야 익히 알고 있었다.
“어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피에르 님과 전대 가주님이 만났다 하면 아주 그냥…….”
“암암. 기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