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투스를 되찾았다.
제일 중요한 목적 중 하나를 달성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목표였던 아빠의 병을 치료할 재료 쪽은, 흑표범들이 정신없는 동안에 수월하게 이룰 수 있었다.
모든 계획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 없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용의 신부인 탓에 휙, 쉽사리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다만, 그 전에 잠시.
“모두 잘 들어. 흑표범들은 이제 곧…… 최후의 수단을 쓰려 할 거야.”
원작을 읽었을 때 흑표범들이 쓰는 ‘땅의 힘’은 거의 사기에 가까운 힘이었다.
그중 하나로는.
“놈들은 이제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큰 대가를 지불하고 능력을 하나 쓸 거거든.”
바로 ‘땅에 발이 닿아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모든 것에는 물건도 사람도 해당한다.
‘원작에서도 릴리가 납치당하면 이 능력을 쓰곤 했지.’
하지만 그들이라도 이 능력을 쉽게 발동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말했듯 아주 거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떻게 그걸 아시는지는 차치하고서…… 대가도 아시는 겁니까?”
“응. 그러니 쉽게 쓸 수 없는 능력이라는 것도 아는 거지.”
레바이에게 설명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마 릴리를 찾는 데 한번 썼겠지.’
탐지 범위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었기에 용의 도시에 릴리가 없다는 사실만 알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슬슬 발로 뛰어서는 용 공작을 찾을 길이 없다고 판단했을 테니.
놈들은 초조할 것이다.
용 공작이 용의 도시에 있을지, 아니면 도시 근처에 있을지 판단하기 위해 다시 한번 이 능력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빠, 부탁이 있어.”
“말하도록.”
“지금부터 투스와 에키온, 릴리의 발을 항시 땅에서 떨어뜨려 줘.”
그러나 이런 사기적인 능력도 대처 방법을 알고 있으면 통하지 않는 법이다.
왜?
‘땅’에 닿아 있는 존재만 탐지될 테니까 말이지.
분명해.
그들은 용 공작을 찾기 위해 반드시 이 능력을 쓴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당혹스러워하겠지.
이 도시 어디에서도 용 공작이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말 나온 김에 바로 실행하도록 하지.”
아빠가 손을 휘젓자 투스와 에키온, 릴리까지 둥실 떠올랐다.
“으앗!”
“괜찮아, 릴리. 위험한 거 아니야.”
울상을 지으며 나를 보는 릴리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더니, 아이의 표정이 풀어졌다.
투스와 에키온이야, 자신들의 몸은 어찌 됐든 날 향한 눈이 신뢰로 반짝거렸다.
“……똑같이 생긴 놈들이 표정까지 똑같냐.”
쌍둥이가 따로 없다.
투스는 에키온을 가르친답시고 에키온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므로.
아틀란이 몰래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다 보였지만 모른 척했다.
“좋아. 이대로 내내 유지해 줘, 아빠. 그리고 드렉스.”
“예.”
“내가 말한 인물은 찾았어? 접촉은?”
“예. 찾았고, 접촉은 아직입니다.”
“그래? 당장 만날 수 있나?”
“네, 소재지와 행적은 파악해 두었으니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내가 물어본 인물은 다름 아닌 흑표범 가문의 둘째 ‘팔라야 판테리온’이었다.
“좋아. 그럼 팔라야 판테리온과 접촉해.”
유일하게 릴리를 빼내서 도망치게 만들었다고 했지?
팔라야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릴리의 표정이 초롱초롱해졌다.
홍조가 어리고 들뜬 데다, 할 말이 있지만 눈치를 보느라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레바이, 너는 아틀란과 알아보란 건 알아봤고?”
“용의 성 가신들의 구조 말씀이십니까.”
레바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이어 말했다.
“예, 알아봤고 말씀하신 내용에 일치하는 인물도 찾아보았는데…….”
나는 에키온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줄곧 이상하게 여겼다.
용의 도시와 용의 성은 하루 이틀 만에 세워진 곳이 아니다.
무수한 역사가 있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며 극도로 영주를 존경하는 영지민들과 가신들이 존재한다. 그들이야말로 용 공작의 손발이자 거대한 힘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용 공작이 아프다고 은둔해 있는 동안 용 공작 옆에 가신들이 전혀 없었으며.
황실이며 수도의 육지 맹수 수인들이 용 공작 감금에 가담한 채 감시하고 있었는가.
‘필시 알력 싸움이 있었을 거야.’
내 추측은 이러하다.
분명 처음에 황실은 용 공작을 보호하겠다 나섰을 것이고, 이러한 결정과 태도에 반발하는 가신들이 있었을 터다.
‘용의 도시는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지.’
그리고 황실과 육지 맹수 수인들이 일찍이 이런 극성 가신들만 쳐내거나 찍어누른 상태라면?
“저와 공녀님이 예상한 대로입니다.”
흑표범과 육지 맹수들이 용 공작을 찾느라 바쁜 사이 알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8년 전쯤 이곳의 공신과 가신들이 대거 쫓겨난 사건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뻔하지.”
어떤 조직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우두머리의 손발부터 잘라야 한다.
