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일단 깍두기부터 (2)
고종숙은 무를 썰고 있는 선우에게 다가가 양 볼을 꽉 꼬집었다.
“아, 아아!”
“엇, 미안. 미안!”
“아니, 왜 무 잘 썰고 있는 아들 볼은 꼬집고 그래요?”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고종숙은 이번에는 선우의 아래턱을 매만졌다.
손에는 깍두기 양념을 잔뜩 묻힌 채로.
덕분에 선우의 아래턱은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아니, 턱은 왜 만지시는 건데요?”
고종숙은 마치 무언가를 벗겨 내려는 듯 아래턱의 살을 잡고 위로 들어 올리려는 시늉을 했다.
손가락으로 꼬집히는 것도 따가웠고, 양념이 피부에 스며들어 또 따가웠다.
참을 수 없어진 나는 칼을 놓고 어머니의 손목을 탁 잡았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손목을 잡힌 어머니는 뭔가에 씌인 멍한 표정으로 답했다.
“웬 이상한 놈이 네 얼굴이랑 똑같은 탈을 쓰고 네 행세를 하는 것 같아서.”
“네? 그래서 탈을 벗기려고 이러신 거예요?”
고종숙이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푸웁.
순수한 어머니의 행동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와 버렸다.
다 버무린 깍두기를 여러 개의 통에 꽉꽉 눌러 담고, 마무리는 배춧잎으로 위를 잘 막아 준다.
완성된 통을 한쪽에 옮겨 놓고 어질러져 있는 주방을 정리한다.
설거지까지 마무리하고 난 뒤, 어머니와 나란히 석유 난롯가에 앉았다.
손에 쥔 종이컵에는 달달하고 따뜻한 커피믹스가 담겨 있었다.
“어머니, 고생하셨어요.”
“내가 고생은 무슨…… 아들이 더 고생 많았지.”
고종숙 여사는 흐트러진 내 머리칼을 쓸어 올려 주며 말했다.
뭐지, 이 꿀 떨어짐은?
믹스커피 따위는 싱겁게 만들어 버리는 고 여사의 눈빛.
여태껏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눈빛이다.
“어머니, 그런 눈빛으로 아버지 바라본 적 없죠?”
“그런 눈빛? 내 눈빛이 지금 어때서?”
“곰이 와서 눈 속에 꿀 숨겨 놨다고 파먹을 만큼 달달한 눈빛이에요. 그 눈빛으로 아버지 바라봤으면, 동생이 최소 세 명 정도는 있었을 것 같아서.”
“뭐? 이 자식이…… 호호호.”
주먹을 쥐고 꿀밤을 날리는 시늉을 했지만, 고 여사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던 고 여사의 얼굴이 살짝 어둡게 변했다.
“오늘은 휴무일이라 괜찮았는데…… 내일 반찬은 어떻게 한다…….”
진심으로 고민을 하는 것 같은 어머니의 얼굴이 낯설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어머니가 음식 메뉴로 고민을 한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늘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매일 다른 메뉴를 만들어 내던 어머니였으니까.
하지만, 역시 공짜로 되는 건 없었다.
백반집을 십 년을 운영하든 백 년을 운영하든 당장 내일 메뉴가 걱정되는 건 똑같았던 거다.
아니, 오래 운영할수록 아는 게 많아지고 그럴수록 고민은 더 깊어진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대한민국 외식업계를 씹어먹은 외식업 레전드 아닌가.
선우 푸드가 하던 일 중 꽤 쏠쏠했던 사업이 컨설팅 사업이었다.
컨설팅은 말 그대로 그간의 나의 지식과 노하우를 외식업계 사장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
그런 과정에서 나 또한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성장했다.
“내일 반찬이요? 음…… 일단 내일 날씨가 어떻게 되려나…….”
스마트폰을 켜 포털 사이트를 열고 날씨를 확인했다.
흐리다가 오전부터 소낙눈.
많이 춥지는 않지만, 습기가 많고 눈이 오는 날씨.
