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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52화 (52/110)

#52화 고민은…… 늦출 뿐

“네? 건물을 내놓으셨다고요?”

“…….”

어머니는 소리를 질렀고, 아버지는 망연자실.

나도 꽤 충격을 받았다.

이게 이맘때였던가.

할머니가 이상한 건물주에게 건물을 넘기고 시골로 가셨던 게.

하루하루 바쁘면서도 즐겁게 살아가느라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영감 거동 못 한 지 꽤 된 거 알지?”

우리는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그래도 이렇게 식당에서 밥도 먹고, 시장도 돌아다니면서 바람도 쐬는데, 영감은 그러지 못한 지 너무 오래됐어. 방법이 있나. 이 계단을 내려오지를 못하는데…….”

뇌질환으로 쓰러지셨던 할아버지는 사지를 제대로 쓰지 못하신다.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실 수는 있는데, 문제는 휠체어를 타고 내려오실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상가주택 3층 건물을 무슨 수로 내려오시겠는가.

“이제 여생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렇게 답답하게 저 양반 가둬 놓는 게 맞는가 싶어서. 그래서 내놓았어. 저기 외곽지역 단독주택으로 가려고. 저 양반, 휠체어라도 맘껏 타고 다닐 수 있게.”

“…….”

할머니의 말에 어떤 대꾸도 하기 힘들었다.

세입자인 우리 입장에서야 할머니 같은 건물주를 만나기는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보증금도 면제해 주고, 월세도 십 년째 올리지 않는 건물주가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렇지만, 팔지 마시라고 가지 마시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답답하게 집 안에 갇혀 계시는 할아버지와 그걸 늘 안쓰럽게 지켜보실 할머니.

그 고통을 당사자도 아닌 우리가 헤아릴 수는 없는 일이기에.

다들 조금은 먹먹해진 가운데, 나는 다른 이유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생에서 할머니에 이어서 온 건물주가 어떤 횡포를 부렸는지 떠올랐기 때문.

생김새도 확실히 기억난다.

장년의 그 남자는 완전 민대머리, 문어대가리였다.

그게 워낙 인상적이어서 다른 건 잘 기억도 안 난다.

월세를 두 배로 올린 그놈은 종국에는 가게에서 우리를 내쫓았다.

뭐, 나가라고 발길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런 셈이었다.

두 배로 높아진 월세를 다시 두 배 더 올려 달라고 했으니.

그렇게 빼앗은 선우네 백반 자리에서 그놈은 백반집을 열었다.

이름도 완전 비슷했다.

현우네 백반.

그놈 이름이 현우였던가, 아들 이름이 현우였던가.

그의 탐욕의 끝은 다들 예상한 그대로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멍청하기 짝이 없는 행태였다.

설마 이 선우네 백반이 자리가 좋아서 잘됐던 거라고 생각했었나?

결코 아니다.

선우네 백반은 영진시장 내에서도 거의 구석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오로지 음식 맛과 소문난 김치 맛으로 성공한 식당이 바로 선우네 백반이다.

입지적으로는 사실 전혀 이점이 없다.

그러니, 음식 장사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그 현우라는 작자가 제대로 장사를 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문제다.

다시 할머니의 뒤를 이어서 그 문어대가리가 건물주가 된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전생처럼 그대로 흘러갈 테니까.

물론, 그때 쫓겨난 일이 쓴 약이 되고, 경험이 되어 이후에 이를 악물고 선우 푸드를 성장시킨 기회가 되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쓴 약은 전생에 다 먹지 않았는가.

굳이 한 번 경험해서 깨달은 사실을 또다시 경험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건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다.

“어쨌든 미안하게 됐어. 내가 끝까지 책임을 져 줬어야 하는데…….”

“미안하다뇨. 무슨 말씀을…… 지금까지 이렇게 도움 주신 것만 해도 정말 감사했어요.”

“맞아요. 할머님 덕분에 저희 힘들 때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이제 좀 저희도 잘되려고 하니 할머니가 가시게 되어서…….”

“나도 그게 참 아쉬워. 자네들 오랜 시간 힘들다가 이제야 선우랑 같이 웃으면서 재미있게 장사하는 모습에 참 뿌듯했는데…… 그걸 또 오래 못 보고 가게 됐구먼.”

