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속죄의 기회 (1)
괴승을 둘러싼 셋은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부었다.
백규의 도강이 허리를 베고, 유진산의 용살창이 그의 등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정혜의 권강이 그의 전면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퍽-! 콰직-! 콰쾅-!!
이미 수십 번이나 공격을 성공시켰지만, 괴승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정상적으로는 이미 열 번은 죽었어야 할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유진산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의 전신을 감싼 핏빛기류가 몸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이 괴상한 무공은 결코 금강불괴신공의 아래가 아니었다.
‘세상에 뭐 이런 무공이…….’
철옹성을 두들기는 것 같았지만, 이제 거의 끝자락에 온 것만 같았다.
그는 창을 잡아당기며 내기를 끌어모았다. 강공으로 괴승의 호신강기를 뚫기 위함이었다.
“죽어, 이놈아!”
유진산의 십 성 공력이 담긴 무거운 공격이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한 예감이 전신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뭔가가 이상했다. 이 정도로 강한 일격이라면 어떻게든 방어를 해야 하거늘,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붉은 돌풍을 머금은 용살창의 창끝이 괴승의 옆구리를 파고들려는 그때였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갑자기 괴승의 전신을 둘러싼 핏빛기류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비산했다.
가히 빛처럼 빠른 속도였기에 피할 엄두조차도 내질 못했다.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장원의 담벼락이 무너질 듯 흔들거렸다.
동시에 괴승을 둘러싼 삼 인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유진산은 무려 십여 장을 튕겨 날아가서야 겨우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뭐였지, 지금?’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의 충격파였다.
보면 볼수록 무공의 사악함이 도를 넘어서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놈을 보호하던 핏빛의 강기가 소멸했다는 것이다.
허나 괴승의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자세를 바로잡던 유진산이 갑자기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도주를!?’
갑자기 괴승이 뒤를 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유진산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약간의 내상을 입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 시점에서 백규와 정혜도 막 추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니, 저 새끼가!?”
뒤쫓는 백규의 입에서도 욕지거리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정혜는 옆에서 미친놈처럼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둘의 후미에서 유진산이 어두운 표정으로 쫓고 있었다.
괴승의 경공이 너무나도 빨랐다.
자신도 잡히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무수한 상처까지 입은 몸이거늘,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정혜조차도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놓치면 끝장이네! 반드시 잡아야 해!”
저 무시무시한 놈이 살아서 돌아가면, 발 뻗고 자기가 어려울 듯했다.
유진산은 물론이거니와 백규도 속이 타들어 갔다.
나중에 동료들을 데리고 보복이라도 오면 무슨 수로 막아내겠는가.
“놈의 호신강기가 사라졌으니, 따라잡기만 하면 승산이…….”
백규는 말끝을 흐렸다. 말과는 달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써 괴승과의 거리가 오십여 장이나 벌어졌다.
이런 식이라면 얼마 가지 못해 놓치고 말 터.
마음이 다급해진 유진산은 용살창을 비틀어 쥐었다.
“받아!!”
외마디 외침과 함께 용살창의 창끝이 땅을 박차고 솟구쳐올랐다.
터엉-!!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먹만 한 돌멩이 한 개가 땅에서 떠올랐다.
그것은 곧이어 엄청난 속도로 백규의 등 뒤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설명할 틈이 없었다.
다행히도 백규는 자신의 의중을 알아채고 있는 듯했다.
묵묵히 괴승을 쫓던 그가, 움켜쥔 도를 우측 사선 위로 치켜세웠다.
쏜살같이 날아오는 돌멩이가 옆구리를 지나치는 그때.
막 왼발을 내디딘 백규의 신형이 폭풍처럼 회전했다.
찰나의 순간 넓적한 도의 면이 날아오는 돌멩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경쾌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날아가는 돌멩이에 백규의 힘이 더해지자, 그 속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쐐에에에엑-!!!
바람을 찢어발기던 돌은 급기야 붉은 화염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너무나도 빠른 가속도에 공기가 불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돌이 곧 괴승의 등을 가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 그의 상체가 기이한 각도로 꺾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벽하진 못했다.
화염에 휩싸인 돌멩이가 괴승의 왼쪽 어깨 일부를 짓이기고 지나갔다.
안타깝게도 비켜 맞은 것이다.
역시나 그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비명조차 없었다.
‘……시장으로 들어가면 끝이다.’
우연인지 놈의 발걸음은 정확히 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혼잡한 그곳에서는 추적이 더욱 어려울 터.
답답했지만, 마땅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백규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뒤에서 저주를 퍼부었다.
“빌어먹을 놈아, 가다가 벼락이나 맞아 뒈져버려라!”
곧이어 괴승이 혼잡한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는 길목에 사람이 있든 없든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다.
누구든 가로막고 있다면 어깨로 넘어트리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채서 뒤를 향해 던졌다.
“히익!”
괴승이 지나는 자리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놈을 쫓던 삼 인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허공을 밟고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모두가 포기를 생각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돌연 시장의 중심부에서 육중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괴승의 걸음이 뚝 멈춰버렸다. 마치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듯 서버린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달리다가 벼락을 맞아 전율하는 사람 같았다.
죽기 살기로 도망치다가 갑자기 왜 멈췄단 말인가.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설마 또 무슨 수작이라도 부리려는 것일까? 괴승을 쫓던 삼 인이 성큼성큼 다가가는 그때.
돌연 그의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무릎 꿇은 그는 바람 앞의 갈대처럼 고개를 정신없이 흔들어댔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이었다.
콰쾅-! 쩌억-! 콰앙-!!
어찌나 세게 맞는지 그의 목이 꺾일 듯이 좌우로 휘청거렸다.
