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콜록콜록!”
나는 헛기침을 토해 내며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 찌뿌둥하네. 몸을 살펴보았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몸이 더럽게 튼튼한 건 이럴 때 좋다니까.’
나는 마지막에 일어난 일을 떠올려보았다.
하이에나 수인이 용 공작 쪽으로 정체 모를 무언가를 던졌을 때.
불길함을 느꼈다.
익숙한 불길함. 그건 왜인지 3회차에서 용 공작의 폭주를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공포를 일으켰다.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물줄기 덕에 용 공작에게 닿기 전에 내가 먼저 도착했지만.
그 뒤로는 어둠이었다.
‘바닥이 꺼지는 감각은 있었는데.’
그 뒤로 하늘에서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떨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사방에서 그림자 줄기 같은 것이 뻗어 와 몸을 얽어맸다.
모르고 당했더라면 형편없이 죽었을 공격이었다.
‘후, 황태자 그놈 XX. 보통 준비를 한 게 아닌 모양인데.’
나를 향하는 공격에서 익숙한 살기를 느꼈다. 어떻게든, 무슨 방법을 써서든 이기고야 말겠다는 비열한 투지.
내가 그놈이 쓰는 땅의 힘에서 매번 느꼈던 감각이었다.
사실 그림자 줄기는 내 물줄기로 어떻게든 쳐 냈기에, 효과적인 공격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암석이었지만.
그것도 물의 힘과 튼튼한 몸 덕에 어찌저찌 잘 버텼다.
‘용 공작은?’
내가 앞서서 보호했으니, 분명 무사했을 텐데. 어째서일까, 보이지 않았다.
‘아, 마지막에…….’
마지막 공격을 막기 위해 용 공작을 뒤로 밀어냈던 걸 떠올렸다.
나는 작게 기침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 세게 밀지 않았을 거라, 근처에 있을 텐데.
‘저건 대체 무슨 원리인 거야?’
거대한 돔에 갇힌 것처럼 아직도 주변이 어둡기만 했다.
땅의 힘이 느껴지긴 한데, 처음 보는 형태라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하하, 너도 회귀자라 이거지.’
사방에서 느껴지는 땅의 힘에선 이전 생처럼 패배하지 않겠다는 집념이 담겨 있었다.
호승심이 일었다.
‘게다가 여기선 기척도 잘 느껴지지 않아. 이것도 놈이 노린 건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무언가 내 허리를 파고들었다.
놀랐지만 쳐 내지 않은 건 익숙한 사람이어서였다.
“용 공작?”
커다란 몸이 나를 덮었다. 나는 별안간 안긴 채로 눈을 깜빡였다.
무사한 모양이네.
머리가 용 공작 가슴에 닿아 있었다. 새삼 우리가 이 정도 체격 차가 있었구나 느끼는 한편.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남자의 가슴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런, 많이 놀랐지?”
다정한 내 음색에 남자가 흠칫하더니, 이내 어깨로 툭 머리가 떨어졌다.
“……칼립소.”
귀 바로 옆에서 낮지만 청아한 음색이 흘러들어 온 탓에 잠시 멈칫했다.
가는 실처럼 늘어지는 목소리가 절박했고. 또…….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유혹하는 것처럼 꽤 아찔했기에.
“이젠 괜찮아. 지금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계속 갇혀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죽지 마, 칼립소.”
“……방법을, 그래. 방법을 찾아볼게. 그러니까.”
“……내 앞에서 죽지 않기로 했잖아.”
그 순간 나는 모든 행동과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내가 이 남자에게 그 말을 했던 건.
아니, 에키온에게 했던 건 단둘만 있던 곳에서였으니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혀로 축였다. 왜 초조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에키온?”
내가 네 이름을 부르는 걸 망설일 줄이야.
“너야?”
분명 기억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생각해 보면 기억을 잃은 남자를 보며 계속해서 타인처럼 느껴지던 이질감과 불쾌감이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 느낌이 사라졌다.
그저 내가 불쾌감에 익숙해진 거라 생각했다.
“너 기억이 돌아온 거야?”
망설이듯 흘러나온 질문에 에키온은 답이 없었다.
늘 침묵은 긍정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순간 입술을 깨물었고, 동시에 부아가 치밀었다.
“묻고 있잖아, 이 시키야!”
손이 먼저 나가 버린 건, 그러니까. 음. 어쩔 수 없었달까.
뭔가 손에 잡히는 듯하는데, 뚜렷하게 대답을 안 해 주니 답답하기도 하고.
울분을 느끼기도 했고.
퍽!
적잖이 큰 타격음이 느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헉, 에키온. 괜찮아?”
“…….”
“……살아 있는 거지?”
