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배무사와 지존 손녀-7화 (7/238)

7화 몰라뵈었습니다, 어르신 (1)

처음엔 두 마리가 전부였다.

열흘이 지난 지금은 닭이 여섯 마리가 되었으며, 오리도 두 마리나 있었다.

최근에는 산적들도 낌새를 느꼈는지, 경계를 강화하고 있어서 더 훔쳐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허허허. 이제 걱정 없겠구나.”

유진산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는 대나무를 엮어 닭장을 확장하고 있었다. 입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하배!”

유설이 아장아장 걸어오며 손가락을 내뻗었다.

땅콩 같은 손가락이 한 마리의 닭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 알았다. 이놈으로 하자꾸나.”

유진산은 망설임 없이 지목당한 닭의 날갯죽지를 움켜쥐었다.

부엌으로 향하는 그의 뒤를 손녀 유설이 졸졸 따라갔다. 가끔 넘어지긴 했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제법 잘 걸어 다니고 있었다.

타앙-!

닭의 수급을 자르고는 칼집을 내어 핏물을 빼내었다. 그러고는 닭의 털을 뽑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고기였기에 그의 마음도 몹시 두근거렸다.

끓는 물에 닭을 통째로 집어넣고, 산에서 미리 캐내 온 약초 따위들을 투척했다.

“먹고 싶으면 따라 해 보아라. 배~고~파.”

“배오아.”

아직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시키는 대로 줄곧 잘 따라 하고 있었다.

닭을 푹 고면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자 기막힌 냄새가 부엌을 진동시켰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음식이 완성되었다.

유진산과 유설이 마주 보고 쪼그려 앉았다. 부엌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자, 먹어보자.”

닭고기를 잘게 잘라서 들이미니 유설의 입이 자동으로 벌어졌다.

아직 치아가 전부 자라지는 않았지만, 오물오물하면서 잘 먹었다.

맛있는지 방긋 웃으며 양손을 연신 부딪쳤다.

“허허. 그래, 많이 먹거라.”

유진산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닭고기를 입안에 한가득 넣어 빵빵해진 볼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유설이는 삼키지도 않은 채 계속 입을 벌렸으나 넣을 공간이 없었다.

이제는 자신도 한입을 먹어봐야 했다. 뱃속이 꼬르륵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으니.

닭다리를 움켜쥐니 군침이 절로 흘러나왔다.

막 맛을 보려던 찰나였다.

쨍그랑-!

도기류(陶器類)가 깨지는 소리였다.

반경 이십여 장에 실로 연결하여 묶어 얹어놓았던 도기가 분명했다.

누군가가 영역을 침범하여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것이다.

‘이놈들이 또…….’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예상은 했지만,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순간에 찾아오다니.

“할아버지 금방 다녀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라.”

유설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거렸다. 울기 전에 서둘러 다녀와야 했다.

뛰쳐나가는 그의 손에는 아직도 닭다리가 들려 있었다.

역시나 멀지 않은 곳에 십여 명의 산적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넘어오지 말라고 경고했거늘, 기어코 피를 보아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산적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비웃음을 머금었다.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부채주님, 저 노인네입니다.”

집채만 한 덩치를 가진 산적이 앞으로 나섰다.

덥수룩한 수염에 험악한 얼굴. 더군다나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산적의 풍채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외모였다.

그는 기선 제압을 하려는 듯 인상을 구기며 거칠게 침을 뱉었다.

“캬악, 퉤! 흑산채의 본산에 영역을 표시한 것도 모자라, 우리 애들을 밟아놨겠다?”

유진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펴보았다.

부채주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다른 산적들과는 달랐다.

전문적으로 무공을 익힌 흔적이 보였으며, 은연중 자신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유진산을 긴장하게 할 수가 없었다.

“고 녀석 참, 무식하게도 생겼구나. 시간이 없으니, 어서 들어오너라.”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부채주는 쉽사리 공격을 개시하지 못했다. 유진산의 기세가 그를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배가 너무 고팠던 유진산은 손에 쥐고 있던 닭다리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맛이 제법 괜찮구나. 네 놈도 한번 먹어보아라.”

노인이 던진 닭다리가 부채주의 우측 어깨를 향했다.

