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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범고래 아기님-241화 (241/275)

제241화

용 공작의 목소리에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어서 더는 볼 수 없는 수하들을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우저의 목소리는 정말 오묘해서, 마치 내가 끄덕이기만 하면 3회차의 그 모든 놈들을 그날 그때 상태 그대로 데려오겠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호기심이 들었다.

무슨 의미인지, 단순히 4회차에 기억 없는 놈들 데려다 놓겠다는 것인지.

설마 수하들 하나하나 지난 생의 기억을 일깨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인지.

‘그런데 만약 나는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하면 쓰겠다고 할까?’

이전까지는 ‘아니다’였다. 하우저와 다시 마주하고, 놈에게 기억이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지금은 솔직히 모르겠어.’

하우저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이제는 대비해야 했다.

용 공작의 말처럼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집중한 탓에 느끼지 못한 기척이었다.

‘열다섯, 아니…… 스물?’

숫자가 꽤 되는데, 이 중 다섯 정도는 기세가 꽤 대단했다.

“이 정도면 황실 기사 급인데?”

돌아보니, 같은 생각인지 하우저가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익숙한 움직임이 느껴진다는 건, 황실도 왔다는 소리네.”

황태자가 직접 왔을까?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이내 정 반대편으로 머리를 돌렸다.

‘뭐야.’

당황스러움도 함께였다.

그도 그럴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기척이 갑자기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기척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과 동시에 손이 움직였다.

쏴아아아!

흘러나온 물이 우리를 반원형으로 감싸 안았고, 그 위로 거대한 불덩어리가 내려앉았다.

숲에서 불이라니, 이 미친놈들이!

숲이고 숲의 동물들이고. 나아가 이 숲을 터전으로 사는 수인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소리일 터.

상대가 어떤 놈들인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우저!”

내가 눈짓하자, 하우저는 알았다는 듯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놈만 살려 와.”

“……명령을 받듭니다.”

본래 전투에서 하우저는 전면에서 싸우는 놈이 아니었다.

물론 밸런스가 좋은 편이라 최전선에 서더라도 유능했겠으나, 그보다는.

전투에서 상대 뒤를 치거나, 빈틈을 노리는 역할. 총을 들었다면 저격수에 가까운 놈이었다.

‘내 눈을 속일 정도의 특기를 가진 놈이라…….’

머릿속으로 여러 육지 동물이 스쳐 지나갔다. 카멜레온으로 대표되는 위장 특기는, 다른 동물에게도 있었다.

곧이어 우리 앞으로 달려오던 놈들이 드러났다.

수풀을 헤치고 나타나는 동시에 물로 만들어진 창이 화살 비처럼 쏟아졌다.

“용 공작,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

“당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야. 저놈들은 이미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온 거야.”

용 공작은 품에 든 뼈를 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이걸 노리고 왔거나.”

“그래, 그쪽도 있겠네.”

상대편에서 누군가 창을 쳐 냈다. 내게 날아온 창은 다시 물줄기로 돌아갔다.

까만 로브를 쓴 놈들이다.

내가 발을 한번 움직이자, 놈들의 발밑에서 물줄기가 날카롭게 치솟았다.

물의 창이 바닥에 떨어지며 만들어진 웅덩이.

이는 이 바닥을 나의 영역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우우욱!

로브가 찢어지며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흙인형?’

황태자가 다루는 흙인형과 비슷했다. 땅의 힘으로 만든 인공 생명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꽤나 끔찍한 모습이었다.

……반은 사람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설마, 이 미친 XX가…….’

이들은 두려움이라곤 모르는 이들처럼 달려왔다. 내가 만든 창과 물줄기에 다치거나 말거나 오직 진격할 뿐이었다.

이와 동시에 뒤에서도 기척이 느껴졌다. 조금 전에 내가 놓쳤던 기척이었다.

돌아보면 비슷한 로브를 걸치고, 다양한 크기를 가진 수인들이었다.

“음? 예정과는 다른데?”

“사람이 있잖아?”

“무슨 상관이야. 쓸어버려.”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중 한 사람의 음성 정도는 익숙했다.

마침 익숙한 목소리의 사람이 휙 로브를 벗었다. 여성이었다.

‘하이에나.’

오래전 에키온을 구출하기 위해 용 공작이 갇힌 건물로 잠입했을 때. 그때 근처를 지키던 하이에나다.

수년 전과 다르게 더욱 강인해진 모습이었지만. 외양이 뇌리에 박힌 덕에 똑똑히 기억했다.

“아무래도 우리 목표가 저 손에 달린 것 같은데?”

“목표뿐이야? 멍청아, 저거 용 공작 아니냐고!”

놈들은 만담을 하는가 싶더니만, 개중 누군가가 이쪽으로 휙 달려왔다.

“어쨌거나 죽이면 된다는 거 아니야?”

달려오면서 로브를 휙 벗은 이는 회색 더벅머리를 가진 남자였다.

‘날랜 움직임, 이리인가?’

나무에서 뛰어들며 내뻗은 주먹은 꽤나 매서웠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주먹을 응시했다.

“그것참, 재밌는 말이네.”

내가 손을 휘젓는 동시에 바닥이 울렁 꺼지며 물이 차올랐다. 그 덕에 흙인형과 합쳐진 놈들이 풍덩 빠져들었다.

