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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144화 (144/238)

144화 한 대만 때려봐 (2)

금강불괴의 효과를 시험해볼 좋은 기회였다.

“오너라!”

이를 악다문 유진산은 천근추를 시전했다. 그러지 않으면 강풍에 휘날리는 연(鳶)처럼 날아갈 테니.

그 순간 손녀의 호두 같은 주먹이 벼락처럼 꽂혔다.

쩌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유진산의 복부에서 충격파가 일어났다.

동시에 그의 신형이 붕 떠올랐다. 천근추를 사용했음에도 말이다.

“꺼억!”

입에서 핏물이 섞인 토악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두 눈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곧이어 그의 등이 십여 장이 떨어진 나무에 ‘쿵’ 부딪혀버렸다.

풀썩-!

“할배에에!!”

화들짝 놀란 유설이 한달음에 달려가 할아버지를 안아 들었다.

의식이 없었다. 기절한 것이리라.

“어, 어떡해…….”

큼지막한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할아버지의 말이라면 철석같이 듣는 손녀였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울고 있을 시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유설은 다급히 할아버지의 몸 안으로 자신의 진기를 주입했다. 따사롭고 신비로운 불문사자신공의 기운으로 그의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

시간이 흐를수록 안색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다행인지 몸속의 장기는 모두 멀쩡했다.

비록 기절하긴 했지만, 확실히 금강불괴의 효과는 대단했다.

유설은 할아버지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두고 차분히 기다렸다.

그렇게 반각이 흘렀을 때였다.

“……끄으.”

“할, 할배! 괜찮아?”

“내, 내가…….”

그는 뭔가 하고 싶다는 말이 있다는 듯 연신 입을 달싹였다.

유설이 그의 입가로 귀를 가져다 대었다.

“응, 뭔데. 어서 말해 봐.”

“……힘, 힘을 이 할만 사용하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유진산은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어느 정도 버텨낸다는 계산이 있었기에 시도해본 것이다.

그동안 손녀가 힘을 쓰는 모습을 무수히 지켜보지 않았던가. 이런 결과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정말 이 할만 썼어.”

표정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전투에서는 계속 힘을 빼고 싸웠었단 말인가?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만, 도대체 얼마나 힘을 숨겨왔길래…….’

곤륜무제와 싸웠을 때만큼은 팔 할 정도의 힘을 쓴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그때도 반절 이상은 남겨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제야 파계승이 손녀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유설의 말대로 조금 더 세게 맞았으면 절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오싹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를 이렇게 때려? 알아서 조절했어야지.”

“할배가 꼭 이 할의 힘으로 때리라고 시켰잖아…….”

자신의 지시라면 곧이곧대로 따르는 손녀를 어찌 나무라겠는가.

“일단 좀 일으켜 세워 보아라.”

“으응. 내가 도와줄게.”

손녀의 도움으로 일어선 유진산은 가부좌를 틀었다. 우선 내상부터 완전히 치료해야 했다.

곧이어 등으로 유설의 손바닥이 밀착되었다. 자신의 운기를 돕기 위해서이리라.

효과는 놀라웠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열 배 이상이나 회복이 빠를 정도로.

‘정신은 잃었어도 몸이 버텨주긴 했구만. 칠 성으로 말이지……. 십 성에 도달한다면 정말 대단하겠어.’

대부분의 무공은 한 단계씩 화후가 올라갈 때마다 위력이 반절 이상은 강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십성으로 갈 때는 그 위력이 다시 곱절로 올라가기도 한다.

손녀의 주먹이 예상보다 너무 매웠을 뿐,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운기가 모두 끝나자 유설이 할아버지가 챙겨온 만두를 가져왔다.

“반 잘라줄까?”

“아니다. 할아버지는 이미 먹었어.”

비록 빈속이었지만 아이가 먹는 거만 봐도 배가 부른 유진산이었다.

열흘을 굶은 손녀의 식량을 뺏어 먹고 싶지는 않았다.

“히히. 맛있다.”

