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49화 (49/110)

#49화 김밥 3종 세트 (1)

<오늘의 메뉴>

- 김밥 3종 세트(진미채, 묵은지, 돈가스 김밥)

- 어묵국

- 단무지

오늘 메뉴는 특별히 포장 가능합니다. 포장 주문 시 1,000원 할인.

* * *

김밥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가 뭘까?

진미채, 돈가스, 묵은지 등의 메인 재료?

아니다.

김밥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바로 밥이다.

그다음이 김이고.

밥과 김만 맛있으면, 극단적으로는 다른 재료는 아예 필요가 없다.

나는 그 사실을 법인 설립 문제로 유럽에서 장기 출장 중일 때 깨달았다.

프랑스는 세계적인 미식 국가이다.

맛있는 음식도 많고, 특이한 음식도 많다.

음식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었지.

하지만…… 아무리 프랑스에 산해진미가 널려 있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며칠 못 간다.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 힘을 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하루에 한 번씩 비싼 한국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 먹었다.

눈물을 머금은 이유?

맛도 없는데 비싸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한국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후회했다.

이런 한국 음식이면 차라리 현지 음식을 사 먹을 걸 그랬다고.

하지만, 인간은 역시나 망각의 동물.

다음 날이면 또 느끼한 속을 부여잡으며 한국 레스토랑을 찾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맛없는 한국 레스토랑에도 질리고 질려 있던 그날.

한국에서 가져온 즉석밥과 조미김을 싸 먹었다.

마치 꼬마김밥처럼.

아무런 반찬도 없이.

이렇다 할 속재료도 없이.

아기들이 밥에 김만 싸서 먹는 그런 느낌으로.

그런데…… 그 단순한 김과 밥이 그렇게 맛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건 사실 김밥도 아니었다.

아무런 속재료도 없이 그냥 김과 밥에 불과했으니까.

동행했던 한미주 비서실장도 그 특유의 목석 같은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 이거 미쳤네요. 미쳤어요.

그 로봇 같은, 공과 사 확실한 한미주가 그렇게 말했으면 말 다한 거지.

그녀는 양손에 하나씩 꼬마김밥을 번갈아 쥐어 가며 미친 듯이 먹었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그녀가 그렇게 뭔가를 먹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결론은 김과 밥만으로도 김밥은 맛있는 음식이라는 거.

물론, 프랑스에서 있던 그때는 그간의 한국 음식에 대한 굶주림이 엄청난 조미료가 되어 줬을 거다.

여기는 한국이니까 그런 조미료는 있을 리가 없고, 그러니 밥을 맛있게 지어야 한다.

김은 최덕호 사장님을 통해 이미 적당히 좋은 녀석으로 공수해 놓은 상태이고.

어렸을 적 어머니가 싸 주시던 김밥도 맛있었지만, 이상하게 나이를 먹고 분식집에서 사 먹는 김밥은 그 밥이 왠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분식 브랜드를 내기 위해 김밥을 연구하던 중 어떤 지방의 김밥 고수로부터 그 비결을 알게 되었다.

가정에서 김밥용 밥을 지을 때는 보통 밥을 지은 후, 참기름, 소금, 통깨 등으로 간을 한다.

그래서 그런가?

왠지 간이 골고루 안 배는 느낌이다.

반면, 김밥 전문점에서는 밥을 지을 때 소금 간을 한다.

소금 간뿐만 아니라, 감칠맛을 더해 주는 몇 가지 재료도 첨가한다.

30분간 불린 쌀에 물을 적당량 붓고, 소금을 넣는다.

소금을 넣은 다음에는 잘 퍼질 수 있도록 휘휘 저어 녹여 준다.

그다음.

소금을 넣어 준 밥물에 식용유를 몇 스푼 추가해 준다.

식용유는 밥알끼리 달라붙지 않고, 고슬고슬하면서 찰진 느낌을 내게 해 주는 비법이다.

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추가해야 할 재료는 바로 다시마.

다시마의 주 전공은 바로 감칠맛이다.

밥을 지을 때 이 다시마를 넣어 지어주면 감칠맛과 단맛이 훨씬 풍부해진다.

밥이 다 지어지면 다시마 조각은 빼내고, 참기름, 들기름, 깨소금을 넣고 잘 섞어 준다.

