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절대로 죽을 수 없다 (1)
섬서성 진양현의 오래된 전각.
입구에는 의화당(醫化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이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석두야, 석두 이놈 냉큼 나와보아라!”
전각 안에서 흰 두건을 동여맨 중년의 의원이 뛰어나왔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명절인데 여기서 궁상맞게 뭐 하고 있어? 그러게 빨리 짝을 찾으라니까.”
“하하. 그럼 중매라도 한 번 시켜주시지요.”
전각으로 들어서는 노인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 시집 못 간 처자가 한 명 있어.”
“역시 제 생각해주시는 분은 어르신밖에 없다니까요. 누구입니까?”
노인의 얼굴에 장난기가 미세하게 서렸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내 친구. 아직 한 명이 살아있거든.”
의원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휴, 어르신도 참. 저희 할머니 같은 분을 어떻게 소개받아요?”
노인은 씩 웃으며, 들고 있던 보자기를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실내에 진동했다.
“이건 뭡니까?”
“명절에 불쌍하게 혼자 있을 네놈 생각나서 가져왔다. 며늘아기들한테 부탁해서 이것저것 챙겨 넣었어.”
의원은 감동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자기를 응시했다.
“뭐 이런 걸 다……. 잘 먹겠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몸은 좀 어떠세요?”
“어떻긴 뭐가 어때. 곧 숨이 넘어갈 거 같지. 얼마나 살 수 있겠어?”
의원은 소매를 걷고 노인의 이마 부근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의 안색이 몹시 어두워졌다.
“혈맥이 더 좁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종양(腫瘍)이 커진 것 같아요. 이 정도라면 일반인은 이미…….”
“이미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로 들리는군. 괜찮아, 더는 미련 없으니까.”
의원은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중간에 정신을 잃은 적은 없었는지요?”
“아직까진 없었어. 가끔 어지럽긴 해.”
찻주전자를 움켜쥔 의원은 빈 찻잔을 채워 노인에게 내밀었다.
“어르신의 충만한 내기(內氣)가 혈맥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꾸준히 관리하십시오.”
“뒷방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퇴물이 좀 더 살아보겠다고 바둥대서 뭐해.”
“휴. 그래도 손녀를 보면 행복하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장수하셔서 손녀 혼인하는 것까진 지켜보셔야지요.”
노인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손녀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하긴, 그것도 그래. 내가 우리 막내아들의 늦둥이 보는 맛에 산다니까. 예쁘기도 하지만, 우리 가문의 미래를 책임질 아주 특별한 아이야.”
“타고난 근골과 체질을 보면 분명 크게 될 아이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어르신부터 좀 걱정하시지요.”
“사실 나도 알고 있어.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알아.”
의원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무거운 음성을 내뱉었다.
“벌써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무림인은 의학의 상식을 뛰어넘을 만큼 수명이 길었던 전례가 많다고요. 수련은 꾸준히 하고 계시죠?”
“그냥 운기조식만 하고 있어. 검을 놓은 지는 한 삼십 년쯤 된 것 같군.”
“그래도 신체 단련은 꾸준히 하셔야 합니다, 어르신.”
노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찻잔을 단번에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련이라……. 지금 와서 그것을 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아. 여하간 차 잘 마셨네.”
“잠시만요!”
의원은 나가려는 노인에게 약재 한 첩을 건네었다.
“어차피 약으로는 안 된다며? 뭘 이런 걸 챙겨줘.”
“그냥 별거 아닙니다. 혈액순환과 소화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억지로 손에 쥐여주니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노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등을 돌렸다.
“내일은 궁상떨지 말고, 우리 유가장으로 찾아와. 식사나 같이하지.”
“하핫. 생각해보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곳은 그가 일 갑자 이상의 세월을 살아온 곳이다.
늘어선 매화나무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이제는…… 정리를 해야겠군.’
곳곳의 풍경을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담아두고 있었다. 삶의 끝이 다가왔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가장(劉家莊).
자신이 평생을 노력해 일구어낸 가문이었다.
