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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12화 (12/110)

#12화 특별 서비스

학생들은 고맙다며 몇 번씩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갔다.

특히 과제에 도움을 받은 이초희 학생은 연신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가게 홍보를 확실히 해 주겠다고 했다.

사실 별 도움은 아니었는데…….

그저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해 줬을 뿐이다.

카페 본이 왜 망해 가는지……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쉬운 일이었다.

카페 본의 사례는 외식업 하는 사람들 중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뭐, 어쨌든 잘됐다.

열심히 가게를 알리겠다고 했으니, 믿어 봐야지.

* * *

이수민과 이초희가 나란히 길을 걷고 있었다.

안대훈과 주강재는 한 잔 더 한다면서 근처 맥주집으로 향한 후였다.

“근데 아까 그 사장님…… 완전 무슨 교수님 느낌 나지 않았어?”

“수민이 너도 그렇게 느꼈지? 나도 그랬어. 그것도 산전수전 다 겪고 성공해서 학계로 온 그런 교수님 같았다니까.”

“그래, 맞아.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확 바뀔 수가 있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냥 우리 또래의 친절한 사장님 같던 사람이?”

“내 말이. 그래서 더 멋있더라니까. 일단 키도 크고, 얼굴도 하얘서 인상이 좋은데, 눈빛 딱 변해서 카페 본 실패 요인 주루룩 읊는데…… 완전 멋있더라.”

“그래…… 나도 우리 대훈이 오빠한테서는 느끼지 못한 그런 원숙함 같은 게 느껴지긴 했어.”

“어쨌든 나 오늘 너무 큰 도움 받은 것 같아. 너무 좋아. 너무. 과제 때문에 막혔던 속이 확 뚫렸단 말이지.”

“헤헤. 선우네 백반 누가 데려가 줬지?”

“아이고, 그래. 내가 과제 잘되면 밥 한 끼 살게. 참, 너도 계절학기 듣지?”

“응. 나랑 오빠도 계절학기 들을 거야.”

“그래. 잘 쉬고 계절학기 수업 시작하면 보자.”

“오케이. 잘 들어가. 과제 잘 마무리하고.”

* * *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장사를 시작한다.

손님은 점점 많아져 가고, 장사를 하는 동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바쁘다.

그래도, 나와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장사를 마치고, 다음 날 장사 준비까지 마치면 대략 열 시.

어머니를 먼저 집으로 보내고, 팔각정까지 뛰어 올라간다.

팔각정에서 시내를 한번 내려다보고, 다시 뛰어 내려온다.

스물다섯 살의 몸은 마흔 살의 몸과 비교하면 깃털처럼 가볍고, 몸이 가벼우니 마음 또한 가볍다.

아버지는 내가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운동을 하기 시작하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 참 괜찮은 삶이다.

씻고 책상에 앉은 내가 다이어리에 기록한 첫 문장이다.

다시 돌아온 후 약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참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더 나아질 게 없을 정도로 좋고, 15년의 경험을 가지고 장사를 하니 일하는 것도 그렇게 쉽고 재미있을 수 없었다.

놀고먹어서 편하고 즐거운 삶이 아니라, 주어지는 일들을 즐기며 살아가는 행복한 삶.

“돌아온 후 일주일…… 아직까지는 너무나 만족한다.”

그런데…… 일주일?

일주일 후에 뭔가를 하기로 되어 있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더라?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다가, 다이어리의 맨 앞 페이지를 펼쳤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한 거다.

종이 위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 진민호.

맞다.

이 사람이 오나 안 오나 어머니랑 내기했었지?

내일은 바로 그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었다.

* * *

<오늘의 메뉴>

- 닭볶음탕

- 미역국

- 김치전

- 분홍소세지

- 브로콜리&초장

- 그 외 기본 반찬

메뉴판을 작성한 후, 장사 준비를 시작한다.

어머니와 나는 자연스럽게 업무를 배분하기 시작했다.

기본 반찬이나 국, 밥 등은 어머니가 기존대로 하시고, 나는 그날의 특별 메뉴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오늘의 특별 메뉴는 닭볶음탕.