위생장갑을 낀 손에 뜨끈하고 고슬고슬한 밥이 엉기는 기분이 좋다.

조금 뜨겁긴 하지만…… 그래서 위생장갑 안에 면장갑도 꼈지만…….

그래도 뜨겁다.

여하튼, 골고루 양념이 잘 퍼지도록 섞어 주면 김밥용 밥은 완성이다.

진미채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아주 간단하다.

매콤하게 양념한 붉은 진미채와 계란 지단.

이 두 가지가 끝.

진미채는 버무릴 때 마요네즈를 섞어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어 두었다.

김밥 안에서 식감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계란 지단과 진미채를 듬뿍 집어넣고 돌돌돌 만다.

계란 지단과 진미채뿐인데 맛있냐고?

맛있는 김과 맛있는 밥과 맛있는 계란 지단과 맛있는 진미채의 조합.

맛이 없는 게 더 이상한 거라 생각한다.

“돈가스 다 튀겼습니다.”

진미채 김밥을 말고 있는 사이 진민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돈가스는 맛살처럼 긴 모양으로 썰어 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제가 써는 것 하나는 잘 하죠. 하하하.”

진민호는 백반집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네모난 중식도를 꺼내 들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업무 중 하나다.

뭔가를 써는 것.

요리를 배우는 그의 입장에서는 써는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기본기가 성장할 것이다.

돈가스 김밥에는 일반 김밥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들을 다 넣어 준다.

시금치는 데쳐서 소금과 참기름에 무쳐 준다.

당근은 채썰어서 볶아 주고, 햄, 맛살도 살짝 볶아 준다.

계란 지단도 만들어 준다.

다음은 돈가스 김밥에 곁들일 소스를 만들 차례.

시판용 돈가스 소스에 마요네즈를 섞고, 매운 청양고추를 넣어 비벼 준다.

이러면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돈가스 소스가 완성된다.

소스는 돈가스 김밥 옆에 따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묵은지말이 김밥.

이거야말로 시장 상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비장의 메뉴이다.

김치 싫어하는 한국 사람 없고, 묵은지는 언제나 많은 사랑을 받는 식재료이다.

“어머니, 묵은지 다 씻으셨어요?”

“오케이. 다 씻어서 준비해 뒀어. 이 정도 양이면 되니?”

“음…… 네! 될 거 같아요.”

한때 누드김밥이라는 게 유행했었다.

겉에 김이 보이는 게 아니라 밥이 보이는 속이 뒤집힌 김밥.

오늘 선보일 묵은지 김밥도 만드는 방법은 동일하다.

먼저 김 위에 밥을 깐 후, 그걸 다시 뒤집는다.

이제 반대쪽 김 위에 각종 재료들을 넣어 주고, 그대로 돌돌 만다.

그렇게 누드 김밥이 완성된 후.

김밥의 길이만한 적당한 사이즈의 묵은지로 김밥을 싼다.

랩으로 포장하듯이.

사이즈가 안 맞는다면, 여러 장을 겹쳐서 해도 무방하다.

자, 그렇게 김밥 위에 묵은지를 싸 준 후, 참기름과 깨소금을 솔솔 뿌리고, 한입 크기로 썰어 주면 묵은지말이 김밥 완성.

어묵과 무를 잔뜩 넣은 어묵국을 끓이고, 고춧가루로 살짝 양념한 단무지와 일반 단무지를 준비해 두면 장사 준비도 끝이 난다.

* * *

김흥범은 게스트북 ‘외식홀릭’ 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진미채 김밥…… 돈가스 김밥…… 묵은지말이 김밥?”

김흥범의 머릿속이 물음표와 느낌표로 가득 찼다.

도무지 김밥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재료들을 보며 의문스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맛있을 것 같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느낌표가 떠올랐다.

그 기대감의 근본은?

바로 선우네 백반의 오늘의 메뉴이기 때문이다.

처음 선우네 백반을 방문하고 나서부터 김흥범에게 그곳은 매번 놀라움을 주는 원천이 되었다.

특히 이선우라는 어린 사장.

그 나이의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보여 주는 인물.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음식에 대해 알고 있으며,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맛을 내는지.

브라질의 산드라 교수가 왔을 때는 진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게다가 영어까지 잘한다.

