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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65화 (65/238)

65화 음괴의 각성 (2)

지금까지와는 다른 움직임. 유설의 속도는 마치 번쩍거리는 번갯불과도 같았다.

쩌엉-!

요란한 굉음과 함께 모용성의 신형이 주르륵 밀려 나갔다. 아무도 그가 공격을 받는 장면을 제대로 본 이가 없었다.

“큭!”

그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하늘에서 한 줄기 벼락이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동시에 솟구쳐 오르는 모용성의 검 날.

콰앙-!!!

밝은 빛이 번뜩이며, 모용성의 발밑으로 기(氣)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움푹 꺼진 지면으로 그의 발이 한 치나 파고들어 있었다.

‘뭐, 이렇게 무식한 힘이…….’

처음으로 겪어보는 무지막지한 괴력. 그러나 그에게는 당황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살풍창의 위력은 지금부터였으니까.

유설의 공격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머리 위의 공격을 방어할 때쯤 이미 옆구리를 후려치고 있었고, 상단의 공격을 막아내면 하단에서 또 다른 공격이 들어왔다.

수백여 자루의 죽봉이 쉴 틈 없이 모용성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제천대성이 세상에 현신하여 여의봉을 휘두르는 듯했다. 살풍창을 펼치는 유설의 공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쩌억-! 쩌적-!! 쩌저적-!!!

한번 수세에 몰린 모용성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살풍창은 삼십육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변화무쌍하고, 물 흐르듯 끊임없이 연계된다.

가장 무서운 점은 연계가 계속될수록 위력이 점차 중첩된다는 것이다.

바위를 부술 정도로 강인한 일격. 매 공격에는 태산을 무너트릴 만큼 무지막지한 파괴력이 서려 있었다.

모용성을 몰아붙이는 음괴의 모습에 정파의 무사들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이럴 수가…….”

“음괴가 저렇게 강했다고?”

“모용대협을 저렇게까지…….”

그들과는 반대로 다 죽어가던 호현의 무사들은 두 주먹을 움켜쥔 채 환희에 휩싸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할 수 있습니다, 음괴 대협!”

“설아, 힘내라!”

당사자인 모용성은 죽을 맛이었다. 주변의 반응은 신경조차 쓸 정신이 없었다.

폭풍처럼 몰아쳐 오는 공격. 살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카캉-! 카카카캉-!!!

본디 어떠한 무공이든 일정 시점에서 초식의 연계를 끝낸 이후 다시 호흡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는 살풍창의 연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반격을 가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음괴의 공격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빠르고, 매서워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공격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죽봉과 검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이제는 무엇인가가 갈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카칵-! 카카카칵-!!!

반격은커녕 막기에도 급급했다.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주위의 이상기류를 감지하고는 절망에 빠지고야 말았다.

‘……뭐지?’

자신의 주위로 칼날처럼 날카로운 돌풍이 생성되고 있었다.

운신의 폭이 점차 좁아지는 모용성. 등골이 서늘해진 그는 위기를 직감하고 이를 악다물었다.

그리고 그의 직감은 빗나가질 않았다.

쐐에에에엑-!!!

기괴한 바람 소리. 동시에 무엇이든 찢어발길 듯한 맹렬한 죽음의 바람이 둘의 신형을 집어삼켰다.

이토록 괴이한 현상을 누가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켜보던 자들은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넋을 놓았다.

유설과 모용성의 모습도 더는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저 희뿌연 돌풍만이 보일 뿐.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순간 살풍이 뿜어내는 소리가 바뀌기 시작했다.

쩌억-! 퍽-! 퍼퍼퍽-!!

마치 옷을 펴기 위해 두들기는 방망이질 소리가 연달아 터져나왔다.

“……뭐, 뭐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설, 설마?”

온갖 추측이 난무할 무렵. 요동치던 살풍이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증발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승자를 찾았다.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 명이었다.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아이. 죽봉을 사선으로 꼬나쥔 유설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며 머리칼을 휘날리자, 내 천(川)을 그린 미간이 드러났다.

“한 번만 더 우리 할배 때리면 가만 안 둬. 알겠어?”

음괴의 한마디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

유설의 발밑에는 곤죽이 된 모용성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손속에 사정을 봐준 것일까? 용케도 숨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부상이 심각해, 살아나더라도 정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모두가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특히나 정파의 무사들은 금붕어처럼 입맛 뻥긋댈 뿐이었다.

“…….”

철혈검객 모용성. 비록 무림의 십대고수에는 끼지 못했지만, 그들과 비교될 만한 무공과 명성을 지닌 강자였다.

그런 그가 강호의 신진고수인 음괴에게 압살당한 것이다.

고요가 절정에 이를 무렵. 유진산이 비틀거리며 다가와 유설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정신을 잃은 모용성의 목부터 비틀어버렸다.

우드득-!

“할배…….”

유진산은 울먹이는 손녀를 끌어안고는 등을 두들겨주었다.

“장하다, 우리 설이. 아주 장하다!”

그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살풍창을 완벽히 구사하는 손녀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른 유진산이었다.

유가장의 가주로서 가장 명예로운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지금이었다.

“힝. 괜찮아?”

“그럼. 할아버지는 괜찮으니까, 일단 마무리부터 짓자꾸나.”

“응.”

유설의 시선이 종남파의 현호 장로에게 향했다.

호현에 쳐들어온 정파인들 중 모용성과 함께 배분이 가장 높은 인물. 얼굴이 창백해진 그는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모, 모두 후퇴하라!”

모두가 그 말을 기다렸던 것일까? 정파의 무사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등을 돌렸다.

