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송은희의 소울 푸드
송은희는 게스트북 ‘외식홀릭’의 페이지 주인이 이초희라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녀는 ‘좋아요’를 눌러 주기 위해서라도 하루에 한 번씩 게스트북 페이지에 들어가곤 한다.
그리고, 오늘은…… ‘좋아요’를 수십 번 누르고 싶은 게시물을 발견했다.
바로, 선우네 백반의 <오늘의 메뉴> 게시글이다.
그녀는 바로 외식홀릭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오늘 점심 선우네 백반 가야 해. 가야 해!
- 아웅. 나도 가고 싶다아. 사장님이 주꾸미 진짜 좋다고 했는데…… 근데 나 오늘 엄마랑 데이트. 학교 못 감.
- ㅠㅠ 이런…… 나 혼자라도 가야 하나.
송은희는 고민했다.
그녀는 혼자 밥 먹는 걸 즐기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을 좀 의식하는 편이기도 했고, 혼자 가면 왠지 빨리 먹고 나가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이 들어서이다.
그렇지만…… 주꾸미는 다르다. 주꾸미는!
그녀의 소울 푸드 주꾸미!
게다가 알이 가득 밴 주꾸미라면…… 영혼도 내다 팔 수 있다.
이선우 사장이 좋은 주꾸미라고 했다면, 진짜 좋은 거다.
그 사람은 겸손할지언정 말을 부풀리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 결심했어.”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그녀는 오른 주먹을 굳게 쥐며 눈을 빛냈다.
이건 안 된다.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혼자서라도 가야 한다!
이때, 조교실의 문이 스윽- 열렸다.
김흥범이 얼굴을 내밀며 말한다.
“송 조교. 식사했어요?”
“교수님!”
“아이고, 깜짝이야.”
“주꾸미 좋아하십니까?!”
“주, 주꾸미요?”
“네! 알이 가득 밴, 제철을 맞은 암놈 주꾸미! 좋아하십니까?!”
“아, 뭐…… 좋아하죠. 요즘 같은 봄철에는 주꾸미 알이 참 별미죠.”
“그럼 가시죠!”
당당한 걸음으로 외투를 입고 나가는 송은희를 김흥범은 멍하니 바라봤다.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나? 왜 저렇게 씩씩해?”
어안이 벙벙한 김흥범이다.
* * *
송은희는 마주 앉은 김흥범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 민망해.’
주꾸미 때문에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갑자기 급발진을 했던 송은희였다.
그냥 밥 먹었다고 할걸.
어차피 혼자 오기로 마음먹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테이블에 나온 주꾸미를 보니…… 민망함이 무슨 대수인가 싶다.
저 주꾸미를 먹는 게 중요하지.
영겁같이 느껴지는 시간을 기다린 후, 드디어 테이블에 주꾸미볶음이 세팅되었다.
“음…… 이 향기.”
향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주꾸미가 얼마나 신선한지를.
이건 활주꾸미, 냉동주꾸미, 큰 주꾸미, 작은 주꾸미, 매운 주꾸미, 주꾸미 샤브샤브 등등 모든 주꾸미를 다 먹어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거였다.
한국에 유교 문화가 없었다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쓸데없는 대명사가 없었다면…… 아니, 앞에 있는 사람이 지도교수이자 학과장인 김흥범이 아니었다면, 벌써 송은희의 손은 주꾸미볶음을 향해 돌진했을 것이다.
오늘따라 향부터 음미하고 있는 김흥범의 느릿한 동작에 속이 다 터질 지경이다.
젓가락을 쥔 송은희의 손은 기대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자, 먹죠.”
김흥범이 수저를 들자, 송은희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그녀의 첫 번째 젓가락이 향한 곳은 바로…… 흰 쌀밥 같은 알이었다.
김흥범이 흠칫 놀랐다.
‘알부터 시작한다고?’
사실 김흥범은 향기를 맡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고민하고 있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양념을 머금어 달고 부드러운 양파인가?
숨이 푹 죽어 있지만, 씹으면 물큰하고 채즙이 빠져 나올 대파인가?
아니지, 역시 주꾸미부터 시작해야지. 그렇다면.
탱글탱글한 주꾸미 다릿살인가?
쫀득한 머릿살인가?
다만, 알만큼은 첫 번째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김흥범은 맛있는 걸 가장 나중에 먹는 스타일이었으니까.
제철의 주꾸미 알은 나머지 부위와는 비교 불가능의 영역에 있었다.