놀랍게도 시장 한복판에서 그를 때리고 있던 인물은 바로 유설이었다.
“설아…….”
“아니, 쟤가 왜 저기에…….”
유진산과 백규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다가갔고, 정혜는 전각의 지붕에서 실실 웃고 있었다.
괴승의 눈동자가 돌아가고 나서야 유설의 주먹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곧이어 한 손으로 그의 귀때기를 틀어쥐며 물었다.
“시장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면 돼요, 안 돼요.”
눈에 초점이 풀린 괴승은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입에선 거품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봐줄 유설이 아니었다.
움켜쥔 괴승의 귀를 사정없이 흔들어대며 다그쳤다.
“대답하라구!”
지켜보던 유진산이 재빨리 다가가 손녀를 말렸다.
“됐다. 그만하면 되었다.”
할아버지가 손짓을 보내자, 유설이 울먹이며 뒤로 물러섰다.
“왜 울려고 해? 너랑 이놈이 무슨 관계인데?”
“얘가 꼬치 가게 아저씨 때렸잖아.”
유진산도 쫓아오며 목격할 수 있었다.
손녀가 단골로 가던 노점 상인이 쓰러지는 모습을.
그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 물어볼 게 많았지만, 급할 것은 없었다.
유진산은 우선 괴승에게 다가가 따귀부터 날렸다.
“이 싸가지없는 놈이 어른들을 쫓아오게 해?”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정혜 또한 노인이었다.
도망치던 이 녀석을 쫓느라 가슴이 철렁했던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가라앉질 않았다.
따귀를 몇 대 더 때리자 그의 초점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너는…… 누구인가.”
괴승의 시선은 유설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유진산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 애미다, 이놈아.”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가격당한 그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혈, 혈사객이다!”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주변에서 몰려든 구경꾼들이 소곤거렸다.
“저자가 곤륜무제를 쓰러트렸다던 그 혈사객이라고?”
“확실해! 저 복장과 얼굴의 문신을 봐봐!”
“도대체 누가 저렇게 만든 거야?”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근처의 전각 지붕 위에서 스님이 춤을 추며 소리치고 있었다.
“음괴가 잡았다! 음괴가 잡았다!”
대다수가 사파의 무림인들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모두가 감복하며 유설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역시 음괴 대협이십니다!”
“존경합니다, 대협!”
시장의 중심부로 구경꾼들이 점점 몰려들고 있었다.
이대로는 정신이 사나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선 자리를 이동해야 할 터.
유진산은 먼저 손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 잡아라. 일단 이놈을 집으로 데려가야겠다.
- 응, 알았어.
조손이 좌우에서 괴승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어서 지면을 박차고 멋지게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또다시 사파의 무림인들이 갈채를 보냈다.
“음양쌍괴, 최고다!”
유진산은 괴승을 집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기절한 그를 놔둔 채 손녀를 혼내고 있었다.
“설이 너, 할애비를 두고 가출을 해? 그동안 어디서 뭐 했어?”
유설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며 반박했다.
“가출한 거 아니야. 나는 할배를 찾으러 갔던 거야.”
손녀가 어디서 뭘 하다 온 것인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녀석이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오는구나.”
“거짓말? 내가 왜애~”
유설은 딴청을 피우며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유진산은 손녀가 남겨놓았던 서신을 들어 보였다.
“그럼 이건 뭔데?”
“할배가 먼저 돌아올지 모르니까 남겨놨지.”
미리 답변을 생각해두었던 모양이었다.
역시나 피는 못 속이는 법일까? 그 모습이 아비의 어렸을 때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래서 할애비를 찾으러 무림맹의 분타를 쳐들어갔어?”
“할배가 납치당했을지도 모르니깐 간 거야.”
유진산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힘이나 말싸움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반성하는 기미가 안 보이는구나. 내일부턴 할애비한테 놀아달란 얘기 하지 말거라.”
그 순간 유설이 다급한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소매를 붙잡았다.
“잘못했어.”
이렇게 빠르게 태도가 돌변하다니.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유진산은 뒷짐을 진 채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또 할애비 허락도 없이 싸우러 다닐 거야?”
“아니야. 앞으로 안 그럴게. 맹주가 어딨는지 물어보러 간 거야.”
하루빨리 무림맹주와 싸우고 싶어서 몸이 근질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확실한 승리를 점칠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누가 보면 무림맹주가 네 친구인 줄 알겠구나.”
유설이 다가와서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렇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니 더는 나무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 또한 역근경 때문에 며칠이나 자리를 비운 잘못이 있지 않은가.
이쯤에서 용서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형님!”
백규의 목소리였다.
패도문에 가서 정리를 마치고 이제야 돌아온 모양이었다.
“어서 들어오게!”
잠시 후 전각의 문이 열리며 백규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예쁜 조카, 왜 울었어?”
유설이 백규에게 달려가 옷깃을 흔들며 울먹였다.
“할배가 이제 나랑 안 놀아준대.”
“하하! 삼촌이 잘 얘기해줄 테니, 잠시 나가서 놀고 있어.”
유설이 전각 밖으로 나가자, 백규가 괴승을 살펴보며 물었다.
“이 위험한 놈을 어찌 집으로 데려오셨소?”
“패도문에는 감옥이 따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여기가 더 안전해.”
“하긴, 설이가 있으니 인정은 하오. 하지만 그렇다고 어찌 집 안에서 심문할 수가 있겠소?”
“문제 될 건 또 뭐가 있겠는가. 어서 그놈을 끌고 오기나 하게.”
백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디로 말이오?”
유진산이 바닥의 장판을 거둬내자, 지하로 통하는 작은 입구가 나타났다.
“속죄의 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