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천하명인 철운비 (3)
수련에 심취하면 시간의 흐름도 잊게 되는 법이다.
유설은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유진산은 이날도 새벽녘부터 대장간으로 향했다. 무기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멀찍이 자리를 깔고 앉은 그는 망치를 움켜쥔 노인을 지그시 응시했다.
‘오늘도 밤을 지새웠단 말인가? 집념이 대단한 친구로구만.’
철가장의 가주 철운비였다.
그는 어젯밤에 보았던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탕-! 타당-! 타당-!
몸과 마음이 대장간의 일부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도달한 무림고수처럼 보였다.
입에서 뿜어내는 거친 호흡은 맹호(猛虎)의 입김 같았으며, 모루를 내리치는 망치의 움직임은 절대고수의 칼부림을 보는 듯했다.
‘무엇이 되었든 한 분야의 정점에 선 자의 모습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법이지.’
유진산은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그와 마음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비장한 모습의 그를 보고 있으니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을 것만 같았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길 한참 후.
어느 순간 그의 정신이 갑자기 흐트러졌다. 작은 인기척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이거…….”
옆을 바라보니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자아이가 만두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
자신의 이름을 철아련이라 소개한 아이였다.
얼떨결에 만두를 받아들자 아련이 얼굴을 붉혔다.
“산이, 너 먹어.”
“너나 많이 먹지, 왜 자꾸 나한테 간식을 가져다주느냐. 그리고…….”
유진산은 말을 끝마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련이 후다닥 도망쳤기 때문이다.
유진산은 멀어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쪼그만 게 어른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말이야. 그래도 뭐 맛은 있구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만두를 움켜쥔 유진산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철가장의 모든 장인이 일을 멈추고 경건한 모습으로 가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생에서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명장면을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철운비의 일정 거리 이상은 다가가지 않았으며,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하겠지. 저자의 몸짓을 보고 있으면 나조차도 깨달음을 얻는 것 같은데, 자네들은 오죽하겠나.’
주변이 쥐죽은 듯 조용했기에 유진산도 편하게 앉아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의 일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기억은 참회동에서 원강대사를 만났던 일에 머물러 있었다.
‘아미산이라고 했나? 특출한 아이들을 납치해 살인귀로 키우고 있다는 곳이.’
다음 세대의 창룡대원들이 키워지고 있는 장소였다.
유가장이 화를 입었을 당시 손녀의 납치는 미수에 그쳤지만, 여차했으면 지금쯤 유설도 그곳에서 어두운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그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아이들을 해산시킨다면 무림맹주가 길길이 날뛰겠지. 뭐 이것도 복수의 하나가 될 수 있겠군.’
게다가 무림맹주 또한 아미파의 장문인이 아니던가.
조사도 할 겸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사천성에 있는 그곳은 여기서 꽤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계획에 동선이 겹치거나 기회가 된다면 한번 들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래저래 생각을 정리하며 시간의 흐름을 잊어갈 찰나였다.
그때 근처에서 또다시 익숙한 음성이 들려 왔다.
무엇인가 애절함이 서린 아이의 목소리.
“산아…….”
작은 기척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아이는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왜 또 왔어?”
“잠, 잠깐 손 좀 줘볼래?”
뻘쭘하게 다가온 아련이 손을 내밀라고 하고 있었다.
대장간을 응시하던 유진산은 아무 생각 없이 왼손을 슬쩍 내밀었다.
무엇인가가 팔을 휘감는 감촉이 느껴졌다.
왼팔을 슬쩍 바라보자 나무줄기로 엮은 팔찌가 묶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야?”
“선, 선물…….”
“……?”
아련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멀어지는 아이를 무심히 바라보던 유진산은 헛기침을 내뱉고야 말았다.
아이의 팔목에 자신과 똑같은 팔찌가 걸려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쟤가 설마……?’
유진산은 머리가 지끈 아프다는 듯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는 다시 가보가 만들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도 그 아이는 계속해서 다가와 귀찮게 굴었다.
그렇게 엿새가 되는 날이었다.
“아, 아버지!”
“형, 형님이 드디어!”
“와아아아!!”
장원의 곳곳에서 환호성이 울려 펴졌다.
드디어 창이 완성된 것이리라. 그것도 단 엿새 만에 말이다.
철가장의 식솔들은 감격에 겨워 서로 부둥켜안고 난리가 났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유진산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듯해졌다.
‘기쁨을 함께하는 것은 어느 집안이나 똑같구만.’
작업을 끝낸 철운비의 시선은 의뢰자를 찾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두 눈과 초췌해진 몰골은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듯했다.
엿새 동안 잠을 자긴커녕 한 번도 쉬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아무리 무공을 익힌 신체라도 불굴의 의지가 없으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먼저 의뢰자와 나눌 얘기가 있으니, 모두 잠시 물러가 있거라.”
“예.”
가주의 손짓에 몰려들었던 장인이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유진산이 다가가자 그가 두 자루의 창 중 하나를 건네주었다.
“의뢰한 무기가 완성되었으니, 어디 한번 살펴보시오.”
철운비의 양손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그을려 있었다. 창을 만드는 과정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그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창을 움켜쥠과 동시에 유진산의 입에서 탄성이 토해져 나왔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이 대단한 명창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과연 천하제일 명인이 틀림없구려.”
자루가 양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무척이나 좋았다.
연신 감탄하는 유진산을 향해 철운비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무기의 이름은 용살창(龍殺槍)이라 지었소. 기의 흐름을 증폭시켜주기에 창기(槍氣)만으로도 창강(槍强)에 맞설 수가 있을 것이오.”