닭 뼈에 담겨 있는 중후한 내기. 그것을 눈치챈 부채주는 재빨리 상체를 좌측으로 기울였다.

역시나 계산대로 움직이는 회피 동작이었다. 그리고 유진산은 이미 그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부채주가 기습을 눈치챘을 땐 노인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만큼 쏜살같은 속도였다.

퍼억-!

“크윽!”

가볍게 친 듯했지만, 목뼈가 꺾일 듯이 고개가 휙 돌아갔다.

터진 입술과 주르륵 흘러내리는 코피. 그것을 지켜보던 산적들은 경악에 휩싸였다.

유진산은 산적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눈이 뒤집힌 부채주는 어느새 자신에게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쐐에에엑-!

그대로 놔둔다면 자신의 정수리가 두 쪽으로 갈라질 운명이었다.

유진산의 왼손이 마주 움직이며, 다가오던 도낏자루를 움켜쥐었다. 동시에 오른쪽 손바닥이 솟구쳐 오르며 상대의 턱 밑을 향했다.

유가건곤장(劉家乾坤掌) 일초식 일파무흔(一破無痕).

콰앙-!

태산같이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통나무 같은 무릎이 지면에 턱하고 부딪쳤다.

기절했는지 두 눈에는 초점이 잡혀있지 않았다.

“영역을 침범한 각오는 되어 있겠지?”

유진산이 다른 산적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긴장하면서도 인원수를 믿고 있는 듯했다.

“……거, 겁먹지 마! 고작 미친 노인네 한 명일 뿐이다!”

“모두 한 번에 덮쳐!”

산적들과 유진산의 신형이 맞물리며 소용돌이쳤다.

부엌에서 손녀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시간을 오래 끌 수가 없었다.

그가 전력을 다하자 산적들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퍼억-!

“크악!”

둔탁한 소리가 한 번씩 터져 나올 때마다, 산적들이 한 명씩 떨어져 나갔다.

기껏해야 삼류에 불과한 수준들이었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원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유진산의 앞에서 산적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반각도 지나지 않아 어느덧 한 명의 산적만 남아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그는 싸울 의지를 포기한 듯했다.

유진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는 미친 노인네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네놈은 얼마 전에 찾아왔던 녀석이군.”

이미 호되게 혼난 전력이 있던 산적이었다. 그가 길을 안내한 모양이었다.

“제, 제가 말한 게 아닙니다. 저는 단지 안내만 했을 뿐이라고요.”

유진산이 뭐라고 반박하려고 할 찰나였다.

돌연 그의 양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크윽!”

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 하필이면 이럴 때…….’

뇌공환의 발작이 시작된 것이었다.

홀로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산적은 어리둥절했다. 팔팔하던 노인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다니. 급기야 비명까지 지르는 것이 아닌가.

“끄, 끄아아악!”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절호의 기회였다.

산적의 발이 유진산의 복부를 쉴 새 없이 걷어찼다.

퍼억-! 빠악-!

“뒈져!”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던 노인은 새우처럼 웅크린 채 계속해서 바둥댔다.

산적의 발길질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뇌공환의 고통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그러나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부엌에 혼자 있을 손녀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설상가상 쓰러졌던 산적들이 하나둘씩 다시 일어서며 합류했다.

“감히 우리 흑산도를 능멸해?”

“밟아 죽여!”

퍼퍽-! 퍼퍼퍽-!

“끄으으악!”

이미 유진산은 항거불능의 상태였다.

그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품속에서 잎사귀 하나를 꺼내고 있었다. 뇌공환의 통증을 경감시켜주는 금엽초였다.

그때 누군가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모두 가만히 있어 봐!”

유진산의 손에서 그것을 낚아챈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뭐야? 금엽초까지 손을 대고 있던 거야?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구만.”

산에서 자라는 이 희귀한 약초는 신경을 마비시키고, 중독성이 강해 나라에서 복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금엽초를 빼앗은 산적은 휙 던져버리며 물었다.

“어떻게 해? 이대로 죽여?”

그 순간 기절해있던 부채주가 겨우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산채로 데려간다.”

부채주의 손날이 유진산의 목 뒤를 강타했다.

