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잡았다 요놈 (4)
분명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전충과 임천호의 싸움이 먼저 결판난 것이리라.
절대고수들의 싸움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유진산도 예상하지 못했다.
같은 화경이었음에도 실력 차이가 압도적이었던 모양이었다.
뒤이어 무엇인가가 절단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써컥-!
유진산과 그를 상대하던 두 명의 창룡대원이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낯익은 수급 하나.
그것의 주인을 알아본 창룡대원들은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이, 이럴 수가.”
“……빌어먹을.”
임천호는 음괴에게 쫓기는 부대주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동료였다.
하지만 전충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과는 반대로 유진산은 여유가 넘쳤다. 얼굴에 미소까지 옅게 서려 있을 정도로.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들! 너희들 눈엔 개봉제일검이 호구로 보였느냐.”
꼬마의 모습으로 도발하는 그의 모습이 얄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명의 창룡대원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양손을 부르르 떨었다.
“양괴 이놈…….”
“너만큼은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협박에 겁먹을 유진산이 아니었다.
이미 전충이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무서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에 힘 빼거라. 이놈들이 어디서 어른한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창룡대원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그래서일까? 그들은 방어를 도외시한 필살의 초식을 준비했다.
목숨을 대가로 한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
하지만 이미 그들의 행동을 눈치채고 있던 유진산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 요놈들.’
그는 두 명 중 좌측의 적을 향해 측면으로 달렸다.
우측 놈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전충이 이미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호흡을 들이켠 유진산은 잡아당긴 창을 힘껏 내질렀다.
유가살풍창 팔 초식 맹룡아두(猛龍牙頭).
창끝이 원을 그리며 사나운 용의 머리를 만들어냈다.
쏴아아앙-!!
눈앞의 창룡대원도 최후를 직감했는지 절초를 펼치고 있었다.
강기의 회오리를 머금은 검끝이 용의 아가리로 진입하며 충돌을 일으켰다.
꽈아아앙-!!!
거센 기의 폭발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곧이어 날카로운 무기가 살점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우욱-!!
“……크헉!”
창룡대원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 토해져 나왔다.
가슴을 관통한 용살창의 자루가 등 뒤로 절반이나 빠져나와 있었다.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마무리였다.
나날이 발전하는 자신의 창술에 유진산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모처럼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영광으로 알고 가거라. 천하제일 창잡이에게 죽은 것이니.”
언젠가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말이었다.
창룡대원은 안면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뻥긋거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할 수 없고.”
창을 회수한 유진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쓰러지는 소리였다. 굳이 그 모습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우측을 바라보자 또 한 명의 창룡대원도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
그를 쓰러트린 전충이 자신을 향해 다가와 먼저 포권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유진산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개봉부의 관원께서 수배자인 나에게 포권을 해도 되는 겐가. 부윤 나리가 지켜보는데 말이야.”
“수배자라니요? 어르신은 저희를 도와 범죄 수사를 도운 의인이십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왕사평이 이 말에 동의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위에게 복수를 마친 그는 멍한 얼굴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할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나를 예우해주는 게 정말 그 이유 때문인가? 음괴가 두려워서는 아니고?”
유진산의 농담에 전충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사실 그것도 조금은 있습니다. 그나저나 그분은 왜 돌아오지 않으시는 겁니까? 지금쯤이면 이미 잡으셨을 것 같은데.”
유진산도 의아해하던 부분이었다.
설마 손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왠지 불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서 살펴볼 생각이었네. 자네는 어찌하겠나.”
“먼저 출발하십시오. 저는 남아서 마무리를 지은 후 대인을 모시고 이동하겠습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창룡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을 포박해서 끌고 가든지. 아니면 처형을 하든지 뒷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음. 그럼 아까 갈라졌던 산 중턱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유진산은 등을 돌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어서 확인해봐야 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유설이 아직 그 녀석을 잡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유진산은 손녀가 사라졌던 방향을 향해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정신없이 산속을 헤집고 나아가길 잠시 후.
그의 발걸음이 어느 순간 뚝 멈추었다. 주변에서 흔적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분명한데…….’
반경 십여 장이 거의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수십여 그루의 나무들이 꺾여 나갔으며, 거대한 구덩이가 듬성듬성 존재했다.
격렬한 격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유진산의 고개가 돌연 정지했다.
‘쟤가 저기서 뭘 하는 거지?’
이십여 장이 떨어진 나무 아래.
그곳에 다람쥐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손에는 회초리 같은 나뭇가지를 움켜쥔 모습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쉬지 않고 뭐라 떠들어대고 있었다.
“왜 그랬어? 어서 말해! 우리 가족들한테 왜 그랬냐고?”
상황을 파악한 유진산은 황당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기가 뭘 안다고 심문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은 엄연히 자신의 몫이었다.
유진산이 한달음에 달려가 손녀를 나무랐다.
“왜 네가 먼저 심문하고 있어!?”
“할배 왔어? 물어봐도 아무 말도 안 해.”
“이런 건 할애비가 하는 게다. 어서 비켜 보거라.”
유설이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일어섰다.
“……응.”
드디어 눕혀져 있는 부대주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어찌나 맞았는지 전신이 피떡이 되어 있었다.
