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65화 (65/110)

#65화 축제의 맛 (2)

본격적으로 장사 준비에 돌입하면서 메뉴판을 확인했다.

- 부추 무침을 곁들인 삼겹살 통찜

- 각종 해물이 들어간 한국식 전가복

- 영훈대학교 정식(돈가스, 새우가스, 생선가스 포함)

- 와인 소스를 얹은 안심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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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허허.

웃음만 나오는구나.

이게 무슨 주점 메뉴야?

외식경영학과 학생들이다 보니 좀…… 아니 많이 무리한 것 같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해는 간다.

명색이 외식경영학과의 주점인데, 평범한 메뉴를 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겠지.

적어도 다른 과의 주점보다는 훨씬 더 있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런 음식들이 과연 축제의 주점에 와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메뉴들일까?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아서, 역시 플라스틱으로 만든 파란 비치 테이블 위에서 사람들이 먹고 싶어 하는 건 뭘까?

어두워지면 서로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으며, 각종 소리로 시끄러운 그런 축제의 현장에서 말이다.

“대훈 씨.”

“네, 사장님.”

“이 메뉴들 다 바꿔도 되죠?”

“메뉴요? 음…… 그게 저희가 밤새 고민해 내어 만든 메뉴들이긴 한데…….”

“그럼…… 이 메뉴들 바로 조리할 수 있게 준비된 건가요?”

“아, 그건…… 원래 주명이가 아침에 와서…….”

“재료들만 있다는 거네요.”

“네…….”

안대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미안해할 거 없는데…….

어차피 이 메뉴들은 주점의 메뉴로서는 실패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준비를 안 해 놓은 게 나로서는 훨씬 일을 편하게 할 수 있을 듯하다.

“대훈 씨, 지금 제가 불러드리는 메뉴로 메뉴판 바꾸시죠.”

“네? 아, 네네. 받아 적을게요.”

“해물파전, 삼겹제육볶음, 소고기 안심 구이. 아, 그리고 어묵탕까지.”

“그게 다……인 거죠?”

안대훈의 질문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어딘지 모르게 실망한 기색을 내보이는 안대훈.

나의 예상처럼 이들은 외식경영학과의 요리 주점에 뭔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했다.

이들의 마음은 알지만…… 난 이들과는 관점이 다르다.

그런 내 생각을 조금은 설명해 줄 필요가 있겠다.

오늘 하루뿐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와 안대훈은 사장과 셰프의 관계 같은 거니까.

식당에서 그 두 사람의 관계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 둘이 서로 맞지 않으면 식당은 그냥 파탄 나는 거라고 보면 된다.

“대훈 씨. 축제 주점에 주로 오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음…… 아무래도 대학생들이겠죠?”

“맞아요. 근데, 그 학생들이 이 주점에 와서 기대하는 건 뭘까요?”

“음……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걸 먹고, 축제의 분위기를 즐기고…… 뭐 그런 거 아닐까요?”

“그렇죠. 축제의 분위기…… 활기차고, 신나고, 조금 어지럽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정돈되지 않은 분위기가 좋은 거겠죠. 축제란 그런 거니까. 좀 어지럽고, 정신없고, 그럼에도 신나고 즐거운 것.”

“맞아요. 뭔가 좀 풀어져 있고, 마음을 놓고 몸을 움직여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 그게 축제의 매력이죠.”

“잘 알고 있으시네요. 그런데…… 이 메뉴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안대훈에게 메뉴판을 다시 내밀었다.

안대훈은 나지막한 소리로 메뉴들의 이름을 읊어 내려갔다.

“와인…… 스테이크…… 한국식 전가복…… 정식…… 음…… 무슨 레스토랑이나 한정식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네요?”

“그렇죠? 어떤가요. 이 축제의 밝고, 흐트러진 분위기와 잘 맞는 거 같나요?”

안대훈이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혀 아니네요.”

“네. 메뉴를 짠 여러분들의 노력과는 달리…… 이 음식들은 축제와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제 아시겠죠? 제가 메뉴를 바꾸려는 이유를.”

안대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이해됐어요. 사장님. 얼른 가서 메뉴판 다시 뽑아 올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안대훈은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메뉴판을 전부 회수해 들고 갔다.