멀찍이 보이는 담벼락을 보고 있노라니 회한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정문의 주위로 수십여 명의 주민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고 있지 않은가. 소곤거리는 그들의 대화는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귓가를 울려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웬일이야……. 어서 관아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
“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한 줄기 불길한 느낌이 노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짙은 혈향(血香).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더욱 강렬해졌다.
노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뿌드득-!
오랜만에 뛰자 전신의 뼈마디가 비명을 질러댔다.
“으윽!”
멈출 수가 없었다.
정문으로 다가선 노인은 인파를 비집고 들어갔다.
“잠시 지나갑시다.”
그를 발견한 주민들이 놀란 얼굴로 비켜주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안쓰럽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어떡해……. 가주 어르신이 살아있었어.”
“가문의 제일 연장자만 빼고 다 죽은 거야?”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그 순간 노인의 손에 들려 있던 약재가 ‘툭’하고 떨어져 내렸다.
장원의 앞마당에 무수히 널린 참혹한 시신들. 삼십여 구에 이르는 시신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유가장의 식솔들이 분명했다. 평생을 함께해온 총관과 식객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
노인은 한 걸음씩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도무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대광아……. 청아야……. 진 총관…….”
보이는 식솔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끄흐흑.”
무릎을 꿇은 노인은 한참을 흐느꼈다.
입구에서 지켜보던 주민들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소곤거렸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게 가장 큰 불효라잖아. 근데 어르신만 빼고 전부 다 죽었어……. 어찌 이런 일이.”
“유가장은 원수도 없었잖아? 도대체 누가 그런 거야?”
“나라고 어찌 알겠나. 그것보다 우선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노인은 근처에 굴러다니는 한 자루의 검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검 끝을 자신의 목젖에 가져다 대었다.
슬픔이 가득 들어찬 비장한 눈빛. 그리고 행동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안, 안 돼요!”
“어르신, 그렇게 죽으면 복수는 누가 합니까?”
“일단 살아야 다음도 있는 겁니다!”
이미 노인은 삶의 의지가 모두 사라진 듯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눈빛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했다.
모두가 그를 말릴 수 없음을 직감했다.
검 끝이 목젖을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조금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육신의 통증이 마음의 고통에 파묻혔기 때문이었다.
한 방울의 피가 검날을 타고 흘러내릴 찰나였다.
돌연 그의 행동이 정지했다. 단지 귀가 한 번 쫑긋했을 뿐이었다.
“……?”
검을 회수한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동시에 정문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주민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응애.”
대청 옆의 작은 마당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간 노인은 바닥에 깔려있던 짚단을 걷어냈다. 그러자 땅속에 파묻힌 항아리가 하나 드러났다.
뚜껑을 열어보니 담요에 둘러싸인 아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노인의 뺨을 타고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장하다, 애미야. 정말 큰일을 했어…….”
설마 이곳에 손녀를 숨겨놓았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핏줄이 모두 죽는 것은 겨우 면하게 된 상황이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다시 깊은 생기가 감돌았다.
조금 전과는 달리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굳은 의지가 눈빛에 서려 있었다.
‘죽지 않을 것이다.’
노인은 아기를 왼손에 안고 대청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올 때는 손에 창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유가장의 가보인 화룡신창(火龍神槍)이었다.
“우리 유가장은 원한 살 만한 일을 한 적이 없거늘, 도대체 어느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오!”
몰려든 구경꾼 중에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좀 더 차분해진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관통된 시신의 상흔들. 무예를 익힌 식솔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식솔들을 묻어주어야 하나…… 그것보다 설이의 안전이 우선이다.’
현재로서는 흉수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목적이 무엇이었든, 유가장의 멸문지화를 원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다시 돌아올 우려가 있었다. 긴 세월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확실했다.
“나 유가장의 가주 유진산! 여러분들을 증인으로 하늘에 맹세하겠소. 우리 가문을 이렇게 만든 놈들이 대가를 치르기 전에는 절대 눈을 감지 않을 것이오!”
말을 마친 유진산은 등을 돌렸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은 장창 한 자루와 아기가 전부였다.
