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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91화 (91/238)

91화 가져와~ 전부 내 거니까 (1)

교룡의 아가리가 쩍 벌어지며 유설을 집어삼킬 듯 다가갔다.

아직도 이 정도의 힘이 남아있었다니. 파계승과의 전투로 힘이 빠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위협적이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스스슥-!!

그 순간 손녀의 발이 교룡의 측면을 향해 기이한 각도로 미끄러졌다.

유진산도 잘 아는 기술이었다. 가문의 기술인 선풍보법(仙風步法)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펼칠 때와는 위력 자체가 달랐다.

보법을 밟는 손녀의 모습은 마치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신선 같았다.

콰앙-!!

애꿎은 지면을 턱으로 내리친 교룡은 다시 몸을 꿈틀거리며 꼬리로 공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섬전처럼 움직이는 작은 체구를 낚아채기가 쉽지 않은 듯했다.

콰앙-! 쾅-!! 콰쾅-!!

벽면이 부수어지고, 바닥이 갈라지며 동굴 전체가 요동쳤다.

교룡의 공격은 단 한 방이라도 적중당하면 즉사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일격도 맞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법.

“끼야아아-!!”

교룡은 몹시 화가 난다는 듯 이빨을 내보이며 포효했다.

반면에 유설은 여유 있는 몸짓으로 계속해서 놈을 유린하고 있었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산은 연신 감탄했다.

여차하면 손녀를 도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나서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선 상처 입은 놈의 체력부터 소진시킬 생각인가? 제법이구나.’

둘레만 일장이 훌쩍 넘는 거구는 움직일 때마다 많은 힘이 필요할 터. 역시나 시간이 지날수록 교룡의 움직임은 계속해서 느려졌다.

확실히 손녀는 놈의 약점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

족제비처럼 피해 다니는 모습에는 여유가 넘쳤다.

“할배, 얘가 내 보물 안 주는데, 어떻게 해?”

“사악한 뱀이니까, 사정을 봐주지 말거라!”

“알았어!”

유진산은 자신의 손녀가 어떻게 교룡을 끝장낼 생각인지 몹시 궁금했다.

두텁고 단단한 비늘은 강기(强氣)에도 깊은 상처를 입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인지 유설은 무의미한 공격은 애초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격에 끝장낼 생각일까? 불가능해 보였지만, 나름대로 뭔가 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타앗-!

지면을 박차고 떠오른 유설이 교룡의 등 뒤에 올라타서는 전광석화처럼 내달렸다.

타타타탓-!

놈은 허리를 꿈틀거리며 주둥이를 뒤쪽으로 틀었다.

쩍 벌어진 흉악한 아가리가 달려오는 유설을 향해 마주 다가갔다.

날카로운 이빨의 틈새로 긴 혓바닥이 채찍처럼 나와 출렁였다.

엄청난 속도와 위압감은 지켜보던 유진산도 가슴이 철렁할 정도였다.

“피해!”

유설은 할아버지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등을 타고 내달렸다.

곧이어 아이의 허리가 교룡의 아가리에 물어뜯기는 그 순간, 돌연 밝은 빛이 번뜩였다.

번쩍-!

잡아먹힐 듯했던 유설의 신형이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형환위?’

이형환위(移形換位). 순간적으로 기를 폭발시켜 자신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고난도의 경신법이다. 한 번의 사용으로도 기혈에 무리가 오기에 여러 번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기술이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유진산은 곧이어 손녀의 모습을 찾아내고 시선을 고정했다.

교룡의 머리 위. 그곳에 우뚝 선 유설은 활짝 펼친 오른손을 어깨높이까지 치켜세우고 있었다.

‘일후섬타?’

유가건곤장 사초식, 일후섬타(一後閃打)의 기수식이었다.

물체에 힘을 가해 그 뒤에 있는 대상을 타격하는 무공으로, 발경(發勁)의 원리를 이용하는 초식이었다.

