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7화 (7/110)

#7화 직화 제육볶음 (3)

“어머니. 이번에는 제 감을 한 번 믿어 보시죠. 못 믿으시겠으면 내기라도 하실래요?”

“내기? 좋았어. 이왕이면 좀 큰 걸 걸자. 이번 기회에 선우 너에게 아주 혹독한 세상에 대해 알려 줄 테니까.”

“좋아요. 뭘 걸고 내기할까요?”

잠깐 고심하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일주일 안에 아까 그놈이 밥값 내러 안 오면 한 달 동안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장사 준비하는 거야. 어때?”

에헤이.

아직도 이선우를 못 믿으시는구먼.

그런 건 내기를 하지 않으셔도 당연히 하려고 했는데…….

가만 있어 보자…… 난 어차피 매일 새벽 네 시에 나와서 일을 하기로 했고…… 그러니 어차피 지더라도 나는 손해 볼 게 없는 내기네.

“좋아요. 대신 제가 이기면 컴퓨터 한 대 사서 가게에 두시는 걸로 해요.”

“컴퓨터? 야, 너 가게에서도 게임하려고?”

“에이…… 게임은 무슨…….”

선우네 백반은 그 흔한 POS 시스템도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매출이나 원가 등의 관리를 위해서는 작은 가게에서도 컴퓨터를 활용해 관리하는 게 필수이다.

“내기하실 거예요, 말 거예요?”

“좋아! 내기하자. 후후훗.”

고종숙 여사는 이미 내기에 이긴 사람처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귀여우시네. 후훗.’

* * *

“오빠…… 이거 완전 미쳤는데?”

“그치? 완전 제대로네 이거…….”

“무슨 백반집에서 이런 불맛이…… 여기 원래 이런 데 아니었잖아?”

말을 하면서도 여자의 입으로는 제육볶음이 실시간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

입에 한껏 넣은 고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남자가 대답했다.

“내 말이…… 지난 주에 왔을 때만 해도 진짜 그냥 엄마가 해 주는 집밥 느낌이었는데…….”

“그래. 건강한 맛이지만 뭔가 부족하고 서운한 그런 맛.”

“그냥 나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들이 집밥 생각날 때 딱 먹으면 좋을 것 같은 그런 맛.”

“맞아. 근데, 여기 깍두기도 너무 맛있는데?”

“응. 깍두기는 원래 최고였지. 사장님! 여기 깍두기 좀 더 주세요.”

“네!”

새 접시에 깍두기를 가득 담아 커플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가져다주었다.

접시를 놓으며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는데…… 둘 다 아까의 초췌함은 사라지고,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됐다.

눈앞에 있는 이 커플을 황금이 든 박씨를 물어다 줄 제비로 키워 보자.

두 사람 다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말이 많다.

아, 말이 많다는 건 좋은 뜻이다.

선우네 백반을 여기저기 홍보해 줄 훌륭한 나팔수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음식 맛은 어떠세요?”

“아, 마, 맛있어요!”

“제육볶음 정말 최고네요. 이거 그냥 단독 메뉴로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하. 맛있으셨다니 다행이네요. 단독 메뉴 건은 저기 계신 사장님이 결정하시는 건데 한 번 말씀드려 볼게요.”

“네, 꼭 좀 부탁드려요.”

남자의 얼굴에서 진심이 가득 느껴졌다.

“조금 맵지는 않으셨어요?”

“아! 저희가 사실 시험 기간이라 밤을 새고 왔거든요. 그래서 입맛이 없었어요. 근데, 매콤한 제육볶음 먹고 나니까 입맛이 확 돌아서 밥 한 공기를 다 비웠어요. 헤헤.”

“저도 평소에 매운 걸 잘 못 먹긴 하는데, 이 정도 맵기는 입맛 없을 때 진짜 좋을 것 같아요. 근데, 평소 같으면 조금 맵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긴 해요.”

