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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103화 (103/238)

103화 너 이리와 (1)

콰앙-!

어딘가로 패대기쳐진 유진산은 볼품없이 나자빠졌다.

그런 그의 복부에 백골마녀의 왼발이 쑤셔박혔다.

쩌억-!

“큭!”

숨이 턱하고 막혀왔기에 아무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그는 겨우 고개를 들어 그녀를 살펴보았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다리.

홀쭉한 얼굴에 시뻘건 눈을 부릅뜬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했다.

‘도대체 저게 사람이야, 귀신이야?’

세상에 이토록 흉악하게 생긴 여인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 백골마녀의 입에서 무엇인가 야릇한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아아…….”

옆구리를 움켜쥔 것을 보니 고통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 유설과 싸우다 당한 상처이리라.

손아귀로 삐져나오는 붉은 피를 보니 사람은 맞는 듯했다.

“이히히. 죽여 버릴 거야.”

소름 돋는 웃음을 토해내고 있었지만,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유진산은 점차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자신을 향한 백골마녀의 무차별적인 폭행이 시작되었다.

쩌억-! 퍽-! 콰직-!!

사정없이 날아드는 발길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크윽!”

마치 손녀에게 당한 분풀이를 자신에게 하는 듯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발목이었지만, 바위를 으깰 정도의 내력이 담겨 있었다.

호신강기를 뚫고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고통.

어지간한 무림인이었으면 진즉에 실신했을 것이리라.

곧이어 채찍이 펼쳐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휘리리릭-!!

붉은빛이 감도는 나무줄기. 자신을 납치했을 때 사용했던 도구였다.

“할, 할 말이 있으니 잠깐 진정 좀 하거라!”

기대와는 달리 애초부터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그녀는 움켜쥔 나무줄기로 유진산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철썩-! 철썩-!

“끄아악!!”

줄기가 쓸고 지나가는 자리로 살갗이 찢어지고 핏물이 흥건해졌다.

정신없이 두들겨 맞던 그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몸이 축 늘어졌다.

“…….”

이제야 기분이 좀 풀린 것일까?

그녀는 쓰러진 유진산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쓱 가져다 댔다.

소름 돋는 얼굴이 미소를 그리자 송곳니 같은 이빨이 드러났다.

“나 예뻐?”

이 상황에서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란 말인가.

욕지거리가 치밀어올랐지만, 차마 있는 그대로를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 그래…….”

“얼마만큼?”

“아, 아주 많이……”

그 순간 백골마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증발했다.

동시에 날카로운 손톱이 앞으로 뻗어 나가며, 유진산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꽈악-!

엄청난 악력에 유진산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딘가로 질질 끌려가던 그는 어느 허름한 오두막 앞에서 멈추었다.

벌컥-!

내부의 모습을 살펴볼 틈도 없이 유진산은 안으로 패대기쳐졌다.

콰앙-!

“끄윽…….”

“엄마가 밥 차려 줄 테니, 잠깐 기다리고 있어~”

미쳐도 단단히 미친 듯했다.

소림사에서 만났던 파계승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유진산이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그녀는 문을 닫아버렸다.

콰앙-!

얼마나 맞았는지 손가락 하나 꿈틀거릴 힘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눈알을 굴리며 내부를 살펴보았다.

무엇인가가 썩어가는 악취.

그리고 사람의 것으로 짐작되는 뼛조각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란 말인가.

힘겹게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던 그는 동공이 흔들렸다. 이곳에 자신 말고 누군가가 또 있었기 때문이다.

“……?”

산발한 머리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

경악스럽게도 그의 사지에는 왼팔만이 달려있을 뿐이었다. 오른팔과 두 다리는 뭔가에 절단된 듯 흉터만이 자리했다.

고강한 내기(內氣)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 또한 무림고수였던 듯했다.

그자는 자신을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쯧쯧. 어린 것이 어쩌다 이곳까지 끌려왔을까.”

“당신도…… 잡혀 온 것이오……?”

말투 때문이었을까? 그자는 자신을 유심히 훑어보더니, 무엇인가를 눈치챈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반로환동한 노고수였다니, 그 미친년이 딱 좋아할 만한 먹잇감이구려.”

“그게 무슨 소리요? 먹잇감이라니.”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나직이 말했다.

“내 오른팔과 두 다리가 어디로 갔을 것 같소.”

설마 그 마녀가 뜯어먹기라도 했단 말인가?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것을 물어보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가 얼마나 오래 이곳에 잡혀 있던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생존해 있는 것을 보면 뭔가 아는 것이 많을 듯했다.