“할머니!”

제법 큰 내 목소리에 좌중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이 건물. 저희한테 파세요.”

“응? 뭐, 뭐라고?”

“선우야!”

“야, 이선우!”

어머니와 아버지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지난번에 가게를 확장했던 그때처럼.

* * *

영업이 끝난 후.

세 식구가 한 테이블에 모였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못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우야, 아무래도 너 너무 경솔했던 것 같다.”

“그래, 선우야. 가게 확장하는 거랑 이 건물을 통째로 사는 거랑 같니? 이 건물이 얼마인 줄이나 알아?”

“한 8억 정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어머. 8억이라는 소리가 왜 그렇게 쉽게 나오니? 우리가 8억이 어디 있다고. 그걸 알면서도 건물을 산다고 말한 거야?”

“네.”

“휴…… 선우야. 물론, 이 건물 우리가 사면 좋지. 너무 좋지. 그런데, 우리 모아 놓은 돈 없어. 기껏해야 전세 보증금하고 청약통장 정도야.”

“그래. 이 아빠도 오후 내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더구나. 대출을 너무 많이 받으면 그만큼 갚아야 할 돈도 많아지고, 이자도 많아지고. 지금처럼 계속 장사가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 아직은 무리…….”

“무리 아니에요. 대출을 6~70% 받는 한이 있더라고 이 건물 저희가 사는 게 맞아요.”

아…… 이걸 어떻게 이해시켜 드려야 하나.

일단, 거지 같은 문어대가리 건물주 얘기는 차치하고서라도 향후 가치가 급상승하게 될 이 지역의 부동산에 대해서.

사실 지금 부동산 가격은 거의 저점에 해당한다.

2008년인가 미국에서 시작된 모기지 사태로 세계적 금융 위기가 왔고, 그건 부동산 침체로 연결되었고…… 뭐 그런 얘기인데,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하여간, 확실한 거 하나는 안다.

지금 이 건물, 이 순간이 가장 싼 순간이며 고민은 건물주가 될 순간만 늦춘다는 것.

문제는 이런 사실을 달리 이해시켜 드릴 방도가 없다는 거다.

어머니, 아버지는 대출을 극도로 꺼리신다.

예전에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살 기회가 있을 때도 두 분은 차라리 세 들어 살고 말지 대출은 안 받는다고 하셨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안 좋은 상황이긴 했다.

지금은 장사가 잘되니까 수익도 안정적으로 들어온다.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그러니 대출받아서 이 건물 하나 사는 것쯤은 절대 무리한 일이 아니다.

두 분은 대출받는 것 자체에 커다란 불안감을 갖고 계시지만.

아까 아버지도 얘기하신 것처럼, 장사가 지금처럼 잘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하시니까.

뭐, 나야 자신이 있었다.

이 백반집을 지금처럼 유지할 자신.

아니, 지금보다도 훨씬 큰 식당을 할 자신도 있었다.

브랜드를 몇 개 만들어서 크게 성공시킬 자신도 있었다.

전생에서는 아무런 기반도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이번 생에는 그런 전생에서 쌓아 온 엄청난 내공과 기억이 내 몸에 장착되어 있다.

무겁고, 싸늘한 분위기.

선우네 백반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공기의 밀도와 온도.

두 분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럴 때는 뭐라도 좀 먹으면서 얘기해야지.’

“우리, 맥주라도 한잔할까요?”

* * *

시원한 맥주는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고, 안주가 좀 필요한데…….

냉장고를 뒤적이던 나는 오늘의 맥주 안주에 딱인 재료를 찾았다.

바로 감자.

선우네 백반의 사장단 회의의 분위기를 풀어 줄 구원투수는 바로 감자채전이다.

감자전이라면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동그랗게 부치는 감자전이 있다.

감자를 모양 그대로 얇게 썰어서 밀가루 반죽과 함께 부쳐 먹는 감자전도 있다.

마치 감자칩 모양처럼.

지금 내가 부칠 감자채전은 감자를 얇게 채 썰어서 튀기듯이 부쳐 먹는 요리다.