감히 음괴와 맞서 싸우려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마치 썰물 빠지듯 도주를 시작한 그들의 모습에 사파인들의 시선이 유설을 향해 모였다. 자신들끼리는 추격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괴와 함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유설은 쫓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들의 뒷모습과 할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때 두리번거리던 아이의 어깨를 백규의 큼지막한 손이 살며시 감쌌다.

“수고했다. 할 만큼 했으니, 오늘은 좀 쉬자꾸나.”

추격을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그의 한마디에 패도문의 문도들이 먼저 무기를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그때 백규의 옆에서 누군가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냥 놓아주는 거요?”

주저앉은 채로 상처를 움켜쥔 사혈문의 문주, 천수였다.

모용성에게 가장 먼저 일격을 맞고 쓰러졌지만, 호신강기로 인해 겨우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그러다 몇 놈이 미친 척하고 되돌아오면 우리는 누가 지켜주오? 조무래기들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지 않소.”

호현의 사파인들 중 유설을 제외한 모든 고수가 전투 불능 상태였다.

백규와 유진산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으며, 정작 천수는 일어서지도 못했다.

천수의 얼굴에는 분하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찌하겠는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총사의 뜻대로 하시오.”

고개를 끄덕인 백규는 고사리 같은 유설의 손을 슬며시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말없이 손을 높게 올려주었다.

전투 종료를 알리는 신호였다.

비록 전체의 삼 할 이상이 죽거나 다쳤지만, 그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은 승리를 자축해야 할 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렁찬 함성이 호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아!!”

“와아아아아!!!”

승리의 외침. 그리고 찬사 속에 유설은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 * *

사파 말살 작전의 날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정파의 움직임은 잠잠했으며, 호현의 사파 세력들도 피해 복구 및 정비에 전념했다.

그리고 유진산은 아직까지 백규와 함께 같은 병상에 누워있었다.

“좀 어떻소, 형님.”

“음. 통증은 거의 사라졌네. 움직이는 게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곧 괜찮아지겠지.”

“애들 몸이라 회복이 빠른가 보오. 나는 부러진 뼈가 완전히 붙으려면 닷새는 더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구려.”

백규는 씩 웃으며 붕대로 감긴 자신의 팔을 올려 보였다.

“좋게 생각하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푹 쉬어보겠나.”

“그래도 누워만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려 죽겠소. 근데 목에 두른 그 장난감 같은 건 뭐요?”

유진산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알록달록한 조개 목걸이. 손녀가 와서 목에 걸어주고 간 선물이었다.

여자아이들이나 차고 다닐법한 장신구였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그에게는 금목걸이보다 값진 물품이었다.

“우리 설이가 용돈을 모아서 샀다는군. 내 첫 번째 보물이지.”

“하. 이거 손녀 없는 사람은 어디 부러워서 살겠소?”

“그럼 내가 아우에게 조개 목걸이를 하나 사다 주겠네. 대신 언제나 차고 다니는 조건으로.”

“흠. 잠깐만 기다려 주소. 그래도 명색이 문주인데……. 우선 생각 좀 해봐야겠소.”

유진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험악한 인상과 우람한 체구의 백규가 조개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 생각하니 웃길 수밖에.

두런두런 농담을 나누고 있을 때 전각으로 누군가 찾아왔다.

머리카락이 있는 것으로 보아 패도문의 문도는 아니었다.

붉은색 주작이 새겨진 검은 무복. 유진산도 본 적이 있었다. 사파의 연합체인 사도련의 복장이었다.

“……?”

그는 백규의 침상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양손을 모았다.

“총사님을 뵙습니다.”

“보고해.”

“하지만…….”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유진산을 쓱 한 번 바라보았다.

외부인의 앞에서 사도련의 내부 일을 보고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백규는 누워있는 채로 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럼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을 내쫓을까? 괜찮으니까, 그냥 보고해.”

“규정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애라고 해도…….”

“애라니? 호현의 영웅인 양괴 대협을 눈앞에 두고 무슨 무례를 하는 거야?”

양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사도련의 무사가 움찔거렸다.

유진산을 다시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어느새 존경이 깊게 서려 있었다.

“그렇다면 잘되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마침 볼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형님한테? 총단에서 무슨 일로?”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먼저 이번 정파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사도련의 전체 세력 중 절반이 날아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당했나? 하긴 뭐 호현도 무너질 뻔했으니 선방한 건지도…….”

“예. 조사 결과 무림맹의 피해도 적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는 양패구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나마 막은 것도 놈들의 작전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백규도 동의한다는 듯 누워있는 채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 형님이 놈들의 작전계획서를 구해오지 못했다면, 지금쯤 다 죽었어.”

“네. 련주께서도 음양쌍괴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음양쌍괴가 정보를 제때 전달하여, 각지의 사파 세력이 방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지 않았던가. 게다가 호현에서 벌인 그들의 활약은 사파인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

“련주께서 직접 그리 말씀하셨다고?”

무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속에서 작은 함을 꺼내어 들었다.

촘촘히 조각된 문양과 깨알같이 박힌 보석까지. 상자의 가치만 따져도 은자 수십 냥은 나올 정도로 귀해 보였다.

“음양쌍괴에게 전달하는 련주님의 선물입니다.”

그가 함을 열어서 유진산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누워있던 백규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내용물을 살펴봤다.

안에는 투박한 옥패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사도련의 문양과 함께 각인된 세 글자.

사왕패(邪王牌).

겉 상자에 비교하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백규는 몹시 놀란 얼굴이었다.

“이것 참 믿을 수 없군. 도대체 련주께서 무슨 생각을…….”

사왕패에 대해 알지 못하는 유진산만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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