유진산이 창을 슬며시 비틀자 피처럼 붉은빛이 감도는 창날이 울음을 토해냈다.
찌이이잉-!
곧이어 내기를 불어 넣자 붉은 기류가 은은히 타오르며 출렁거렸다.
약간의 내력으로도 거세게 타오르는 것을 보니 신병이기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명창이오.”
고개를 끄덕이는 철운비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또 하나의 창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창은 용화창(龍華槍)이라 이름 지었소. 창술을 펼칠 때마다 죽음의 꽃잎이 흩날리기 때문이오.”
용살창이 강인하고, 우직한 느낌을 주었다면, 용화창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날이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명품은 날카로움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지.’
비록 날이 없더라도 기를 이용한다면 베지 못할 것이 없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단지 손녀의 성향을 고려한 주문이었을 뿐.
유진산이 창을 받아들고 살펴보고 있을 찰나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해볼래!”
때마침 수련을 나갔던 손녀가 돌아온 것이다.
바로 뒤에서 들려온 것 같은 음성이었지만, 삼십여 장이나 떨어진 곳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바람 같은 경공술로 유유히 다가오는 모습에 장인들이 짐짓 놀라며 거리를 벌렸다.
순식간에 다가온 아이에게 유진산이 창을 건네주었다.
“마침 잘 왔다. 네 창도 완성되었으니 어디 한번 살펴보거라.”
유설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자기 것은 자기가 선택하려는 것일까? 두 개의 창 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양손을 동시에 내뻗었다.
“둘 다 줘.”
용화창만 건네주려 했지만, 이미 두 자루 모두 손녀에게 빼앗기고야 말았다.
아무려면 어떠한가. 나중에 다시 한 자루를 빼앗으면 그뿐이었다.
“손에 감기는 느낌이 좋지?”
“응, 정말 최고야.”
창끝에서 자루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곡선과 과하지 않은 적당한 길이.
두 자루의 신병이기를 움켜쥔 유설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넓은 공터로 걸어가며 두 자루의 창을 휙휙 돌려대는 모습에 모두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 한번 시범을 보여주거라.”
멋진 시연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제작자를 위한 최고의 답례였다.
철가장의 모든 장인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손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시선이 집중되어 쑥스러워진 것일까? 자세를 낮춘 유설이 어색한 웃음으로 물어왔다.
“시작해?”
“응, 어서.”
왼손의 용살창을 목 뒤에 걸친 유설은 오른손의 용화창을 천천히 내뻗었다.
아주 느릿한 동작이었지만,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웅장함이 담겨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그 순간이었다.
정적을 깨고 첫 번째 동작이 개시되었다.
창기를 가득 머금은 용화창이 한 바퀴를 회전하며 사방으로 빛무리를 발산했다.
휘리리릭-!
경쾌한 소리와 함께 창끝에서 꽃잎이 만개하고 있었다.
수천 개의 꽃잎이 피어나 흩날리는 모습에 지켜보던 모두가 넋을 놓고야 말았다.
“와…….”
“이럴 수가…….”
모두가 아름다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용화창의 진정한 무서움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직 철운비와 유진산만이 알아채고 있었다.
시선을 현혹시키는 아름다움에 매료된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파앙-!!
찰나의 순간 용살창이 움직이며, 붉은 기류를 급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쏴아아악-!!
유진산이 시범을 보였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본격적인 창무(槍舞)가 시작되자 지켜보던 모두가 전율했다.
거침없이 쌍창술을 펼치는 유설의 몸짓은 천상에서 무희가 내려와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휘리릭-! 휘리리릭-!
두 자루의 창이 번갈아 움직이며 사방으로 수를 놓자, 몇몇 장인들이 감격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붉게 물든 꽃밭에 나비가 노니는 것 같구나.”
“제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본 적이 없어요.”
가장 감정이 복받쳐 오른 인물은 무기를 만든 장본인인 철운비였다.
그는 양손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잠시 후 시연이 끝나자 장인들이 갈채를 쏟아냈다.
“와아아!”
“정말 최고였어!”
“정말 다행입니다. 아버지의 역작이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났어요!”
철운비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서렸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유설을 향해 다가갔다.
“이유는 알지 못하겠으나, 분명 교룡과 화룡의 영석이 서로 교감하고 있었소. 그렇기에 두 자루의 창이 함께하면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오.”
유설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끔뻑였다.
“어떻게요?”
“창 자루를 한번 결합해 보시오.”
고개를 갸우뚱하던 유설은 두 개의 창 자루를 맞대어 보았다.
용살창의 삐죽한 끝부분이 용화창의 끝단에 파인 홈과 정확히 맞는 것이 아닌가.
홈에 끼우는 순간 두 개의 자루가 서로를 끌어당기듯 자동으로 비틀어졌다.
철컥-!
용살창과 용화창이 결합하자 엄청난 길이의 장창이 완성되었다.
좌우로 창날이 달려 있기에 제대로만 다룬다면 극강의 살상력을 뿜어낼 듯했다.
“……와아.”
완성된 신병이기의 형태에 유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창이 너무 길어서 지금은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총 길이가 키의 두 배를 훌쩍 넘었으니.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터.
“고맙습니다~”
쌍룡창을 움켜쥔 유설이 진심을 담아 철운비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의 표정은 세상 누구보다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길 잠시 후.
돌연 철운비의 신형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