식당 운영을 하다 보면 저마다 다른 생각 때문에 부딪히는 경우가 생긴다.

셰프는 자기가 생각하는 요리를 하고 싶어 하고, 사장은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식당의 이익을 위해 셰프가 제안한 방식이 사장의 고집으로 인해 거절될 수 있다.

그런 문제의 대부분은 파국으로 끝난다.

다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관철하지 못하면 그걸 실패라고 생각하니까.

대부분은 셰프가 관둔다.

사장이 관둘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식당은 백이면 백, 같은 문제를 계속해서 겪는다.

사장이 스스로가 잘못됐음을 깨닫지 않는 이상.

뭐, 안대훈과 나의 경우는 케이스가 좀 다르긴 하다.

안대훈은 고작해야 아직 학생이고, 나는 이제 근방에서는 꽤 유명해진 식당의 사장이니까.

안대훈이 내 설명에 더 이상의 토를 달기는 어려운 이유다.

그리고…… 내가 주로 얘기하긴 했지만……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런 현란한 축제의 분위기에는 거기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내자는 거.

여긴 레스토랑이나 한정식집이 아니라, 싱그러운 5월의 축제 현장이니까.

* * *

전가복.

중화 요리의 일종으로 각종 고급 해물을 걸쭉하게 볶아 내는 음식이다.

전복이나 해삼 같은 재료가 들어가고, 양념도 순하게 하기 때문에 보양식으로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전가복에 들어갈 해물을…… 해물파전에 쓸 생각이다.

전복, 새우, 소라, 해삼이 들어간 해물파전이라…… 역대급 고급 파전이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쪽파는 잘 씻어서 다듬은 후 반으로 잘라 준다.

전복, 오징어, 새우, 소라 등의 해물은 그냥 쓸 경우 수분이 많이 나와 파전의 식감을 눅눅하게 할 수 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물기를 빼내 준비한다.

반죽에는 튀김 가루도 함께 넣어 주면 좋다.

바삭한 전의 식감을 위해서.

계란도 미리 까 놓으면 좋은데, 굳이 일부러 섞을 필요는 없다.

전을 부치면서 섞여도 좋고, 안 섞여도 그건 그 나름대로의 맛과 풍미가 있으니까.

해물, 계란, 반죽의 준비가 끝나면 다음으로는 양념 간장을 만든다.

간장, 고춧가루, 식초, 설탕, 다진 마늘, 참기름 등을 넣고 잘 섞는다.

여기에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서 넣어 주면 매운맛도 추가되면서 씹는 맛도 배가된다.

그렇게 간장까지 준비가 끝나면, 대망의 전 부치는 시간이다.

해물파전은 각 재료들을 미리 섞지 않고, 팬 위에서 섞는 게 포인트다.

먼저 기름을 두른 팬 위에 쪽파를 일렬종대로 세워 깔아 놓는다.

그 위에 반죽물을 끼얹고, 다시 그 위에 각종 해물을 올린다.

해물 위에 반죽물을 한 번 더 끼얹은 후, 이번엔 계란물을 부어 준다.

이제 노릇노릇하게 굽기만 하면 완성.

“잘 봤죠?”

“네.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이초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그녀는 나의 주방 보조를 맡게 되었다.

미성년자인 혜승이는 가게로 보냈다.

아무리 축제이지만, 술집에서 일을 시킬 수는 없지.

혜승이가 간다는 소식에 주점의 남학생들이 매우 아쉬워하긴 했지만.

삼겹살 제육볶음은 일반 제육볶음과는 그 방법이 다소 다르다.

일반 제육이 양념에 재워 놓은 돼지고기를 볶아 먹는 개념이라면, 삼겹살 제육볶음은 구운 삼겹살에 양념을 섞어 볶는 개념이다.

그 차이는 삼겹살이라는 재료의 특성에서 온다.

삼겹살은 역시 기름에 자글자글, 바삭하게 구워야 맛있는 부위.

그러니, 우선 삼겹살을 기름에 굽고 난 후 그 기름과 함께 양념장과 채소를 넣고 볶아 요리를 완성시키는 거다.

프라이팬에 한입 크기로 자른 삼겹살을 올려 굽는다.

적당한 기름이 올라오면, 송송 썰은 파를 넣어 파기름을 같이 내어준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에 설탕을 적당량 붓는다.