뻐억-!

두 눈이 풀린 유진산은 그대로 기절하며 풀썩 쓰러지고야 말았다.

* * *

흑산도의 채주는 호피 의자에 앉아 깍지를 끼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 보였다.

“네가…… 고작 일합에 당했다고?”

“무림의 은거고수였습니다, 형님.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우리가 전멸했을 것입니다.”

부채주가 누구인가. 흑산도의 이인자가 반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당했다고 한다. 듣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실수 한 것 같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무당파의 도사를 죽였으니, 곧 있으면 보복이 오겠지. 우리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누구라도 좋으니 지원군이 필요하다.”

“애초에 그 노인네가 우릴 도와줄 이유도 없습니다.”

채주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같은 산에 들어와 은거 중인 이웃이 그 정도로 고수인 줄 어찌 예상했겠는가.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지. 내가 직접 만나봐야겠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온 것 같습니다.”

“왜?”

“……조금 전에 애들이 노인을 개 패듯이 때려서 묶어놓았습니다. 풀어주는 순간 우릴 모두 죽이려 들지도 모릅니다.”

채주는 머리가 지끈 아프다는 듯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지극 정성으로 모셔도 도와줄까 말까인데 패악질을 해놨으니, 스스로 복을 걷어찬 셈이었다.

그러나 밑져야 본전이 아니겠는가.

“일단 안내해.”

* * *

눈을 뜬 유진산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부엌에 혼자 있을 손녀를 생각하니 무척이나 다급해졌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 우리 아가…….”

자신은 어딘가 철창 안에 갇힌 신세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두 손을 칭칭 감은 쇠사슬까지. 최악의 상황이었다.

마침 산적 한 명이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보시게! 내가 이곳에 온 지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가?”

“깨어나셨네? 한 반 시진쯤 되었수다.”

“어서 나 좀 내보내 주시게! 지금 빨리 가봐야 할 곳이 있네!”

“보내줄 거면 잡아 오지도 않았겠지? 곱게 죽고 싶으면, 그냥 닥치고 앉아 계시오.”

유진산은 양손에 힘을 주어봤지만,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사슬이 아닌 듯했다.

‘이걸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두꺼운 쇠창살은 도구를 사용해 기(氣)를 발출해야만 자를 수 있을 듯 보였다.

그러나 주위에 보이는 것은 오직 지푸라기뿐이었다.

그가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찰나였다.

전각의 내부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끼이이익-!

표범같이 날렵한 인상을 소유한 중년인. 흑산도의 채주였다. 뒤에는 험악한 인상의 부채주가 양손을 모으고 공손히 기립하고 있었다.

“채, 채주님이 여긴 무슨 일로…….”

채주는 다짜고짜 그의 뺨부터 후려쳤다.

쫘악-!

“야 이 새끼야, 너는 애비도 없어? 어르신을 이렇게 가둬놓는 게 말이 돼?”

“……예?”

보초를 서고 있던 산적은 억울했다. 자신이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 흑산도가 언제부터 이렇게 인의(人義)도 모르는 짐승들이었어? 여기 어르신 때린 놈들 전부 다 잡아 와! 이놈들을 당장에 그냥…….”

한참을 씩씩대던 채주는 표정을 바꾸고 유진산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정말 죄송합니다. 양주산에 이웃 어른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미리 찾아가 인사를 드렸을 텐데, 우리 아이들이 요즘 예민하여 실수를 저지른 모양입니다.”

“알았으니, 일단 이것부터 풀어주시게.”

유진산은 일단 거처로 돌아가는 게 가장 시급했다.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채주의 눈빛에는 은연중 불안함이 남아있었다.

부채주의 말대로 한눈에 보기에도 감당 못 할 무림고수가 확실했다. 안광에서 은은히 풍기는 예기는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무심코 풀어주었다가 자신들에게 손을 쓴다면 방도가 없을 터. 우선 문만 열어주고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다.

“예,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우선 문부터 열어드리겠습니다. 손목의 사슬은 열쇠를 가지러 갔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둘러 주시게.”

채주는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뇌옥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부디 노기를 거두어 주십시오.”

철컥-!

유진산을 구속했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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