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축제의 맛 (1)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저쪽에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사장님!”
크게 외치며 달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초희였다.
“초희 언니, 안녕하세요!”
“어, 혜승이도 왔구나?!”
두 사람은 한 십 년 만에 만난 것처럼 두 손을 부여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어제 점심에도 만나 놓고…….
두 사람은 서로를 안 지 얼마 안 되어 급격히 친해졌다.
봉사활동을 통해 만났다는 공감대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공감대는 바로…… 서로의 식사량이 비슷하다는 거였다.
두 사람은 이런 친구를 만난 게 처음일 거다.
남녀를 떠나서 자기와 비슷한 식사량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게 말이다.
“자, 그럼. 제가 학교 홍보대사답게 안내를 좀 해 드릴까요?”
“언니, 학교에서도 홍보대사예요?”
“응, 나 우리 학교 공식 홍보대사잖아. 호호호.”
“우와…… 멋지다…….”
“멋지긴 뭘. 실제로 별로 하는 일은 없어. 헤헤. 자, 가자!”
팔짱을 낀 채 앞서가는 두 사람을 뒤따랐다.
영화학과에서 하는 영화 상영회.
패션디자인학과에서 주최하는 패션쇼.
누가 하는지 모를 물풍선 던지기 대회(계속 물풍선을 맞고 있는 학생들이 참 안쓰러워 보였다).
여러 학과에서 대낮부터 벌이고 있는 주점 등등.
오랜만에 맛보는 축제 분위기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사십 대에도 이런 축제에 가슴이 뛰는구나, 하고 신기해하며.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을 확 잡아 끄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 – 상금 30만 원]
내 시선은 자연스레 두 사람을 향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 보자.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단호한 결의 같은 게 느껴졌다.
* * *
“잠시 후,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예선을 통과하신 참가자분들은 대회장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를 보는 학생의 멘트가 들려왔다.
두 사람에게 예선은 너무 쉬웠다.
삼십 분 안에 햄버거 다섯 개를 먹으면 통과였으니까.
나 같아도 그 정도는 하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겨우 겨우 삼십 분 안에 다섯 개를 다 먹고 결승을 가면 뭐 하나?
어차피 결승 가면 아무것도 못 먹을 텐데.
“언니. 몇 개 정도 생각해요?”
“글쎄다. 천천히 먹으면 삼십 개까지는 될 거 같은데…… 우승은 네가 해. 속도는 아무래도 네가 빠르잖아. 제한 시간이라는 게 있으니까.”
“에이…… 제한 시간은 넉넉해요. 내가 보기에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중요하지. 햄버거가 불고기버거라서 내가 좀 불리해. 난 치킨버거를 더 잘 먹거든요.”
“그래? 난 불고기가 좀 더 낫던데. 달달한 게.”
“나는 단맛은 그렇게 많이 못 먹겠더라. 왜 하필 불고기버거래…….”
진지한 표정과 말투의 두 사람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오려 했다.
하지만, 잘 맞춰 주자.
우승 상금이 무려 30만 원이다.
상금 타면 주점에서 술 사 먹어야지.
물론, 미성년자 혜승이는 빼고.
난 코치 역할을 해 주기로 했다.
진지하게.
링 위에 올라가는 복서들의 코치처럼.
“자, 두 사람 심호흡 한 번 크게 하자.”
휘우우. 휘우우.
두 사람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잘 들어. 내가 보기에 경쟁자라고 여겨지는 건 딱 두 명 정도야. 저기 뚱뚱한 친구 보이지?”
“네, 보여요.”
“저 친구가 우리 가게에도 가끔씩 오는 친구인데, 지난번에 돈가스 먹는 거 보니까 이런 양식이나 패스트푸드에 강한 것 같아. 알다시피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일수록 더 잘 먹으니까 경계해야 돼. 페이스 말리지 말고.”
“네!”
“다음은 저기 키 큰 남학생.”
“저 사람이요? 전혀 잘 먹게 생기지 않았는데요. 비쩍 말라 가지고.”