그리고 우두머리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였다면. 맹수들에게 이는 생고기 씹는 것보다 쉬웠을 터.
그들의 저열함에 신물이 났다.
“도시 밖으로 쫓겨난 자도 있고, 공녀님 예상처럼 외곽으로 쫓겨난 이도 있습니다.”
“모양새가 영 좋지 않으니까 기회를 봐서 슬쩍 쫓아내 두고 정리하려 했겠지. 뻔해.”
나는 찌푸리면서도 미간을 꾹꾹 눌렀다. 빡치지 말자. 빡치지 말자.
‘지금은 어차피 우리가 유리하다.’
“그중에서 쓸만한 인간은?”
“만나 봐야 알겠지만…… 한 명 정도 말씀하신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흘끗 에키온을 보았다.
에키온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았다.
“에키온, 그럼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네가 저 망할 건물에 갇히기 전에 말이야. 늘 옆에 있던 사람을 기억해? 한 사람이라도 말이야.”
에키온은 이 말에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했다.
“투스, 기억해! 꽤 있어!”
“그래? 에키온은 어때?”
에키온은 한참 만에 한마디를 꺼냈다.
“……갈색 머리.”
에키온은 기본적으로 주변과 사람에 무심하다.
에키온 기억에 남은 사람이라면 나름 애를 썼다는 소리일 터.
“제가 꼽은 사람은 이 도시 외곽에 사는 ‘육지 거북 수인’입니다.”
알아보니, 본래 이 성의 총집사는 우리가 도착했을 때마다 반겼던 그 인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뭔가 어설프더라니. 쫓겨난 이들이 다들 한가락 했던 거군.’
그들의 원한은 엄청날 테니, 나는 이제 이 원한을 이용해 마지막 한 방을 날릴 차례였다.
암. 그렇겠지.
‘범고래들이 여기 있단 사실이, 너희에겐 최악의 악몽이 될 거다.’
* * *
“능력을 쓰겠다?”
“네, 아버지.”
판테리온 공작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 대가가 뭔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예, 압니다.”
아스엘이 무표정한 얼굴로 끄덕였다.
그러나 늘 무정하던 첫째의 눈에는 분노와 원한 서린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릴리를 찾기 위해 한 차례 그 능력을 쓰셨으니, 이번엔 제가 쓰겠습니다.”
부자는 열흘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흑표범 부자뿐만 아니라 이곳에 황제의 은밀한 명으로 온 다른 육지 맹수 가문의 일원들 또한 초조하긴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처음 겪는 상황이 어처구니없기도 했지만 해결이 급선무였다.
“땅의 힘을 통한 탐지 능력으로 용 공작을 찾아보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스엘 판테리온은 강력한 후계자라는 위명답게 육체는 아직 영글지 못했으나, 땅의 힘 잠재력만큼은 발군이었다.
“아버지, 허락해 주시겠습까.”
당연히 용의 도시를 뒤지는 것도 가능했다.
“허한다.”
아스엘은 페세움에서 겪은 수모를 잊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다시 되갚아 주기 전까진 평생 그의 발목의 족쇄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아랫니와 맞물려 으드득 살벌한 소리를 냈다.
정작 이를 간 당사자는 무표정하기만 했다.
그런 아스엘과 마찬가지로 분노에 사로잡혔지만 냉정한 판테리온 공작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방 한쪽에 조용히 서 있는 소년, 소년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진 상태였다.
‘흐음, 다들 뭐 하는 거지?’
소년의 이름은 팔라야 판테리온.
‘릴리를 찾겠다고 해도 이상할 판국에. 뭐, 나한테야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팔라야는 생각했다.
‘우리 아기 다람이는 잘 도망쳤으려나? 부디 멀리까지 갔어야 할 텐데.’
여기서 릴리를 가장 걱정하는 건 자신인 것 같다는 생각을.
* * *
땅의 힘과 물의 힘은 상극이다.
그 탓에 신기하게도 서로의 힘을 수없이 많이 겪다 보면, ‘아. 저 새끼가 무슨 힘을 쓰는구나’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탐지 레이더 같은 게 된달까?’
애석하게도 이 회차의 흑표범들은 아직 전쟁을 겪지 못했고.
자신들이 하등하게 여기는 범고래들의 물의 힘을 충분히 겪지 못했다.
이것이 그들의 패인이라면 패인일 것이다.
“……느껴지냐?”
“어. 너는?”
왜냐면, 나는 놈들이 땅의 힘으로 탐지를 시작한 순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픽 웃었다.
‘예상대로네.’
아틀란이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둘째는 전쟁에서 가장 최전선에 섰던 인물답게.
흑표범, 그중에서도 저쪽 둘째인 팔라야 판테리온과 더럽게 치고받고 싸웠었는데.
“희미하지만, 약간? 혐오감이랄지 불쾌감이 드는데. 이거냐?”
“비슷해.”
나처럼은 아니더라도 땅의 힘이 탐지를 시작한 걸 느낀 모양이었다.
“걱정 말고 가기나 하자. 오늘 바쁘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눈앞의 집을 보았다.
“어어……. 그래.”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