게다가 흐린 하늘 탓에 기분까지 우울해질 수 있는 그런 하루.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데이터를 떠올려 봤다.
“습기 많고 흐린 날이라…… 거기에다가 눈까지 올 수도 있는 날…….”
여러 가지 음식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5분여쯤 흘렀을까?
불현듯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언젠가 종로 시내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날.
대중교통도 다 끊기고 택시비는 없던 날.
몇천 원 남아 있는 돈으로 배나 채우고 가자고 친구들과 함께 들어갔던 길거리 포장마차.
포장마차 비닐을 걷어 올리고, 내리는 눈을 맞아 젖은 머리를 털고 들어갔을 때 코를 자극해 오던 어묵 국물 냄새.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은 내 인생 최고의 어묵이었다.
“그냥 평소처럼 우거지된장국이나 끓일까? 아니야. 그건 지난 주에 이미 냈던 메뉴인데…… 에휴…… 장사를 이렇게 오래 해도 다음 날 메뉴가 딱 하고 떠오르지를 않으니…… 늙어서 그런가.”
여전히 고민에 빠져 있는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어묵탕 해요. 오늘 깍두기 담그고 남아 있는 무 넣고, 홍고추랑 청양고추도 썰어 넣고요. 칼칼하고 매콤하게.”
“오…… 어묵탕 좋은데?”
어머니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머릿속에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 메뉴가 좋을지 안 좋을지.
“디저트로는 찐빵 준비해요.”
“찐빵? 백반집에서 무슨 찐빵을…….”
“자, 어머니. 생각해 보세요. 우산도 없이 나와서 소낙눈을 맞았어. 그러다가 들어간 백반집에서 눈 맞은 몸을 싸악 녹여 주는 어묵탕을 먹었어요. 이미 기분이 좋아. 근데, 디저트로 새하얀 눈을 닮은 찐빵을 줘. 어때요? 죽이지?”
“오…… 좋네. 좋기는 해. 좋기는 한데…….”
고종숙 여사의 고민이 뭔지 안다.
백반집이라는 게 만 원, 이만 원 남겨 먹는 장사가 아니다.
천 원, 이천 원…… 아니 때로는 백 원, 이백 원을 남겨 먹는 장사이다.
찐빵 하나의 단가는 아무리 싸게 잡아도 약 이백 원.
손님들 기분 좀 좋게 하자고, 이백 원의 원가를 포기하는 결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니. 원가 때문에 그러시죠?”
“응. 그, 그렇지. 원가…… 근데 네 입에서 원가 소리가 나오니까 엄청 낯설다…….”
어머니의 반응은 당연했다.
이 당시의 나는 원가는커녕 매출액이나 고정비, 변동비 등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했으니까.
몰랐다기보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미친 듯이 깨지면서 배웠던 건 차후에 본격적으로 장사에 뛰어들고 나서부터였다.
“낯설죠? 이제부터 슬슬 적응하시면 돼요. 내가 제대로 장사 좀 해 보려고 하니까. 암튼! 이백 원짜리 찐빵 하나로 감동한 손님이 있다고 쳐요. 그 사람이 다섯 번 올 걸 그날의 감동 때문에 한 번 더 와서 여섯 번만 와도 이백 원 그냥 뽑아내는 거잖아요. 그렇죠?”
“아, 그야. 당연히 그렇지.”
“그럼 더 생각할 필요 있어요?”
“아, 아니. 된 것 같은데?”
“오케이. 그럼 찐빵 사러 갑시다!”
멍해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15년 전으로 돌아와 몸이 슬림해진 덕분인지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 * *
내일 장사 준비까지 마친 시간은 밤 10시.
고단해하는 어머니를 집으로 먼저 보낸 뒤,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향했다.
“오랜만에 가 보겠네.”
약 10분 정도 걷다 보니, 오르막이 나왔다.
갑자기 15년이나 젊어진 몸이 되고 보니 아침부터 일어나 고되게 일했는데도 전혀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긴 오르막도 금세 뛰어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몸을 숙여 운동화 끈을 고쳐 맸다.
“좋아. 테스트도 해 볼 겸 한번 뛰어 볼까?”
