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오늘따라 달빛이 아름답구나 (1)
“아아~~~”
유설이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기다렸다.
유진산은 재빨리 동파육 두 개를 손녀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입속에 가득 찰 만큼 꽤 많은 양이었다.
“자, 어서 한입 먹어 보거라. 이 세상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맛이니 좋은 경험이 될 게다.”
“얌!”
입을 꾹 다문 유설은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씩 굳어지는 얼굴.
이윽고 싸늘하게 식은 표정이 뭔가 심각해 보였다.
설마 억지로 먹고 있단 말인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손녀의 의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유진산은 재빨리 상체를 비틀었다. 손녀의 입에서 무엇인가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경의 신체가 지닌 미각의 예민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까.
아마도 자신보다 백배는 더한 고통을 느꼈으리라.
지금까지 참은 것도 기적이라 할 수가 있었다.
유진산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며 나직이 말했다.
“그러게 간만 보라고 줬더니 왜 그걸 억지로 먹어.”
유설의 눈 밑에 물기가 그렁그렁해졌다.
“……뭐야 이게. 우리 엄마가 이런 요리를 했을 리가 없다구.”
참고 먹으려 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련하게 끝까지 먹으려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야 당연하지. 네 어미가 해준 요리가 천상의 맛이라면, 이건 지옥의 맛이었다. 시키는 대로만 할 것이지, 아비처럼 고집은 엄청나서 할애비 말을 안 들어.”
유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흐이잉…….”
갑자기 이렇게 서럽게 울 줄이야.
마음이 약해진 유진산은 손녀의 어깨를 슬쩍 잡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왜 울고 그래, 아가. 할애비가 장난 좀 친 거지, 사실은 먹을 만했단다.”
유설은 눈물을 쏟아내며 양팔을 휘저었다.
“거짓말 마! 힝……. 나 정말 엄마 안 닮았어?”
“애비 닮으면 뭐가 어때서? 내 막내아들이 좀 뺀질거리긴 했어도 심성은 착한 녀석이었단다.”
“나는 엄마 닮고 싶었단 말이야.”
어찌 아비라고 보고 싶지 않겠는가. 단지 기억에 남아 있는 어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그런 손녀의 심정을 모를 유진산이 아니었다. 당연히 듣고 싶은 말을 해줄 수밖에.
“뭐, 따지고 보면 우리 설이는 어미를 쏙 빼닮았지.”
유진산이 보기에 손녀의 외모는 어미를 닮았지만, 성격은 아비를 더 닮았다.
그러나 진실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이제는 세상에서 자신만이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럼! 그러니까 이렇게 예쁘게 태어나지 않았느냐.”
소매로 눈물을 훔친 유설은 다시 밥상을 들었다.
“다시 만들어올게.”
실패가 있어야 성공도 있는 법.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어오리라 확신했다.
유진산은 다시 가부좌를 틀고 수련을 이어갔다.
또다시 열흘의 시간이 흘렀다.
요리에 취미가 붙은 유설은 온종일 부엌에서 나오질 않았다.
자신이 알려준 요리법을 모두 터득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유진산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며칠은 굶은 듯 얼굴이 홀쭉해진 모습이었다.
세 번 중 두 번은 먹은 것을 게워내야 했기 때문이다.
“어서 먹어 봐. 눅눅해지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해.”
유진산은 심각한 표정으로 손녀가 내어온 음식을 탐색해 보았다.
연못에서 잡은 물고기로 완자를 만들어 넣고 끓인 탕이었다.
국물의 색이 붉고 냄새가 매운 것으로 보아, 초피라는 향신료를 사용한 듯했다.
건더기로는 청경채와 당면, 숙주, 건두부 등이 들어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꽤 그럴싸했다.
“음. 이건 뭐야? 할애비도 처음 보는 탕이로구나.”
“극락탕(極樂燙)이야.”
이렇게나 웃긴 이름을 가진 탕이 있을 리 없었다. 아마도 직접 가져다 붙인 것이리라.
“먼저 맛은 봤겠지?”
할아버지가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에 유설이 국자를 움켜쥐었다.