“혹시 도망칠 방법을 알고 있다면 좀 알려주시오. 지금 우리 애가 숲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하오…….”

방법이 없음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본 것이다.

유진산은 이 순간에도 오롯이 손녀 걱정뿐이었다.

비록 표식을 남겨두긴 했지만, 이곳까지 찾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그리 쉬웠다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겠소?”

들려오는 대답은 예상을 벗어나질 않았다.

그래도 유진산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선 정보부터 파악해야 계획을 마련할 수 있을 터.

“이곳에 잡혀 온 지는 얼마나 되셨소?”

“시간의 흐름은 잊은 지 오래요. 아마도 몇 년은 지났을 것이오.”

노인은 오랜만에 말동무를 만나 반가운지 물어보는 말에 순순히 대답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겠소?”

잠시 호흡을 고른 그가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

“오래전 마교가 무너졌던 그 날. 우리 무림맹의 포위를 뚫고 도주한 극마지체의 마두가 한 명 있었소. 비살천녀대(飛殺天女隊)를 이끌던 대주 옥련화가 바로 그 빌어먹을 년이오.”

노인의 한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유추해보면 그는 도망치던 옥련화를 추격하던 무림맹의 일원이었으리라.

그리고 옥련화의 이름은 유진산 또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은퇴하기 전에 활동했던 고수였으니까.

그런데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당시의 소문으로 그녀는 마교제일미(魔敎第一美)라는 별호가 따라다니는 마두였기 때문이다.

“마교제일미가 어쩌다 그리된 것이오? 게다가 제정신으로도 보이지가 않던데.”

“당시 우리의 추격으로 궁지에 몰린 그녀는 품고 다니던 천룡공(天龍蚣)을 삼켜버렸소. 그때 그냥 철수했어야 했는데…….”

천룡공은 천년 묵은 지네를 뜻하는 이름이었다.

극독을 지닌 벌레였지만, 엄연히 영물로 분류되기에 쌍룡창이 반응했던 것이리라.

“천룡공의 부작용 때문이란 말이오?”

노인은 고개를 슬며시 한 번 끄덕거렸다.

“그렇소. 아름다운 미녀에서 졸지에 추녀가 되었으니, 그 충격에 미쳐버린 후 이 숲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오.”

단지 그녀가 귀신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했을 뿐,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유진산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군데군데 널브러진 뼛조각들. 분명 한두 명이 남긴 것이 아니었다.

상태로 보아 일부는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듯했다.

“그런데 당신은 어찌하여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오?”

“다 방법이 있소. 궁금하오?”

“제발 좀 알려주시오. 손녀가 혼자 기다리고 있어서, 절대 이렇게 죽을 수가 없는 몸이오.”

눈앞의 노인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그 미친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서 자신이 예쁘냐고 물어보고 있소. 비위를 잘 맞춰준다면 해코지를 하지 않지만,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사지가 하나씩 찢겨나갈 것이오.”

도저히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못할 것도 없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면.

“……단지 그것뿐이오?”

“그게 생각처럼 쉽다면 나보다 뒤에 잡혀 온 사람들이 왜 먼저 죽었겠소. 언제나 다른 말로 예쁘다고 칭찬해주어야 하오. 같은 말로 칭찬을 한다면 지옥을 맛보게 될 테니.”

“그럼 몇 년 동안이나 다른 말로 그녀를 예쁘다고 해주고 있었단 말이오?”

“그렇소. 그동안 세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얘기를 듣다 보니 무엇인가 기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그동안 관찰하면서 약점 같은 것은 발견한 것이 없었소?”

노인은 하나밖에 없는 손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것은 말을 조심하라는 의미였다.

대답은 전음으로 들려왔다.

- 한 가지가 있긴 하오. 그년에게 한 방을 먹일 방법이.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자결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오.

- 나에게도 좀 알려줄 수 있겠소?

노인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지 않아도 실행에 옮기려면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었소. 써먹기도 전에 내 몸이 이 꼬라지가 났으니까.

말을 마친 그는 손을 움직이며 바닥의 작은 나무판자를 들어냈다.

그곳엔 접힌 종이에 희고 고운 가루가 담겨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던 유진산은 눈이 번쩍 뜨여졌다.

- 백반가루?

백반은 장신구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는 명반석(明礬石)을 갈아 만든 가루다.

또 한가지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지네를 퇴치할 때 사용하는 용도였다.