한편, 송은희는 김흥범과는 반대였다.
먼저 맛있는 것부터 먹는 스타일.
그러다 보니, 그녀의 첫 번째 픽은 당연히 알이었다.
이선우 사장의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이렇게 큼직한 알은 이전에도 잘 본 적이 없었다.
거의 자두만 한 커다란 알을 크게 베어 물었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식감.
동남아에서 주식으로 먹는 안남미가 뭉쳐 있는 것 같은 알의 식감.
안남미보다는 더 눅진하고 촉촉했다.
알알이 입에 들어오는 그 식감이 재미있었다.
쌀알 씹듯 낱알을 씹자…… 터지는 고소함.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이거야! 이거!’
처음 아빠를 따라 서해안 바다에서 먹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맛이 좋았다.
적절하게 묻어 있는 양념이 알의 감칠맛을 더 키워 줬으니까.
지금 그녀의 세계 속엔 김흥범도 선우네 백반도 없었다.
오직 주꾸미와 나.
거대한 비눗방울 안에 진공 상태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황홀했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송은희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김흥범.
그는 송은희의 표정을 보고 알아 버렸다.
그녀가 완전한 몰입 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이럴 때는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지고한 행복감이 그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김흥범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알의 맛이 어떻길래……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 정도로 빠져든 걸까?’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 그의 식사 원칙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고.
덜 선호하는 음식부터 천천히 선호하는 음식으로 가는 그의 패턴을 오늘은 깨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의 젓가락은 홀린 듯이 주꾸미 알로 향했다.
그리고는 커다란 알을 한 움큼 베어 물었다.
“아…….”
절로 탄성이 튀어나왔다.
이건…… 그야말로 최상급의 알이었다.
식도락가이자 미식가를 자부하는 김흥범조차도 여태 맛본 적이 없던.
주꾸미를 잡아들이는 현지에서도 이 정도 주꾸미라면 손님들에게 내놓지 않을 만한.
정말 주꾸미를 잡아 생업을 하는 사람들만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알.
이제야 송은희의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가능하다면 이 맛에서 헤어나지 않고 싶다.
이 감칠맛의 향연 속에서 계속 머물러 있고 싶다.
영원히.
* * *
‘재미있네. 저 두 사람.’
아까부터 김흥범과 송은희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열심히 주꾸미를 먹고 있었다.
한 입 한 입 들어갈 때마다 두 사람의 표정이 황홀감으로 물들었다.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알 것 같았다.
물아일체(物我一體)가 아닌 식(食)아일체.
지금 먹고 있는 음식에 완전히 몰입되어 한 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식아일체가 아니라 꾸아일체인가?
주꾸미의 꾸?
어쨌든, 지금 저 두 사람은 굉장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다소 의외인 건 송은희의 반응이다.
김흥범이야 워낙 미식가니까 주꾸미의 맛을 잘 알 것이다.
제철에 나오는 알의 맛도 잘 알 거고.
하지만, 송은희가 그 맛을 알 거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주꾸미 알은 호불호가 꽤 갈리는 식재료 중 하나였으니까.
주로 나이를 좀 먹은 중년들이 더 선호하는 음식인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도대체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랴.
저렇게 맛있게 먹고 있으면 된 거지.
늘 그렇지만, 요리를 하는 사람은 다른 거 없다.
맛있게 준비한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 주는 것.
그거면 된다.
하물며 저 두 사람은 거의 영혼의 치유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주꾸미볶음 하나로.
더 이상 뭘 더 바라겠는가.
“맛있게 드셨어요?”
나가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네…… 정말 너무…… 맛있었어요.”
송은희가 평소답지 않게 먼저 반응을 해 온다.
“다행입니다. 맛있게 드셔서. 교수님은요?”
“정말 훌륭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주꾸미를 어디서 구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주꾸미 구매를 원하시나요?”
“네. 집 식구들에게도 이 맛을 좀 전하고 싶군요.”
“음…….”
살짝 고민이 됐다.
진실수산의 아주머니에게 같은 물건을 또 요청해도 될까?
어쩌면 너무 염치없는 행동은 아닐까?
어쨌든 진실수산의 연락처를 김흥범에게 알려 주는 건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직접 연락해야 하는 문제니까.
“일단 판매자에게 먼저 연락을 좀 해 보겠습니다.”
“아…… 그래야 하는군요. 하긴…… 저 정도의 물건이라면, 쉽게 판매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부담은 갖지 말아 주십시오.”
