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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84화 (84/238)

84화 지금부터 수련할 무공은 (2)

“으악!”

“윽!”

동자승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펴졌다. 죽봉을 움켜쥔 젊은 무승들이 무차별적으로 두들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퍼억-! 퍽-! 쩌억-!

단상에서는 화가 잔뜩 난 노승의 버럭 소리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그 입 다물지 못할까! 이 정도의 고행도 견디지 못하는 정신으로 어찌 불도의 길을 걷는단 말인가!”

철포삼의 기본 수련 방식은 버티면서 두들겨 맞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맞다 보면 피부가 강화되고, 뼈가 단단해진다.

하지만 그게 어찌 하루 이틀에 완성되는 무공인가.

유진산은 혜운대사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철포삼의 연마를 핑계로 해이해진 동자승들의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것임을.

“으윽!”

“큭!”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비명들.

유진산이 있는 뒤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죽봉을 움켜쥔 무승 한 명이 근처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 아가, 할아버지 뒤에만 꼭 붙어 있거라.

어지간한 공격은 화경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한다.

검기라도 발출하지 않는 이상 유설은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손녀가 저항도 하지 못하고 맞는 것을 지켜볼 유진산이 아니었다.

아이 앞에 양팔을 벌린 유진산은 든든한 방패막이로 변모했다.

곧이어 처음으로 날아든 죽봉이 그의 앞가슴을 강타했다.

쩌억-!

내기가 실리지 않은 공격이었다.

조금도 아프지 않았지만, 어찌 그것을 내색할 수 있겠는가.

“아악!”

비명과는 달리 굳건히 버티는 두 다리.

그를 때린 무승은 제법이라는 눈빛과 함께 강도를 더욱 높였다.

퍼억-! 퍽-! 퍼퍽-!

아무리 때려봐야 유진산이 꿈쩍도 할 리가 없었다.

‘적당히 맞아주다가 넘어져야겠구나.’

주변의 동자승들도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끝까지 버틸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이놈들! 감히 누구 앞에서 제자라고 사정을 봐주는 게냐!?”

단상에서 지켜보는 혜운대사의 호통이었다.

죽봉을 움켜쥔 자들 하나하나가 동자승들의 사부였다. 그래서일까? 모두가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지금부터 열을 셀 동안 제자들을 모두 쓰러트려야 한다. 실패한다면 너희들 또한 버티지 못한 제자들과 함께 면벽수행을 하게 될 것이다.”

그의 한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있었다.

쓰러지는 동자승들은 모두 동굴로 끌려가 벽을 보고 수행한다는 얘기였다.

달마대사는 무려 구 년을 버텼지만, 실상 하루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부들도 면벽수행이 싫었던 것일까? 갑자기 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활처럼 꺾인 죽봉이 인정사정없이 유진산의 다리를 타격했다.

쩌억-!!

지금까지와는 전해져 오는 충격의 강도가 달랐다.

하지만 초절정고수가 이 정도의 공격에 쓰러질 이유가 없었다.

손녀의 앞을 가로막은 그는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거 쉽지 않겠구나.’

순식간에 절반 이상의 동자승이 바닥으로 쓰러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다.

“으악!”

“아앗!”

비명과 함께 마구잡이로 쓰러지는 동자승들.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는 몇 명 남지도 않게 되었다.

어느새 그의 주위로 무승 두 명이 더 달라붙었다.

그는 손녀에게 다가오는 모든 공격을 악착같이 대신 맞아주며 차단했다. 다가오는 죽봉을 향해 팔다리를 내밀면서까지 말이다.

“뭐, 뭐야, 이 녀석?”

“왜 안 쓰러져?”

유진산의 두 다리를 계속해서 후려치던 그들은 몹시 당황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급해진 그들은 강도를 계속해서 높였다.

쩌억-! 퍽-! 쩌적-!

매타작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이 정도에 쓰러질 유진산이 아니었다.