다리가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원래 몸 관리를 열심히 해서 마흔 살이 되어서도 군살 하나 없던 나였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이런 가벼움은 관리해서 되는 수준이 아니다.
아예 몸 안에 있는 모든 근육과 장기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되는 수준이지.
가벼워진 몸에 신이 나서 뛰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길 끝 언덕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팔각정.
마음이 우울하거나 답답할 때면, 이 정자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층 아파트를 보며 언젠가는 그곳에 살 거라는 다짐을 했고, 번쩍번쩍 빛나는 건물들을 보며 언젠가는 저 중에 하나의 건물을 갖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됐었다.
원하던 걸 다 갖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걸 가졌다고 생각한 뒤에 남은 건……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감이었다.
“휴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날의 치열했던 삶이 생각나기도 했고, 그 모든 게 꿈처럼 느껴져서이기도 했다.
15년 전으로 돌아온 지금이 더 꿈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오늘 하루.
아무런 생각 없이 어머니와 함께 바쁘게 몸을 굴리면서 느낀 건, 부정할 수 없는 생생한 현실감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가고, 같이 부대끼며 깍두기를 만들고, 어머니의 환한 웃음을 보며 믹스커피를 나눠 마신 그 모든 장면.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생생했다.
마흔 살의 선우 푸드 회장 이선우가 스물다섯 살의 선우네 백반집 아들로 돌아온 건, 아무리 볼따구를 꼬집어 봐도 바뀌지 않는 진짜 현실이라는 거다.
“잘됐다. 너무 잘됐어.”
늘 누군가를 이겨 내야 했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모든 걸 이뤄 내고 나면, 그때는 행복한 삶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애석하게도 그 행복을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지. 이번 생은 다르게 살 거니까.”
성공 후에 황무지처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지난 삶은 잊자.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아버지 좋아하시는 계란빵이나 사서 집으로 가야겠다.
혼자서 제대로 식사도 안 챙겨 드셨을 테니.
* * *
고종숙은 다세대주택의 1층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 올라갔다.
2층 현관문에 도착한 뒤, 빠르게 비밀번호를 눌렀다.
띡띡띡. 띠리리.
문이 열리자, 고종숙은 잽싸게 신발을 벗어 던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선우 아빠! 선우 아빠!”
허리 보호대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있던 선우의 아버지 이철민이 끄응 소리를 내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무슨 좋은 일 있어?”
이철민의 얼굴은 고종숙의 그것과 다르게 어두침침하다.
허리 디스크로 근 몇 달간 누워만 있으니 낯빛이 좋을 리 없다.
얼굴이 좋지 않은 건 그간의 고종숙도 마찬가지였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고종숙의 얼굴이 환하다.
“글쎄, 선우 아빠. 선우가…… 선우가!”
“선우가 왜? 또 게임하느라 깍두기 담그러 안 나왔어? 내 이 녀석을 진짜…… 선우 지금 어디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선우가. 글쎄. 호호호호호. 아이, 참.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호호호호호.”
실성한 듯 웃는 고종숙을 보며 이철민은 생각했다.
‘이제 아주 정신이 나갔구먼. 미안하다, 종숙아. 미안해.’
죄스러운 마음이 너무 컸다.
허리 디스크에 걸린 게 자신의 죄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스로가 몸 관리를 못 한 건 맞으니까.
그것 때문에 이 여자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 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조용히 회사나 다닐걸.
음식점을 해 보겠다고 설쳐 댄 후부터 가정주부였던 여자를 일터로 끌어들였다.
빨리 성공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인 탓에 결국 얻은 건 허리 디스크라는 병.
“휴우…… 선우 엄마. 내가 진짜 미안해. 그러니까 좀 진정…….”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선우가 저러는데?”
“그래, 알아. 나도. 근데 선우가 저렇게 된 데에는 우리 잘못도 있지 않은가. 조용히 공부하는 애를 저렇게 장사에 동원한 데에는…….”
“여보! 그게 왜 잘못이야?”
고종숙이 이철민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