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72화 (72/110)

#72화 대파 제육볶음 (2)

“맛있게 드셨어요?”

“네, 늘 그렇듯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총장님이 오시면 저도 괜히 긴장이 돼서요.”

“아, 그럴 필요 없습니다. 총장님은 늘 여기 음식에 만족하고 계시거든요.”

“아…… 그렇다면 너무 감사하죠.”

“아, 그런데요. 이 사장님.”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받은 김흥범이 정색을 하며 묻는다.

“혹시…… 우리 과의 이우선이라는 학생이 사장님께 요리를 배운 적 있나요?”

“네? 음…… 아니요. 영훈대학교 학생이 제게 요리를 배워 간 적은 없습니다만…….”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대답을 들은 김흥범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가게 문을 나섰다.

이우선이라…… 아…… 안대훈…… 이 사람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자 일이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 듯했다.

요리를 한 사람을 대충 아무 사람이나 둘러대라고 했더니, 이우선이 뭔가, 이우선이.

이선우, 이우선.

에휴…… 초등학생이 봐도 뭔가 의심스럽겠다.

게다가 오늘 메뉴…… 축제 때 팔았던 삼겹 제육볶음과 매우 흡사한 맛이 났을 터.

감 좋은 김흥범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만도 하지.

피식.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축제 때 요리 좀 해 준 게 뭐 별일은 아니겠지만…… 그냥 드러내고 싶지 않았는데.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한 것처럼 되어 버린 듯싶다.

뭐,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도 때로는 찝찝함이 남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의 일이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게 좋다.

어차피 축제 때 요리 한 번 해 준 걸로 무슨 큰일이 날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안대훈은 센스를 좀 키울 필요는 있겠다.

이우선이 뭐냐…… 이우선이…… 진짜…….

* * *

동양학 시간 강사 정인태.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아니다.

이건 자의냐 타의냐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니까.

시간 강사의 월급과 불안정한 상황으로는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먹여 살리기 힘든 게 현실이니까.

영진동의 전철역 근처 한 카페.

정인태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다.

“그린티 푸라푸치노 하나, 솔티카라멜 라떼 하나, 그릭요거트 스무디 하나, 딸기초코바나나 주스 하나요.”

“아…… 손님 죄송한데 다시 한 번만…….”

“네? 벌써 두 번째 말씀드렸잖아요.”

손님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고, 정인태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묻어 나왔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음료 이름들이 워낙 어려워서…… 아! 솔티 카라멜까지는 들었습니다만…….”

“에휴. 그. 릭. 요. 거. 트. 스. 무. 디. 하고요. 딸. 기. 초. 코. 바. 나. 나. 주. 스. 요. 됐죠?”

“아, 감사합니다. 손님. 빨리 만들어서 드리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카페 사장님의 시선이 곱지 않다.

정인태는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며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정인태의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고르기도 쉽지가 않았다.

대학의 시간 강사라는 게 봉급은 적고 권리는 없지만, 의무는 또 많은 자리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의 준비, 첨삭 지도, 면담 지도.

이런 모든 것은 원래는 대학의 정교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

정규직도 아니면서, 돈은 가장 적게 받는 정인태 같은 시간 강사에게 저런 일들이 다 떨어진다.

학생들에게는 허울 좋은 ‘교수님’ 소리를 듣지만, 실제로는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시간 강사에게.

그러다 보니, 학교 근처에 있는 곳에서 비교적 단시간 동안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겨우 찾아낸 곳이 바로 카페 아르바이트.

평소에는 커피도 안 사 먹는 정인태에게 카페의 여러 음료의 메뉴가 쉽게 인식될 리 없다.

그나마 이런 건 익숙해지면 괜찮다.

가장 곤란할 때는 영진대학교 학생들이 손님으로 올 때다.

아는 얼굴이라도 보면 행여라도 들킬까 봐 후다닥 창고로 숨는다.

그런 모습을 사장님이 좋아할 리는 없고.

그러니, 이런 아르바이트 하나를 하는 것도 그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휴우…….”

다섯 시간의 아르바이트가 끝났는데, 하루 종일 일한 것만 같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이럴 땐 역시…… 뭔가 좀…….

맛있는 게 먹고 싶다.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는 길.

선우네 백반 메뉴판 앞에 멈춰 선다.

“대파…… 제육볶음?”

정인태의 머릿속에 동의보감의 구절이 떠오른다.

- 맛은 맵고 독이 없다. 감기로 오한발열이 있고 과한 바람을 쐬어 얼굴과 눈이 붓는 것과 인후염을 치료한다. 태동이 불안한 것을 든든하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간의 사기를 제거한다. 오장을 잘 소통하게 하고…….

대파의 효능이다.

그야말로 오늘같이 진이 빠진 날, 가장 안성맞춤인 음식이다.

육천 원.

뼈 빠지게 번 한 시간의 시급이지만, 이선우 사장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결코 아깝지 않은 돈이다.

“안녕하세요?”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선 정인태.

하지만, 손님은 없고, 분위기가 왠지 정리하는 느낌이다.

시간을 보니 여덟 시 삼십 분.

“아…… 문을 닫을 시간이군요. 그럼 다음에 오겠…….”

“아닙니다. 앉으세요.”

“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교수님은 정확히 여덟 시 이십구 분 삼십오 초에 들어오셨습니다. 마감 전에 들어오셨으니 당연히 식사를 하셔야죠.”

“오…… 감사합니다.”

정인태가 진민호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진민호는 주방 쪽을 보며 내게 윙크를 했고, 나는 엄지를 들어 올려 보였다.

저 너머로 보이는 정인태.