‘이 고얀 놈들이 노인을 이렇게 때리다니…….’

정신없이 두들겨 맞던 그는 손녀가 주먹을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맞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여기서 폭주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 참아야 한다, 설아. 할배는 괜찮아.

어느새 남아있는 동자승은 유진산과 유설 단둘뿐.

죽봉을 움켜쥔 무승들이 그를 향해 집중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더는 대신 맞아주는 것도 불가능할 터. 그리된다면 가만히 맞아줄 유설이 아니었다.

유진산의 안색이 어두워질 찰나.

단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혜운대사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야차처럼 일그러져 있던 얼굴이 조금씩 풀리며,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그만!”

위기의 순간 그의 제지로 철포삼의 수련이 중단되었다.

죽봉을 움켜쥔 사부들은 자세를 바로 한 채 한 손으로 그에게 합장했다.

“자신을 희생하여 옆의 동료를 지키려는 모습이 부처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구나. 그러한 자세는 고하를 막론하고 능히 본받아야 할 터. 하여 오늘 제자들의 면벽수행은 사부들이 대신할 것이다.”

무승들은 합장하면서도 유진산을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그를 공격할 때 은밀하게 죽봉에 내기를 담아낸 자들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조금 전의 일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하늘같은 혜운대사에게 어찌 말대꾸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유진산은 아프다는 시늉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아…….”

단상에서 내려온 혜운이 흡족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는 먼저 유설을 귀엽다는 눈빛으로 응시하더니 귀를 잡아당겼다.

“너는 꽤 좋은 친구를 두었구나.”

“…….”

그의 시선이 다시 유진산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로구나. 누구 제자이지?”

소림사는 해마다 많은 수의 제자들을 받고 있기에 모르는 얼굴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진산은 흑야방에서 일러준 지침대로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희 사부님은 정해라는 법명을 가지고 계십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던 혜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림맹으로 파견 나간 그 아이의 제자로구나. 무공은 어디서 배웠느냐.”

두들겨 맞기만 했음에도 자신이 무공을 익힌 것까지 파악하다니. 보통 눈썰미가 아니었다.

“진씨세가입니다.”

진씨세가는 얼마 전 모종의 사건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하남의 무가(武家)로 일대에서는 유명했다.

혜운도 그 소식을 들었던 것일까? 유진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측은함을 머금었다.

“누구에게나 사연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내 앞으로 너를 눈여겨볼 테니, 정진을 게을리하지 말거라.”

유진산은 합장을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곧이어 해산 명령이 떨어지고, 사부들은 대열을 맞추어 면벽굴로 향했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지는 동자승들.

그 틈에 유진산도 손녀와 함께 등을 돌렸다.

혈기왕성한 윗대 항렬을 면벽굴로 보내버렸기 때문일까? 감시의 눈이 줄었기에 운신이 좀 더 수월해졌다.

유진산은 외워두었던 약도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방향을 기억해냈다.

“저쪽인 것 같구나.”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반각을 이동하자 인적이 드물어지며 숲길이 나타났다.

앞에는 고승들의 사리를 모셔두는 탑림이 있을 터. 이곳만 지나치면 목적지인 참회동이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찰나. 돌연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어디 가는 거야? 우리는 여기 들어갈 수 없는 거 몰라?”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자신과 손녀를 연무장으로 끌고 갔었던 동자승.

하필이면 또 그놈이었다.

“상관하지 말고 그냥 가.”

“어떻게 상관을 안 해? 여기 함부로 들어가면 큰일 난다고.”

밤톨만 한 것이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금방 구경만 하고 나올 거니까, 못 본 척해줘.”

“뭐어? 구경? 들어가기만 해 봐. 바로 사부님한테 가서 다 말할 거니까.”

유진산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보는 눈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근처엔 너뿐이로구나.”

“뭐가?”

