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58화 (58/110)

#58화 돼지불백과 방송국 (3)

- 사장님. 장사하시느라 방송 못 보셨죠? 그럴 줄 알고 메일로 파일 보내드렸습니다. 그림 아주 잘 나왔으니까 재미나게 감상하세요! 급한 요청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밥 먹으러 갈게요!

오명한 피디의 메시지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온 나는 컴퓨터를 켰다.

계절도 슬슬 더워져 가니, 맥주 한 캔과 함께 오명한이 보내 준 파일을 본다면, 하루의 마무리가 완벽할 듯하다.

부모님과 직원들에게는 내일 브레이크타임에 틀어 줘야지.

* * *

오명한 피디는 목소리로만 등장했다.

“아버님, 평소에 이 집 자주 오세요?”

“자주 오냐고? 매일 오지. 매일! 아니다. 삼시 세끼 여기서 먹지!”

“삼시 세끼를요?”

“그러어엄. 여기 음식은 삼시 세끼 일주일 내내 일 년 삼백육십오 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아, 질리지가.”

“오…… 메뉴가 자주 바뀌나 봐요?”

“자주? 에이. 피디 양반 뭘 너무 모르고 오셨네. 여기는 그냥 매일매일이 다른 메뉴야. 내가 십 년 동안 여기 다녔는데 한 번도 같은 메뉴를 먹은 적이 없다니까! 허허허!”

십 년 동안 한 번도?

황씨 아저씨의 터무니없는 과장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근데, 왠지 그 모습이 그냥 고맙다.

말도 안 되고, 어이도 없지만 아저씨가 저러는 이유를 알 것 같으니까.

조금, 아니 많이 과장을 보태서라도 우리 가게를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함일 테니까.

“선생님, 혹시…… 제가 아는 분 아닌가요?”

“아, 저 말씀이십니까?”

영상 속의 김흥범 교수는 심히 당황해하는 듯했다.

“네. 분명 낯이 익는데…… 아! 영훈대학교 교수님이시죠?! MBS ‘맛의 발견’에 나오시는!”

“아아. 네, 맞습니다. 김흥범이라고 합니다.”

“맞아요. 김흥범 교수님! 와…… 교수님도 이 집 단골이신가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이미 여러 번 칼럼에도 올렸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혹시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이 집만의 장점이 있을까요?”

“장점……이요?”

잠시 머뭇거리던 김흥범이 다시 입을 연다.

“아마도…… 모든 것?”

“네?”

“일단, 음식이 맛있습니다. 적어도 어느 누가 먹어도 평균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음으로는 메뉴가 다양합니다. 곰탕, 감자탕, 김밥, 돈가스, 굴국밥 등등. 여기서 만드는 메뉴는 전문집에 가셔야만 먹을 수 있는 퀄리티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대단한 건 말입니다. 이 모든 메뉴를 단돈 육천 원에 즐길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 시내에서요. 이런 집이 또 있을까요?”

김흥범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찌 보면 이런 프로그램에는 어울리지 않는 근엄 모드.

하지만, 내 눈엔 그게 또 좋아 보였다.

얼마나 진심이면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할까.

그저 또 고마울 뿐이다.

“헬로우, 웨얼 아 유 프롬?”

오명한이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건 상대는 빅터다.

스웨덴 출신의 갓김치를 좋아하는 빅터 요한손.

마침 빅터의 입에 갓김치가 국수 면발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김치를 다 씹은 빅터가 입을 열었다.

“안녀하세여, 스웨덴에서 와써여. 이거 진짜 짱이에여. 갓. 김. 취!”

“오, 한국말 잘하시네요? 평소에 이 집 자주 다니세요?”

“네네. 매일 와요. 매일. 학생식당 대신 와요. 매일매일.”

“그 정도로 맛있나요?”

“물론입니다! 이 집 김취 진짜 짱, 짱이고여. 오늘 먹고 있는 이거. 이 갈색 고기. 와…… 미쳐써여! 완존 미쳐써! 최고!!!”

빅터는 기다란 코를 씰룩거리며 신나게 말했다.