김이 모락모락할 정도로 뜨거웠지만, 개의치 않고 적당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황제의 수라상을 시음하는 시녀처럼 보는 앞에서 쭉 들이켰다.
“음, 맛있다. 할배도 빨리 먹어 봐.”
직접 눈으로 보았음에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동안 속았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아마도 맛을 느끼지 않기 위해 숨을 참고 있을 터.
내심 불안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손녀가 애써 만들어온 요리를 먹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랬다간 난리가 날 터였다.
확률은 삼 할 삼 푼. 세 번 중에 한 번은 그런대로 먹을 만한 음식이 나왔었다. 그중에서 감탄이 나온 적도 몇 번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유진산은 손녀가 내민 국자를 건네받았다.
“그래. 과연 극락탕일지 저승탕일지 일단 한번 먹어 보자꾸나.”
천천히 국자를 입으로 가져간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국물을 쭉 들이켰다.
유설이 자라처럼 고개를 쭉 내밀고 뚫어지게 주시했다. 결과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어때? 먹을 만해?”
“음…….”
유진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한 움큼 집었을 뿐.
숙주와 청경채가 그의 입속에서 아삭아삭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삼키기 전에 이미 그의 손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엔 국자에 국물과 함께 건두부와 완자를 담았다.
“할배. 왜 말을 안 해? 빨리 어떤지 얘기해줘.”
“가만히 있어 보거라!”
맛이 흥미진진하여 조금 더 음미해볼 필요가 있었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과 함께 씹히는 야들야들한 완자의 식감. 거기에 고소한 건두부가 얹어지자 입안이 행복한 비명을 질러댔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신묘한 맛에 유진산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젓가락을 더 움직이던 그는 그릇에 탕을 한가득 담았다.
“네가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구나. 먹을수록 뒷맛이 무궁무진하다니……. 어떻게 이런 맛을 냈어?”
“그냥 내가 느낌대로 했지 뭐. 맛있어?”
“어디 맛있다뿐이겠느냐. 극락탕의 이름이 과하지 않구나. 아주 최고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혼자서 이런 음식을 만들어내다니.
유진산의 칭찬은 진심이었다.
지금껏 수십 가지의 요리를 내어왔지만, 이렇게나 극찬을 해준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미 유설의 입꼬리는 귓가에 걸려 있었다.
“히히. 정말?”
“그럼! 우리 설이가 바로 요리왕이로구나.”
“맛있게 먹어, 할배. 앞으로 내가 많이 해줄게.”
“그래, 그래. 어서 같이 들자. 탕은 열기가 식기 전에 먹어야 해.”
이곳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모처럼 맛있는 음식 덕분에 마주 앉은 조손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우리 오늘 떠나는 거지?”
“기억하고 있었구나. 맞다. 못된 살수놈을 잡으러 가야 하니, 어서 먹고 채비하자꾸나.”
짙은 흑의에 죽립을 눌러 쓴 두 명의 아이가 지붕 위를 넘나들며 질주하고 있었다.
극락탕으로 기력을 보충한 음양쌍괴였다.
창을 한 자루씩 꼬나쥐고 질주하는 둘은 거침없이 경공을 펼쳤다.
탓-! 타탓-!
다람쥐처럼 날랜 움직임에는 조금의 소음도 없었다.
목적지는 양지현의 외곽에 자리한 금화표국.
근처에 도착한 조손은 은밀히 입구 근처의 나무 위에 몸을 숨겼다.
길목을 지켜보며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유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쳐들어오는 거 맞아?”
“아니, 내일이다.”
“근데 왜 오늘부터 기다려야 해? 지루하게.”
나뭇가지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만 두리번거리니 심심할 수밖에.
유진산은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목소리를 더욱 낮춰 속삭였다.
“자신이 임무를 수행할 장소를 점검하는 것은 살수의 기본이다. 틀림없이 하루 전인 오늘도 염탐하러 올 게다.”
“안 오면 어떡해?”
내일 밤 흑야방의 중추적인 간부가 이곳에 방문한다는 정보를 무림맹의 첩보망에 흘려놓은 상황이었다.