혜승이의 말에 이초희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노우노우. 기량 면에서는 저 뚱뚱한 사람보다 저 키 큰 학생이 한 수 위야. 선우네 백반에 와서 먹는 거 봤는데…… 공깃밥을 다섯 개나 추가해서 먹더라고. 그것도 매일같이. 그런데도 저렇게 말랐다는 건 뭘 의미하겠어?”
“설마…….”
“그래. 늘 충분히 먹지 않는다는 거야.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거지.”
“흐음…….”
혜승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혜승아.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아. 오늘 더 큰 세상을 경험해 봐라.”
그리고…… 꼭 이겨라.
아무나.
“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영훈대 체육학과에서 개최하는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제한 시간은 한 시간입니다. 그 한 시간 동안 가장 햄버거를 많이 먹는 분께 상금 3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자, 선수분들 준비되셨죠? 시-작!”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대회가 시작되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 저 여자 둘은 뭐야? 설마 저 작은 몸으로 덩치들을 이기겠다고?
- 그러게. 예선 통과한 것도 신기하다.
- 상금에 눈이 먼 거 아니야?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급차 대기시켜야 되는 거 아냐? 억지로 먹다가 급체하면 어떻게 해.
급체라…… 다른 참가자는 몰라도 저 두 사람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태어나서 한 번이라도 체해 본 적은 있나 모르겠네.
두 사람에게 경계해야 할 인물들을 알려 주고 혜승이에게는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하기는 했지만…… 난 솔직히 이 대회의 구도를 이렇게 본다.
이초희 VS 유혜승.
저 둘을 대적할 상대는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다.
최소한 전국 단위에서는 겨뤄야 두 사람에게 대적이 될 만한 상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대회 시간의 절반이 흘러갔다.
결승 참가자 열 명 중 여섯 명은 이미 나가떨어졌고, 최종적으로 네 명이 남았다.
이초희, 유혜승, 그리고 아까 언급했던 두 사람.
다시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린다.
- 와…… 완전 미쳤다. 저 두 여자…… 얼굴색 하나 안 변하는데?
- 질린다, 질려. 아니…… 위가 몇 개야, 도대체? 벌써 몇 개나 먹은 거야?
- 둘 다 열다섯 개 정도는 먹은 것 같은데?
- 여, 열다섯 개? 와…….
- 야, 나머지 두 사람 봐 봐. 저 키 큰 사람은 얼굴 완전히 썩었는데?
- 뚱뚱한 사람도 비슷한데?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 있어.
사람들의 말처럼 과연 그랬다.
솔직히 이미 저 두 사람과는 체급 차이가 컸다.
이초희와 유혜승이 국가대표급이라면, 저 두 사람은 동대표쯤 되는 수준.
아예 대적이 안 되는 급이다.
잠시 후 나머지 두 사람도 나가떨어졌다.
이제부터야말로 진검 승부.
선우네 백반의 홍보 담당과 홀 담당의 자존심을 건 대결.
재미있는 건 두 사람의 스타일이 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이초희는 햄버거 하나를 정확히 2분에 걸쳐 나눠 먹고 있었다.
그렇게 햄버거 하나를 다 먹고, 콜라 한 모금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
반면, 유혜승은 양손으로 햄버거를 하나씩 쥐고 번갈아 가며 우걱우걱 먹는다.
그렇게 한 다섯 개 정도를 미친 듯이 먹고 난 후 콜라를 마시며 쉰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다시 그 미친 듯한 폭주를 시작한다.
이초희가 마라톤을 하듯이 먹는다면, 유혜승은 단거리 달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듯이 먹는다.
사람들은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먹방 대결을 흥미롭게 관전하고 있었다.
- 와…… 결국 저 두 사람만 남았네?
- 둘 다…… 저 얼굴로 저렇게 먹는다고? 완전 의외네.
- 저 정도면…… 푸드 파이터 대회 같은 거 나가도 되겠는데?
이 시대에는 아직 ‘먹방’이라는 키워드는 유행하기 전이었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도 아직은 활성화되기 전이니까.