참 귀여운 친구이다.

큰 키와 남자답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순둥순둥한 성격의 부조화가 참 귀엽다.

“아, 근데. 빅터 요한손 씨. 혹시…… 누구 닮았다는 말 잘 안 들으세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그리고, 신. 현. 중!”

크크큭.

이 대목에서 그만 현실 웃음이 터져 버렸다.

언젠가 한 번쯤 세 사람을 나란히 세워 두고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장면에는 또 익숙한 얼굴들이 나왔다.

안, 이 커플과 주광재 그리고 이초희.

“오늘 돼지불백 맛 어떠세요?”

“음…… 일단, 이 굽기 정도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수분기 없이 바삭하게 구워 낸 이 굽기요. 돼지불백은 뭐니 뭐니 해도 이렇게 바싹 구워서 약간 탄 맛이 나야 맛있거든요.”

“맞아요. 간장이 고기와 만나 불에 그을리면서 생기는 그 감칠맛. 그게 아주 입맛을 돋워 주거든요. 저는 원재료인 고기도 참 맘에 들어요. 보통 뒷다리살보다 앞다리살이 비싸서 식당에서는 뒷다리살을 쓰는 경우도 많은데, 이건 앞다리살이에요. 이 지방 부위 쫀득쫀득한 거 느껴지시죠? 이러니 맛이 없을 수가 없죠.”

안, 이 커플이 전문가 같은 분위기를 뽐내며 맛 평가를 했다.

두 사람은 음식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음식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걸 참 좋아한다.

그만큼 공부도 열심히 해서 지식도 많고.

다음 영상에는 주광재가 등장했다.

“손님은 왜 고기는 안 드시고, 쌈이랑 반찬만 드시고 있는 거예요?”

“아. 여기는 고기 없이도 나머지 반찬들이 정말 맛있거든요. 사실 이 집의 주인공은 이 김치들이에요. 깍두기, 배추 김치, 갓김치 등등. 저쪽에 보시면 김치도 직접 만들어서 팔고 있어요.”

“어쩐지…… 아까 저도 먹어 봤는데 김치가 정말 맛있더라고요!”

사실 주광재는 구운 고기는 먹지 않는다.

특히 저렇게 양념에 재운 불고기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주겠다고 저렇게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도움은 매우 적절했다.

모두가 고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김치 홍보를 제대로 해 줬으니까.

지난번 깊은 얘기를 나눈 후에는 주광재의 행동이 모두 좋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카메라는 주광재를 거쳐 이초희에게 향했다.

“아까부터 정말 맛있게 드시네요. 그렇게 맛있으신가요?”

“…….”

이초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쌈을 크게 싸서 입 안으로 가져가 오물오물 씹었다.

과하지 않게 참 맛있게 먹는다.

시청자들은 저렇게 먹는 모습만 봐도 식욕이 올라올 거다.

한마디 말없이도 음식이 맛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어쩌면 맛있다는 백 마디 말보다 저게 더 확실한 표현이다.

다음 장면은 차마 눈을 뜨고 지켜보기가 어려웠다.

“사장님, 오늘 돼지불백의 비결이 뭔가요?”

오명한 피디가 주방에 들어와서 나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다.

언제나 내가 나오는 영상을 보는 건 참……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이다.

웃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보게 된다는 거다.

너무 궁금하고.

애들이 거울 보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뭐, 어른도 영원한 애들이나 다름없다.

껍데기는 크지만, 우리 안엔 다들 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양념을 재울 때 간 양파를 집어넣는 게 포인트입니다.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거든요.”

“아…… 그래서 아까 먹어 봤을 때 살이 야들야들하게 느껴졌군요.”

“네, 간 양파와 함께 된장을 조금 넣어 주면 고기의 풍미가 확 살아납니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한 번 따라해 보시면 좋을 겁니다.”

헉.

내가 저런 간지러운 멘트를 했단 말인가.

영상 속의 이선우는 카메라 쪽을 보면서 씨익 웃고 있었다.

오른손 엄지를 치켜올리면서.