“네. 일단 한 번 판매자에게 여쭤보겠습니다.”
“사장님! 제 것도 좀…… 안 될까요?”
“아! 같이 여쭤볼게요. 두 분 다 2킬로 정도면 충분하실까요?”
“네. 그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송은희는 평소와 달리 자기 밥값을 직접 치르고 나갔다.
평소라면 밥값을 계산하는 건 학과장인 김흥범의 몫이었다.
송은희는 완강했다.
이런 음식을 공짜로 얻어먹을 수는 없다면서.
내심 뿌듯했다.
누군가가 돈을 내고 싶어서 안달나는 음식을 제공했다는 게.
누가 사준다고 해도 자기가 직접 돈을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했다는 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맛있게 먹어 준 두 사람에게.
좋은 재료를 제공해 준 진실수산 아주머니에게.
그리고, 가게에 찾아와 준 모든 손님들에게.
‘뿌듯함’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입 안에서 터지는 주꾸미 알의 감칠맛처럼.
* * *
오랜만에 본 재동이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인다.
짠-
우리는 맥주 대신 콜라로 건배를 했다.
프라이드치킨을 앞에 두고 맥주를 참는 건 꽤 고역이었지만.
재동이를 위해 참았다.
녀석은 마셔도 된다 했지만- 그리고 사실 맥주 한 잔 정도는 마셔도 될 것 같았지만, 내가 싫었다.
술을 마시고 있는 녀석을 보면 늘 지난 생의 녀석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니까.
그 피폐하고, 염세적이었던 녀석의 망가진 모습이.
“학교 생활은 좀 어떠냐?”
“재미있어. 오랜만에 이렇게 재미있게 공부해 본다.”
“오…….”
확실히 녀석은 나와는 결이 다르다.
공부가 재미있다니…… 그것도 컴퓨터 공학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래서 사람은 각자의 길이 있는 거다.
“장사는 할 만하고?”
“응. 나도 재미있어.”
“오…….”
이재동은 나름대로 또 선우를 신기해했다.
그에게는 선우가 갖고 있는 ‘감성적’인 측면이 부족하다.
어떻게 하루 종일 저렇게 손님들을 향해 웃을 수 있는지.
손님들을 대접하는 일이 어떻게 저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사실 공감이 안 되는 바이니까.
이재동이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난 평생 가도 식당은 못 할 것 같아.”
“훗. 나도 마찬가지야, 인마. 평생 가도 컴퓨터 만지면서 프로그래밍은 못 할 것 같다.”
“너도 그러냐?”
“안 그러겠냐?”
짠-
탄산을 품은 검은 액체가 공중에서 맞부딪힌다.
시원하게 넘기니…… 목을 강타하는 탄산의 맛과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좋다.
“재동아. 이런 게 있으면 어떨까?”
“어떤 거?”
“그러니까…… 스마트폰으로 말이야. 음식 주문을 하는 그런 프로그램. 어플 같은 거?”
“스마트폰으로?”
“응. 앞으로 이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어가지 않겠어? 점점 말이지.”
“그렇지. 지금도 거의 그렇게 되어 가는 중이고. 앞으로는 더더욱 그렇게 되어 가겠지.”
“그럼그럼. 그러다 보니 음식점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제 음식 배달 주문도 어플리케이션으로 하게 되는 거 아닐까? 전화 주문 말고.”
마침 치킨집의 벨이 울리고, 주인 아저씨가 씩씩하게 전화를 받았다.
“모란아파트 XX동 XXX호. 프라이드치킨 하나요. 네,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재동이가 말했다.
“네 말…… 일리 있는데? 아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완전 대박인데?”
“훗. 그러냐?”
난 짐짓 모른 체하며 시치미를 뗐다.
대박도 그런 대박이 없지, 인마.
하여간 잘 개발만 해 봐.
기획은 형이 맡아서 해 줄 테니까.
“이거…… 내가 진짜 개발해 봐도 되냐?”
“물론이지. 단!”
“단?”
“50:50”
“뭐를?”
“지분.”
“벌써부터 지분을?”
“피차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지.”
“좋아! 대신 아이디어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해 줘. 그게 뭐든 간에.”
“그럼그럼.”
짠-
이번에는 의기투합한 두 남자의 꿈이 공중에서 맞부딪힌다.
이런 날은 맥주가 어울리긴 하는데.
뭐, 사실 콜라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서로의 마음이 맞았다는 게…… 건배를 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