지금 설탕을 넣어 줘야 고기에 그 맛이 잘 배어나서 감칠맛을 높여 준다.

양념은 일반 제육볶음과 동일하다.

고추장, 다진 마늘, 고춧가루, 진간장 등.

만들어 둔 양념을 섞고, 거기에 양파, 대파 등의 채소도 넣어 준다.

이제 채소의 숨이 죽을 정도로 충분히 볶아 내면 완성.

아, 불맛은 못 냈다.

부탄가스 버너에서 불맛까지 내는 건 진짜 마술사 수준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옆에서 이초희가 조리 과정을 열심히 적고 있다.

축제이다보니 아무래도 손님들이 몰려들 거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음식을 해야 할 거다.

그러니, 주방 보조인 이초희도 조리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소고기 안심 구이인데…… 이거야말로 진짜 쉬운 요리다.

와인을 곁들인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였나?

그 메뉴를 위해 안심을 준비해 둔 모양인데……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기에 무슨 와인 소스 이런 거 안 좋아한다.

그냥 적당한 크기로 안심을 썰어서 굽고, 소금 기름장 내어주면 된다.

올리브유? 이런 것도 필요 없다.

그냥 일반 식용유에 숭덩숭덩 썬 고기를 잘 구워서 내보낼 생각이다.

거기에 양파 같은 채소나 좀 추가하지 뭐.

소금, 후추 적당히 뿌려 주고.

군복을 연상시키는 녹색 밀리터리 접시에는 스테이크보다 이게 더 잘 어울린다.

“자, 시식해 보시죠.”

만든 메뉴들을 테이블로 가져갔다.

안대훈, 이수미를 비롯한 외식 마을의 학생들이 일제히 젓가락을 놀렸다.

역시 젓가락을 들고 전투에 참전하려는 이초희를 살짝 말렸다.

“초희 씨는 오늘 주방 보조잖아요.”

“주방 보조는 먹으면 안 돼요?”

“아뇨. 그래도 저 사람들 맛보고 난 후 드셔 보세요.”

“아…… 배고픈데…… 요리를 만들어서 그런가?”

지금 내가 잘 들은 거 맞나?

배…… 배고프다고?

햄버거 서른다섯 개를 불과 몇 시간 전에 먹은 사람의 입에서 저게 나올 소리인가?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정말 윤리적으로 타당한 것일까?

진짜…… 사람 맞나?

내 시선과 생각을 느꼈는지, 이초희가 배시시 웃었다.

본인도 민망하겠지…….

“와…… 해물파전 바삭한 것 봐. 너무 고소하다.”

“전도 전인데, 이 해물 어떡할 거야? 이거 완전 최고급 파전인데?”

“삼겹살 제육볶음…… 와…… 밥 생각난다. 여기 공깃밥 없어요? 이건 완전 밥을 부르는 반찬인데. 너무 맛있다. 와…….”

“야, 안심 먹어 봐. 안심. 와…… 사람들이 이거 한 점씩 먹으면 다 마음 푹 놓고 안심하겠다. 와…….”

“…….”

“…….”

뜨거운 축제 분위기에 북극의 얼음덩어리를 끼얹는 복학생의 개그 한마디.

아…… 같은 복학생으로서……는 아니지.

난 복학을 안 했으니까.

암튼, 같은 군필자로서…… 심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복학생은 이런 축제에는…… 가급적이면…….

그래도 복학생의 개그로 인해 말끔하게 분위기가 정리됐다.

다들 젓가락을 놓고 일하러 가 버렸으니까.

아직 환한 대낮이지만, 슬슬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어서 오세요!

- 안녕하세요! 외식 마을입니다!

-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오…… 외식경영학과 학생들답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제법 경력자 느낌이 난다.

갑자기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삼겹살을 파는 고깃집이었는데,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에게 무조건 크고 힘차게 인사하자고 약속을 했다.

일본 드라마에 보면 손님이 들어설 때 식당에서 정말 크고 활기찬 소리로 인사를 한다.

이랏샤이마세!

맞나?

어쨌든…… 그런 활기찬 느낌을 내어 보고 싶었다.

나쁘지 않군.

오랜만에 이런 젊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장사를 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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