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재동이의 눈물
스마트폰은 세상을 완전히 바꾸게 되고, 그 큰 변화 속에서 외식업 또한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된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바로 ‘배달 앱’의 출현.
2010년대 초에 등장하여 조금씩 세를 키워 나간 배달 앱들은, 나중에는 외식업을 좌지우지하는 갑의 위치에 서게 된다.
음식을 만드는 식당보다 그 음식을 배달하는 어플이 더 강해진 것.
소위 ‘플랫폼’이라는 강력한 괴물의 등장이었다.
전생에 나도 이것 때문에 좀 속앓이를 했다.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고, 편리하게 배달도 하고, 뭐 다 좋은데…… 오랫동안 그 업을 하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뭔가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배달 수수료를 내기도 했고.
그때 사실 이재동이라는 녀석이 생각났었다.
이 녀석이 제대로 살기만 했었더라면, 이런 어플리케이션쯤은 만들고도 남았을 텐데.
재동이랑 함께 미래를 내다보고 이런 걸 만들어서 선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그건 그때의 생각이다.
다시 돌아온 생에서도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지 묻는다면…… 글쎄.
난 지금의 생활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동이의 인생이 망가지는 꼴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이재동. 잘 들어.”
“뭐야? 목소리는 갑자기 착 깔고…… 사장님, 여기 맥주 오백 하나 더…….”
“야, 이재동!”
내 목소리가 제법 컸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재동이는 서슬 퍼런 내 기세에 눌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
“너, 왜 이렇게 변해 가냐 사람이? 지금 네 모습 내가 아는 우등생 이재동이 아닌데? 동네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 이재동은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이 새끼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에휴. 그런 소리 할 거면 때려치워. 나 먼저 간다.”
“거기 그대로 앉아서 내가 하는 말 끝까지 들어.”
재동이가 일어서려던 몸을 멈칫했다.
“네 아버지 그렇게 되신 거…… 모두가 안타깝게 생각해. 그리고, 네가 방황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
“이해? 네가 갑자기 그 얘기를 왜 꺼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부모님 멀쩡히 살아 계신 네가?”
휴…… 내 부모님도 돌아가신 적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화마에 두 부모님을 잃어버렸던 나도 그 마음을 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재동이 아버지는 재동이를 유독 아꼈다.
사실 그에게 꿈을 꾸게 해 주고, 그 꿈을 위해 공부를 하게 만들어 준 건 다 재동이 아버지의 노력이 컸다.
재동이가 군대에 있을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분만 살아 계셨더라면 재동이가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 거다.
“물론 다 이해는 못 하겠지. 하지만, 알 수는 있어. 든든한 지원군이 사라진 느낌. 세상에 홀로 버려진 느낌. 갈 곳을 잃은 느낌. 잘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 느낌. 네가 이런 감정들을 느낄 거라는 건 알고 있다고.”
“…쳇, 너 어디서 책이라도 주워 읽고 왔냐?”
“책? 그래, 그렇다고 해 두자. 그딴 게 뭐가 중요하겠냐? 근데, 재동아. 네 어머니도 아버지 잃고 저렇게 앓아누우셨는데 너까지 계속 이럴 거냐?”
“내가 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하고 있는 건데!? 왜 다들 나한테만 잘해야 한다고 그러는 건데!”
소리를 치는 녀석의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억울하기도 할 거다.
소중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자기 때문도 아닌데, 사람들은 항상 재동이더러 힘을 내야 한다고 한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재동이 너가 잘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위해서 재동이더러 정신 차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재동아. 난 지금 다른 어떤 누구를 위해서 너한테 잘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바로 너를 위해서다. 내 소중한 친구 이재동, 오직 너 자신을 위해서.”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울었다.
난 그저 가만히 있었다.
사람은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하니까.
상대방이 울고 싶을 때 울지 말라고 토닥여 주는 건 진짜 위로가 아니다.
