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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무사와 지존 손녀-192화 (192/238)

192화 자네만 믿겠네 (4)

유설은 기습적으로 교주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야말로 벼락같은 몸놀림이었다.

유진산이 그것을 눈치챘을 땐 이미 손녀의 앞발이 놈의 복부에 쑤셔박히고 있었다.

쩌어억-!!!

어마어마한 내공이 실린 일격이었다.

교주의 두 발이 지면을 끌며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를 향해 유설이 따라붙으며 백보신권을 발출했다.

눈 깜짝할 사이 주먹 모양의 권풍이 그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어지간한 무림고수는 즉사했을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다.

금강불괴를 수련한 유진산조차 받아낼 수 없었을 정도로.

그러나 상대는 잠시 휘청거렸을 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조심하거라, 아가!”

지금껏 손녀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 저토록 멀쩡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무림의 십대고수이자 곤륜산맥 일대를 주름잡는 곤륜무제도. 그리고 두 주먹으로 무패의 신화를 기록했던 권황조차도 말이다.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그러나 그의 경고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상대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당사자인 유설이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할배, 옆으로 물러나. 빨리.”

손녀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

유진산은 일단 보법을 펼치며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교주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백보신권이었다.

유설이 상체를 비틀어 피해내자, 조금 전까지 유진산이 기대어 있던 벽면이 폭발해버렸다.

만약 자신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면, 낭패를 당했을 터였다.

유진산은 간담을 쓸어내렸다.

드디어 유설과 교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둘은 서로를 향해 권풍을 마구 쏟아내면서도 한 발자국도 물러서질 않았다.

지하 밀실이 무너질 듯 요동치며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백보신권까지 흉내 내다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오늘 반드시 저놈을 끝장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환을 감당할 수가 없을 터였다.

유진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떻게 손녀를 도울지 고심했다.

그때 기절해 있던 만호가 정신을 차리며 눈을 뜨고 있었다.

“……예, 어르신.”

“어서 저놈을 해치울 방법을 알려주게.”

만호는 부축을 받아 일어서며 둘의 싸움을 살펴보았다.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지금 손녀분의 뒤에서 장군님이 함께 싸우고 있지만, 버티는 것이 다입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녀의 뒤를 한번 살펴보았다.

역시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네 말은 우리 외에 영적으로도 뭔가 충돌하고 있다는 말인가?”

“예. 그래서 지금 손녀분이 저렇게나마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유진산은 그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어쨌거나 보이지도 않는 수호신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도울 방법은?”

“……죄송합니다, 어르신. 더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유진산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손목을 잡고 진중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얘기했다.

“자네라면 할 수 있네. 어서 방법을 찾아주시게!”

만호는 잠시 고민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그는 품속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동그랗게 말린 노란 종이뭉치였다.

“이 부적을 놈의 입에 물리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잘 알겠네. 잠시만 기다리시게.”

대답은 했지만, 그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손녀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존재였다.

유진산은 비장한 표정으로 끼어들 틈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둘의 움직임을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아가, 그놈을 잠시 움직일 수 없게 해야 한다! 아끼지 말고 숨겨 둔 힘까지 써 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설의 전신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불타올랐다. 거기에 머리를 감싼 두광까지.

쏴아아악-!

‘불문사자신공(佛門獅子神功)?’

갑자기 손녀의 움직임이 급격히 빨라졌다.

어찌나 빠른지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 순간 한 치의 밀림도 없던 교주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세를 점한 것이다.

“옳거니, 잘한다!”

유진산은 희망에 찬 눈빛으로 손녀를 응원했다.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절세무공이었다.

역시나 깨달음을 통해 수련하는 불문사자신공은 악마도 흉내 내기 힘든 모양이었다.

한참을 응원하고 있을 때였다.

상대를 계속 몰아붙이던 유설의 양쪽 손아귀가 돌연 교주의 손과 맞물렸다.

서로의 손아귀를 붙잡은 둘은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움직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할배, 지금이야!”

저 사악한 놈이 무슨 사술을 부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전에 끝장을 내야 할 터.

유진산은 생각할 것도 없이 필사적으로 달렸다.

키 차이 때문에 부적을 먹일 각도가 나오질 않았다.

그의 발이 지면을 박차고 폴짝 뛰어올랐다.

교주의 목 위에 올라탄 그는 오른손으로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이 고얀 놈이 아깐 잘도 나를 때렸겠다?”

예상대로 놈의 머리는 쉽게 뒤로 젖혀졌다. 손녀에게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위기를 직감한 것일까? 놈의 입에서 기괴한 괴성이 다급히 뿜어져 나왔다.

“시끄러우니까, 어서 이거나 처먹거라!”

유진산은 둘둘 말려진 부적 뭉치를 교주의 입에 확 틀어넣었다.

“그르르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니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입에 물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질 않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목구멍 속으로 부적을 밀어 넣었다. 강제로 먹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무 깊었던 것일까?

텁-!

자신의 손등이 교주의 이빨에 물리는 소리였다.

“아얏! 이놈아, 어서 벌리지 못하겠느냐!”

통증이 밀려오며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금강불괴가 아니었다면 필시 절단되었을 것이리라.

