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먹태는 영원해야 한다
전생의 알콜중독자 이재동.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살고 있는 녀석을 오랜만에 만났다.
우리는 동네의 맥주집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안주로는 일단, 기본 안주로 제공되는 마카로니 뻥튀기.
재동이는 예전처럼 술을 탐닉하지 않았다.
천천히 나와 보조를 맞춰 가며, 봄밤의 상쾌한 바람을 느껴가며, 그렇게 여유롭게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아주…… 잘하고 있다.
“대충 어떤 건지는 알겠어. 구현하는 것 자체는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 그래?”
배달 어플 얘기다.
“응. 근데, 이걸 만들어서 어떻게 돈을 벌지?”
“돈?”
“그래. 이걸 만들면 돈을 벌어야 유지를 할 거 아냐. 돈을 벌려고 만드는 걸 테고.”
아그작아그작.
재동이의 입에서 뻥튀기 여러 개가 동시에 씹히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물론이지. 당연히 돈을 벌려고 만드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배달 어플은 초반에는 이익이 나지 않는다.
사실 모든 스타트업들이 그렇다.
장사도 처음에는 손님들을 끌어모으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가 단골이 생기고, 입소문이 나면서 점점 손님들이 늘어난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다.
근데, 배달 어플같은 사업 아이템들은 더하다.
애초에 일정 수준의 이용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타트업들은 설립 초반에는 이익을 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좋은 사업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일단, 사람들을 많이 모으면 돼. 당장의 이익보다는 좋은 사업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 된다는 거지.”
“그러면 돈은 알아서 벌린다?”
“알아서 벌린다라…… 그렇다기보다는 돈을 벌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모으는 거지. 또는, 이 기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못 배길 정도로 매력적인 회사가 되든지.”
“매력적인 회사라…… 대충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다. 일단,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이 쓸 수밖에 없게 만들라는 얘기지? 단순하게 말하면.”
“맞아.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거야.”
“필요?”
“응. 자, 어떤 중국집이 있다고 해 보자. 그 집은 배달원을 고용하는 데 한 달에 이백만 원을 써야 돼. 그것뿐이 아니지. 오토바이도 구비해야 하고, 혹시라도 배달원이 다치거나 하면 병원비도 줘야 하지.”
“한 달에 이백만 원만 나가는 게 아니라는 거네.”
“그렇지. 거기에다가 사대보험 등까지 가입시켜 주려면 부담은 더 커져. 물론, 장사가 굉장히 잘되는 집은 상관없겠지.”
“우리 동네 금영각처럼?”
“맞아. 아, 진짜 거기 간짜장 죽이는데…… 여하튼 그 정도로 장사가 되지 않는 보통 중국집들은 사실 배달원을 상시로 고용할 필요가 없단 말이야.”
잠시 생각을 하던 재동이 말을 받았다.
“아…… 그러니까 그런 집들에게는 건별로 수수료를 내고 이용하는 배달 어플리케이션이 큰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역시…… 재동이가 똑똑하긴 하다.
하나를 알려 주면 최소 두 개는 파악한다고 할까?
나야 전생에서 알게 된 정보와 쌓아 온 지식으로 얘기하는 거지만, 컴퓨터 전공인 녀석은 그저 두뇌 회전으로 내 얘기를 따라오고 있다.
영진동의 소문난 수재답다.
“그렇지. 그럼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는 데서 생기는 리스크도 줄일 수 있어. 게다가 배달원들도 좋아.”
“배달원들도 좋다고? 일자리를 잃는 거잖아.”
“아니지.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거지.”
미래에는 널리 알려진 직업이 되는 배달 라이더 얘기다.
2020년대 초반, 전 세계에 불어닥친 호흡기 전염병 사태 때 배달 라이더 업계는 대호황을 이루었다.
그때는 웬만한 대기업 다니는 것보다 라이더 수입이 높기도 했다니까, 말 다했다.
그들은 한 음식점에 매여서 일하지 않았다.
여러 음식점들을 돌며 갖가지 음식을 배달했다.
그리고, 음식점과 손님들로부터 수수료를 받았다.
대충 이렇게 될 것 같다고 재동이에게 얘기해 줬다.
재동이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오…… 완전 신세계네.”