아마 5년만 더 지나면 저 두 사람은 동영상 스트리머 기획사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난리 날 거다.
물론, 유혜승은 그 전에 배우로 데뷔를 하겠지만…….
잠시 후,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가 끝이 났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햄버거 서른 개씩을 나눠 먹고 공동 우승자가 되었다.
기념 사진을 찍는 두 사람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안해 보였다.
대회가 아니라, 마치 평소의 한 끼 식사를 한 것처럼.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먹는 여자 두 명과 친구가 된 게 아닐까?
뭐, 어쨌든 좋았다.
두 사람이 상금 30만 원을 반씩 나눠 가졌으니…… 코치인 나에게도 뭔가 콩고물은 떨어지겠지. 후후.
* * *
첫 번째로 떨어진 콩고물은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렇게 먹고도 입가심을 해야 된다나?
뭐, 아이스크림이라면 나도 정말 좋아하니까.
콘에 세 덩이나 올린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조심스럽게 핥아 먹으며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중에 또 반가운 얼굴을 마주쳤다.
“수미야!”
이초희가 먼저 다가가 소리쳤다.
늘 붙어 다니는 안대훈, 이수미 커플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다.
커다란 천막과 테이블이 놓여 있는 이곳은 ‘외식 마을’이라고 불리는 외식경영학과의 주점.
“초희야, 큰일 났다.”
“응? 무슨 큰일?”
“주명이가 못 온대.”
“주명 오빠가? 그 오빠가 요리 다 맡아서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응…….”
“주명이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기로 했던 애들이 우르르 빠져나갔어.”
“그거 설마…….”
“맞아. 메종푸드 면접.”
“아니…… 무슨 회사가 채용을 축제 기간에 해?”
“채용만 하면 이해하지. 4학년은 어차피 축제 참석도 안 하니까.”
“문제는 저학년 방학 인턴도 지금 뽑는다는 거. 하아…… 완전 망했다.”
“걱정하지 마. 나라도 도와줄 테니까.”
이초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메종푸드라…… 회장이 좀 독특한 사람이긴 하지.
워커홀릭에 성격은 또 어찌나 급한지…….
왠지 머릿속에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회장은 빨리 좋은 인력 뽑으라고 닦달했을 거고, 인사팀에서는 그런 회장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일을 급하게 추진했을 거다.
축제고 뭐고, 내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런 걸 고려하겠는가.
덕분에 괜한 안대훈, 이수미만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고 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저기요, 사장님.”
“네?”
쭈뼛거리는 안대훈.
왠지 할 말이 있는 듯 보인다.
그의 표정,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분위기를 고려할 때 대강 그의 다음 말이 예상됐다.
음……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나도 내 본업이 있으니…….
“잠시만요. 대훈 씨.”
잠깐 사람들의 틈을 벗어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그래요? 음…… 알겠어요. 네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전화를 끊고, 다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좌절에 빠져 쭈그려 앉아 있는 외식 마을 촌장 안대훈에게 다가갔다.
“대훈 씨. 장사 준비는 다 되어 있는 거예요?”
“네?”
“그러니까…… 뭐, 기본 식재료랑 술 같은 거. 또, 기본 조미료하고 양념 같은 거요.”
“아, 네네. 그럼요. 당연히 그런 건 준비되어 있죠!”
“그럼…… 잘해 봐요. 오늘 하루만 도와주면 되는 거죠?”
“어엇! 네네! 내일은 다시 주명이가 나온다고 했어요! 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안대훈은 이마에 코를 박을 것처럼 인사를 했다.
뭐, 그렇게 할 것까지야.
어머니에게 확인을 해 보니 어차피 가게는 한가하고, 축제도 즐길 만큼 즐겼다.
이초희와 유혜승이 많이 먹기 대회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한껏 뽐낸 것처럼, 나도 여기서 내 실력을 좀 뽐내 봐야지.
이렇게 해서 갑작스럽게 외식 마을의 일일 셰프가 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