늪이다. 허벅지까지 빠진 탓에 한동안 벗어나지 못할 터.

“용 공작, 웅덩이에 빠진 놈들이 올라오면 쑤셔 넣어 버려!”

나는 몸을 반 바퀴 돌려 양다리를 축으로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앙!

놀라운 속도로 대응한 탓에 이리 수인과 내 맨주먹이 서로 부딪쳤다.

‘태엽?’

특이하게도 이놈의 팔 한쪽에는 마치 태엽이나 강철 장치로 보이는 것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찌푸림은 찰나였다.

거대한 덩치를 가졌음에도.

끼이이익! 으지지직!

나무를 부숴 가며 날아간 쪽은 이리였다.

하지만 나도 영 입맛이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뭐야, 이 힘?’

3회차에서 싸워 본 탓에 안다. 보통 이리들의 수준과는 달랐다.

오히려 황실 방계, 그러니까 방계 사자들이나 황실 최고위 기사들 수준의 힘이었다.

“와, 꼴사납게 날아간 것 좀 봐.”

“늑대 놈이 강해져 봤자인 거지, 뭐.”

“저기, 그렇다고 말하기엔…….”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던 이들 중 하나가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왜 아무도 모르는 거야? 저 머리, 범고래잖아……?”

그러자 아직 로브를 쓰고 있던 이들 중 호리호리한 체형의 수인이 박수를 쳤다.

“아, 맞다! 난 또 색깔 때문에 얼룩말인 줄 알았지?”

“그것참 재밌는 평가네.”

“?!”

호리호리한 체형의 수인은 대응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그대로 내 주먹에 얻어맞고 바닥에 떨어졌으니까.

나는 그대로 반 바퀴 돌아 다른 놈을 돌려 차 떨어트렸다. 그리고 다시 주먹을 뻗었을 때.

텁!

그대로 붙잡혔다. 하이에나 수인이었다.

“이런, 너무 무시하면 곤란하지. 예쁜 아가야?”

나는 생긋 웃었다.

“누구더러 아가래, 뒤지려고.”

잡힌 주먹에서 뻗어 나온 물줄기가 날카로운 톱날이 되어 그대로 휙 돌아갔다.

놀란 하이에나가 손을 떼었지만 허공에 붉은 핏줄기를 보인 뒤였다.

“크아아아악! 이놈은 뭐야!”

그리고 아래에서는 이리 수인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우저가 일을 제대로 하는 모양이었다.

돌아보면, 용 공작은 한 손으로 뼈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꽂은 채 물에서 올라오려는 흙인형과 합쳐진 수인을 꾹꾹 발로 누르고 있었다.

그러다 간신히 빠져나온 놈들은 주먹으로 꽁 때려 주는데, 어처구니없는 공격에 웃음만 나왔다.

“……용이 전투 전문은 아닌가 보네.”

나는 내게 날아온 주먹을 툭 가볍게 잡았다. 낭패한 표정의 하이에나가 보였다.

“이야, 이번엔 반대로네. 예쁜 언니?”

“……이익! 너구리!”

내게 잡혔던 하이에나 수인이 돌연 흰 꽃잎이 되어 사르르 흩어졌다.

나는 당황하는 대신 사선 위쪽을 보았다. 나뭇가지 위에는 하이에나 수인과 아마도 내 정체를 알아봤던 수인이 함께 있었다.

키가 아주 작은 수인이었다. 검은 눈동자와 얼룩덜룩한 색의 머리카락.

“힉, 피, 필요할 때만 나를 부르고……. 너무해!”

“닥치고 날 보조하기나 해.”

너구리 수인인 듯했다. 너구리 수인의 능력은 ‘전이(轉移)’.

지금처럼 상대를 이동시킬 수 있으니. 전투용은 아니더라도 꽤 성가신 능력이었다.

“너구리는 싸울 생각 없는 것 같은데 놔주지그래?”

“닥쳐. 물짐승 따위가 어딜.”

“너희의 그런 편견은 이제 지루할 지경이지.”

내 손엔 어느새 물로 만든 도끼가 들려 있었다. 나는 물줄기로 다른 나뭇가지를 잡아 휙휙 타잔처럼 움직였다.

‘아니, 이건 스파이더맨인가?’

어느 쪽이든, 나는 하이에나 뒤에 붙어 있는 너구리를 툭 차서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남은 하이에나가 당황하는 사이.

“어딜 보나. 이쪽인데.”

“뭐?”

그대로 도끼를 내리쳤다.

타아앙!

하이에나가 자신의 팔을 감싼 보호대로 내 도끼를 겨우 막았다.

‘막아?’

이리 못지않게 하이에나의 힘도 잘 안다. 이놈들은 이 공격을 막을 만한 힘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하이에나 가슴 쪽에서 이리 수인에게서 보았던 것과 같은 태엽 장치를 발견했다.

하이에나 수인이 분한 얼굴로 입을 끌어 올렸다.

“여기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래도 물고기들 중에선 네가 제일 대단하긴 한 모양이지?”

“이미 공포에 떠는 주제에, 입은 자유분방하네?”

“…….”

하이에나 수인이 일부러 힘을 빼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러고는 어디론가로 무언갈 던졌다.

“망할 범고래 X.”

그것도 용 공작이 있는 쪽으로.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콰아앙!

순식간에 벌어진 일. 적어도 이 뒤로 벌어진 일은 예상하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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