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꼬막비빔밥 (2)
김흥범 교수는 게스트북 페이지에 정기적으로 음식 칼럼을 올린다.
그의 칼럼은 담백하면서도 정직한 걸로 소문이 나 있다.
고로 그의 칼럼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꽤 높다.
오늘 쓸 칼럼을 작성하던 김흥범 교수.
꼬르륵.
머리를 많이 써서인지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점심 뭐 먹지?’
그는 최근에 발견한 ‘외식홀릭’이라는 게스트북 페이지에 접속했다.
그곳에는…… 매일매일 선우네 백반의 메뉴가 업데이트되고 있었으니까.
누군지 몰라도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메뉴를 확인한 김흥범은 흡- 하고 놀랐다.
‘꼬, 꼬막비빔밥?!’
그에게 죽기 바로 직전에 무슨 음식을 먹을 거냐고 물어본다면,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꼬막비빔밥이라고.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수많은 음식 중에 왜 하필 그거냐고.
몇몇 사람은 꼬막비빔밥의 정체도 잘 모른다.
꼬막비빔밥은 꼬막이 많이 나는 지방에서나 유명한 음식이었으니까.
‘이선우 사장…… 보면 볼수록 정체가 궁금하단 말이야. 어떻게 꼬막비빔밥을…….’
처음 선우네 백반에 간 이후로 하루가 멀다 하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김흥범은 선우네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젊은 이선우라는 사람이 선우네 백반의 실질적인 사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겨우 이십 대인 젊은 사람이 이 메뉴를 아는 것도 신기한데, 백반집 메뉴로 내어놓는다라…….
물론, 가게 확장 기념 특별 메뉴라고 설명이 나와 있긴 하지만.
김흥범이 내선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송 조교. 점심 먹었어?”
* * *
김흥범과 송은희가 선우네 백반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호.”
“와…… 진짜 넓어졌다.”
두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서 오세요!”
웬 젊은 학생이 큰 소리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송은희는 그 학생에게 가져온 것을 건넸다.
“여기요.”
“어, 이게 뭡니까?”
“이선우 사장님께 드리는 거예요.”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서양란이다.
확장 축하 선물인 듯했다.
“아…… 전해 드리겠습니다.”
앉아 있던 두 사람의 앞으로 밑반찬이 먼저 세팅되었다.
특히, 한쪽 껍질을 까서 양념을 골고루 올린 꼬막찜이 등장했을 때, 김흥범은 자신도 모르게 헙- 하고 신음성을 냈다.
“교수님. 혹시 어디 편찮으세요?”
송은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아, 아닙니다. 어서 들어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김흥범의 젓가락이 움직였다.
그의 젓가락은 그대로 직진이었다.
꼬막찜으로.
겨울이라 도톰하게 살이 오른 녀석을 집어온 그는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꼬막찜은 손으로 먹어야지.
암. 그게 예의지.
그는 껍질 쪽을 엄지와 검지로 받쳐 들고, 그대로 꼬막을 입으로 가져갔다.
윗니로 꼬막살을 찝어 아래로 훑듯이 살을 빼먹었다.
안껍데기에 살짝 붙어 있는 살점까지 남김없이 긁어먹었다.
송은희는 그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봤다.
첫째, 좀처럼 음식 앞에서 급한 법이 없는 김흥범이 허겁지겁하는 데에 놀랐다.
둘째, 김흥범의 입을 거쳐 나온 꼬막 껍질이 살점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데에 놀랐다.
진짜 깨끗했다.
지나칠 정도로.
그러거나 말거나 김흥범의 꼬막찜 공략은 계속됐다.
꽤 푸짐하게 쌓여 있던 접시가 금세 밑바닥을 보였다.
그사이 송은희는 겨우 한두 개 집어먹으며 맛을 봤을 뿐이다.
‘학과장님한테 많이 먹지 말라고 따질 수도 없고.’
친구였으면 거의 손절각이다.
“꼬막비빔밥 나왔습니다!”
