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6화 (6/110)

#6화 직화 제육볶음 (2)

완성된 제육볶음을 접시에 담아내고 홀 쪽으로 소리쳤다.

“직화 제육 나왔습니다!”

아까처럼 너무 크지는 않지만, 밝은 목소리로.

“나 반찬 세팅 중. 네가 가져다드려.”

“네, 알겠습니다.”

고종숙 여사는 새로 들어온 손님에게 내어 갈 반찬을 담으며 말했다.

나는 불향을 솔솔 풍기는 제육볶음을 들고 중년 신사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여기 제육볶음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중년 신사는 고개를 들어 가볍게 미소지었다.

‘헐…… 이 사람은…….’

처음 들어올 때 서리 낀 안경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얼굴.

깨끗한 안경을 착용한 그의 모습은 익히 내가 잘 아는 모습이었다.

전생에서 본 것보다 조금 젊긴 하지만, 그 사람이 분명하다.

물론, 이 사람은 지금의 나에 대해 알지 못하겠지만.

“맛있게 드세요.”

나는 마음속에서 떠오른 당황스러움을 감춘 20년짜리 비즈니스 미소로 남자에게 화답했다.

제육볶음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돌아가는데, 옆 테이블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이 냄새 뭐지? 너무 좋은데?”

“불향이잖아, 불향. 밖에 메뉴판 보니까 직화 제육볶음이라고 써 있더라고.”

“직화? 이 집에서 그런 직화 요리도 한다고?”

“그러게. 나도 여기서 직화 요리는 처음 먹어 보는 듯. 아, 아직 먹어 보지는 못했고. 근데 진짜 냄새는 좋은데?”

“그니까. 빨리 먹어 보고 싶다.”

지금이 기말고사 시즌인가?

두 사람은 근처 영훈대학교의 학생들인 것 같았다.

아침 일찍 밥집을 찾은 것, 그리고 두 사람의 몰골이 영 시원찮은 것을 보니 밤새 시험 공부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바쁘게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조금 더 매콤하게 볶아 주자.’

두 사람의 상태를 감안할 때, 몸의 모든 감각이 무뎌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밤을 새고 왔는데 정상이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니까.

이럴 때는 조금 더 자극적인 음식으로 입맛을 돋워 주는 게 좋다.

아까 것보다 조금 더 큰 팬을 꺼내 파기름을 낸 후, 양념해 놓은 고기를 투입한다.

청양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를 한 스푼 추가하고, 작게 썰어 둔 청양고추도 조금 더 준비한다.

기계적으로 팬을 움직여 가며 학생들이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이 집에서 이런 요리도 한다고?’

말을 하면서 놀라던 남학생의 얼굴도 그대로 기억한다.

영훈대학교 학생들에게 있어 선우네 백반의 포지셔닝.

그건 그냥 동네에 흔히 있는 가정식 백반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게들이 전부 문을 닫은 이런 아침 시간 식사를 위해서 찾거나, 아무 고민 없이 그냥 집밥 같은 밥을 먹고 싶을 때 찾는 곳.

그냥 깍두기가 조금 맛있는 평범한 밥집.

누가 학교 근처에 오면 맛집이라고 데려가기에는 꺼려지는 곳.

그런 이유 때문인지 선우네 백반에는 유독 남학생의 비율이 높았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고, 메뉴 선택을 귀찮아 하는 학생들이 학생 식당처럼 찾는 곳인 거다.

생각을 하며 요리를 하는 새에 어느새 7분이 흐른 걸 알리는 타이머가 흘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완성된 제육볶음을 접시에 담고 통깨를 뿌린다.

말을 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와서 완성된 요리를 학생들의 자리로 내어 갔다.

* * *

진민호.

선우네 백반에 오늘 첫 손님으로 온 중년 신사.

그는 입과 손을 바쁘게 놀려 가며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와…… 근 3개월 동안 먹어 본 아침밥 중 최고네.’

고슬고슬한 흑미밥은 물론이고, 정갈하게 내온 기본 반찬들은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 주셨던 집 반찬들을 떠올리게 했다.

콩나물 무침은 아삭했고, 애호박 볶음은 같이 볶아 낸 새우젓과 어울려 구수한 맛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게다가 이 직화 제육볶음은…….

‘이건 동네 백반집 수준이 아닌데?’

25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래도 안 먹어 본 음식은 없다고 자부했다.

영업 일을 하면서 고객들을 접대한다는 구실로 서울의 맛 좋다는 식당은 대부분 다 다녔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고급 식재료들을 쓰는 식당들의 음식과 이 제육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음식에서 나는 불향과 불맛은 지금까지 먹어 본 제육볶음 중 최상급이었다.

거기에다가 이 어묵탕.

제육볶음이 입맛을 자극했다면, 이 어묵탕은 진민호의 감성을 자극했다.

추운 겨울날 눈이 쌓인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걷다 들어간 포장마차.

종이컵에 받아다가 급하게 들이켰던 어묵 국물의 맛.

바로 그 맛이었다.

“아, 너무 좋네…….”

진민호는 속으로 들어오는 뜨끈한 어묵탕 국물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이 어묵탕 국물 한 숟갈은 최근에 힘들었던 그의 삶에 작지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회사 생활 25년.

평생을 바쳐 온 그에게, 회사는 명예퇴직 대상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달리할 줄 아는 것도 없이 회사에만 올인해 온 그의 삶에 다른 먹고살 방편이 있을 리 없었다.