“그치? 배달원들은 일거리가 끊기지 않아서 좋고, 사장님들은 굳이 배달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아서 좋아. 고객들은 어떤 음식이든 편안하게 집에서 받아먹을 수 있어서 좋고.”
“그렇네…… 와…… 근데 진짜 너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한 거냐?”
“인터넷에 다 있어.”
“인터넷?”
이런…… 아버지, 어머니한테 둘러대던 말이 습관처럼 나와 버렸다.
“그러니까…… 거기 있는 정보들과 나의 장사 경험들을 합치고, 거기에 통찰력이라는 양념을 한 스푼 추가하면 그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거지.”
“말 참 번지르르하네.”
이재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녀석이 언제부터 이렇게 똑똑해진 걸까?’
아니, 똑똑하다는 표현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몇 달 전 자신과 함께 PC방에 드나들며 게임을 하던 그런 이선우가 아니다.
어머니 안순미의 얘기들 들어보면 선우는 식당에서 완전히 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선우네 백반을 완전히 유명한 맛집으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요리면 요리, 서빙이면 서빙, 식당 운영이면 운영.
못 하는 게 없다고 한다.
아니, 다 너무 잘해서 보고 있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한다.
도대체 몇 달 사이에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었던 걸까.
“선우야.”
“응?”
“나 궁금한 게 있다.”
“뭔데?”
재동이의 표정이 갑자기 좀 진지해졌다.
뭘 물어보려는 걸까?
“너 혹시…… 큰 빚이라도 졌냐?”
“빚?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너 말이야.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거야?”
“내가 변했다고?”
“응. 물론, 좋은 쪽으로. 네가 변한 덕분에 나도 이렇게 변했고. 아주 좋아. 좋은데, 너무 궁금하잖아. 그래서 생각했지. 사람이 이렇게 한 번에 바뀌려면 뭔가 큰 계기가 있어야 되니까.”
“아…… 그러니까 내가 큰 빚을 져서 그거 갚으려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다?”
“그냥 지금 생각해 본 거야. 너 예전에 토토인가 그것도 가끔 했었잖아.”
“야, 나는 불법 토토는 안 했어. 정부가 하는 합법 토토만 했지.”
“뭐, 하여간. 그래서 도박이라도 하다가 빚을 졌나 했지.”
“훗.”
재동이 눈에는 아무래도 내가 신기할 수밖에 없겠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둘 다 게임에 빠져서 PC방에 살았던 우리니까.
“내가 미래에서 좀 살다 왔거든.”
“뭐? 재미없다. 그딴 농담 따위.”
“재미있으라고 하는 말 아니다. 이거 진짜거든.”
“열심히 사는 근면성실함을 얻은 대신 네가 재미를 잃었구나. 그래도 네 말장난 꽤 재미있었는데.”
“믿기 싫으면 말든가.”
“됐어, 인마. 얘기해 주기 싫으면 말아. 대신, 나중에 나한테 돈 빌려 달라는 얘기하지 말아라.”
“돈? 푸훗.”
어플이나 잘 개발해라.
그거 하나로 네 인생이 바뀌게 될 테니까.
아무튼 나는 재동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그걸 안 믿은 건 저 녀석이 의심이 많아서라고 치자.
“안주 나왔습니다.”
힘찬 소리와 함께 안주가 배달됐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곳 영진호프의 사장 양창성.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맥주에 빠져서 일찌감치 이 길로 접어든 형이었다.
우리보다 다섯 살 정도 많을 거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기운이 없을 때 옆에 있으면 나까지 절로 힘이 날 것 같은 사람.
단, 평소에는 그 에너지 때문에 조금 힘들 수도 있다.
“와…… 이 자식들 진짜 오랜만이네? 형 가게에 이렇게 오랜만에 놀러 와도 되는 거야? 자, 마시자!”
“네?”
“형 장사 중이잖아요.”
“응. 장사 중이지. 이렇게 손님들이랑 한잔하는 것도 장사의 일부야.”
“아…….”
“인마. 내가 이러려고 맥주집 사장 됐지. 남 마시는 것만 보려고 사장 된 줄 알아?!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양창성은 가게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럼, 그럼! 술집 사장이 술을 마셔야지, 그럼 뭘 마시나? 허허허.”