분노한 유진산은 주먹 쥔 오른손으로 교주의 머리통을 마구 때렸다.

쾅-! 콰쾅-! 콰콰쾅-!!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손녀는 양쪽 손아귀를 서로 붙잡고 있었기에 여유가 없었다.

우측을 돌아보자 만호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법검을 치켜세운 후 날에 검지와 중지를 가져다 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법문을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어서 뭐라도 해 보시게!”

아무리 금강불괴의 손아귀라도 이대로 계속된다면 절단될 우려가 있었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만호의 두 눈이 번쩍 띄어졌다.

동시에 그가 움켜쥔 법검에 새겨진 문양들이 빛을 발했다. 그것은 마치 야명주의 야광(夜光)처럼 밝고 웅장했다.

“지금 갑니다!”

교주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다.

앞에선 유설이 붙잡고 있었고, 어깨 위에선 유진산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으니까.

쏜살같이 달려간 만호는 놈의 등 뒤를 향해 있는 힘껏 법검을 내질렀다.

그 순간 바동거리던 교주의 몸이 거짓말처럼 정지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설의 발이 솟구쳐 올랐다.

머리 위로 솟아오른 발끝은 정확히 교주의 목젖을 후려쳤다.

교주의 입이 벌어졌다. 이제야 유진산은 겨우 손을 빼낼 수가 있었다.

동시에 놈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유진산이 피 묻은 자신의 손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다 끝난 거라고 말해 주시게.”

일평생 퇴마는 처음이었다. 두 번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만호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질 않았다.

“교주에게 빙의된 사악한 존재가 몸에서 빠져나간 것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끝을 흐리자 유진산이 다시 재촉했다.

“또 뭐가 문제인가?”

“지금 바로 봉인해야 하는데,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건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상한 점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 유설이 검지를 내뻗으며 소리쳤다.

“할배, 손!”

이제야 유진산도 왼손의 감각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물린 부위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유진산이 당황하는 사이 만호가 기겁하며 소매에서 오색 끈을 꺼냈다.

그러고는 다급히 유진산의 손목에 묶으며 말했다.

“놈, 놈이 지금 어르신의 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 겐가.”

“어서 손목을 절단…….”

유진산은 일거에 거절했다.

“그건 안 돼!”

보이지도 않는 존재 때문에 무턱대고 손목을 절단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신력으로 맞서 싸워 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럼 다른 수단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게 뭐든 손을 잃는 것보단 낫겠지. 어서 말해 보시게.”

만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게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르신의 왼손에 악마를 봉인하는 것입니다.”

신체 일부에 이렇게 위험한 놈을 봉인하겠다니.

찜찜한 일이었지만, 손을 자르는 것보단 나을 터.

“일단 진행하시게.”

“알겠습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만호는 그의 왼손을 붙잡고는 법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어느 순간 유진산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반응을 보였다.

마치 사악한 영혼이 손안에서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떨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면 만호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비지땀을 흘렸다. 호흡까지 거칠어지자 보다 못한 유진산이 말했다.

“쉽지 않은가 보군. 힘에 부치면 잠시 쉬었다 하시게. 그러다 큰일을 치르겠어.”

만호는 멈출 수 없다는 듯 주문을 외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고집을 부리자 유진산이 한마디를 더 토해내었다.

“어허, 이 사람이!? 자네 기혈이 불안정하게 느껴지는데, 그러다 죽어.”

만호의 눈빛엔 죽더라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때 지켜보던 유설이 그의 등에 오른손을 슬며시 얹었다.

“내가 도와줄게요.”

그 순간 찬란한 황금빛 기류가 만호의 등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불문사자신공의 자비로운 기운이었다.

파도처럼 끝없이 스며드는 엄청난 기운이 만호의 단전을 타고, 다시 손으로 발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유진산의 손을 방울처럼 감싸며 눈부시게 빛났다.

유진산이 회심의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효과가 있는 것 같구나. 계속하거라, 아가!”

그때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헛것을 볼 수 있었다.

손녀의 등 뒤에서 거대한 관우 장군이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곧이어 손의 떨림이 점차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멎자, 만호의 주문이 동시에 멈추었다.

그는 자신의 왼쪽 소매를 걷고는, 재빨리 염주를 빼내어 유진산의 손목에 걸었다.

“휴. 겨우 성공했습니다. 큰일 날 뻔했어요.”

“자네 많이 지쳐 보이는데, 괜찮은 겐가.”

“저는 괜찮습니다. 어르신은요?”

유진산은 왼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해 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아. 아니, 오히려 뭔가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것 같군.”

“손목의 염주가 놈의 힘을 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빼내지 마십시오.”

본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 법

“만약 빼면 어떻게 되는 겐가.”

“어르신께서 악마의 힘을 제어할 수 있다면 모를까. 반대의 경우라면 화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음. 찝찝하니 계속 차고 다녀야겠구만.”

사건이 잘 해결되자, 긴장이 풀어진 유설이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할배, 나 배고파.”

모처럼 큰 힘을 썼기 때문일까? 아직 새벽인데 벌써 배가 고프다니.

허나 해 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오냐. 얼른 올라가서 할애비가 국수 삶아 주마.”

유설은 씨앗이 담긴 보물상자를 챙기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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