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작은 불씨가 재앙을 부르고 (2)
유진산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는 그때였다.
찰나의 순간, 당소군의 양손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아니, 너무 빨리 움직여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도저히 그의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암기를 던지고 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
파파파팟-!
돌진하는 유진산의 전면으로 수십 개의 빛살이 다가왔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암기 하나하나가 내공을 머금고 있어 나무도 꿰뚫을 정도로 매서웠다.
게다가 피할 곳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는.
다가가던 유진산의 신형이 돌연 기이한 각도로 꺾이기 시작했다.
타타탓-!
정혜에게 전수받은 소림의 대나이신법(大那移身法)이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이 경신술은 그야말로 최고의 회피기술이었다.
넘어질 듯 옆으로 누워서 달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기이해 보였다.
당소군과의 남은 거리는 약 삼 장.
유진산이 접근하는 방향으로 십여 개의 암기가 추가로 날아들었다.
푹-! 푸푹-!
암기에 옷자락이 관통당하는 소리였다. 가까스로 몸에 적중되는 것은 피한 것이다.
앞으로 두 걸음.
고작 두 걸음만 더 움직이면 당소군에게 일격을 내지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유진산의 착각이었다.
갑자기 당소군과의 거리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적풍영보(尾適風影步). 폭발하듯 후방으로 미끄러지는 당문의 기술이었다.
‘아니, 이놈이!?’
마치 다 잡은 물고기를 눈앞에서 놓친 심정이었다.
곧이어 당소군의 등이 창고의 벽을 뚫어버렸다.
밖으로 빠져나간 당소군은 거리를 벌리면서도, 능숙하게 계속해서 암기를 쏘아 보냈다.
가히 당문의 가주라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유진산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그의 용살창이 다가오는 암기를 쉼 없이 쳐내었다.
타탕-! 타타탕-!!
바늘처럼 가느다랗고 긴 비침들이었다.
육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기의 흐름을 느끼면서 쳐내는 것이다.
화경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절대로 막아내지 못했을 터였다.
비침 사이에는 간혹 다른 암기도 섞여 있었기에 가슴 철렁한 순간이 이어졌다.
어떤 것은 도중에 방향을 바꾸기도 했으며, 느려졌다가 빨라지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도 유진산은 꿋꿋하게 전진하며 거리를 좁혀갔다.
‘한 걸음만 더!’
우여곡절 끝에 거리를 좁힌 유진산은 용살창을 어깨 뒤로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가 창을 내지르기 직전, 당소군이 지면을 박차고 떠올랐다.
약이 바짝 오른 유진산은 무릎을 굽혔다.
하지만 그는 도약할 수가 없었다. 하늘 위에서 콩알처럼 작은 쇠구슬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주의 비전 무공인 폭우구천뢰(暴雨究天雷)이었다.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나라로 적중당한다면 제아무리 금강불괴라도 온전하지 못할 듯 보였다.
이를 악다문 유진산은 왼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회전했다.
‘회풍탄막(回風彈膜)!’
유가살풍창의 열세 번째 초식으로 방어기술이었다.
유진산의 머리 위로 용살창이 강풍을 뿜어내며, 장막을 만들어냈다.
곧이어 떨어져 내린 쇠구슬이 용살창의 날에 가로막혀 분쇄되기 시작했다.
카앙-! 카카카캉-!!
작은 구슬이었음에도 우렛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만큼 가주의 내공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리라.
아슬아슬했지만 겨우 버텨낼 수가 있었다.
공세가 끝남과 동시에 유진산은 지체하지 않고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드디어 근접전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유진산이 지척으로 따라붙자, 당소군의 소매에서 두 개의 단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문의 무공은 암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움켜쥔 짧고 얇은 쌍검에서 검강이 솟구쳐올랐다.
유진산의 창끝에서도 밝은 빛무리가 발현되며 웅장한 기세를 뿜어냈다.
‘거기까지다, 이놈!’
일광극섬(一光極閃). 유가살풍창에서 가장 빠른 초식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한줄기 빛살이 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안타깝게도 가로막히고 말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이미 다음 초식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창의 긴 타격 거리로 인해 공수가 완전히 뒤바뀐 상황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창끝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당소군은 반격 대신 단검을 머리 위로 교차하며 방어할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었다.
격돌직전 그의 쌍검에서 순간적으로 기의 폭발이 일어나며, 강력한 반발력을 뿜어냈다.
묵직한 폭음과 함께 당소군의 신형이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반대로 유진산은 더욱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유진산은 아차 하는 표정이었다.
‘나를 일부러 튕겨냈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번 한 수는 당소군이 유도한 상황인 듯했다. 자신과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그리고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유진산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지만, 지면에 내려선 당소군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그 순간 당소군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걸로 끝이다, 양괴.’
당소군은 그렇게 확신했다.
허공에서는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여 암기 다발을 피할 수 없을 터.
어느새 그의 손가락에는 단검 대신, 수십여 개의 작은 쇠구슬이 날아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위기를 감지한 유진산은 미간을 좁혔다.
역시나 가주답게 경험이 많고 노련한 당소군이였다.
하지만 위험을 느낀 것은 유진산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귓가로 다급히 손녀의 전음이 들려왔다.
- 할배, 촉수백발타!