쌀쌀한 겨울철에는 뭐니 뭐니 해도 이런 매콤한 탕류가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대파, 청양고추는 어슷하게 썰어 준비하고 당근, 감자와 양파는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준비한다.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진간장, 간 마늘 등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최 사장님이 아침에 가져온 10호 볶음용 닭은 끓는 물에 살짝 삶아 낸 후, 찬물로 내장과 잔뼈 등의 불순물을 깨끗이 씻어서 준비한다.

닭과 감자, 당근을 넣고 양념장을 끼얹는다.

물을 충분히 넣고 팔팔 끓인다.

끓어오르고 나면, 불을 약간 줄여서 뭉근하게 오래 끓여 낸다.

국물을 충분히 졸아들면 나머지 야채들을 넣고 한 번 더 확 끓인다.

모든 재료의 양과 레시피는 전생에서의 기억을 토대로 미리 정리해 둔 바를 철저히 따랐다.

그래야 음식 맛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다.

손님들은 한 번 맛있게 맛보았던 그 음식을 다시 먹으러 찾아오는 법이니까.

완성된 닭볶음탕을 한 그릇 퍼내어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어머니, 우리도 밥 먹고 해요.”

“그럴까? 어디 선우가 만든 닭볶음탕 맛을 좀 볼까?”

어머니는 이제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식이 만들어지면 기대에 찬 눈을 하고 맛을 보신다.

“음…… 닭볶음탕도 훌륭하네. 어쩜 이렇게 잡내가 하나도 안 나니?”

“헤헤. 비법이 다 있죠.”

아닌 게 아니라, 아주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인 비법이 있다.

전생에서 선우네 닭볶음탕을 할 때, 아무리 닭을 깨끗이 씻어도 끊임없이 불만 사항이 접수됐다.

닭에서 잡내가 난다는 거다.

길이 보이지 않아서 전국에 맛있는 닭볶음탕 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닭볶음탕 집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잡내가 나지 않았고, 또 공통적으로 비법에 대해서는 결코 알려 주지 않았다.

뭐, 당연했다.

나 같아도 지나가던 뜨내기에게 식당 비법을 알려 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던 중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닭볶음탕 맛집 사장님이 애절한 내 얼굴을 불쌍한 듯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 닭을 초벌로 한 번 삶아 봐. 초벌 삶은 물은 버리고, 새 물로 끓여. 소주 이딴 거 안 넣어도 그렇게 하면 잡내 잡힐 거야.

그 길로 식당으로 돌아와서 사장님의 말씀대로 실행했다.

그 후로는 한 번도 잡내가 난다는 컴플레인을 받지 않았다.

그냥 닭을 한 번 초벌로 삶는 것.

쉬워 보이지만, 그게 만만치 않다.

가정에서야 한 마리 분량 정도 초벌로 삶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식당에서는 닭이 한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다.

알면서도 귀찮아서 하지 않는 식당도 많은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래서 비법이 뭔데, 아들?”

“닭고기를 초벌로 한 번 삶아서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소주 같은 거 안 넣어도 잡내가 안 나요.”

“아…… 한 번 삶아서? 오…… 아주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일리가 있네.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도대체?”

“그냥 인터넷에서 배웠어요.”

“아, 인터넷…… 거기에는 참 좋은 게 많구나.”

어머니, 아버지가 뭘 물어보면 인터넷에서 배웠다고 하는 게 습관이 됐다.

인터넷을 못 쓰시는 부모님의 취약성을 이용하는 것 같아 조금 죄스럽지만, 그렇다고 전생에서 배워서 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덕분에 부모님은 인터넷이 무슨 보물창고라도 되는 걸로 생각하고 계시다.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우리 내기하기로 한 거 기억나세요?”

“내기? 아! 그 돈 떼어 먹은 놈!”

“에이. 제가 장담하는데 그 사람 다시 온다니까요.”

“선우야. 내가 이십 년 장사해 본 사람으로서 장담하는데 그 사람은 절대 안 와. 절대!”

“좋아요.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까 결판이 나겠죠. 어느 쪽으로든.”