다 울 때까지, 울다가 울다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옆에서 기다려 주는 거.
진짜 위로는 그런 거다.
묵혀 있던 감정을 다 털어 내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마음이 생기는 법이니까.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잠시 한 발 물러서서 지켜봐 주는 거다.
여전히 어깨를 들썩거리는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자식 운 좋네. 하필이면 내일 아침 메뉴가 황태콩나물해장국이야.’
내일은 평소보다 좀 더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야겠다.
재동이가 정신을 차리기를 바라는 사심을 가득 담아서.
녀석의 마음속 깊은 슬픔까지 확 풀어줄 시원한 해장국을 끓여 줘야겠다.
재동이 이 자식…… 새벽 두 시까지 울다가 눈이 퉁퉁 부어 집에 들어갔다.
덕분에 나는 두 시간 자고 다시 가게로 출근했고.
물론, 딱히 힘들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술은 정신력으로 마시는 거라고 하는데 다 헛소리다.
술은 체력으로 마시는 거다.
스물다섯 살의 체력은 마흔 살의 정신력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난 스물다섯 살의 체력에 마흔 살의 정신력까지 있으니까 술을 더 잘 마시는 건가?
가게로 향하는 발걸음이 생각보다 너무 가벼웠다.
재동이 녀석에게는 신신당부를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게에 꼭 들르라고.
안 오면 인연 끊을 각오하라고 했으니 올 거다.
녀석은 여기서 3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살고 있다.
오늘의 메뉴는 황태콩나물해장국.
해장국을 제외한 다른 반찬은 어머니에게 맡기고 황태해장국 조리에 들어갔다.
황태채는 미리 잔가시를 빼고 손질해 두었다.
손질한 황태채는 들기름을 넣어서 조물조물 무쳐 준다.
이때 황태채에 들기름을 넣고 불에 볶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잘못된 조리법이다.
그렇게 하면 황태 해장국 특유의 뽀얀 국물이 잘 우러나지 않는다.
들기름이 잘 밴 황태채에 물을 충분히 넣고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중약불로 불을 줄이고 뭉근하게 끓여낸다.
양파, 대파, 고추 등 준비한 채소를 썰어 주고, 두부도 깍둑썰기 해 준비한다.
그사이 황태국물은 뽀얀 사골국물처럼 우러나 있다.
여기에 미리 준비해 둔 콩나물과 양파를 넣고 조금 더 끓여 준다.
다진 마늘, 썰어 놓은 두부, 대파, 고추 등을 추가해 주면 황태콩나물해장국 완성.
밥 짓기와 반찬 만들기까지 장사 준비를 모두 마친 후 메뉴 보드에 오늘의 메뉴를 적는다.
<오늘의 메뉴>
- 황태콩나물해장국
- 흰쌀밥
- 분홍 소시지
- 애호박전
- 그리고…… 선우네 백반 기본 반찬들!
집중해서 장사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오픈 시간이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 아침밥 단골손님인 근처 공사장의 인부들부터 들어온다.
“이야, 오늘 해장국일 줄 알고 어제 소주를 또 들이부어 줬지.”
“언제는 술을 안 먹는 날도 있었어?”
“이 사람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술 좀 작작 마셔. 그러다 일찍 죽어.”
“내가 왜? 어차피 여기 선우네 오면 어제 마셨던 술 다 해장이 될 텐데 뭘 걱정해.”
“뭐,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인정! 사장님, 저희 세 명이요.”
이후에도 계속 손님들이 들어왔다.
나는 오늘따라 괜히 문 쪽에 계속 시선을 뺏기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가 물었다.
“선우야, 누구 오기로 한 사람이라도 있는 거니?”
“아…… 재동이요. 오늘 밥 먹으러 오기로 했거든요.”
“내가 아는 그 재동이? 걔 진짜 어떻게 지내니?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에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슬쩍 묻어났다.