“음, 그렇군요.”

정확하게 내가 의도한 그런 맵기였다.

평소의 입맛보다 일부러 더 맵게 만든 거니까.

매운맛은 선택할 수 있게 해야겠다.

보통맛, 매운맛.

주문 받을 때 물어보면 되니까.

“어묵탕은 어떠셨어요?”

“크으. 시험 끝나면 여기 와서 어묵탕에 소주 한잔하고 싶은 그런 맛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떠먹던 어묵 국물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날씨랑도 잘 어울리고.”

“오…… 맛있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식사 도중 자꾸 여쭤봐서 죄송해요! 맛있게 드시고, 디저트도 꼭 드시고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학생들의 친절한 피드백.

음식 맛이 별로였다면 귀찮은 티 팍팍 냈을 텐데, 맛있었으니 저런 피드백도 해 주는 거다.

앞으로 저들은 인간 광고판이 되어 가게를 홍보해 줄 것이다.

사람들은 맛있는 집은 기가 막히게 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린다.

맛있는 식사 한 끼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고, 기분이 좋아진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 하니까.

그러니 맛집 앞에는 텐트를 쳐 놓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위대한 힘을 알고 있으니까.

아침 시간이라 많지는 않았지만, 몇몇 테이블이 채워졌다가 비워졌다.

머리와 옷, 신발에 묻은 눈발을 털어내면서 들어오던 손님들은 나갈 때는 다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계산을 했다.

“선우 엄마, 오늘 진짜 맛있었어요.”

“사장님, 아침밥 든든하게 잘 먹고 갑니다.”

“특별 디저트 찐빵. 최고네요!”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음식 장사하는 사람의 보람 중 하나가 저렇게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는 게 아니겠는가.

그게 바로 매출이랑 연관되기도 하고.

여러모로 좋은 거지 뭐.

어쨌든.

25살의 선우로 돌아온 후 첫 시작은 성공적인 듯했다.

* * *

진민호는 선우네 백반을 나와 눈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소낙눈이라고 하더니 함박눈이네.”

그의 말마따나 하늘에서는 커다란 눈송이가 펄펄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진민호는 우산도 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걷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눈이 반갑게 느껴졌다.

머리통이 크고 난 이후로는 눈은 늘 귀찮은 존재였다.

군대에서는 눈이 내리면 드넓은 연병장을 쓸어야 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눈이 내리면 차가 막히고,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져서 싫었다.

다음 날 빙판길이 되어 버리는 것도 끔찍이 싫은 것 중 하나였다.

“오늘은 웬일인지 기분이 좋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진민호의 머릿속에 아까 선우네 백반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군침이 고였다.

“언제 아내랑 애들도 한번 데리고 와야 할 텐데…….”

끄응.

가족들 생각을 하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눈 내리는 거리를 걸어오면서 마음을 정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 퇴직 사실을 알리기로.

이제는 자신을 받아 줄 회사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기로.

“맛있는 식사 한 끼가 내 인생을 바꿔 버리네? 허허.”

진민호의 얼굴에 너그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굵은 눈발이 그의 머리와 온몸에 쌓여 가고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늘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새로운 날이니까.

* * *

아버지, 어머니가 내 전생에 겪었던 불의의 사고.

거동이 불편하던 아버지가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 가스 버너를 작동시켰고, 실수로 그만 아버지가 덮고 있던 이불로 불이 옮겨붙었다.

움직이기가 어려웠던 아버지는 당연히 제대로 대처를 못 하셨고, 가게에서 일하다 달려온 어머니는 아버지를 구하겠다며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셨다.

이 일은 내 가슴에 깊은 한으로 남았다.

사고 이후로 한동안은 직접 불을 다루는 주방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

아버지가 불쌍하면서도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몸도 불편한 분이 왜 라면을 먹겠다고…… 그냥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밥 가져다 달라고 하지…….