“그래, 그래. 천천히 먹거라.”

“으응!”

유진산은 잠시 턱을 괴고 고민했다.

금강불괴신공을 손녀도 익히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아이가 만두를 다 먹어갈 때쯤 물었다.

“우리 설이도 한번 배워볼래? 땡중에게 허락은 받아야겠지만, 아마 거절하지는 않을 게다.”

“금강불괴?”

“그래, 네가 이것만 익히면 세상에 무서울 게 없을 것 같구나.”

“아니. 나는 그런 거 필요 없어.”

이 무공을 익힐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걸 무림인이 줄을 설 것이다.

그런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다니. 이유가 궁금했다.

“왜? 이런 걸 익혀놔야 나중에 적한테 맞아도 안 아파.”

“나는 그거 안 써도 안 아파.”

“안 아프다니? 네 몸은 무슨 현철로 만들어졌단 말이냐.”

“정말이야. 할배가 한번 시험해 봐.”

유설이 만두를 입에 문 채로 아랫배를 슬쩍 내밀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 분명히 무엇인가 믿고 있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불문사자신공의 기운이 몸을 보호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궁금은 했으나 손녀의 배를 어찌 때린단 말인가.

“됐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만두 마저 먹고 같이 하산하자꾸나. 이제부터는 좀 바빠질 테니.”

고개를 끄덕인 유설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정말 괜찮은데…….”

* * *

패도문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파의 쟁쟁한 고수들이 패도문을 들락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명성이 드높은 섬전일도(閃電一刀) 천무룡과 안휘성의 제일고수인 흑사광검(黑邪狂劍) 문종도 있었다.

그리고 흑묘파의 문주이자 전설적인 살수로 이름난 백상까지.

그 외에도 모여든 고수들이 도합 여덟 명이었다.

지금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호현의 마천회나 사혈문의 문주는 이 자리에 끼지도 못했다.

“정말 련주께서는 오시지 못하는 것이오? 상대의 전력을 보니 우리만으로는 어림도 없겠소.”

사도련주 영영. 사파의 제일 고수로 유명한 그녀를 대신해 부련주인 맹지호가 대신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이 문종을 향했다.

“아쉽지만 모종의 일로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소.”

“그럼 우리만으로 어찌 막겠다는 말이오? 권황까지 왔다는데. 우리 중에 놈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있소?”

“음……. 그자는 문주께서 맡아주시는 게 어떨지요.”

맹지호가 지목한 인물은 흑묘파의 문주인 백상이었다.

묵묵히 팔짱을 끼고 있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거절하겠소. 그에게 암습이 성공할 확률은 삼 할이 넘지 않으니까. 그리고…….”

“……?”

“주의해야 할 인물은 권황뿐만이 아닐 것이오. 그자만 생각하고 대비했다간 호현은 전멸이오.”

살수의 직감은 적중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그의 말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때 맹지호가 패도문의 문주인 백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마당에서 혼자 춤추고 있던 파계승이 패도문을 돕는다고 하지 않았소? 정신이 좀 이상하긴 보이지만, 혜광 놈의 사부였다면 보통이 아닐 텐데.”

“그자는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막상 공격을 받으면 도와줄 것 같긴 한데, 어디로 튈지 모르니 너무 기대는 마십시오.”

모두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정보망에 따르면 섬서로 집결하고 있는 무림맹의 전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기라성 같은 사파의 고수들이 지원을 왔음에도 드러난 전력 차가 배는 넘는 상황이었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그때 흑사광검 문종이 정적을 깨트리며 맹지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어디 말씀해보십시오.”

“그분께서 함께해주신다면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라니 누굴 지칭하는 것이오?”

문종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 나서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음괴.”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무섭게 성장하여 사파의 영웅이라 칭송받는 절세고수.

그 명성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무림의 십대고수에 이름이 오를 정도로 존재감이 넘치는 인물이었으니까.

장내의 모두가 희망찬 눈빛으로 백규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음양쌍괴가 문주님과 긴밀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패도문에 잠시 머물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며칠째 볼 수가 없었지만.”