이 녀석의 오지랖 때문에 계획에도 없던 연무장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르고 나온 터였다.

“받은 게 있으면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이제는 우리가 네 철포삼 수련을 도와줘야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유진산은 뒤로 한발 물러서며 손녀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차마 나이가 지긋한 자신이 어린아이를 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아이였다.

“너 때문에 우리 할배가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어.”

“……?”

나뭇가지 같은 가냘픈 발목이 곡선을 그리며, 동자승의 발목을 걷어찼다.

빠각-!

“칵!”

살며시 때린 듯했지만, 동자승은 꽈당 넘어져 버렸다.

이어서 기다리고 있던 유진산이 혈도를 짚어 기절시켰다.

손쉽게 제압하긴 했지만, 이대로 두고 가는 것도 문제였다.

“근처에 숨길 만한 곳이 없으니 일단 데려가야겠다.”

“내가 업을까?”

유진산은 고개를 저으며 동자승을 어깨에 들쳐멨다.

“아니다. 할아버지가 업을 테니, 어서 가자꾸나.”

인적이 없을 때 조금이라도 깊이 이동해야 했다.

숲길을 따라 이동하자, 탑림의 입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이곳을 지키는 자들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는 듯했다. 이미 사리탑들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으니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파괴되어 산산이 조각난 탑들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심한 것은 두더지가 파헤쳐 놓은 것처럼 헤집어져 있었으니.

지금은 다가갈 수 없게끔 밧줄에 둘려있었다.

‘설마 이것도 파계승의 짓이란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고승들의 무덤을…….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어쨌거나 참회동까지의 접근이 좀 더 수월해진 상황이었다.

탑림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자 먼 곳으로 동굴이 하나 보였다.

무턱대고 접근할 수는 없었기에, 유진산과 손녀는 멀찍이 숨어서 그곳을 탐색했다.

입구는 열려 있는 듯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유진산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동굴 주변으로 열두 명의 나한이 숨어 있구나.”

깨달음을 얻은 무승은 나한의 칭호을 받게 되며, 상승 무공을 익히기에 모두가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참회동을 지키는 자들은 최상위권의 실력을 지닌 나한들이라 알려져 있다.

그때 무심히 듣고 있던 유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열여덟 명이야.”

손녀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위치를 짚어주었다.

그들의 위치를 살펴보던 유진산은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거 쉽지 않겠다. 십팔나한진의 방위라니…….”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 열여덟 명의 나한이 펼치는 진법으로, 무림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게다가 언뜻 보아도 한명 한명이 절정의 무예를 지닌 듯했다.

유설의 도움을 받는다면 제압하지 못할 것도 없었으나, 진법을 파훼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터.

그러다 사찰에 경종이라도 울리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어떡해?”

“저놈들이 진법을 펼치게 해선 안 돼. 방심을 유도하고, 일거에 제압해야겠구나.”

생각을 정리한 유진산은 손녀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잠시 후 준비를 마친 그는 기절시킨 녀석을 업고 참회동으로 앞장서며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돗토리처럼 어린 승려들이 다가오자, 곳곳에 숨어있던 나한들이 어리둥절하며 다가왔다.

“뭐야?”

“너희들이 여긴 왜 들어왔어?”

유진산이 자연스럽게 등 뒤의 동자승을 눕히며 소리쳤다.

“얘가 갑자기 숨을 안 쉬어요!”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불가의 가르침에 따라, 꾸짖음은 다음 문제였다.

몇 명의 나한들이 다가와 살펴보더니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이야?”

“숨은 잘 쉬고 있는데?”

그때 동자승을 뒤에서 안고 있던 유진산이 은근슬쩍 등 뒤의 혈도를 누르자,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래?”

“비켜봐, 내가 한번 살펴볼 테니.”

방심한 채 하나둘씩 다가오는 나한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를 유설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양 떼를 덮치기 위해 몸을 웅크린 맹수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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