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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188화 (188/238)

188화 첫 번째 손님들 (3)

어째서 동물의 사체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털은 모두 빠져 있었으며, 피부는 검게 썩어서 말라비틀어진 형태였다.

설마 불사(不死)의 능력이라도 지닌 존재란 말인가?

날카로운 이빨을 탁탁 부딪치는 모습에 모두가 오싹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떡해요?”

“나, 나오려고 해요!”

손녀가 데려온 친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유진산을 재촉했다.

고강한 무공은 물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아이들이었지만, 지금은 무섭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상식을 벗어난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그러나 당황스러운 것은 유진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할배애애!!!”

손녀가 소리를 빽 하고 지르고 나서야 유진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근처에 세워두었던 갈고리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다들 할애비 뒤로 물러나거라!”

유진산은 아이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저것의 정체가 무엇이든 결코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시뻘건 눈동자. 그리고 잇몸까지 드러낸 날카로운 이빨은 무척 공격적이었다.

몸을 좌우로 바둥대던 그것은 기어코 땅속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성공했다.

동시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네 발로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이것저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입을 쩍 벌린 모습을 보니 자신의 머리를 물어뜯으려는 듯했다.

이렇게 순순히 당해줄 유진산이 아니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그는 갈고리를 휘둘러 정확히 놈의 몸통을 가격했다.

푸욱-!!!

날카로운 갈고리의 날들이 썩은 몸뚱이를 뚫고 등 뒤로 빠져나왔다.

“할애비가 잡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뒤에서 지켜보던 유설이 다급히 검지를 뻗었다.

“아직 살아있어!”

다시 전면을 바라본 유진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갈고리에 매달린 놈이 몸을 흔들어대며 빠져나오려 발악하고 있었다.

분명히 심장의 위치로 짐작되는 곳을 관통했거늘.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모두 다른 데 보고 있거라!”

굳이 잔혹한 장면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유진산은 놈을 관통시킨 갈고리를 뒤집어 바닥에 꽂아버렸다.

이어서 발로 목을 누르고는 움직일 수 없도록 천근추를 시전했다.

“죽었으면 저승에서 쉴 것이지, 왜 가질 못하는 것이냐.”

우선 마무리부터 지어야 했다.

그는 손날로 갈고리의 대를 사선으로 절단했다.

곧이어 날카롭게 선 나무의 끝이 밝은 기운에 휩싸였다.

강기(剛氣)로 끝장을 낼 작정이었다.

눈부신 빛무리가 유진산의 발아래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푸욱-! 써컥-! 촤아악-!!

정체를 알 수 없는 흉악한 모습의 사체는 그렇게 갈가리 찢겨나갔다.

그것은 머리가 절단되고 나서야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다.

유진산은 근처에 있는 짚단으로 그것을 우선 덮어두었다. 잠시 후 도구를 가져와 치울 생각이었다.

“방금 그거 뭐였어? 징그럽게 생겼어.”

손녀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유진산도 그것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으니까.

그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금 상황을 대충 둘러댔다.

“놀랄 것 없다. 할애비가 강시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었지? 어떤 몹쓸 놈이 동물을 강시로 만들어서 석상 밑에 봉인해 놓은 모양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분명 강시 따위의 종류는 아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강시는 제작하는 비용과 노력에 대비해 효용성이 최악이라 마교조차 손을 대지 않는 존재였다.

하물며 동물로 만든 강시라니?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근데 우리 집 밑에서 왜 강시가 나와?”

“그건 할애비도 모르지. 예전에 여기 살던 사람들에게 한번 알아봐야겠구나.”

걱정하지 않도록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나 유설은 난생처음 보는 기괴한 광경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서워…….”

“무섭긴 뭐가 무서워? 이런 강시 따위는 네 주먹 한 방이면 저승행이야.”

손녀가 데리고 온 친구들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혐오스러운 존재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유설의 관심도 빠르게 식었다.

“할배, 그럼 이제 우리 뭐해?”

“음. 여긴 이따가 할애비가 치울 테니, 밭일이나 하자꾸나. 다들 괜찮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모두가 흔쾌히 대답했다.

“예, 할아버지!”

“저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유진산은 흐뭇한 미소로 아이들을 데리고 밭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은 혼자 있을 때 천천히 생각해볼 예정이었다.

“자, 가자. 얼른 끝내고, 할아버지가 맛있는 거 해주마.”

개간작업은 두 시진도 지나지 않아 끝마칠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힌 아이들이었기에 소를 사용하는 것보다도 효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작업을 마친 후에는 모두가 전각의 일 층에 모여 풍성하게 식사를 했다.

유설이 검증된 요리 중에 몇 가지를 만들었고, 유진산도 모처럼 솜씨를 발휘했다.

그래서인지 손님으로 초대된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너무 맛있었어요, 할아버지.”

“정말 잘 먹었습니다.”

유진산이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문주님한테도 얘기해 놨다니, 실컷 놀다가 자고 가거라.”

엄밀히 따지자면 아이들은 패도문의 정식 문도들은 아니다.

단지 유진산의 안배로 그곳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모두가 잘 지내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일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은 가족의 일원 같은 관계로 발전한 상황이었다.

“예, 할아버지.”

“헤헤. 고맙습니다.”

친구의 집에서 난생처음으로 자 보는 아이들이었다. 당연히 좋을 수밖에.

