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이렇게 단둘만 데려온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각기 다 할 일이 있었으니까.
‘우선 용과 관련한 일이니, 용 공작은 필수고. 나 외에 무력을 쓸 수 있는 사람도 하나 필요하지.’
이 과정에서 레바이는 자연히 배제됐고, 아콰시아델과 연락할 사람이라거나, 내가 없을 때 지휘할 사람.
여러 가지를 고려하다 보니 하우저가 낙찰됐다는 소리다.
“편애입니다.”
“……대체 어디가?”
뭐, 이런 소소한 책사의 불만이 있긴 했지만.
나는 뺨을 긁적였다.
“진짜 복잡한 구조네. 길 잃기 쉽겠어.”
“야생동물도 많습니다.”
“응, 그러네.”
열대우림을 그리 오래 걷지 않았지만, 숲이 빡빡하기 그지없었다.
왔던 길도 금방 잊힐 만한 복잡함. 동시에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한데 뽐냈다.
‘급하지만 않았다면 구경하고 싶을 정도야.’
생각해 보면 생태학자가 꿈이었던 나는, 비록 최애는 해양 동물과 고래였지만.
언젠가 이렇게 울창한 밀림, 아마존 같은 곳을 꼭 가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에 본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다.
‘내가 지구를 꽤 오래 잊고 있었구나.’
새삼스러운 감각이 나를 덮쳤다. 씁쓸함이 느껴지기 전에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서 어디로 가면 돼?”
용 공작이 한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다.”
용 공작은 거침없이 길을 안내했다. 마치 최신형 내비게이션을 보는 기분이랄까.
심지어 아무리 봐도 길이 아닌 듯한 곳에서도 척척 길을 찾아서. 이 숲에 살았던 적이 있냐고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뭐, 아닌 건 알지만.’
물었더니 초대 용의 기억이 알고 있는 거란다.
“이런 곳에 무덤이 있다니, 혹시 용들 중에는 방랑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는 거야?”
“개체에 따라 다를 거다.”
“그 개체는 개개인? 아니면 너희도 종이 따로 있어?”
“종?”
“이를테면 고래라고 했을 때, 범고래라거나 여기 있는 혹등고래로 나뉘잖아?”
“그런 거라면…… 용도 나뉘기는 한다.”
“어떻게?”
“비늘 색깔로.”
나는 눈을 깜빡였다. 비늘? 애초에 수인으로 태어날 텐데 어디의 비늘 이야기지?
“우린 폭주하거나 흥분하면 척추나 등에 비늘이 나타난다. 그 비늘의 색에 따라 용들의 성정 차이가 난다고 들었다.”
“오, 그래? 그럼 그런 용들 중에 방랑을 좋아하는 성격도 있다는 거야?”
“아마도…….”
용 공작은 좋은 이야기꾼은 아니었지만,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했다.
하우저는 용 공작과의 대화에서 일절 끼어들지 않았다.
본래도 다른 수하와의 대화에 잘 끼던 성격은 아니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과묵한 애들이랑 오긴 했네.’
그러고 보니, 오늘 용 공작에게선 묘하게도 평소 들던 꺼림칙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에키온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마저…….
잠시 걸음이 늦춰졌다.
“도착했다.”
고개를 들면, 거대한 동굴이 보였다. 이 열대우림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묘한 힘이 느껴집니다.”
동굴에서는 익숙하고도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바로 3회차, 폭주한 용 공작을 맞이했을 때 느낌이다.
하우저도 비슷하게 느꼈는지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혹시 폭주한 용의 힘을 느낀 거야?”
“음, 그것도 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응?”
“가주님. 혹시, 저희 함께 원숭이들의 연구소를 습격했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다마다. 원숭이들은 황실 아랫놈들 중에서도 꽤나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우리로 치면 일각고래같이 발명에 치중된 특기를 가졌는데.
벌레 개발에서 볼 수 있듯 인체 실험도 서슴없이 하는 악질적인 놈들이었다.
“거기서 카이레타와 마마타와 함께 어떤 장치를 부쉈는데…… 그 장치가 부서지자마자 꼭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그가 언급한 놈들은 각각 가재와 대게 수인이었다. 그리운 이름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마마타는 호탕한 성격의 여장부였다. 게들을 이끌며, 필요할 때 괴력을 발휘하는 장군이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익숙한 얼굴이 떠오르는 동시에 그리움이 치솟았다.
“넌 언제 본 거야?”
“틈틈이 알아봤습니다.”
“왜?”
“언젠가, 가주님이 그리워하시면 알려 드리고 싶어서요.”
“…….”
나는 잠시 주변을 응시했다.
3회차에는 수하가 아주 많았다. 처음에는 나를 따르는 범고래 방계가 없어 마구 끌어들였던 것이.
차차 ‘약한 이라도 받아 준다’는 소문이 퍼져 유능한 수하들이 찾아올 때까지.