언젠가 본의 아니게 그를 전철역 앞 카페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아니, 마주쳤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내가 일방적으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그를 본 거니까.

그 모습을 들키면 민망해할까 봐 일행들을 이끌고 괜히 다른 카페로 이동했던 나였다.

시장에서는 교수님으로 알려진 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렸을 때라면 몰랐겠지만, 세상의 경험을 해 가다 보니 알게 되었다.

대학교도…… 상상외로 엄청난 ‘신분(?)’의 구분이 있는 곳이라는 걸.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 같이.

시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로 이어지는 신분의 상승 곡선.

정인태는 아직까지 그 상승의 곡선을 타고 있지 못하다는 걸 그날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지쳐 있는 그를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그러니…… 별거 있겠는가.

정성껏,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줘야지.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에 지친 그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도록.

* * *

늘 그렇듯이 정인태는 천천히 맛을 음미해 가며, 정성스럽게 밥을 먹었다.

그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도를 닦는 것 같다.

일상이 바쁘고 힘들 텐데도 그의 이런 모습은 그가 헛공부를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러던 정인태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사장님?”

“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맥주 한 병 마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마침 저도 한잔하려던 참인데, 제가 마시려던 걸 드려도 될까요?”

“아, 그러셨나요? 그렇다면 저야 감사하죠. 하하.”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 둔 맥주를 들고 정인태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톡. 솨아아.

뚜껑을 따자 탄산이 새어 나오면서 만들어진 하얀 김이 맥주의 신선함을 가늠케 한다.

쿨렁 쿨렁 쿨렁.

빈 잔에 맥주가 채워지는 소리가 좋다.

“자, 한잔하시죠.”

짠.

꽉 찬 맥주잔 두 개가 허공에서 부딪힌다.

캬아.

역시 맥주의 첫 모금이란.

그 어떤 음료의 첫 입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아…… 오랜만에 마시니…… 진짜 좋네요. 맥주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싶고.”

“맥주의 첫 모금만큼 환상적인 맛은 없죠. 오늘따라 유난히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후후. 참…… 대파 제육볶음 진짜 맛있습니다. 특히 이 대파…… 어떻게 볶으면 이런 맛이 납니까? 숨이 너무 살아 있지도 너무 죽어 있지도 않은 아삭한 식감에 대파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도 살아 있고. 정말 좋습니다.”

말을 마친 정인태가 안주 삼아 아삭- 대파 한 입을 씹어 먹는다.

“뭐…… 별다른 비법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신선한 재료를 쓰고, 적절한 조리법을 지켜서 조리하면 되는 거죠. 굳이 비법이 있다면…… 대파는 고기를 다 익힌 후 마지막에 넣는다, 정도가 되겠네요.”

“오…… 하긴, 대파를 고기와 같이 볶으면, 이 대파의 형태가 남아나지를 않겠군요. 근데, 사장님은 어쩔 때 보면 인생을 저보다도 더 많이 사신 분 같아요.”

“제가요? 그럴 리가요. 이제 이십 대 중반밖에 안 된 애송이인걸요.”

“에이…… 느낌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뭐랄까? 중년의 노련함 같은 게 언뜻언뜻 보인다고나 할까?”

“아…… 그 말씀은 제가…… 겉늙어 보인다는 그런 말씀인가요? 아, 요새 장사하느라 외모 관리를 못 했더니…….”

“아이고,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당연히 아니죠. 하하하.”

정인태가 눈앞에서 손사래를 쳤다.

그나저나 꽤 날카롭네.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가?

하긴, 공부를 많이 하면 시야도 넓어지고, 생각도 깊어지고, 사람 보는 눈도 날카로워질 테니.

은연중 뿜어 나오는 내 말투, 표정 같은 걸 보고도 내가 여느 이십 대랑은 다른 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웬 맥주를 다 드십니까?”

“아…… 그냥…… 삶이 좀 고되네요. 모든 게 쉽지 않고…… 생각대로 안 되고요.”

“아…….”

“그나저나 저 때문에 계속 가게 문 열고 계신 거 아닙니까? 이만 일어나 보겠…….”

“아, 아닙니다. 이미 정리는 끝났고, 다른 분들은 뒷문으로 다 퇴근하셨어요. 저만 남아 있고, 저도 마침 맥주 한잔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니, 시간 괜찮으시면 제 술친구가 되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아, 그런가요? 하하. 술친구라…… 오늘 같은 날이면 무조건 환영이죠. 그럼, 소주는 없나요? 이왕 마시는 거 좀 제대로 마셔 보고 싶은걸요.”

“오, 좋죠. 안 그래도 살얼음이 차 있는 시원한 슬러시 소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는 서너 병의 빈 소주병이 놓이게 되었다.

약 두 병의 소주를 마신 정인태는 취할 대로 취해 있었다.

“동생! 그거 알지이? 내가 이 집 음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말 너무 맛있다고! 너어무!”

“후훗. 잘 알죠, 형님. 그러니 자주 오세요. 자주.”

“자주? 하하하하하. 그럼, 그래야지! 내가 돈 육천 원이 아까워서 자주 못 오는 게 아니라고. 그런 게 절대 아니라고!”

음…… 백반값 육천 원.

이 돈도 그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금액인가 보다.

매일 먹기에는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에게처럼 공짜로 밥을 줄 테니 편하게 오라는 말은 못 하겠다.

그건 오히려 정인태의 자존심을 긁는 일이 될 수가 있으니.

“교수님. 제가 잘 알고 있죠. 워낙 바쁘시니까 매일 못 오시는걸. 오시고 싶을 때 오세요. 편하게.”

“교수님…… 교수님? 사실 나 그런 거 아니야. 교수님…… 그런 거 아니라고…….”

정인태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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