“그래. 약속한 건 꼭 지켜야 한다. 계속 네 시에 나와서 장사하는 거.”

“그럼요. 어머니도 꼭 약속 지키세요. 가게에 컴퓨터 들여놓는 거.”

“물론이지.”

고종숙 여사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 * *

이초희는 갑자기 교수님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계절학기도 시작하기 전이라 늦잠에 빠져 있는데, 조교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 초희야. 너 뭐 잘못했어? 김흥범 교수님이 너 호출했어.

‘엊그제 과제 제출한 것 때문에 그러나?’

이초희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학과 조교실에 도착하자 아침에 연락을 했던 송은희 조교가 그녀를 맞이했다.

“초희 왔구나.”

송은희는 이초희의 학과 선배로 현재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언니. 나 너무 깜짝 놀랐잖아요. 갑자기 왜 교수님이 호출을…….”

“그러게 말이야. 원래 김 교수님이 학생들 잘 호출 안 하는데.”

“호출하시면서 무슨 다른 말씀하신 건 없으세요?”

“음…… 다른 건 없고, 그때 교수님이 기말 과제 평가 중이셨거든. 너 외식 기업 사례 연구 수업 들었지?”

“네. 맞아요.”

“에휴. 복학생들도 꺼려 하는 그 과목을 왜 들어 가지고는. 너한테는 과제가 너무 어려웠나 보다.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니, 각오는 하고 가.”

“네? 그거 과제가 어려워서 아마 다른 사람들도 잘 못 했을 텐데…….”

이초희는 내심 자신이 있던 터였다.

백반집 사장님이 분석한 내용은 자기가 듣기에도 완벽했으니까.

“어쨌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불렀어. 너만 불렀다고. 김흥범 교수님 성격 알지? 웬만하면, 아니 거의 칭찬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거.”

“그거야 알죠…… 한 학기 수업을 들었는데 왜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러잖아. 이렇게 따로 부르기까지 해서 칭찬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 한 소리 듣는다고 생각하고 그냥 편하게 다녀와. 갔다 오면 언니가 달달한 디저트랑 커피 사 줄게.”

“히잉…….”

조교실을 나와 김흥범 교수실까지 가는 길이 천 리 길 같았다.

분명히 선우네 백반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잘 쓴 것 같은데…… 하긴,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누구를 믿고 잘 썼다고 생각하는 건지.

백반집 사장은 기껏해야 백반집 사장일 뿐이다.

그 사람이 무슨 외식 기업 사장도 아니고, 그냥 동네 백반집 사장이다.

게다가 애들 말로는 사장은 그 집 어머니고 그 아들은 그냥 도와주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이초희의 머릿속이 혼돈의 카오스가 되었다.

그녀는 제 손으로 머리에 알밤을 먹여 가며 중얼거렸다.

“내가 누굴 믿고, 그렇게, 바보같이, 어휴. 못 살아…….”

딸깍. 끼익.

그녀가 그러고 있는 도중 김흥범 교수실의 문이 열렸다.

얼굴을 내민 김흥범 교수는 스스로 알밤을 먹이고 있는 이초희를 보고 말했다.

“이초희 학생. 왜 교수실 앞에서 자학을 하고 있어요?”

“네? 아악! 아, 교수님. 안녕하세요.”

“들어와요.”

“네, 교수님!”

이초희가 헐레벌떡 김흥범 교수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 앉아요. 커피, 녹차?”

“아 저는 커, 커피요. 아, 맞다. 언니, 아니 조교님한테 얘기해서 타오라고 할까요?”

“됐어요. 그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합니다.”

“아, 넵!”

얼마 후, 김흥범이 손수 탄 커피를 이초희의 앞에 내밀었다.

“자, 마시면서 들어요.”

“네, 교수님!”

“이거…… 이초희 학생이 낸 과제 맞죠?”

김흥범이 내민 종이 뭉치.

레포트에 적혀 있는 제목.

[카페 본의 실패 요인과 회생 방안 기획]

초희가 제출한 과제가 맞았다.

“네, 마, 맞습니다.”

이초희는 곧이어 떨어질 날벼락을 의식하며 한쪽 눈을 살짝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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