홀에 소리쳤지만, 안순미는 테이블을 정리하느라, 일일 자원봉사자 재동이는 반찬을 세팅하느라 남는 손이 없었다.
내가 직접 들고 가는 수밖에.
꼬막비빔밥 두 그릇을 들고 테이블로 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아, 이선우 사장님. 가게 확장 축하드립니다.”
라고 말하는 김흥범의 입가에는 깨소금을 비롯한 꼬막 양념이 잔뜩 묻어 있었다.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
송은희가 슬쩍 냅킨 한 장을 건넨다.
스윽- 입을 닦은 김흥범이 다시 말한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꼬막찜이 워낙 맛있어서…….”
“아, 그러셨군요. 실례는요, 무슨. 이렇게 맛있게 드셔 주시는 게 저희에겐 큰 기쁨이죠.”
그러면서 테이블을 봤는데…… 저런저런.
김흥범의 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꼬막 껍질.
반면, 송은희의 앞에는?
황량했다.
김흥범 교수,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이지적이고 차가워 보이는 표정의 김흥범에게서 발견한 의외의 모습.
아마도…… 꼬막을 지독히도 좋아하나보다.
비빔밥을 내려놓고, 꼬막찜 접시를 들었다.
“이건…… 리필해 드릴게요.”
“오…… 꼬막찜도 리필이 되나요?”
“음…….”
곤란하네.
본인이 다 드셔서 송은희를 위해 리필을 해 주려던 건데.
김흥범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송은희도 곤란하지 않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짧은 시간에 고민했지만, 딱히 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오늘은 리필이 된다고 하자.
확장 기념일이니까.
확장 기념일이라 그런지 가게에는 단골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이제는 가게 공식 홍보대사가 된 황종훈 아저씨는 철물점 장 씨의 손을 끌고 들어왔다.
이어서 근처에서 꽃집을 하는 사장님이 들어왔는데…… 몇 개의 화환과 함께였다.
- 황가 방앗간 황종훈. 확장과 함께 대박 나세요! 영진시장 최고의 백반집은 선우네 백반!
- 덕호식자재유통 최덕호. 선우야,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 우성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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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진은 그냥 이름만 보냈다.
그 흔한 상호명도 축하 메시지도 없이.
그게 너무 우성진다워서 더 좋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몰려왔다.
황금 박씨를 물고 온 제비들인 안태훈, 이수민 커플.
사람들 모르게 선우네 백반을 홍보하고 있는 ‘외식홀릭’ 이초희 등등.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들이 섞여서 확장 첫날의 선우네 백반을 꽉꽉 채워 주고 있었다.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철민.
그는 POS 기계를 통해 쌓여 가는 매출보다도 이렇게 북적이는 가게의 모습이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와…… 이게 진짜 꿈이냐, 생시냐.’
처음 음식점을 시작하고서부터 지금까지 늘 이런 순간을 상상하며 달려왔다.
뭔가 장대하거나 커다란 꿈을 꾼 게 아니었다.
그저 선우네 백반에 많은 손님이 찾아왔으면.
그리고, 그 손님들이 죄다 웃으면서 즐겁게 식사를 했으면.
이렇게 바랐을 뿐이다.
그런 그의 꿈이…… 이제 이루어진 것 같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 사이에서 밝게 웃으며 서빙을 하고 있는 아내 고종숙.
지친 기색도 없이 주방에서 계속 음식을 만들고 있는 아들 이선우.
손님들의 모습과 함께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지자, 그의 눈시울은 다시금 뜨거워졌다.
‘젠장…… 나도 늙었나?’
요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온다.
갱년기가 되면, 눈물샘이 고장난다고 하던데.
아니, 여성 호르몬이 과다 분비된다고 했나?
자신도 모르게 자주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뭐 어떤가.
기쁨과 감동의 눈물인 것을.
이철민은 얼른 손으로 눈가를 훔친다.
“만 이천 원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힘찬 목소리로 나가는 손님에게 인사를 한다.
* * *
점심을 먹고, 드립 커피까지 마시고 온 김흥범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는 식사를 하기 전 쓰던 글을 모두 지웠다.