다른 곳에 직장이 잡히면 집에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3개월이 넘도록 오십이 넘은 그를 받아 주는 회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회사를 가는 것처럼 옷을 입고 나와 하릴없이 거리를 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퇴직을 하니 또 배는 왜 이리 더 고픈가.

아침밥을 먹지 않고는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오늘 선우네 백반에서 먹은 아침밥은 힘들었던 몇 개월간의 삶에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 * *

“정말 맛있게 드신다. 그렇지 않니?”

고종숙의 시선은 예의 중년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중년 남자가 먹는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참 복스러워 보였다.

“그렇네요. 참 맛있게 드시네요.”

어머니의 질문에 대답하며, 머릿속으로는 저 남자, 진민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이때부터 벌써 그와의 인연이 있었나?’

자신이 기억하는 진민호는 선우 푸드가 거느리던 한 중식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점주였다.

그 많은 점주 중에서도 진민호는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일단,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럽고 중후한 인상이 돋보였다.

게다가 그런 모습으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매장을 운영했다.

점주들 중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지만, 열정만큼은 가장 훌륭했다.

그러니, 그 수많은 점주 중에서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장사도 꽤 잘됐었지?’

진민호가 운영했던 지점은 늘 매출 상위권을 달렸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 주었던 사장이었다.

그런데, 그 진민호를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전생에서는 선우가 회사를 설립하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죠?”

“인연? 갑자기 웬 인연 타령이야?”

“아니 뭐. 살다 보면 좋은 인연을 못 보고 지나쳐 후회하기도 하고, 악연이 될 사람을 내 인연으로 여기다가 배신도 당하고…… 웃긴 것 같아서요.”

내 얘기를 듣던 어머니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너 설마…… 최근에 여자한테 차였니? 아…… 그래서 네가…….”

고종숙 여사는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선우야. 사람이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을 겪고 나면 그렇게 갑자기 바뀌기도 하더구나. 어쨌든 이 엄마는 참 기분이 좋단다. 그 여자는 분명 악연이었을 거야.”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고 여사의 표정과 말에 나는 어이를 상실했다.

여자랑 헤어져서 내가 철이 든 거라고 생각하다니…….

전생에서 이혼했을 때도 이혼 도장 찍고 나서 바로 미국 법인 설립 문제로 출장을 갔던, 프로 의식 쩌는 사람이 바로 나다.

가만히 보면 아들을 너무 띄엄띄엄 보는 경향이 있다니까.

드르륵.

어머니와 잠시 얘기를 하는 사이 진민호가 의자를 빼고 일어섰다.

나는 얼른 그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데워진 찐빵을 내밀었다.

“손님, 여기 오늘의 특별 디저트입니다. 바쁘신 거 아니면 이것도 하나 드시고 가세요.”

“네? 아…… 이거 찐빵 아닙니까?”

“네. 눈이 오니까 이 새하얀 찐빵이 자동적으로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하나씩 드시라고 준비했습니다.”

“아…… 참…… 따뜻하군요.”

“그럼요. 찐빵은 따뜻하게 드셔야죠. 그래서 미리 데워 놨습니다.”

진민호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요. 찐빵도 물론 따뜻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정성 들여 만드신 밑반찬과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맛의 제육볶음. 아, 아니죠. 이 백반 가격으로는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을 제육볶음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어묵탕과 찐빵까지…… 오늘의 한 끼 식사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따뜻한 힐링이 되었습니다.”

진민호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처음 여기 들어올 때처럼 그의 안경에서 뿌옇게 습기가 차올랐다.

뿌연 안경 너머에는 아마도 눈물이 맺혀 있을 것이었다.

“찐빵은 그냥 들고 가겠습니다.”

부끄러웠는지 그는 헐레벌떡 코트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휘청- 눈길에 미끄러지려다가 균형을 잡고 다시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왜 저렇게 급하게 나가신대? 아이고, 밥알 하나 국물 한 숟갈도 남가지 않고 다 드셨네. 제육볶음 양념까지 싹싹 긁어서.”

테이블을 정리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진한 뿌듯함이 묻어났다.

“정말 깨끗하게 드셨네요.”

“그래. 이거 봐라. 아주 설거지하기도 편하겠다. 호호호.”

“그렇네요. 하하하. 계산하기도 편하게 돈도 안 주고 가셨어요. 여러모로 참 우리를 도와주시네요.”

“뭐? 돈을 안 내고 갔어? 예끼. 천벌을 받을 인간. 아니, 사람 점잖게 생겨 가지고 왜 돈을 안 내고 가. 그것도 오늘 첫 손님이. 에이. 소금이라도 뿌려야겠다.”

싹싹 긁어먹었다고 칭찬할 때는 언제인지 고종숙은 씩씩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소금을 한 바가지 들고나오던 고종숙의 손에서 소금 바가지를 빼앗으며 말했다.

“어머니. 저 사람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마 깜빡했을 거예요. 조만간 다시 와서 계산할 거니까 소금은 뿌리지 말자고요.”

“야.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겉만 번지르르하게 차려입고 사기 치는 놈들 많아. 너무 쉽게 사람 믿으면 안 된다, 너. 특히 장사하려면 더 조심해야 해.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야.”

압니다.

그것도 너무 잘 알죠.

엄마의 그 말을 무시하던 전생의 이선우가 사람 잘못 믿었다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요.

그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저예요.

그런데, 저 진민호라는 사람은 제가 무작정 믿고 있는 게 아닙니다.

돈 몇 푼에 신뢰를 파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그렇게 훌륭한 사장이 될 수 없었을 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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