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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147화 (147/238)

147화 고귀한 사파의 영웅 (3)

쩌적-!! 콰앙-!!

“큭!”

“크헉!”

음괴를 둘러싼 네 명의 노인이 동시에 튕겨나갔다.

그것도 잠시. 그들의 틈새로 또다시 권황이 비집고 들어가며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돌풍이 휘몰아칠 정도로 맹렬한 공격이었다.

파앙-!

유설은 상체를 비틀어 자신의 얼굴보다 큰 주먹을 우측으로 흘려보냈다.

놀랍게도 회피와 공격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곧이어 맹렬한 권풍(拳風)이 바람을 찢어발기며 권황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쩌억-!!

“크윽!”

유설이 직접 개량한 소림의 백보신권이었다.

입가로 핏물을 머금은 채 주르륵 밀려나는 권황 마광철. 그의 동공이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로 다른 정파의 고수들이 자리를 메웠다.

사방에서 세 자루의 검이 맹렬히 다가오고 있었으나, 음괴는 눈 한번 깜빡이질 않았다.

단지 바람결에 춤추는 갈대처럼 상체를 흔들어대고 있을 뿐.

어찌나 빠르게 피하는지 수십 개의 분신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파팟-! 파파팟-!!

날카로운 강기들은 애꿎은 허공만을 난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 번의 호흡이 끝남과 동시에 유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아니, 그렇게 느껴진 것이 전부였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움직임. 그 앞에 세 명의 원로고수들은 일합조차 버텨낼 수가 없었다.

쩌억-! 쿵-!! 콰직-!!

“꺼억!”

“크악!”

다가서는 족족 바닥으로 처박히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일쑤였다.

이런 참상에서도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음괴의 주먹이 일말의 자비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부상자는 점차 늘어만 갔다.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악착같이 덤벼들던 정파의 고수들이 차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 서렸던 분노의 감정은 점차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어찌하여 사파에 저런 고수가…….’

당씨세가의 대공자 당무혁. 사천성에서 한 손에 드는 실력자인 그가 경악에 휩싸인 채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부상당한 왼팔의 상처가 심각했지만, 고통을 느낄 정신도 없었다.

그 누구도 음괴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무림의 십대고수로 평가받는 권황조차도 말이다.

지금의 상황이 마치 꿈만 같았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좀 더 좌측으로 향했다.

죽립을 눌러쓴 괴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웃고 있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기가 그의 온몸을 짓이겨 놓았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깊은 상처를 내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는 이 순간에도 미친 듯이 웃어 재끼며 소림의 무공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오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저자는 누구인데 소림의 무공을…….’

당무혁은 더는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갑자기 몸에서 수급이 분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써컹-!

둔탁한 소리를 뒤로한 채 한 줄기 그림자가 쭉쭉 늘어져 갔다.

흑묘파의 문주 백상. 사파의 제일 살수인 그는 물을 만난 물고기와도 같았다.

혼란을 틈타 그의 손에 벌써 다섯 명의 고수가 목숨을 잃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였다.

그리고 그때 먼 곳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울려 펴졌다.

“설아아아!!!”

이곳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오는 유진산이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용화창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전장을 가로질렀다.

휘리리리릭-!

허공을 배회하던 창은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유설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터업-!

그 순간 유진산은 멀리 떨어진 손녀로부터 전음을 들을 수 있었다.

- 걱정하지 마, 할배. 내가 이 상황을 전부 통제하고 있어.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통제는 무슨 통제란 말인가. 이런 황당한 전음을 진지한 목소리로 보내다니, 정말이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한편 용화창이 음괴의 손에 쥐어지자 무림맹의 고수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기세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답이 없는 상대에게 무기까지 쥐어졌으니, 이제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용화창은 날이 없기에 절단 능력은 떨어지지만, 상대의 무기를 부러트리고 뼈를 분쇄한다.

그 누구도 음괴의 일합을 온전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쩌억-! 콰직-! 콰앙-!!

“크아악!”