한남동의 모 파스타집에 대해서 쓰던 글이었다.
‘안 그래도 맛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어.’
그 파스타집의 음식들은 칼럼니스트 김흥범의 마음을 크게 흔들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가 본 식당 중 제일 나았다는 판단에 그 집을 다루려고 했다.
하지만…… 점심때 맛본 꼬막비빔밥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는 행복했던 점심 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휘리릭 글을 쓰기 시작했다.
* * *
확장 첫날, 힘들었지만 보람됐다.
오늘의 기록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이초희의 메시지였다.
- 사장님, 김흥범 교수님 칼럼 봤어요?
- 칼럼이요?
- 네, 게스트북에 올라와 있는 거요.
- 음…… 한번 확인해 볼게요.
- 네! 그거 보시면 아마 기분 좋아지실 거예요!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대충 짐작을 하며, 게스트북 페이지를 열었다.
김흥범.
검색어를 입력하자, 그가 운영하고 있는 페이지가 나왔다.
오늘 올라온 포스팅에는…… 와우.
선우네 백반이 다뤄져 있었다.
꼬막비빔밥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송은희 몫의 꼬막찜까지 다 먹어 치우는 걸로 봐서는…… 오늘 꼬막 요리에 감명받은 건 확실하다.
그래도…… 김흥범 하면, 이 바닥에서는 꽤 신뢰도가 높은 인물.
그는 칼럼에서 함부로 아무 식당이나 다루지 않는다.
소개하는 식당의 이미지가 바로 자신의 이미지와 직결되기 때문.
일단 한번 읽어나 볼까.
[백반, 그 이상의 백반]
오…… 제목 한번 거창하고…… 좋다.
[선우네 백반은 영훈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한식 백반집이다.
가게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처럼 매일 집에서 먹을 법한 가정식을 백반 형식으로 내어주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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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반찬과 요리들은 언제 가도 변함없는 맛을 선사해 준다.
백반집이라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을 때 먹으러 가는 곳이 맞다.
하지만, 이곳 선우네 백반은 딱히 다른 가게를 생각나지 않게 한다.
이곳에 간다면 늘 한 끼를 든든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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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수요일마다 일반 백반집에서 맛본 적 없는 특별 메뉴를 제공하는데, 그 퀄리티가 가히 충격적이다.
감자탕, 매생이 굴국밥, 육개장, 돈가스 등등.
하나하나의 메뉴들의 품질이 전문점 뺨치게 훌륭하다.
더 충격적인 건, 이 집에서는 뭘 먹든 균일가 육천 원에 다 해결된다는 것.
이 정도면 거의 백반계의 생태계 파괴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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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집에서 꼬막비빔밥을 먹었다.
이 역시 아무리 칭찬을 해도 부족하지 않은 맛이었다.
일단 통통하게 살이 오른 꼬막이 좋았다.
가장 기본인 재료를 잘 썼다는 것이다.
양념장의 비율 또한 꼬막의 맛을 해치지 않을 만큼 적당했다.
곁들여 나온 마늘, 쪽파, 청양고추와 꼬막살의 조화란…… 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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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거주하시는 분이라면 무조건 가 보실 것을 추천한다.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결코 찾아가는 수고에 실망을 끼쳐 드리지 않을 집이라는 것을.
참, 일요일은 정기 휴일이다.]
오…… 놀라울 정도로 좋은 글이다.
아, 꼭 선우네가 소개되어서가 아니라, 진짜 이 양반 글을 잘 쓰는구나 싶다.
내가 우리 가게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정말 가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 같았으니까.
그나저나…… 참…… 고맙네.
송은희의 꼬막찜을 먹어 버리던 탐욕스러운 그의 모습이 잊혀져 버렸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그랬겠어?
이 정도로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먹어도 된다.
적게 준 사장이 잘못이지.
확장과 함께 날아온 좋은 소식이다.
김흥범 교수의 칼럼은.
그나저나, 더 바빠지겠군.
빨리 자 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