교룡의 비늘을 뚫을 수 없다면, 내부를 공격하면 그뿐.

치켜세워진 손바닥의 주위로 푸른 강기가 소용돌이쳤다.

준비를 마친 유설은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교룡의 정수리에 내리 꽂아버렸다.

“얍!”

쩌어어엉-!!!

둔탁한 종소리와 함께 유설의 두 다리로 거센 진동이 다가왔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 교룡의 머릿속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리라.

교룡은 마치 혼이 나간 듯 모든 움직임이 정지했다. 그 순간, 놈의 입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냇물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할배!”

정신이 번쩍 든 유진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녀를 바라보았다.

“……?”

그 순간 유설이 왼손에 움켜쥐고 있던 화룡신창을 그에게 날려 보냈다.

휘리리릭-!

막상 창날을 받아든 유진산이었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두 눈만 끔뻑였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손녀의 다음 행동을 보기 전까지는.

“으랏차!”

기절한 교룡의 수염을 움켜쥔 유설이 놈의 아가리를 강제로 벌리고 있었다.

손녀의 엄청난 괴력에 유진산은 할 말을 잃었다.

“…….”

“할배, 빨리!”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신보고 뱀의 아가리로 들어가라는 것이리라.

흉악한 이빨과 혀를 보면 그럴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곧 있으면 교룡이 깨어날 터.

“오냐, 지금 간다!”

창날을 움켜쥔 유진산은 이를 악다물고 질주했다.

타타탓-!

지면을 박차고 도약한 그는 망설임 없이 교룡의 입속으로 몸을 날렸다.

기회는 단 한 번뿐.

유진산은 화룡신창에 자신의 십성(十成) 공력을 모조리 담았다.

“후웁!”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모든 힘을 다해 창날을 내질렀다.

곧이어 창끝에 맺힌 서늘한 강기가 교룡의 입천장을 두부처럼 파고들기 시작했다.

푸우우욱-!!

기절해있던 교룡이 고통에 눈을 부릅뜨며 괴성을 내질렀다.

“끼야아아악!!”

화들짝 놀란 유진산은 재빨리 그곳에서 뛰쳐나왔다.

놈의 입천장에 틀어박힌 창을 회수할 정신조차도 없었다.

“으윽!”

괴성의 영향 때문인지 기혈이 뒤틀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고통 따위는 아무래도 관계없었다. 드디어 흉악한 신수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니까.

서서히 고꾸라지는 교룡은 머리부터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쿠웅-!!

동굴 내부에는 기이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으며, 괴상한 형태의 잡동사니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교룡이 쓰러지기 무섭게 손녀가 곳곳을 쑤석거리기 시작했다.

“내 보물은 어디 숨겼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가 너를 어찌 말리겠느냐.’

그의 시선이 다시 축 늘어진 교룡을 향했다.

파계승이 먼저 들어와서 이놈을 반죽음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놈의 아가리로 다시 들어간 유진산은 깊게 틀어박힌 화룡신창을 뽑아냈다.

푸욱-!

창날이 뽑혀 나온 구멍에서 끈적한 액체가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윽!”

악취에 코가 찌푸려졌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호흡을 멈춘 그는 입천장에 생긴 구멍으로 오른팔을 쭉 밀어 넣었다.

팔을 휘저을 때마다 물컹거리는 느낌이 몹시 불쾌했다.

그러길 잠시 후.

찌푸려져 있던 유진산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미소를 머금었다.

‘여기 있었구나, 이놈.’

그가 다시 팔을 빼내자, 손아귀에 무엇인가가 움켜쥐어져 있었다.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무지갯빛 구슬. 교룡의 영석(靈石)이었다.

유진산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손녀에게 걸리면 그대로 뺏기게 될 터. 눈치를 살피던 그는 재빨리 품속에 영석을 갈무리했다.

만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엄청난 보물이었다. 복용하면 어마어마한 내공을 얻게 될 수도 있고, 무기로 만들면 신병이기가 된다.

