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56화 (56/110)

#56화 돼지불백과 방송국 (1)

새벽 네 시.

직원이 늘어나도 가장 먼저 가게의 문을 여는 사람이 나인 건 변함이 없다.

최덕호 사장님의 트럭 엔진 소리가 일찍부터 나온 나를 반겨 준다.

늘 그렇듯이.

“이 샤프. 재료 확인해 봐.”

“네, 사장님.”

언젠가부터 최덕호 아저씨는 나를 ‘이 샤프’라고 부른다.

셰프도 아니고 샤프가 웬 말?

그 의문은 어느 날 방앗간 황씨 아저씨의 입을 통해서 풀렸다.

- 요즘에는 이렇게 요리 잘하는 사람들을 샤프라고 한다지, 샤프. 어이, 이 샤프! 오늘도 음식 맛있게 잘 먹었네!

이 샤프의 근원지는 바로 황씨 아저씨였던 거다.

아저씨가 나를 ‘샤프’로 부르는 이유가 요리사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걸 알기에, 굳이 샤프가 아니라 셰프라고 정정해 주지 않았다.

언제나 보이는 건 실제보다 덜 중요하다는 게 내 지론이기도 하고.

샤프면 어떻고, 셰프면 어떤가.

그렇게 불러 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중요한 거지.

“사장님!”

“아이고, 깜짝이야. 왜? 물건에 문제 있어?”

최 사장님이 눈이 커진다.

“네, 문제 있습니다.”

“문제 있다고? 돼지 앞다리살 좋은 걸로 가져다준 건데? 등급도 이 샤프 자네가 원하는 걸로. 최상 등급 말고 그 아래 등급. 근데 문제 있다고?”

“네. 물건이…… 너무 좋아요. 고기 두께도 딱 제가 원하는 두께로 썰어 주셨고요. 매번 이렇게 잘해 주시면 문제 있죠. 제가 다른 데랑 일을 할 수가 없잖아요.”

“예끼! 어른 놀리면 못 써! 하하하. 깜짝 놀랐잖아. 하여간, 이 샤프는 말도 잘하네? 허허허허허.”

우리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가는 가운데 부모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아침부터 웬 웃음소리가 이렇게 커.”

“하하하. 안 웃을 수가 있나. 선우가 이렇게 나를 웃게 해 주는데.”

“호호호. 우리 선우가 뭘 또 그렇게 웃게 해 드렸는데요?”

“뭐, 말하자면 길고…… 그냥 두 사람은 좋겠네. 이런 아들 둬서.”

“물론이죠!”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게 민망했는지 두 분이 서로 얼굴을 보며 웃으셨다.

그렇게 웃을 때 안순미 아주머니와 진민호가 출근을 했다.

두 사람은 출근하자마자 전염이 된 것처럼 그냥 웃었다.

다들 하도 재미있는 표정으로 웃고 있으니 안 웃을 수가 없었을 거다.

이렇게 선우네 백반의 아침은 활기차고 밝게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 * *

<오늘의 메뉴>

- 돼지불백

- 쌈 채소

- 된장찌개

- 각종 김치

- 그 외 기본 반찬들

돼지불백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기사 식당이 떠오른다.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택시 기사님들이 국물 없는 음식을 선호하게 되면서 돼지불백은 자연스럽게 기사 식당의 인기 메뉴가 되었다.

그렇다고 한다.

물론, 그냥 소문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돼지불백은 줄임말이고, 원래의 이름은 돼지불고기 백반이다.

그야말로 돼지불고기에 밥과 각종 반찬을 함께 먹는 메뉴라는 뜻.

최 사장님이 잘 썰어 주신 돼지 앞다리살을 큰 대야에 붓는다.

예전 기사 식당에서는 후지라고 불리는 뒷다리살도 많이 사용했는데, 요즘엔 거의 앞다리살을 사용하는 추세이다.

아무래도 앞다리살이 뒷다리살에 비해 쫀쫀하고 식감이 좋다.

앞다리살의 두께는 4밀리미터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두꺼워도 양념이 잘 스미지 않고, 너무 얇아도 식감이 살아나지 않으니까.

먼저 고기를 재워야 한다.

돼지불고기를 재울 때 포인트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간 양파이다.