불맛을 내느라 불 속에 계속 있다 보니, 정신이 좀 나갔나 보다.

“사장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겠습니다. 가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만의 철학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아…… 철학이라면…… 음, 글쎄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가장 큰 보람이라면 내가 만든 음식을 손님이 맛있게 드셔 주는 겁니다. 나아가 장사를 하는 사람의 보람이라면 우리 가게에 온 손님들이 저마다 행복하게 웃으면서 나가실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거고요.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웃으면서 나가실 수 있도록 하는 거. 제 철학이라면 그게 다입니다.”

으으으.

끝까지 손발 오그라드는구먼.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다음부터는 방송 같은 거 하지 말까?

그렇게 재미있게, 그리고 고마운 마음으로 영상을 본 후, 잠시 인터넷 서핑을 했다.

시작은 언제나 선우네 백반 검색부터.

방송을 본 몇몇 블로거가 상호명과 가게 위치를 공개해 놓은 게 보인다.

그리고, 외식홀릭의 게스트북 홈페이지에는…… 맙소사.

아니, 이걸 언제 구해서 이렇게 올렸대?

마침 로그온 되어 있는 외식홀릭, 이초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 초희 씨. 안 자고 있었네요?

- 아, 사장님! 방송 진짜 잘 봤어요. 호호호. 근데…… 저 진짜 너무 먹보처럼 나왔죠?

- 아…… 좋던데요? 여러 말 하는 것보다 그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사람들 인상에는 확 남는 법이죠. 근데요…….

- 네?

- 제 인터뷰 영상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 오…… 보셨구나? 너무 잘했죠, 저? 그날 피디님한테 제가 선우네 백반 홍보 담당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맘대로 쓰셔도 된다고 영상 보내 주셨더라고요! 그래서 사장님 인터뷰 영상만 잘라서 올렸어요. 너무 잘 나와서.

아…… 그랬었구나.

근데, 어떡하지.

난 저 영상을 볼 때마다 온몸이 오그라드는 걸 참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 네, 잘하시긴 했는데…… 그래도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영상을 올리는 건 어떨까요? 그게 더 사람들이 보기에 좋을 것 같은데…….

-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선우네 백반 홍보니까 사장님 얼굴이 딱 나와야죠. 사장님 말씀도 너무 좋았고. 그 잘난 얼굴…… 그러니까, 음…… 잘 ‘나온’ 얼굴을 잠재 고객들에게 많이 알려야죠.

- 크흠. 그, 그래요. 그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 게시물은 점점 밑으로 내려갈 거니까. 하하하.

- 그럴까 봐 제가 대문에 고정해서 딱 박아 두려고요.

- 아…….

이럴 때는 또 참 철저하네.

- 참, 가게에도 이 영상 계속 틀어 놓는 게 어때요? 왜 다른 집들 보면 가게 소개 영상 계속 틀어 놓잖아요.

- 아, 아니요! 괜찮아요!

손발 오그라드는 그 영상은 온라인으로 족하다.

가게에서까지 그걸 보고 싶진 않다고!

* * *

며칠 후 장사 준비 시간.

“안녕하세요!”

진민호가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시 후 들어온 그의 손에는 웬 TV 하나가 들려 있었다.

“웬 TV예요?”

“아…… 우리 방송 나온 거 그대로 두기엔 아깝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안 쓰는 TV 가져왔습니다. 이거 벽에 걸어 두고 365일 24시간 틀어 놓으려고요.”

“오…… 아이디어 좋다!”

“진민호 씨 진짜 생각 잘하셨네요.”

“역시 사회 생활 오래 하신 분은 달라. 진짜 센스 최고시다.”

맙소사.

저분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지금 이 안에서 표정이 썩은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나머지 분들은 다들 진민호를 칭찬하며, TV를 어디에다 걸면 좋을지, 벽에는 어떤 방식으로 걸어야 하는지 신나게 논의 중이었다.

이렇게 해서 앞으로 24시간 365일 내내 나의 손발은 오그라들 예정이었다.

그러다가 아예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요리 못 하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