그야말로 최고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기분이 몹시 좋았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다.

“흠흠!”

그는 시치미를 떼며 가보인 화룡신창을 들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손녀가 어디 있나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찰나였다.

“찾았다!”

동굴 깊은 곳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현장이 숨겨놓은 보물이 정말로 실존했단 말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진산은 흥분된 마음으로 냉큼 달려가 보았다.

“뭐야? 뭘 찾았어?”

“이거 봐봐. 삼장법사의 보물이야.”

아이의 손에는 정체 모를 고서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무슨 재질로 만들어진 것인지, 오랜 세월이 지난 듯한데도 조금의 손상조차 없었다.

첫 장을 넘기자 몇 마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불문사자신공(佛門獅子神功)?”

비급의 이름이었다.

유진산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앞부분을 좀 더 읽어보았다.

『인연이 닿는 자가 이 비급을 얻어 세상을 구하리라.』

‘세상을 구하다니? 무엇으로부터?’

그것 외에도 수수께끼 같은 말만 잔뜩 적혀 있었다.

이 문구를 적은 현장이라는 자는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이것을 훔쳐온 계기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정신없이 문구를 읽어가던 유진산은 마지막 부근에서 눈을 부릅떴다.

『불문사자신공은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무공이다. 이것을 완성하는 자는 깨달음을 얻어 현경(玄境)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현경이라니?’

유진산은 전율했다.

현경이 무엇인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였다.

상단전이 열리며 초식의 틀에서 자유롭게 되고, 기세만으로도 사람을 격살할 수 있는 반신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흥분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다음 장을 펼쳐볼 때까지는.

“……?”

유진산은 비급의 뒷장을 계속해서 넘겨보았으나, 그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옆에서 손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할배, 이거 글씨가 왜 이래?”

유진산은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고대의 범어인 듯하구나. 빌어먹을 녀석, 기왕이면 번역까지 해줄 것이지.”

“그럼 어떡해?”

“일단 개봉으로 돌아가서 풍호 아저씨한테 물어보자꾸나.”

흑야방이라면 이것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알았어. 일단 돌려줘, 내 거.”

유진산은 황당한 표정으로 손녀를 마주 보았다.

“돌려 달라니?”

“할배 것도 내 거. 다 내 거야.”

유설은 비급을 빼앗아 자신이 가져온 보자기에 둘둘 말았다.

그 모습에 유진산이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애기 때부터 업어 키우느라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거 뼈 빠지게 손녀 키워봤자 헛수고로구만!”

유설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보자기를 어깨에 사선으로 둘러메고는 등을 내밀었을 뿐.

“그럼 내가 개봉까지 업어 줄게. 어서 업혀.”

“되었다, 이 녀석. 할아버지가 늙어 죽으면 그때 가서 후회…….”

유진산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반로환동으로 아이의 신체를 가진 자신이 무슨 늙어 죽을 걱정이란 말인가.

그는 손녀를 이길 수 없음을 다시 깨닫고는 이내 체념했다.

비급은 필요할 때 설득해서 빼앗으면 그뿐. 단지 보관을 누가 하느냐의 차이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목적을 달성한 유진산과 손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굴 밖으로 나왔다.

입구에는 정신을 잃은 파계승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봐 동생. 죽은 거 아니지?”

다가가서 살펴보니 기혈이 몹시 불안정했다.

하지만 역근경을 익힌 고수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는 없을 터. 역시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상세가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이 녀석을 어찌한다?’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짧은 시간 정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왠지 모르게 그가 측은하게 보였다.

하지만 불문사자신공의 비급을 넘겨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그가 어설프게 절세신공을 익히다 상세가 더 안 좋아지면, 그 누가 뒷감당을 할 수 있겠는가.

“육포 남은 거 있지?”

유진산이 손녀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유설이 주섬주섬 육포 쪼가리를 꺼내어 파계승의 손에 쥐여주었다.

“……일어나면 이거 먹고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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