양파는 채로 썰어서도 넣지만, 이렇게 양념에 갈아서 넣어 주면 돼지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해 준다.

간 양파와 함께 진간장, 굴소스, 간 마늘, 간 생강, 소주, 물엿을 넣어 준다.

다음으로 흑설탕을 넣어 주는데, 백설탕 대신 흑설탕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흑설탕이 태워지면서 먹음직스러운 갈색 빛깔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비주얼 담당인 거지.

그리고, 양념을 섞기 전에 한 가지 재료를 더 추가한다.

된장이다.

된장을 넣어 주면 양념 맛의 풍미가 확 살아난다.

잘 재워 둔 고기는 냉장고에 넣어 두어 숙성시킨다.

고기와 같이 구울 채소는 양파, 대파, 청양고추가 있다.

채소를 써는 건 진민호에게 맡긴다.

진민호는 요새 칼질을 하는 데 재미가 들렸다.

여전히 백반집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중식도로 채소들을 썰어 낸다.

양파는 채 썰고, 대파는 어슷하게 썰고, 청양고추는 송송 썬다.

이제 제법 속도도 붙었다.

채소 손질은 믿고 맡겨도 되는 수준.

고기를 올리기 전 팬을 먼저 가열한다.

어느 정도 열기가 올라오면 양념한 고기를 먼저 넣는다.

처음에는 강불로 세게 볶아 준다.

촤악-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가 반갑다.

거기에 코를 자극하는 양념의 냄새까지.

볶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강력하게 침샘을 자극한다.

돼지고기와 간장 양념의 조합은 진짜 너무 사기인 것 같다.

어느 정도 수분이 날아가기 시작하면 양파, 청양고추를 먼저 넣어 같이 볶는다.

잘 볶아졌을 때쯤 썰어 놓은 대파를 넣고, 후추를 조금 뿌려 준다.

수분이 완전히 날아간 느낌이 들고, 고기의 빛깔이 진한 갈색빛이 돌면 오늘의 메뉴 돼지불고기 완성.

아, 침 고인다.

빨리 시식부터.

손님도 손님이지만, 내 입도 소중하니까.

그리고, 손님에게 내기 전 먼저 맛을 보는 건 당연한 절차니까.

이거…… 아침부터 밥 두 공기 각이다.

* * *

돼지불백은 인기 폭발이었다.

짭짤한 돼지불고기를 마늘 하나 넣어 상추에 싸 먹고, 된장찌개 한 입으로 마무리하는 그 맛.

한국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 그 조합이다.

밀려드는 손님에 한참 정신없이 고기를 볶아 내고 있는데, 아버지가 주방으로 다가온다.

“선우야.”

“네, 아버지. 배달 주문이에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방송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왔네?”

“방송국이요? 잠시만요.”

방송국이고 뭐고 일단 볶던 고기는 마저 볶는다.

돼지불고기는 소중하니까.

손님은 더 소중하고.

이후에도 한참 동안 주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백반 주문은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고, 한가롭게 누구와 얘기 나눌 수 있는 상황은 주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진민호마저 고기를 볶는 일에 투입시켰을까.

걱정과는 달리 진민호가 꽤 고기를 잘 볶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지난 후.

“아, 맞다. 방송국!”

정신을 차려 보니 두 시 반, 브레이크 타임이 다되었다.

앞치마를 벗고 헐레벌떡 주방 밖으로 나왔다.

어느 방송국에서 온 건지 무엇 때문에 온 건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라고 한 지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

장사 때문이라는 핑계는 있었지만, 그래도 찾아와 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

“아…… 방송국에서 온 분들은 가셨나 보네요?”

홀에는 식사를 마무리하고 계신 몇몇 손님 외에는 없는 듯했다.

“아, 그분들 돼지불백 맛보시더니 요 앞 카페에서 기다린다고 명함 놓고 가셨어.”

“그래요?”

“응, 내가 전화드려 볼게.”

잠시 후,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람 한 명과 작은 캠코더를 든 사람 한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MBS ‘TV 매일 저녁’ 팀에서 나온, 오명한 피디입니다.”

작은 캠코더를 든 사람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선우라고 합니다.”

“아, 이 가게 사장님이시죠?”