뒷문을 향해 걷던 그는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묻어주지 못하는 자식들의 시신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가슴에 못이 박히고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지금은 생존이 가장 우선이었다.
그의 발걸음이 막 장원의 뒷문을 빠져나온 찰나였다.
돌연 담벼락 아래에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쏜살같이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기습임을 깨달았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야 한다.’
다가오는 것은 보였지만, 육신이 의지대로 움직여줄지 의문이었다.
유진산의 상체가 뒤로 슬쩍 젖혀졌다.
파앙-!
검날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그의 콧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연격.
‘어림없다!’
유진산은 상체만을 움직여가며 공격을 비껴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경험과 압도적인 내공뿐이었다.
옆구리를 스쳐 지나간 검이 회수되는 찰나. 그는 재빨리 상대를 향해 다가갔다.
마음 같아선 무릎으로 인중을 날리고 싶었으나, 신체가 따라와 줄지 의문이었다.
아래에서 차고 오르는 창 자루가 상대의 턱 밑을 가격했다.
콰직-!
“큭!”
유진산은 다시 거리를 벌리고는 상대를 살펴보았다.
복면을 쓰고 있었기에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실마리는 그의 목을 타고 오르는 용 문신이 전부였다.
우선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분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겠구나. 다른 놈들이 추가로 합류하면 퇴로를 확보할 수 없을 터.’
상대가 비틀거리는 사이 유진산은 재빨리 등을 돌려 내달렸다.
구름처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경공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 만에 펼치는 경공술은 신체에 무리를 주는 게 당연했다.
우드득-!
허리를 삐끗했는지 유진산의 얼굴이 구겨졌다.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신음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고, 허리야!”
마음 같아선 누워서 쉬고 싶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을 기습했던 복면인이 쫓아오고 있었다.
놈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너는 애비도 없느냐!”
전성기 같았으면 일격에 분쇄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험을 강행할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손녀의 안위뿐이었다.
복면인은 대답 대신 뒤에서 암기를 날렸다.
그것은 유진산의 감각에 낱낱이 전달되고 있었다.
‘어딜!’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상체를 비틀었다.
뿌드득-!
“크윽!”
어깨의 뼈마디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그 순간 날카로운 비도의 날이 앞가슴을 스치며 지나쳤다.
계속해서 좁혀지는 간격. 이대로라면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도망칠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일격에 처치하지 못하면 당하는 것은 내가 될 터.’
경공을 멈춘 유진산은 기수식을 취하며 장창을 비틀어 쥐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아가. 할배가 지켜주마.”
마치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아기가 까르륵 웃었다.
복면인과의 거리는 십여 장.
마주 선 유진산은 한 손으로 움켜쥔 창을 어깨 위로 잡아당겼다.
거리가 오 장 이내로 좁혀지자 창끝이 밝은 빛을 머금었다.
서늘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이것은 분명 창기(槍氣)였다.
그리고 거리가 삼장 이내로 좁혀진 순간, 노인의 입에서 사자후가 뿜어져 나왔다.
“끄아아악!!!”
외마디 고성과 함께 중후한 내공을 머금은 음파가 복면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코앞에서 그것을 맞은 그는 신형을 휘청였다.
유진산은 그때를 노리지 않고 필살의 일격을 내질렀다.
쏴아아앙-!
한 줄기 빛살이 공기를 가르며 직선으로 나아갔다.
곧이어 창끝이 상대의 심장을 관통하여 깊숙이 쑤셔박히기 시작했다.
푸우욱-!
“쿨럭!”
복면에 감춰진 입에서 핏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한 발자국을 다가간 유진산은 그의 얼굴을 향해 따귀를 날렸다.
철썩-!
“이런, 싸가지 없는 놈.”
그의 복면이 벗겨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역시나 모르는 얼굴이었다.
죽어가고 있는 그에게 더는 알아낼 것이 없을 듯했다.
창 자루를 움켜쥔 유진산은 발로 그를 걷어찼다.
푸욱-!
창을 회수한 이상 더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유진산은 뒤도 안 돌아보고 죽기 살기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