모두가 기분 좋게 과일을 먹고 있었다. 한 명을 제외한다면.

유진산이 의아한 표정으로 손녀를 바라보았다.

“아가, 왜 그래?”

모두의 시선이 유설을 향해 고정되었다. 혼자서 어딘가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연 자리에서 일어선 유설이 뭔가에 홀리듯 창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무로 만들어진 미닫이 창문이었다.

그리고 그 틈새의 작은 공간에 손가락을 넣어 무엇인가를 빼내고 있었다.

“할배, 이것 봐봐.”

유설은 마치 보물이라도 찾았다는 듯 그것을 가져와 내밀었다.

둘둘 말려서 묶인 노란색 종이로 일반적인 재질이 아니었다.

묵묵히 받은 유진산은 그것을 냉큼 풀어보았다.

붉은색으로 무엇인가 알아볼 수 없는 글씨가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음. 이건 부적이로구나.”

“부적이 뭐야?”

“일반적으로는 법력이 높은 스님이나 무속인이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쓰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목적으로도 쓰이기도 하지.”

유가장에도 과거 무속 일을 하던 어른이 한 명 있었다.

유진산의 삼촌으로, 어렸을 때 옆에서 지켜본 것들이 꽤 많았다.

“근데 이게 왜 우리 집 창틀에 숨겨져 있어?”

오히려 유진산이 궁금한 부분이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집안에 부적을 숨겨놓았단 말인가.

“그것참 이상한 일이로구나. 찝찝하니 더 있는지 같이 찾아보자꾸나.”

손녀가 데리고 온 친구들까지 총인원은 여섯 명.

그들은 모두 산개하여 집안 곳곳의 부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의 눈썰미는 보통이 아니다.

작은 흔적이나 구멍이라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만두라는 녀석이 소리쳤다.

“찾았어요, 할아버지!”

놀랍게도 대문 아래의 문턱 틈새에 숨겨져 있었다.

“여기도 있어요!”

“저도 찾았어요!”

외부로 통하는 모든 입구에서 어김없이 부적이 나왔다.

그리고 침상의 구석에서도. 탁상 밑면에서도.

일각도 지나지 않아 찾아낸 부적의 개수만 열 개가 넘었다.

도대체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수한 부적이 뭉텅이로 불어나 버렸다.

“모두 수고했다. 할아버지는 어디 좀 다녀와야겠으니, 놀다가 먼저들 자고 있거라.”

이상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기에, 집을 소개해준 임전세를 한 번 만나볼 생각이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공손히 인사하는 아이들의 어깨 뒤로 손녀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소리쳤다.

“올 때 맛있는 거 사와.”

“오냐.”

유진산은 한달음에 패도문으로 달려갔다.

손님을 맞이하는 작은 전각이었다.

그의 앞에는 탁상을 끼고 임전세가 공손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땅속에서 동물의 사체가 튀어나와 어르신을 공격했다는 말입니까?”

임전세의 말투에는 황당함이 가득했다.

그는 유진산이 자신에게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농담이나 하자고 자네를 찾아왔겠는가. 그리고 이것 좀 보시게.”

유진산은 품속에서 부적을 뭉텅이로 꺼내어 탁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게 다 무엇입니까?”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네. 집 안에 부적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말이야. 전에 살던 집주인은 아무 말도 없었는가?”

“전 주인은 열흘도 살지 못하고 나왔다니 아는 게 없을 겁니다. 그간 주인이 수없이 바뀌었다는데, 그들 중에 상당수는 고인이 되어서 물어볼 수도…….”

임전세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자넬 탓할 생각은 없네. 애초에 다 들었던 내용이고, 난 미신 같은 걸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어르신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죠……. 다른 문제는 없었습니까?”

“아직까진 없었지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분명 그 집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일세.”

임전세는 어두운 표정으로 탁상 위에 깍지를 꼈다.

잠시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매매가 끝난 후에 이상한 소문을 하나 듣긴 했습니다. 하도 황당해서 그냥 한 귀로 흘려들었거든요.”

“음. 그게 무엇인가?”

“오래전 호현에 백영교라는 무림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강호의 경험이 풍부한 유진산도 처음으로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활동했던 시대보다 오래전에 멸문한 세력일 확률이 높았다.

“백영교? 어디 계속 말해보게.”

“영생의 비밀을 좇는 사교(邪敎)의 무리입니다. 그런데 그 장원이 그들의 은신처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광신도들이 모여서 의식을 했었다고?”

“어디까지나 소문과 추측입니다. 그리고 신도들의 시체가 그곳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사인도 불분명하고 교주는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찝찝한 내용이었지만, 오래전의 소문일 뿐이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단지 궁금한 것은 정보의 출처였다.

“우선 잘 알겠네. 근데 자넨 그 허무맹랑한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가.”

“저희 문주님입니다. 어제 장원의 위치를 자세히 듣고서는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백규 아우가?”

패도문의 문주인 백규라면 호현에서 대를 이어온 토박이일 터.

그의 말이라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 수도 있었다.

“예. 뒤늦게 알게 된 거라…… 얘기해 봐야 어르신께서 걱정만 하실 것 같으니, 그냥 놔두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는 법.

자신을 위해 말하지 않으려 한 것이었으니 탓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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