‘남한테 피해 주기 싫어서 그랬겠지.’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세고,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끔찍이 싫어했다.

환자니까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아버지는 아버지 성격대로 지금도 저렇게 고집을 피우고 계시다.

“아버지. 움직이셔야 해요. 이대로 계속 계시면 못 일어나신다니까요.”

“됐다. 내 일은 내 스스로 할 테니까 너는 네 일 해. 괜히 나 돕겠다고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저 똥꼬집, 에휴.

아버지의 저 마음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를 닮는다고 했던가.

내가 전생에서 전 부인에게 항상 들었던 말이 똥고집 좀 그만 부리라는 말이었으니까.

결국 그 똥고집 때문에 이혼까지 한 건지도 모른다.

아내 말은 귓등으로도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좋아.

부자가 똥고집 대결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버지 일어나시기 전에는 저 안 나갑니다.”

나는 아예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다.

“아, 이놈이 도대체 오늘 왜 이래? 어머니가 너 많이 바뀌었다고 좋아하던데 내가 보니 하나도 바뀐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자랑스러운 ‘똥고집’이 어디 가겠어요? 이 좋은 걸 왜 바꿔요. 내 맘대로 해서 아주 좋아 죽겠구만.”

“어허…… 참내. 선우야,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러니까…….”

“아버지. 저도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아버지가 아무리 그래도 난 아버지가 움직이기 전까지 여기서 꼼짝 않고 있을 거예요.”

“…….”

내 똥고집에는 명분이 있다.

전생에 끔찍한 사고의 원인은 결국 아버지의 허리 디스크.

금방 떨쳐 내고 이겨 내실 줄 알았던 그 병이 아버지를 몇 년 동안 괴롭히고 있었다.

그 사고가 난 이후에야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허리 디스크는 수술은 10%밖에 안 돼요. 재활이 90%예요. 가벼운 운동으로는 걷기가 가장 좋아요. 아드님이 아버지 모시고 하루에 30분씩 꼭 산책 다니세요. 명심하세요. 그거 소홀히 했다가 평생 못 일어나는 분도 종종 봤으니까.

아직도 그 의사의 표정과 말투가 그대로 기억난다.

후회도 많이 했었다.

나는 진짜 아버지를 위해 하루에 30분도 쓸 수 없었던 걸까?

이번 생에서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는 콧노래까지 불러 가며 아버지의 자리 옆에 누워 있었다.

그런 나를 아버지는 애써 무시하며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신경이 온통 나를 향해 있다는 걸.

“허험…….”

“목마르세요? 물 좀 가져다드려요?”

“필요 없다. 너 안 가냐?”

“네.”

* * *

“끄응…….”

“어디 불편하세요? 도와드려요?”

“됐대도…… 너 잠 안 자냐?”

“네.”

자강두천.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난 자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스물다섯 살의 이선우가 아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고 회귀한 선우 푸드 회장 이선우다.

고집의 내공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뜻.

게다가 나에게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

돌아온 생에서는 결코 후회를 남기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목표.

모르긴 몰라도 이 목표 의식이 아버지의 고집보다는 훨씬 단단할 것이다.

그렇게 부자의 고집 대결이 시작된 지 한참 후.

삑.

TV 전원을 끈 아버지가 말했다.

“알겠다. 내가 졌다. 이철민 인생에 고집으로 져 본 건 처음이네.”

“유후!”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어머니! 제가 이겼습니다!”

“오, 아들! 잘했어! 선우 아빠. 의사 선생님도 말했잖아. 하루에 30분씩 무조건 걸으라고. 불편하다고 그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안 된다니까.”

“아, 알았으니까 나 좀 부축해 줘.”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한쪽씩 부축하고 일으켜 세웠다.

“제가 집 앞에는 눈 싹 쓸어 놨거든요. 오늘은 다른 데 가면 미끄러우니까 집 앞만 왔다 갔다 하면서 걸어 보자고요.”

“그래. 알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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