“그분들께 도움을 청해볼 수는 없겠소?”

백규는 탁상 위에 깍지를 낀 채 단호히 답했다.

“음양쌍괴는 사도련의 소속도 아니며, 정사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였소. 그분들은 언제나 자유의지로 움직일 뿐, 내키지 않는 일에는 절대 싸우지 않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록 음양쌍괴가 사파의 성향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어느 세력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든 누가 간섭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백규가 이처럼 잘라서 거절한 데에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미리 유진산에게 언질을 받았던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언급이 나오거든 이렇게 대답하라고.

그것은 도와주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닌, 다른 이유에서였다.

“저런…….”

“어떻게든 음괴 대협을 설득해야만 승산이 있소.”

“하지만 그들을 무슨 수로…….”

안타까움의 탄식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모두가 각자만의 생각에 잠겼고, 장내는 또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그렇게 반각이 흘렀을 무렵. 돌연 문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문주님, 어르신께서 오셨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백규가 씩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우리 형님이 도와주러 오신 모양이오.”

그의 한마디에 모두가 기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안면이 한 번 있었던 흑묘파의 문주만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

“양, 양괴 대협 말이오?”

“그렇다면 음괴 대협도 함께 왔겠구려!”

“드디어 그분을 직접 만날 수 있다니.”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뒷짐을 진 유진산이 보였다.

소문의 인상착의대로 꼬마였지만, 그 누구도 겉모습을 보고 얕보지 않았다.

그리고 양괴의 뒤로 조금 더 큰 아이가 등장하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부분 처음 뵙는 분들이구려. 양괴가 먼저 인사드리겠소.”

“저는 음괴예요.”

음양쌍괴가 먼저 포권을 건네자, 모두가 앞다퉈 자신을 소개했다.

유진산이 그들의 애를 태우며 늦게 등장한 이유.

그것은 지금부터 이어질 작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였다.

“어서 이곳으로 앉으시지요.”

유진산은 백규가 빼내 준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뒤에서 단창을 움켜쥔 유설이 호위무사처럼 서서 기립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혼자서 들어왔을 테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이곳에 있는 자들이 어디 보통 고수들이란 말인가. 사파의 절대자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지 않으려면 손녀를 뒤에 세워둬야만 했다.

역시나 등 뒤에 천신(天神)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든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어디까지 얘기했소?”

할아버지의 뒤에서 유설이 눈에 힘을 주고 한 명씩 쓱 훑어보았다.

심연처럼 가라앉은 음괴의 눈빛을 마주한 자들은 가슴이 철렁해졌다.

화경의 고수조차 움츠러들게 하는 위압감. 그 앞에선 모두가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배분을 우선시하는 정파와 달리, 강자지존의 사파에서는 힘이 곧 서열이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백규가 현재 상황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자세히 들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유진산도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정파 놈들이 공격해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이구려. 내 말이 맞소?”

“그렇습니다. 호현의 입구에서부터 진을 치고 상대할 것입니다. 예전처럼 말이지요.”

무림맹의 주도로 행해졌던 사파말살작전. 그 당시에도 호현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비록 막아내긴 했지만, 무수히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그때는 정파에서 머릿수로 몰아붙였다면, 지금은 내로라하는 정예고수로만 집결하고 있었다.

“허나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애꿎은 문도들이 많이 죽지 않겠소. 아이들도 위험할 테고.”

묵묵히 지켜보던 섬전일도 천무룡이 처음으로 대꾸했다.

“우리도 생각해보았지만, 지금으로선 이 방법이 최선인 것 같소.”

“최선이라……. 놈들이 집결하는 장소가 어디라고 했소?”

“추적하던 놈들이 하나같이 회운산(會雲山)에서 사라졌소. 그곳이라면 아마도 금양사에서 모이고 있을 것이오.”

“음.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군. 헌데 바쁘실 분들께서 왜 굳이 기습을 기다리고 있소? 먼저 쳐들어가서 그냥 쓸어버리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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