천룡공을 삼킨 백골마녀라면, 효과를 보일지도 몰랐다.

만약 자신이 눈앞의 노인이었다면, 이미 간접적으로라도 한 번쯤은 시험해 보았을 터.

- 내가 이 정도의 백반가루를 모으는 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모를 것이오. 그년 몰래 시체에서 장신구를 빼내어 갈아대면서 난리를 쳤으니까.

- 그간 고생이 많으셨소. 그것을 내게 맡겨줄 수 있겠소?

- 물론이오. 내 눈앞에서 뿌려주기만 해주시오. 그것을 보기 위해 살아있는 거니까. 이것이야말로 죽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복수요.

- 정말 고맙소.

- 나를 위한 일이니 고마워할 필요 없소. 어쨌거나 어서 준비부터 하시오. 내일이면 당신의 사지가 한두 개쯤 떨어져 나갈 테니, 오늘이 지나면 기회가 없소.

무슨 소름 돋는 저주란 말인가.

유진산은 백반가루를 소매 속에 숨기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그녀가 돌아오기 전에 최대한으로 몸 상태를 회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노인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더는 방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식경이 지났을 때였다.

벌컥-!

백골마녀가 푸른색 액체가 담긴 냄비를 들고 왔다. 도대체 무엇으로 만든 음식인 것일까?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는 냄비를 움켜쥔 채 눈앞의 노인에게 먼저 가서 물었다.

“나 예뻐?”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몰골에 시뻘건 눈동자.

보기만 해도 비명이 나올법한 인상이었지만, 노인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몸은 신선의 자태와 같고, 흰 눈처럼 고운 피부는 그야말로 옥석이구나. 그 붉은 눈동자는 마치 봄과 함께 피어나는 붉은 매화 같으니, 그 아름다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토록 거짓말을 술술 토해낸단 말인가. 옆에서 지켜보던 유진산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백골마녀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이 치켜 올라갔다.

“입 벌려, 아가.”

그녀는 냄비에서 정체불명의 음식을 주걱으로 푹 푸더니 노인의 입에 털어 넣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던 일인 듯 그는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켜버렸다.

다음은 유진산의 차례였다.

그녀가 다가오기도 전부터 역겨운 냄새에 토악질이 나왔다.

곧이어 백골마녀가 흉악한 얼굴을 코앞으로 들이밀며 물었다.

“나 예뻐?”

유진산은 차마 노인처럼 유려한 거짓말을 해댈 자신이 없었다.

긴장했기 때문일까? 잠시 후 그의 입술을 비집고 떨리는 목소리가 조금씩 토해져 나왔다.

“망…….”

그녀는 다음 말이 궁금하다는 듯 시뻘건 두 눈에 힘을 주며 재촉했다.

“마앙?”

유진산은 호흡을 한번 들이켠 후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이 망둥이같이 생긴 년아!!”

평소 욕을 하지 않는 그였지만, 꾹 눌러 참고 있던 화가 분출하며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 순간 웃고 있던 백골마녀의 인상이 무섭도록 일그러졌다.

하지만 유진산이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믿고 있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는 소매 속에 숨겨두었던 백반가루를 재빨리 뿌려버렸다.

부아아악-!!

바로 코앞이었기에 피할 공간은 애초부터 없었다.

흩날리는 흰 분말이 실내를 가득 메운 듯했다.

그러나 분명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져야 할 그녀가 눈 한번 깜빡이지 않다니?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을 때는 이미 너무나도 늦은 이후였다.

찰나의 순간 유진산과 노인이 시선을 마주쳤다.

“……?”

노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귓가로 다급하게 그의 전음이 들려왔다.

- 미안하게 되었소. 분명 효과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유진산은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붉은 눈동자.

그리고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은 흡사 야차와도 같았다.

그때 무엇인가가 빛살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희뿌연 손아귀가 자신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이 느껴졌다.

쩌어억-!!

목이 부러질 듯 꺾인 유진산은 지면에서 붕 떠올랐다.

곧이어 그의 신형은 오두막의 벽을 뚫고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콰앙-!!

“크헉!”

숨이 턱하고 막혀와 도무지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절망에 젖은 눈동자가 무너진 벽면을 뚫고 다가오는 그녀를 응시했다.

“……죽여버리겠어.”

유진산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인상을 찌푸린 채 백골마녀를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바로 등 뒤에서 누군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분노 서린 나직한 한마디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망둥이 너 이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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