“음…….”

내가 머뭇거리자 어머니와 아버지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네가 사장인 걸로 하라는 그런 제스처였다.

두 분의 의사를 파악한 내가 피디의 말에 대답했다.

“네, 그런 셈입니다. 그런데, ‘매일 저녁’이라면…….”

방송 이름대로 매일매일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저녁 정보 프로그램이었다.

지상파 방송 3사에서 각기 비슷한 콘셉트로 방송을 진행하는데, 생활 속의 여러 정보가 담긴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주부들, 어른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네. 저희 방송은 잘 알고 계시죠?”

“그럼요! 저도 일 안 했을 때는 매일 저녁 챙겨 봤는데. ‘장 피디가 간다’. 그 코너 제일 좋아했어요.”

안순미가 주방에서 크게 외쳤다.

“오, 어머니! 애청자셨군요. 아쉽게도 저는 장 피디가 아니라 오 피디이긴 합니다만…… 하하하.”

“에이, 오 피디님도 알죠. 그 뭐냐. 택시 식객인가? 그거 만드시는 분 아니에요.”

오명한이 안순미를 향해 엄지를 치켜든다.

“와…… 찐 애청자 인증이네요! 전 얼굴도 잘 안 나오는데…….”

“저도 얼굴은 처음 봤어요. 근데, 코너 끝날 때 자막으로 항상 나오잖아요. 피디 누구, 작가 누구. 거기서 항상 이름을 봤죠. 호호호.”

“아……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명한은 안순미에게 꾸벅 인사까지 했다.

택시 식객.

말 그대로 택시 기사님들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코너이다.

그런 코너를 담당하는 피디가 찾아왔다는 건, 우리 가게를 그 코너에 홍보하고 싶다는 뜻일 테다.

아, 일단 금품을 요구하는지는 확인해 봐야 한다.

매일 저녁에서는 늘 자막으로 이렇게 알리고 있으니까.

- TV 매일 저녁에서는 출연을 담보로 어떠한 금전적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브레이크 타임이니 일단 두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

믹스커피를 한 잔씩 내어준 후 말했다.

“근데 저희 가게는 택시 기사님들의 맛집이라고 하기에는 좀…….”

기사님들이 찾는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주차 공간이 없다는 점.

그러니, 항상 차를 끌고 다니는 기사님들이 여기까지 찾아올 수는 없는 법이다.

“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크게 상관은 없어요. 저희 코너가 워낙 오래되기도 했고, 사실상 웬만한 기사 식당은 다 소개가 되었습니다. 요새는 기사 식당이 아니어도 기사님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점, 또는 지역의 기사님들이 알 만한 숨겨진 맛집들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저희 가게는 어떻게 알고 오신 건가요?”

“게스트북을 통해서 봤습니다! 마침 가기로 했던 인근의 식당이 촬영이 어려워져서 급하게 촬영할 곳을 찾고 있었거든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같은 경우 하루 일을 못 하면 그게 그대로 비용인지라…….”

무슨 말인지 이해된다.

촬영이라는 게 늘 장비를 동반해야 하는 일이라, 당일 촬영이 펑크 나면 그건 그대로 비용으로 전가된다.

그러니, 일단 촬영 일자가 잡히면 무조건 촬영을 강행하는 게 손해를 안 보는 것이고, 방송국의 일이다.

이런 작은 프로그램이라도 사정은 같을 것이다.

매일 방영되는 프로그램 특성상 일정도 다시 잡기 힘들 테고.

오 피디의 말은 계속 됐다.

“바쁘시다길래 일단 먼저 먹어 봤습니다. 그리고, 확신했습니다! 이 집은 무조건 다뤄야 한다! 이 돼지불백은 택시 식객 10년 역사상 최고의 돼지불백이다! 라고요. 하하하.”

뭐랄까?

처음 봤지만, 참 에너지가 좋은 사람이다.

유쾌하면서도 추진력이 있어 보이고,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맛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아침에 나도 내가 만든 돼지불백을 먹어 보고, 오늘 장사 접을 뻔했다.

만들어 놓은 거 내가 다 먹고 싶어서.

하하.

그렇게 선우네 백반은 처음으로 지상파 TV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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