용화창이 지나가는 자리로 고꾸라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악몽은 지금부터였다.

설상가상 사파의 원로들이 속속들이 당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정파에게 당한 사파의 서러움과 울분이 화산이 폭발하듯 솟구쳐올랐다.

“오늘 한번 죽어보자, 정파의 쥐새끼들아!”

“뒈져!!”

무림맹의 고수들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원래대로라면 쉽게 물리칠 전력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눈앞의 둘도 감당하지 못하는 판국에 등 뒤의 적들을 무슨 수로 막는다는 말인가.

써걱-! 카앙-! 촤아악-!!

끊이지 않는 비명들. 신체가 절단되는 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아직도 머릿수는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사상자는 속출하고 있었으며 그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이러한 상황을 눈치챈 누군가의 절규가 전장을 메아리쳤다.

“모두 퇴각하시오!!!”

그렇지 않아도 모두가 도망칠 각을 쟤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순순히 보내줄 사파가 아니었다.

도주하려는 자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자들.

치열한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지는 가운데 유진산은 한발 물러서 있었다.

그의 관심사는 정사전쟁의 승패가 아니었다.

잠시 후 곳곳을 두리번거리던 맹수 같은 눈빛이 어딘가를 향해 고정되었다.

‘찾았다, 이놈들.’

혼란을 틈타 어딘가로 발을 빼는 세 명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림맹의 일원들과는 복장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검은 경장 차림에 목까지 가려진 복면. 틀림없이 창룡대원들이리라.

다섯 중에 셋이 빠져나온 것이다.

이 녀석들 만큼은 절대로 보내줄 수가 없었다.

타앗-!

높게 도약한 유진산은 사찰의 어느 전각 위에 안착했다. 그 순간 그의 신형이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용살창을 움켜쥔 그는 창룡대원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하지만 경공의 속도를 높였음에도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다리가 짧은 불리함 때문일까? 쉽게 따라잡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후웁!”

호흡을 크게 한 번 들이켠 그는 내공을 끌어모아 용살창을 있는 힘껏 던졌다.

쐐에에엑-!!

목표는 가장 후미에서 달리는 창룡대원이었다.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창끝에는 섬뜩한 기(氣)가 서려 있었다.

강렬한 기세를 느낀 창룡대원은 몸을 뒤집어 검을 휘둘러 갔다. 비창을 쳐내기 위해서이리라.

그 순간 유진산의 얼굴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걸려들었구나, 이 녀석.’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창이 아니었다.

유가장의 무공이자 필살의 비창술인 비진추신(飛進錐身).

비록 내공의 소모가 크지만 그만큼 강한 위력을 지닌 초식이었다.

까아앙-!!

용살창을 쳐낸 창룡대원은 묵직한 충격에 휘청거렸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그가 비틀거리는 사이 유진산의 움직임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정혜에게 전수받은 대나이신법(大那移身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놈!”

창룡대원의 얼굴에 당황함이 떠오를 무렵. 어느새 벼락처럼 날아든 유진산이 그의 앞가슴에 옆차기를 날렸다.

퍼억-!!

가속도가 더해졌기 때문일까? 일격을 허용한 창룡대원은 무려 오 장을 날아 뒹굴었다.

‘콰당’ 소리를 내며 넘어진 그의 상체에 유진산이 올라탔다.

이후 천근추(千斤錘)를 사용해 몸을 제압하고는 두 주먹을 마구 날렸다.

콰앙-! 콰콰쾅-!!

밤톨 같은 주먹이 계속 꽂히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일격은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가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아? 그래, 어디 계속 그렇게 막아 보거라.”

두 주먹이 내기를 머금으며 유백색의 광채를 띄었다.

창룡대원의 양팔을 분쇄하려던 그때.

갑자기 유진산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니 저놈들이……?’

앞서서 도망치던 두 놈이 뒤돌아서 달려오고 있었다.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동료를 구하려는 것이리라.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것을 보니 권각술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놈들인 듯했다.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움직임으로 보아 노름판에서 만났던 도귀와 비슷한 수준들일 터.