“여기는 이래서 좋다니까? 혼자 와도 창성이가 술친구를 해 주거든. 히히히.”
양창성의 고개가 다시 우리 쪽을 향했다.
“잘 들었지? 자, 위하여!”
두꺼운 맥주잔 세 개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꽉꽉 담겨 있던 맥주 거품이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그 넘치는 거품에 얼른 입을 가져가 후루룩 마신다.
잔을 내려놓고, 안주를 바라본다.
오늘의 안주는 바로 먹태 구이.
명태는 세상에서 가장 별칭이 많은 생선이다.
얼린 건 동태, 생물은 생태, 말린 건 북어, 반쯤 말린 건 코다리, 봄에 잡으면 춘태, 가을에 잡은 건 추태, 낚시로 올린 건 조태, 몸뚱이가 부러진 파태, 먼 바다에서 잡은 원양태, 얼렸다 녹이는 걸 반복해서 만드는 황태 등등.
명태는 생선 중에서가 아니라 아마 모든 생명체 중에서 별칭이 가장 많을 거다.
먹태는 명태를 말린 황태가 포근해진 날씨 때문에 어는 시간을 빼앗겨, 속은 노릇하고 껍질은 거무스름한 빛을 띠게 되어 생겨난 종류이다.
껍질이 거무스름해서 먹태 또는 흑태라고 불린다.
물론, 이런 것들은 다 알 필요가 없다.
그냥 먹태는 맛있다.
그것만 알면 된다.
하지만, 먹태도 조리법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바싹 구워서 과자처럼 바스락거리는 식감이 나는 조리법을 선호한다.
영진호프의 먹태가 바로 그렇다.
맥주 안주로서의 먹태에서 매우 중요한 조연이 있다.
먹태가 주인공이라면, 이건 거의 핵심 조연이다.
이게 없으면 드라마가 성립이 안 되는.
그 조연은 바로 간장마요소스.
청양고추, 마요네즈와 간장을 섞은 이 소스는 그야말로 마성의 맛이다.
소스의 매콤 짭짤 고소한 맛이 먹태의 풍미를 한껏 돋워 준다.
때로는 먹태는 그냥 소스를 찍어 먹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때도 있다.
드라마에서도 가끔 주인공보다 조연의 존재감이 두드러질 때처럼.
어쨌든 이 먹태는 나의 최애 맥주 안주 중 하나이다.
바스락.
간장마요소스의 복합적인 감칠맛이 혀를 자극한 후 느껴지는 바삭함.
이 바삭함의 근원지는 바로 먹태 껍질에서 온다.
이거다.
먹태는 바로 이 껍질이다.
뭔가 짭짤하면서도 진하게 느껴지는 고소함.
잘 구워서 바삭거리는 식감.
“와…… 창성이 형. 역시 형 먹태는 진짜 최고야.”
“그럼! 형이 다른 건 몰라도 이 먹태 하나는 진짜 죽이게 만들잖냐. 자, 먹태도 나왔으니까 한잔하자!”
짠.
다시 잔이 부딪히고, 한 모금 꿀꺽 술을 들이켠 창성이 형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형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불현듯 형의 미래가 떠올랐다.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내가 노스트라다무스 같다.
그런 예언가처럼 뭔가 동그란 구슬을 통해서 형의 미래를 보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전생에서 들었던 형의 소식이 생각난 거다.
형은 잘 운영하던 영진호프를 접고, 대신 프랜차이즈 업체와 계약을 한다.
도쿄블루스였나?
무슨 일본식 선술집을 지향하는 브랜드였는데…… 하여간, 쫄딱 망한 브랜드라 잘 기억도 안 난다.
브랜드가 망했으니, 창성이 형도 당연히 망했다.
형은 부랴부랴 다시 영진호프로 돌아왔지만, 떠나갔던 단골들은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
그렇게 형의 맥주 인생이 마무리됐었다는 씁쓸한 소식이었다.
이번 생에는 형이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나의 최애 안주 먹태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뭔가를 해야 한다면, 해야겠다.
추억이 담긴 어떤 것이 사라진다는 건 늘 커다란 상실감을 남겨 주니까.
지킬 수 있다면, 지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