유진산은 반드시 그가 걸려들 것이라 확신했다.
이 정보의 신뢰성을 주기 위해 표국으로 위장한 비밀지부까지 정체를 드러냈으니까.
너무나도 비싼 미끼였지만, 상대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반드시 올 게다. 저 아저씨 중에서 한 명일 수도 있으니 잘 살펴봐.”
밤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인물이 근처를 오가고 있었다.
표물을 옮기는 쟁자수들과 무공을 익힌 표사들. 그리고 길목을 오가는 행인들까지.
그들 중 의심스러운 인물은 한 명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직감으로는 말이다.
“으음~”
“어떤 것 같으냐. 수상한 녀석이 좀 보여?”
유설은 눈빛을 빛내며 한 명 한 명씩 훑어보고 있었다.
아무리 특급살수라 하더라도 현경의 시야에서는 벗어나기 힘들 터.
잠시 후 손녀의 검지가 누군가를 가리켰다.
“저 아저씨, 뭔가 좀 이상해.”
이십 장 거리의 길목 어귀에서 인력거를 내려놓고 쉬고 있는 중년인이었다.
유진산은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리되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과 흙이 묻은 해진 신발. 영락없는 인력거꾼의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몸은 좀 탄탄해 보였지만, 다른 특이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 가지만 제외한다면.
인력거에 몸을 기댄 그는 눈알을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표국을 힐끔힐끔 염탐하는 걸 보니, 손님을 태우러 온 놈은 아니로구나.”
“응, 무공도 익혔어.”
확실히 의심되는 인물이었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 자신에게 기(氣)가 감지되지 않았다면, 최소한 절정의 실력은 가지고 있을 터.
하지만 이렇게 쉽게 살수를 발견하다니? 어딘지 모를 찜찜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그를 향해 한 손님이 다가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손님을 태우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손님이 가격을 더 준다고 해도 출발하지 않겠다니? 그렇다면 이곳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겠구나.”
“응, 내 말이 맞지?”
유진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했다. 여기서 기다렸다가 저놈이 돌아갈 때 쫓아가서 잡아야겠다.”
둘은 날이 더 깊어질 때까지 나무 위에 숨어서 기다렸다.
그동안에도 그의 수상한 행동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가 범인이란 심증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새벽녘이 되어 행인이 모두 사라질 때쯤.
드디어 그가 인력거를 끌고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자, 할배.”
조손은 기척을 죽인 채 그를 은밀히 뒤따랐다.
이동 방향도 수상했다. 본디 인력거꾼이라면 민가가 있는 방향을 향해 돌아가야 했다. 그곳에 자신의 집이 있을 테니.
그런데 으슥한 곳에 인력거를 팽개쳐두는 것이 아닌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유진산은 손녀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서 자빠트리거라.”
한 줄기 그림자가 빛의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인력거꾼의 등 뒤에 도착한 유설은 다짜고짜 뒷다리를 걸었다.
콰당-!
전광석화 같은 기습에 그는 자신이 넘어진 이유조차 몰랐다.
그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릴 때였다.
“누구…….”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진산이 달려들어 그의 복부를 후려찼다.
인력거꾼의 신형이 지면을 쓸며 오 장을 주르륵 밀려났다.
그 와중에 그의 시선이 유진산과 유설의 모습을 확인했다.
“크윽! 음양쌍괴가 왜…….”
말을 이어갈 기회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그의 안면에 유진산의 주먹이 틀어박혔으니까.
“더러운 살수 놈이 누굴 함부로 부르느냐.”
무릎 꿇은 그의 등 뒤에서 유설이 양쪽 어깨를 움켜잡았다.
“크헉! 잠, 잠깐…….”
인력거꾼은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그를 제압한 무지막지한 힘은 제천대성을 억누른 화과산의 바위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할배, 내가 잡았어.”
“잘했다. 그대로 있거라.”
유진산의 손가락 뼈마디가 경쾌한 비명을 토해냈다.
우둑-! 우우둑-!
천천히 다가가자 인력거꾼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다급히 소리쳤다.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나, 난 살수가 아니란 말이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