전과 튀김의 중간, 음식과 간식의 중간에 걸쳐져 있는 요리다.

스위스에도 이와 비슷한, 뢰스티(Rösti)라는 요리가 있다.

내가 부칠 감자채전과 거의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전의 두께다.

뢰스티는 두툼하게 만들어서 식사 대용으로 먹는 음식.

그러다 보니 겉면은 바삭하지만, 안쪽 부분은 감자볶음과 같은 식감이 난다.

하지만, 내 감자채전은 얇게 튀겨 내어 전체적으로 바삭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맥주 안주에 최적화된 요리인 것이다.

감자는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껍질은 까도 좋고 안 까도 좋은데, 난 안 까는 걸 선호한다.

껍질에 영양분이 많다거나 껍질째 먹으면 좋다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껍질을 까지 않고 해도 감자채전의 맛에는 크게 상관이 없다.

굳이 쓸데없는 데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채칼에 갈아도 되지만, 직접 채를 썰기로 한다.

채칼에 갈면 이상하게 내가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일반 스파게티 면과 같이 얇은 채를 원하는데, 채칼은 넓이가 두꺼운 스파게티 면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탁. 탁. 탁.

고요한 주방에 울려 퍼지는 나무도마 소리의 느낌이 좋다.

* * *

주방 밖에서는 이철민, 고종숙 두 부부가 조용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여보. 이번에는 아무리 그래도 선우 말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래. 뭐, 요즘 선우가 하는 대로 하면 다 잘되긴 하지만…….”

“부동산은 아니지.”

“그래, 부동산은 진짜 다른 문제야.”

짠.

두 사람은 작은 결의를 다졌다.

“식당 운영하는 거야 음식 맛있게 만들고, 손님에게 친절하면 되는 거지만, 부동산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 괜히 부동산 잘못 샀다가 인생 망하는 사람 좀 많이 봤어?”

“맞아. 내 친구 화자 알지?”

“지화자 씨?”

“그래. 지화자 걔, 돈 좀 벌었다고 건물 하나 샀다가 아직도 대출 빚에 허덕이잖아.”

“그랬다며. 세도 잘 안 나가고. 참, 그 친구가 그러다가 자기가 직접 장사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세가 안 나가니까 자기가 1층에서 카페 했잖아. 완전 쫄딱 망했고!”

“으…… 듣기만 해도 무섭다. 이거 남의 얘기가 아니야. 이 건물 샀다가 우리가 그 꼴 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지. 지금이야 장사가 잘되니까 선우가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가.”

“젊으니까.”

“그럼. 젊었을 때는 무서운 게 없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건물주만 되면 다 해결될 것 같고.”

“그게 전혀 아닌데, 그치?”

“그럼 그럼. 자, 선우 엄마 파이팅하자!”

“그래, 파이팅!”

짠.

다시 한번 결의의 술잔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 * *

채 썬 감자는 물에 불려 전분기를 빼낸다.

전분기가 빠진 감자를 볼에 넣고, 부침가루, 소금, 후추를 넣어 잘 섞어 준다.

부침가루는 다른 전과 달리 많이 넣을 필요는 없다.

감자채전에서 부침가루는 그저 감자채끼리 잘 엉겨 붙게 하기 위한 부재료에 불과하니까.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팬이 달궈졌다 싶을 때 감자를 투하한다.

투하 즉시 얇고 넓게 잘 펴준다.

내 감자채전의 핵심은 바삭한 튀김 같은 식감이다.

그러니 최대한 얇게 그러면서도 서로 엉겨 붙을 수 있는 밀도를 유지하는 것.

그게 이 감자채전을 부칠 때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얇게 펴 준 감자채전의 중심 부분은 구멍을 뚫어 놓듯이 비워 둔다.

그 구멍에 들어갈 재료는 바로, 달걀.

달걀은 부족한 단백질의 맛을 보충해 준다.

뿐만 아니다.

감자채전 사이사이에 스며드는 달걀물이 전 사이사이의 응집력을 강화시켜 준다.

그렇게 양쪽 면을 바삭하게 익혀 주면 완성.

노릇노릇한 비주얼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오늘의 구원투수 등판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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