아마 동네 사람들 다 어머니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음…… 앞으로 아주 잘 지낼 거예요.”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앞으로 잘 지낼 거라니.”
“그냥 그렇게 아시면 돼요. 참, 어머니. 재동이네 김치랑 반찬 같은 것 좀 싸 줘도 될까요? 어머니가 통 식사를 안 하신다고 해서요.”
“재동이 엄마가? 하이고, 그럴 법도 하지. 나도 너희 아빠 아파서 못 움직이기만 해도 아주 힘들어 죽겠던데 오죽하겠니. 둬라. 내가 아주 푸짐하게 알아서 싸 줄 테니까.”
“오…… 감사합니다. 어머니.”
나는 엄지와 검지로 미니 하트를 만들어 어머니에게 날렸다.
“그게 뭐니? 지금 나한테 뭘 보낸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이 미니 하트를 사람들이 아직 모를 때구나.
“자, 이 모양 한 번 보세요.”
나는 다시 미니 하트를 만들어서 어머니에게 보여 줬다.
“음…… 아무리 봐도…….”
“이렇게 윗마디 부분만 잘라서 보세요. 어때요? 무슨 모양 같지 않아요?”
“어라, 이거 하트 모양이네?”
“네, 맞아요. 앞으로 아버지가 예쁜 짓하면 이 하트 만들어서 쏴 주시면 돼요.”
“호호호. 별걸 다 아네, 별걸. 뭐…… 재미있긴 하네.”
“두 사람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여기 손님 온 줄도 모르고.”
홀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내 눈에 재동이 얼굴이 보였다.
자식, 올 줄 알았다.
내가 씨익 웃자, 녀석도 씨익 웃었다.
뭐 퉁퉁 부은 얼굴 때문에 웃는 건지 우는 건지도 구분 못 하겠지만.
“야, 왔으면 빨리 어머니한테 인사 박고, 일부터 도와야지. 거기 멀뚱히 서서 뭐하냐?”
“어? 아, 그렇지. 어머니, 그거 저 주세요. 제가 할게요.”
“야,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선우야, 너 장난이 너무 심하다. 귀한 손님한테.”
“귀한 손님이요? 제가 뭘요…… 그동안 못 찾아봬서 죄송했습니다. 와서 밥도 먹고 일도 도와드리고 했어야 되는데…….”
재동이의 말에 이번에는 아버지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동아, 무슨 그런 말을 하냐. 자식 친구면 자식이나 다름없는 거야. 자식이 오랜만에 왔다고 섭섭해하는 부모는 없다. 그냥 조금 더 반가울 뿐이지.”
“아저씨…… 감사합니다.”
재동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인사를 또 하니. 어서 자리에 앉아라. 선우야. 특별히 맛있게 한 그릇 만들어 줘.”
“알겠습니다!”
한편, 자리에 앉은 이재동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친구 선우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쟤가 언제부터 주방에서 요리까지 했지?’
사실 지나가는 소문으로 선우가 뭔가 바뀌었다는 얘기는 들었었다.
그래도 그냥 조금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수준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열심히 서빙하고, 열심히 배달하고, 열심히 청소하고.
그 정도 모습을 상상했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 선우는 이 가게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메인 요리를 만들고, 서빙 순서를 정해 주고,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단골손님의 기호를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 준다.
식당에서 일을 해 보지 않은 자신이 보기에도 이 집의 사장은 이선우처럼 보였다.
‘진짜 신기하네…… 몇 달 만에 저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나?’
그러고 보니, 어제의 선우도 참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선우는 착한 녀석이긴 했지만, 조금 소극적인 녀석이었다.
어제처럼 친구에게 소리를 질러 가며 지적을 하고, 조언을 해 주는 그런 친구는 아니었던 거다.
선우의 그 모습 때문에 번개에 맞은 듯 정신을 차린 건 사실이지만.
갑자기 선우가 동년배 친구가 아니라, 한참은 커 버린 어른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