왜 하필 때려도 옆구리람. 급소를 피해서 때릴 수도 있는데.
이놈의 본능이란. 나는 정신 차리고 황급히 에키온을 떼어 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에키온의 팔과 머리가 파고들었다. 목 바로 옆에서 숨결이 느껴졌다.
“……미안해, 칼립소. 너무 보고 싶었어.”
그 말에 떼어 내려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한 번 더 분노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이것마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에키온의 등에 조심스럽게 손을 둘렀다.
“너 원망했어.”
“…….”
“약속 안 지켰잖아. 내게 성장을 보여 준다면서.”
네가 사라지면 어떡해.
커다란 등이 흔들렸다. 큰 등에 손을 올린 채 나 또한 잠시 침묵했다.
“기억을 잃었을 때, 넌 어디 있었어?”
“……갇혀 있었어.”
“…….”
“……초대 용의 기억이 칼립소랑은 더는 있으면 안 된다고,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이질감과 불쾌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 ‘초대 용’의 기억 어쩌고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건가?
“그래서?”
“싸웠어.”
“…….”
“이겼고, 잡아먹었어.”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나는 가만히 끄덕였다.
‘아, 그래서 불쾌감도 사라진 건가?’
할 이야기를 차근차근 정리하던 중에 에키온이 살짝 뒤척였다.
“그랬더니…… 더는 내가 아닌 내가 있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나지만, 내가 아니야. 그래서 칼립소가 좋아하지 않을까 봐…….”
“초대 용의 기억이라고 하니까, 남의 기억을 가져서 네 본질이 뭐 훼손되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던 거고?”
“…….”
다시 침묵. 정답인 듯했다.
“도대체 뭐가 무서웠던 건데. 네가 어떤 모습을 하든 너일 텐데.”
“…….”
“너는 이번 생에서 내가 죽고 다음 회차에서 다시 널 찾아가면, 그땐 다른 사람이라 생각할 거야?”
에키온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런 거야, 에키온.”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가 회귀하는 한, 앞으로 날 기억하는 건 너뿐이겠지. 그런 네가 내 앞에서 사라졌던 거라고.”
“…….”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고요한 분노는 때로 사나운 분노보다 큰 힘을 갖는다.
나는 주변에서 울렁이는 물의 힘을 꾹 눌렀다.
“하지만 됐어. 돌아왔으니까. 이젠 더는…….”
“좋아해.”
“…….”
“네가 다음 생을 살아도, 다른 세계로 가 버리더라도. 널 쫓을게.”
흠칫 내 등이 떨렸다.
“그만큼 너를 좋아해.”
“…….”
에키온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네가 없으면 세계가 멸망해도 상관없다고 해서, 용의 기억이 날 나무랐어.”
“…….”
“사실 네가 없는 세계는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
나는 눈을 깜빡였다.
성장한 이 애의 눈을 이제야 진정 마주한 느낌이었다.
“……넌 생각보다 더 깜빡이가 없구나. 아니, 이건 원래 그랬나?”
이 어둠 속에서도 홀로 요요히 빛이 나는 듯 예쁜 황금색 눈동자였다.
내가 지독히도 싫어하고 증오했던 사자의 것과는 전혀 다른 찬란한 색.
“좋아해.”
“……잠깐 진정하겠어?”
“너무 좋아해.”
“…….”
살짝 속눈썹이 드리운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도 모르게 흠칫하여 뒤로 물러났지만.
반걸음, 물러난 만큼 발이 다가왔다.
뿌리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좋아해, 칼립소.”
“……그래, 꿈에도 네 고백이 나올 만큼 엄청 들은 것 같네. 알았으니까.”
“반려가 되고 싶어.”
“잠깐만, 잠깐만.”
적응할 시간을 좀 주지 않겠니, 용용아? 나 이제 막 네가 기억이 돌아온 걸 알았다고!
‘급발진도 이렇게 하면 사고 나, 사고 난다고!’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고가 난 건 내 머릿속 같았다.
애정이 듬뿍 담기다 못해 흘러나올 것 같은 시선이 묵직해, 생각을 방해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볼 것 같다는, 긴장감과 초조함을 불러일으켰다.
애절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얼굴에 일단, 애부터 달래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몹쓸 생각부터 들었으니까.
안 되겠다 싶어 에키온의 입을 가로막았다. 이제는 조용하겠지, 싶을 때.
에키온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더욱 가까워졌다.
시원한 바람 내음,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청량한 물의 냄새가 났다.
이것이 에키온의 체향이란 걸 알아차리기도 잠시.
에키온의 입을 가렸던 손이 고스란히 내 입술에 닿았다.
우린 내 손바닥을 가운데 둔 채 입을 맞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