그 순간 유진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잠시 잊고 있었다. 아직 자신에게 비장의 한 수가 남겨져 있다는 것을.
손녀가 창안한 무적설이창법 이초식 촉수백발타(觸手百八打).
아직 실전에서 사용해 본 적은 없었으나, 지금 상황에선 최선의 초식이었다.
‘우리 손녀가 만든 창술이 어떤 맛인지,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허공에서 몸을 거꾸로 뒤집은 유진산은 머리부터 떨어져 내렸다.
당소군은 그가 적정한 거리까지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피하지 못하도록 지척에서 필살의 암기술을 펼칠 모양이었다.
그리고 둘의 거리가 오 장 이내로 좁혀진 그 순간.
당소군의 손과 유진산의 용살창이 동시에 움직임을 발했다.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쇠구슬들.
그리고 위에서는 붉은 창끝이 촉수처럼 뻗어 내려왔다.
양쪽 다 최후의 한 수나 다름이 없었다. 이번 격돌에서 우세를 점한 자가 승리를 거머쥐게 될 터.
곧이어 수없이 갈라진 창끝이 다가오는 쇠구슬을 모조리 튕겨내기 시작했다.
카캉-! 카카카캉-!!
날카로운 쇳소리가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암기를 끝없이 날려 보내는 당소군은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진행되는 창술이라니. 난생처음으로 겪어본 기이한 초식에 그는 몹시 당황했다.
아무리 암기를 날려보아도 촉수에 가로막혀 튕겨 나갈 뿐이었다.
‘어떻게 저런 창술이…….’
그러나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어느새 백여 개의 촉수가 지척까지 접근하여 자신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으니까.
그는 다급히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펼쳤으나, 소용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온몸이 갈가리 찢어질 터.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당문의 고수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형, 형님!”
“안돼!!”
아무리 외쳐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그의 전신은 용살창의 그림자 속에 자취를 감추어 버린 이후였다.
뒤이어 거센 굉음이 우박처럼 쏟아져 나왔다.
콰직-! 콰콰콰콰쾅-!!
듣도 보도 못한 무식한 창술의 위력 앞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촉수백팔타의 초식이 마무리되며, 유진산의 두 발이 사뿐히 지면에 내려섰다.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유진산은 용살창을 사선으로 내리깐 채 우측 아래를 쓱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널브러진 당소군을 향해서였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의 사지는 멀쩡히 붙어있었다.
대신 온몸이 너덜너덜한 피투성이의 몰골이 되어있을 뿐.
당소군의 호신강기가 용살창의 강기를 온전히 받아낸 것이 아니다. 그를 타격하기 직전 유진산이 강기를 소멸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오직 둘만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진산이 당소군을 살려준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남몰래 그리고 있는 커다란 그림 때문이었으니까.
“가, 가주님!”
당문의 고수들이 가주를 향해 앞다투어 뛰어갔다.
그리고 유진산은 그들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여유가 넘치는 발걸음. 그리고 손녀를 향해 다가가는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어떠냐. 할애비의 실력을 잘 봤겠지?”
유설이 손뼉을 부딪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응, 우리 할배 너무 멋있다!”
“역시 날 알아주는 건 우리 설이뿐이구나.”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뿐, 유진산의 마음도 뛸 듯이 기뻤다.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가문들인 오대세가. 그것도 상위를 다투는 사천당문의 가주를 잡은 것이다.
아직도 전율이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때였다.
“음양쌍괴, 네 이놈들!”
뒤돌아보니 가주를 둘러싼 당문의 고수들이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문의 기둥을 처참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그들이 성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욕을 먹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눈에 힘 빼거라. 노부가 좋은 말로 할 때.”
기절한 가주를 품에 안은 중년인이 울분을 토해냈다.
“감히 당가를 건들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유진산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너희들만으로? 가능하겠느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단지 분하다는 듯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예상했던 그들의 반응에 유진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소천인지 뭔지 그 녀석이 돌아오거든, 시장으로 오라고 해라. 잠시 둘러보고 있을 테니.”
“너희들 따위가 그분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음. 처음엔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구나. 우리한테 처맞기 전까지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당가타였다.
악명높은 음양쌍괴가 대놓고 마을을 활보한다는데도, 아무도 제지할 수가 없었다.
주변이 잠잠해지자 유진산의 얼굴에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게 잠시 말없이 걷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유설이 팔짱을 끼고는 보폭을 맞추며, 알랑방귀를 뀌었다.
“할배, 근데 배 안 고파? 아까 국수 못 먹었잖아.”
“음. 모처럼 힘을 쓰니 배가 좀 고프긴 하구나. 근데 지금은 우리가 빈털터리지 않느냐.”
“아니야. 나 돈 있어. 내가 사줄게.”
“네가? 돈이 어디서 났어?”
“아까 걔한테 빌렸어. 소공자.”
기절한 녀석이 무슨 돈을 빌려준다는 말인가.
아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리품으로 챙긴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오직 힘이 법으로 작용하는 무림이었으니까.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상대방의 목숨까지도.
“얼마나 있는데?”
유설이 보조개를 피어 올리며 물었다.
“히힛. 궁금해? 보여줘?”
손녀의 얼굴을 보니, 횡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한두 푼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차피 잠시 후면 알게 될 터.
“됐다, 아가. 일단 좀 둘러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