코는 주저앉았으며, 이빨은 절반 이상이 날아간 몰골이었다.
그는 미세한 미동조차 없었다.
동공 또한 허공에 정지해 있었다. 마치 눈을 뜨고 죽은 사람처럼.
“혹시…… 지금껏 시체랑 대화했던 거니?”
“아니야, 살아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맥박과 호흡이 미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때려눕힌 것이다.
“음. 그래도 대화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두들겼어야지.”
“계속 저항하니깐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유설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창룡대의 간부라면 무공이 보통이 아닐 터. 화경의 경지에서도 높은 수준에 도달한 인물이었으리라.
그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이 정도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 그래. 수고했다. 지금부터는 할애비가 알아서 할 테니, 저리 가서 쉬고 있어.”
유진산은 다시 진중한 얼굴로 놈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무엇이냐.”
“네 부하가 부대주라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럼 창룡대에서 서열이 두 번째겠구나. 대주는 누구지?”
역시나 그에게선 아무런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관계는 없었다.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까.
단지 한번 떠봤을 뿐이었다.
“뭐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럼 이제부터 노부가 뭘 할 생각인지 알려줄까?”
이제야 그의 동공이 유진산을 향해 움직였다. 궁금하긴 한 모양이었다.
“죽일 생각은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 너는 우리와 함께 개봉부로 가게 될 게다.”
유진산은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동요하는 것이리라.
“이후 너를 미끼로 삼아 다른 놈들을 유인하고, 모조리 잡아채서 참수할 계획이다. 아마 부윤 나리도 좋아하겠지.”
“이, 이 악마 같은 자식…….”
“그 말은 동의할 수 없군. 할 말은 그것뿐인가?”
부대주는 화가 난다는 듯 이를 뿌드득 갈아댔다.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의 준비를 너희 둘이서 모두 망쳐버렸다.”
“준비? 준비라면 애들을 납치해서 키우는 걸 말하는 게냐.”
창룡대의 다음 기수로 키워지는 아이들을 빼돌려 패도문으로 보낸 게 자신이었다.
그리고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지금까지 척살한 창룡대원의 숫자만 거의 스무 명에 가까웠다.
한 시대에 활동하는 창룡대의 구성원이 백여 명이었으니, 벌써 이할 가량이 음양쌍괴의 손에 죽은 것이다.
“양괴…… 너도 천축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음. 알고 있지. 너희들을 조사하다 보니 그렇다더구나. 근데 그게 왜?”
“그들을 감시하는 안서도호부는 건들지 말았어야 했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짓을 벌인 것이더냐.”
“죽을 만했으니까 죽였지, 이놈아.”
둔황의 도적들과 노예상들을 눈감아주던 못된 놈들이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유진산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부대주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정창원까지 잃었으니 이제는 그들을 감시할 수단이 없어졌다. 머지않아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바로 네놈들 때문에…….”
더 이상 듣기가 지루해진 것일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진산이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그러고는 부대주의 뺨을 냅다 후려쳤다.
“거참 시끄럽구나. 아깐 입 꾹 닫고 있더니, 말이 왜 이렇게 많아? 묻는 말엔 대답도 안 하고.”
천축이든 서장이든 새외무림의 세계까지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무림에 있는 이유는 오직 가문의 복수 때문이었으니까.
개봉부에 큰 소란이 일었다.
대낮부터 무기를 움켜쥔 포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대, 대인!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왕사평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진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가 음양쌍괴와 함께 나타났다는 것이다.
전충도 함께 있었으나, 그 또한 그들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포박된 인물까지.
포쾌들은 어색한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신경 쓸 것 없으니 모두 물러가거라!”
왕사평이 손을 휘저었지만, 어찌 이렇게 해산할 수 있겠는가.
몇몇 관원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어째서 대인을 납치한 수배자들이 함께 있는 것입니까?”
“설명해 주십시오, 대인!”
“체포할 수 있도록 명령해주십시오!”
그때 전충이 왕사평의 앞으로 나서서 검집을 올렸다. 길을 트기 위해서였다.
“다들 오해하고 있는 것이오. 대인께서는 납치된 적이 없었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대인이 저 마두들에게 끌려가는 걸 우리가 다 보지 않았습니까?”
전충은 무표정한 얼굴로 거침없이 답했다.
“전부 연기했던 것이오. 범죄자들을 속이고,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모든 게 수사를 위한 눈속임이었단 말입니까?”
“그렇소. 같은 편까지 속여야 할 정도로 아주 중대한 사안이었소.”
그때 누군가가 뒤쪽에서 따라오는 음양쌍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그럼 저놈들은 왜 계속 따라다니는 겁니까?”
그 순간 가만히 듣고 있던 왕사평이 근엄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어허!! 목숨 걸고 수사를 도운 귀인들에게 저놈들이라니!? 어디 다시 한번 지껄여 보거라!”
그의 한마디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더는 아무도 반문하는 자가 없었다.
그 모습이 재밌었던 것일까? 유설이 씩 웃으며 왕사평의 등 뒤로 바짝 이동했다.
그러더니 관원들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 상황에서 장난을 치다니.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그저 멍한 얼굴로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들이 정청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