정신 차렸을 때는 수많은 이들이 나를 따르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주변이 늘 북적북적했다. 가주실은 대기실인지 연무장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수하들이 드나들었다.
매번 성가신 새끼들이라고 투덜거렸지만. 나도 그런 북적임이 좋았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아틀란에게 기억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벨루스가 이전 생을 기억한다고 했을 때도.
3회차가 특별히 생각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우저가 등장하고, 레바이가 비밀을 고백한 순간부터.
가끔 눈앞에 3회차 모든 수하가 살아 있고 북적이던 그때가 환상처럼 눈앞에 그려지곤 했다.
그 숫자가 꽤나 많았다.
‘그 애들은 모두 지금 살아 있을 텐데.’
왜 나는 자꾸 그때가 떠오르는 걸까.
“가주님……?”
고개를 돌리면, 나를 빤히 응시하는 하우저가 보였다.
곱슬거리는 머리 사이로 날카로운 눈매엔 집착을 기반으로 한 염려가 어려 있었다.
“아냐. 잠깐 그때가 떠올라서. 너도 참 지극정성이네. 정작 그놈들이랑 사이가 썩 좋지 않았으면서.”
“썩 좋지 않았던 것이지, 동료를 싫어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니, 나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
“어떤 사실은 죽은 뒤에 알 수 있더라고요. 아쉽게도 말입니다.”
“들어갈 건가?”
대화 사이로 용 공작이 불쑥 끼어들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또 3회차를 떠올렸다. 이번엔 좀 더 생생하게.
감상적인 성격은 3회차에서 독기 품은 세월 속에 모두 사라진 지 오래라.
지금도 감정에 빠지는 성격은 아니라 자부하는데.
동굴로 접어들자, 신기하게도 어둡지 않았다. 곳곳에 박혀 있는 보석 같은 것이 빛을 냈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자연조명인가?’
우리는 쭉 걷다가 동굴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
동굴 끝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 다만, 아주 오래된 유적처럼 낡거나 삭았다.
한때는 카펫 비슷했지만 지금은 삭아 가는 천을 보다가 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뼈가 보였다.
“……유골인가.”
사람의 뼈였다. 신기하게도 갈비뼈 쪽에 유달리 커다란 뼛조각이 보였는데.
마치 사람 뼈 사이에 공룡의 뼈가 섞인 것 같았다.
에키온은 용이 죽으면 뼛조각 하나가 저렇게 나온다며 평온하게 설명했다.
“저 뼈를 가져가는 게 좋겠다.”
“응? 다른 곳에 묻어 두려고?”
물줄기로 들어 올리니 꽤 묵직하다. 공룡의 뼈라고 한 건 과장이었지만, 꽤나 크고 무거웠다.
“아니, 저거. 용의 힘을 추출할 수 있을 거다.”
“음? 추출해서 어디 쓰는데?”
“시간의 힘으로 쓰거나, 혹은 무한한 동력 에너지가 될 수 있겠지.”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래? 완전 꿈같은 이야기네.”
뼛조각에 집중하게 된 건 무언가 떠올라서였다.
‘그럼 혹시 이런 걸 계속 수집해서 힘을 모으면, 내 회귀도 멈출 수 있을까?’
이외에도 거처를 쭉 둘러보았지만, 낡거나 부서진 집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선 커다란 뼛조각 하나를 제외하고 남은 뼈는 땅에 묻어 주었다.
수중 동물들은 시체를 물에 빠트리는 수장(水葬)을 진행하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살았던 곳에 묻히는 쪽을 좋아하지 않을까.
이후 동굴 밖에 나와 조금 쉬었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피곤하십니까?”
“응? 아니. 별로…….”
뼛조각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을 뿐. 피로는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 위로 커다란 손이 올라왔다.
“미간에 주름이 지셨습니다.”
“그랬나?”
“안마해 드릴까요?”
“…….”
고개를 들어 올리면 나를 내려다보는 하우저의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에.”
내가 대답하지 않자, 하우저의 손이 익숙한 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전 생에서는 가위바위보를 열 번을 이겨야 가능했던 일인데. 주변이 허전한 걸 이런 식으로 깨닫곤 합니다.”
“그렇지. 너희 가위바위보 하는 거 사실 너무 귀찮았어. 안마가 무에 중요하다고.”
“어떻게든 가주님께 예쁨을 받고 싶었던 거지요. 저희 모두 다.”
“…….”
“그리우십니까?”
고요한 숲속인데, 귓가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의 내가 행복하지 않느냐 한다면 그렇지 않다.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행복해서 미안하다.
나를 위해 죽은 모든 3회차 수하들에게.
“만약 그리우시다면. 그래서 제가 가주님께 그 시절을 돌려드릴 수 있다면 수락하시겠습니까?”
공기마저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누군가가 저벅 걸어왔다.
“기척이 느껴지는데.”
날 선 용 공작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