예전 같았으면 포기했겠지만, 과거의 유진산이 아니었다.

‘삼대 일은 무리지만, 두 명이라면 승산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밑에 깔린 놈부터 빨리 쓰러트려야만 했다.

결심을 굳힌 유진산은 다시 공격을 재개했다.

“팔 내려, 이놈아!”

순순히 당해줄 창룡대원이 아니었다.

그 또한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듯 죽기 살기로 버텼다.

콰쾅-! 콰콰콰쾅-!!

조금씩 상대의 팔이 풀리며 급소가 보이려는 찰나였다.

결정타를 날리려던 그 순간. 무엇인가가 눈 앞을 가렸다.

빠각-!

달려온 창룡대원의 발등이 유진산의 얼굴을 강타했다.

곧이어 옆구리에도 묵직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끄윽!”

예전 같았으면 당장에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버틸 수 있다. 믿는다, 금강불괴!’

손녀에게 맞았을 때의 충격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진산은 이를 악다물고 공격을 이어갔다.

좌우에서 발길질이 날아들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를 공격하던 창룡대원들은 기가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이거 왜 안 쓰러져?”

“이 지독한 애새끼가!”

투콱-! 쾅-! 콰콰쾅-!!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의 싸움이었다.

유진산의 코에서는 핏물이 흘러내렸고, 옷자락은 걸레쪼가리처럼 찢겨나갔다.

조금씩 정신이 혼미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질 않았다.

그러길 잠시 후.

기어코 유진산의 주먹이 상대의 방어를 뚫어내고야 말았다. 곧이어 훤하게 드러난 인후로 필살의 일격이 쇄도했다.

밑에 깔린 창룡대원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러기 무섭게 유진산은 옆으로 굴렀다. 금강불괴고 뭐고 신체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이제 단 두 명뿐. 그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칠성(七成)의 화후로는 여기까지로구나.’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다.

게다가 이대 일의 싸움이었지만, 유진산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애초부터 혼자서 전부를 잡을 각오로 쫓아온 것도 아니었다. 목적은 이들의 발을 붙잡고 시간을 버는 것이었을 뿐.

그리고 기다리던 지원군이 때맞춰 도착하기 시작했다.

“어이, 창룡대의 햇병아리들!”

뒤를 슬쩍 돌아본 두 명의 창룡대원들은 흠칫 놀랐다.

쌍도를 움켜쥔 채 상의를 탈의한 무사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근육과 흉악함이 깃든 대머리. 패도문의 문주 백규였다. 얼굴에 누군가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몰골이 소름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이 새끼들이 우리 형님의 얼굴을 아주 조사놨네.”

백규가 움켜쥔 쌍도에서 날카로운 도강(刀剛)이 솟구쳐 오르며 출렁였다.

초절정인 유진산과 달리 그는 화경을 이룬 절대고수의 반열이었다.

창룡대원들은 백규가 다가옴과 동시에 뒷걸음질 치며 도주를 궁리했다.

하지만 그러한 기회는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사방에서 사파의 원로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었으니까.

사도련의 부련주인 맹지호와 귀살문의 제일 고수 양균. 그리고 섬전일도(閃電一刀) 천무룡과 흑사광검(黑邪狂劍) 문종까지.

그 외에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사파의 기라성들이 사방을 에워쌌다.

하나같이 유진산보다 월등히 강한 이들이었다.

“이놈들이 아주 정신을 놓은 모양이로구나.”

“눈깔들이 마실 나갔나. 저분이 누군지 몰라?”

“겁도 없이 음괴 대협의 단짝을 건드리다니.”

도망칠 방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두 마리의 양이 사자의 우리 속에 들어간 형국이었다.

절망에 휩싸인 창룡대원들의 동공이 어딘가를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또렷이 볼 수가 있었다.

사파의 고수들을 비집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음괴의 모습을.

잠시 후 그들의 앞에 우뚝 선 유설이 할아버지를 쓱 바라보았다.

“출수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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