도대체 그 사람의 정체가 뭘까?

하지만…… 이런 모든 의문들은 다 부질없는 의문일 뿐이다.

꼬르륵거리는 그의 배 앞에서.

새로운 재료들을 쓴, 근데 왠지 맛있어 보이는 그 김밥들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찬 점심시간 앞에서는.

* * *

김흥범의 손에는 웬 일회용 도시락통이 들려 있었다.

- 교수님, 죄송해요. 자리가 없네요. 대신, 오늘은 특별히 포장도 되는데…….

이선우의 어머니의 권유에 자리를 기다리지 않고, 포장을 해 왔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선선한 오늘 같은 날.

도시락통을 들고 걸으니 봄 소풍이라도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김흥범은 집무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틀었다.

‘이런 날에 딱딱한 집무실에 앉아서 밥을 먹을 수는 없지.’

그가 향하는 곳은 학교 앞 공원이었다.

나무 그늘이 우거진 적당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드디어 도시락통 개봉의 시간.

김흥범은 조심스럽게 흰색 스티로폼 도시락을 열었다.

“와…….”

그의 눈앞에 때아닌 절경이 펼쳐졌다.

삼 종의 김밥이 각각의 잘린 단면을 드러내며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꽃밭 같은데?”

진미채 김밥에 가득 들어 있는 진미채와 계란은 꽃의 빨갛고 노란 수술 같았다.

그 예쁜 꽃은 어서 맛을 봐달라며, 김흥범을 유혹하고 있었다.

돈가스 김밥은 두툼한 돈가스를 각종 부재료들이 감싸고 있는 형태였는데, 그 오목한 모양이 마치 튤립을 닮아 있었다.

묵은지말이 김밥은 묵은지와 쌀밥과 김이 겹겹이 재료들을 둘러싼 형태였다.

꽃잎이 겹겹이 겹쳐져 있는 작약처럼.

김흥범의 머릿속에 속담과도 같은 평범한 진리가 떠오른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

선우네 백반.

이 집은 진짜 이런 평범한 진리를 너무 잘 깨우치고 있다.

이 김밥만 해도 그렇다.

각각의 모양이 다른 이 김밥을 그냥 길게 썰어 넣어 놓았으면 이렇게 눈이 즐겁지 않았을 거다.

그저 검은색 김만 길게 보였을 테니까.

당연히 각 김밥의 서로 다른 매력도 눈에 띄지 않았을 거다.

이걸 단면이 보이게 해 놓으니 각 김밥들의 완연한 매력이 그대로 다가온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걸 늘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이런 센스가 나올 수 없다.

다시 한번 이선우와 선우네 백반에 감탄하면서.

와앙.

김흥범의 첫 번째 픽은 바로 진미채 김밥이다.

오물오물.

진미채 김밥은 부드러운 재료들이 조합된 김밥이다.

그래서 그런지 씹을 때도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입속에서 매콤 달달한 양념의 진미채와 고소한 계란 지단이 간간한 밥과 함께 어우러진다.

중간중간 씹히는 김의 맛이 그 풍미를 더해 준다.

‘와…… 진미채 정말 부드럽네.’

계란이 부드러운 거야 말해 뭐하겠냐만, 진미채가 생각보다 정말 부드러웠다.

김밥을 입에 넣기 전.

처음 접해 보는 김밥이긴 하지만, 이 김밥의 핵심인 진미채의 식감이라고 생각했다.

진미채가 부드럽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식감을 해치면서 먹기가 불편할 거라 예상했으니까.

결론은 역시나.

이선우는 김흥범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개, 두 개, 세 개.

진미채 김밥은 그 부드러움만큼이나 쏙쏙 잘도 입으로 들어갔다.

여러 개의 김밥을 욱여넣어서 퍽퍽해진 입속은 같이 포장해 온 어묵국으로 다스린다.

숟가락도 필요 없다.

동그란 용기에 포장된 국을 한입 후루룩 마신다.

무가 푸짐하게 들어갔는지 국물이 유난히 시원하다.

젓가락을 들어 무와 어묵을 한 조각씩 집어 먹는다.

그리고, 고춧가루로 살짝 양념한 단무지를 하나 집어 먹으면, 입안은 어느새 초기화된다.

자,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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