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그 순간 소년의 눈이 나를 향했다.
회색의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레바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것뿐입니까?”
레바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응. 그것뿐인데? 아. 똑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하나 더 있으니까 이 정도는 추가해도 되지?”
“…….”
리리벨에게 약조한 것도 지켜야 할 테니까 말이야.
“그런…… 거래가.”
레바이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무슨 이런 소리를 다 하냐는 듯이.
“어째서입니까? 당신께 수지가 맞지 않을 텐데요?”
아게노르를 볼 때, 리리벨을 볼 때. 그리고 여기 레바이를 볼 때.
3회 차에서 내가 잘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런 순간에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내가 아는 너희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말들. 너희가 아직은 어리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들.
‘레바이, 내가 아는 너라면 일단 뻔뻔하게 받아들이고 이런 말은 속으로나 생각했을 텐데 말이야.’
나는 싱긋 웃었다.
말랑한 상태의 수하를 보는 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므로.
“맞아, 역시 수지가 안 맞지?”
“…….”
“이렇게까지 양심적으로 나와 주니 할 수 없네. 나도 양심적으로 장사해야겠어.”
“……네?”
“이제 파격 할인 같은 건, 없단 소리지.”
나는 다리로 툭툭 가볍게 바닥을 차면서 일부러 슬쩍 건들거리게 말했다.
“네가 차 버린 거다?”
“무,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정정당당하게 거래하자며. 하는 수 없지. 내가 하나 더 갖고 싶은 게 있거든. 그걸 줘.”
“…….”
“그럼 내가 말했던 조건 그대로 돌고래를 지키고 저기 있는 살아 있는 치료약도 잘 지켜 줄게.”
“예, 이제야 꿍꿍이를 드러내시려는 모양이시군요. 말씀하십시오. 무엇을 바라십니까?”
레바이는 언제 혼란스러운 눈을 했냐는 듯, 역시 너도 그럴 줄 알았다는 시선이었다.
“너.”
“네, 뭐든…….”
“너라고.”
“……네?”
“널 갖고 싶은데.”
“…….”
“야!”
가만히 있던 아틀란이 서둘러 난입했다. 왜 이래, 이놈은?
……그리고 레바이 저놈은 또 왜 저런 포즈야?
레바이는 본능인 건지, 아니면 뭐 때문인 건지.
가슴 앞에 손을 엑스자로 교차한 자세를 한 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저, 저를 달라니요?”
“야! 그러니까 그렇게 표현하는 게 문제라고! 당장 취소 안 해?”
“왜? 난 아게노르한테도 이렇게 말했는데?”
리리벨한테도 이렇게 말했다고.
“그놈은 혈육이고!”
“이거야 원, 왜 지금 시간엔 네가 잔소리꾼이 된 거야? 원래 안 그랬잖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사납기 그지없는 아틀란의 팔을 툭툭 두들겨 줬다.
“아 그래, 그래. 알았어. 너, 내 수하가 돼라.”
“…….”
“널 애타게 찾고 있을 저 상어놈들보단 잘해 줄게.”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게 조건의 전부입니까?”
“왜, 값싸 보여?”
“네. 의심스러울 정도로 싸 보입니다.”
레바이가 솔직하게 말했다.
“그럼 넌 너를 그 정도로 값싸게 여기는 모양이네.”
“…….”
“나쁘지 않아. 나는 인재는 비싸게 데려오는 걸 좋아해. 내 눈은 늘 틀리지 않거든. 게다가 누가 하나래? 둘이잖아.”
내가 흘끗 눈짓으로 레바이 옆에 있는 소년을 가리켰다.
“그래서, 저 밖 어딘가에 있을 상어들보다는, 어때?”
레바이가 열에 들뜬 얼굴로 이를 부득 갈았다.
“……그 어떤 세력도 상어들보다는 나을 겁니다.”
아무래도 상어놈들이 깽판을 쳐 준 덕분에 레바이를 좀 더 손쉽게 영입할 기회가 생긴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제안은?”
“……좋습니다.”
“좋아.”
나는 짝 박수를 쳤다.
“그럼 가자고.”
“네? 어딜……?”
“여기서 계속 살 수는 없잖아?”
나는 돌아서려다 말고 막 생각났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그래, 치료는 얼마나 걸리지?”
* * *
두 시간 뒤.
우리는 도시에 위치한 큰 숙소에 들어왔다. 지구로 치면 오성급 호텔이라고 할까.
그중 가장 좋은 방을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여기 아틀란도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아빠 저택으로 바로 데려가면 좋겠지만, 가는 길에 너무 눈에 띌 테지.’
나는 흘끗 레바이와 웨일을 보았다.
두 사람에겐 커다란 로브를 걸치게 하고 여기까지 데려왔다.
가뜩이나 나나 아틀란은 얼굴이 거의 신분증이나 마찬가지라, 내가 아콰시아텔 저택으로 돌아가는 동시에 다른 일행이 있었다고 소문나기 십상이었다.
제아무리 로브로 얼굴을 가리게 해도 관심 갖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진짜 상처가 말끔하게 싹 다 나았네?’
지금은 실내이다 보니 두 사람은 다시 로브 모자를 벗었는데, 나는 레바이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아틀란이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
“뭔 놈의 치료가 이렇게 오래 걸려?”
그랬다.
“그러게.”
두 시간이란 시간은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레바이 치료에 걸린 시간이었다.
“나도 궁금하긴 하네.”
나는 저벅저벅 걸어가 레바이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말끔하게 치료가 끝난 레바이는 차갑도록 침착한 시선이었다.
얼굴엔 어느새 동그란 안경을 걸치고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개화기 안경 같달까, 신지식인들이 썼을 법한 모양이다.
예전에도 저놈에게 더럽게 어울린다고 생각했건만. 어렸을 때도 썼던 모양이지?
“자, 이제 이야기나 나눠 볼까? 그 치료란 건 어떻게 하는 건데?”
레바이는 아무런 동요가 없는데, 오히려 저놈 옆에 앉아 있던 웨일이 움찔했다.
“치료는 어떤 방식이지?”
조금 전에 레바이의 치료 과정은 보지 못했다.
“치료하고 나갈 테니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